고장 난 영혼
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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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 가능(?)한 이야기라 말하고 싶어진 이유는,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덕분이다. '벗겨진 베일' 에서 남자는 타인의 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자신에게 다가온 종말의 시간까지 예감 할(?) 수 있는 남자.. 시간은 과거로 넘어간다.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가 이렇게 소환될 줄이야..(이야기 자체가 닮았다는 건 물론 아니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버지는 장남에게 절대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 차남인 동시에 나약해 보이는 이유로 아버지 관심 밖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타인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람이 갖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유독 그가 읽어낼 수 없었던 건 '사랑'에 대한 마음이었다. 읽어낼 수 없어서 오히려 더 집착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사랑에 대한 마음을 품었던 걸까.. 


"아버지를 향한 감정이 누그러졌던 이 시기는 유년 시절 이후로 내가 경험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몇 달간의 이 시기에 나는 버사가 애정을 품은 존재라는 환상.그녀가 어쩌면 나를 사랑하리라고 갈망하고 의심하고 희망하는 감미로운 환상을 간직했다"/69쪽


래티머에게 찾아온 능력은 어쩌면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마음 보다 의심하는 마음이 크다. 그럼에도 유독 버사의 마음만은 읽어낼 수가 없어 괴롭다고 고백하던 래티머.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을 알지 못했던 건 아니였을까, 형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그에겐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고백은 그래서 섬뜩하다.




"(..) '왜' 라는 질문이 소설의 형식 안에서 자주 소환되는 이유는 소설이 삶의 평범한 순간을 환기하는 데 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마무리되고 완성된 삶의 형식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데도 역시나 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인물들은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그들이 죽는 이유가 작가가 그들을 죽게 만들어서다(...)"/68쪽


두 책을 함께 읽게 된 건 아무리 생각해도 기쁜일 이다. 솔직히 말하면 소설을 애정하는 입장에서 <인생에 가장 가까은 것>은 옆에 두고두고 읽게 될 책이기도 하다. 비단 조지 엘리엇 소설과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확신. <고함과 분노>를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집요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반가웠다. 의식의 흐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계속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았다.몰락하는 가문 보다 몰락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서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작가들이 '죽임'을 만들어 놓는 이유도,큰 그림이란 사실을 이해했다. '벗겨진 베일'에서 형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래티머가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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