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연인』을 읽지 못했다. 대신 덜 부담(?)스럽게 느껴진 『동네 공원』과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읽었다. 짧지만 긴 호흡으로 읽게된 소설이다.여전히 '연인'이 망설여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영화에 대한 잔상이 너무 강해서.일수도 있겠다.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끝내 리뷰로 남기지 못했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도저히 독후감으로 남길수 없어서, 한줄평 정도 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기억이 있다.(세세한 줄거리는 벌써...)
"보통과 빠르기의 간극, 그 틈새를 채우려던 '사랑'이란 함정에 길을 잃기보다는, 두 속도 사이에서 위태롭게 살아갈 운명일지도~"
뒤라스를 읽으며 나는 균열과 닮은 무언가를 이미 한 줄로 적어두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를 균열내기』라는 제목이 반가웠다. 그런 이유(?)로 뒤라스 편을 읽다가 『태평양을 막는 제방』이 유독 읽고 싶어진 것 같다.(이 소설말고도 언급된 작품들은 있었지만) 왠지 뒤라스 소설이 시작되는 지점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평양을 막으려는 여자와 그가 쌓은 제방을 매번 무너뜨리는 바다. 내게는 이 이야기가 하나의 신화 정확히는 실패한 신화처럼 읽힌다. 이렇게 실패한 신화는 우리의 삶에 두 가지 방식으로 남는다.우리를 괴롭히거나 우리를 형성하거나 뒤라스에게는 양쪽 다였던 듯하다.어머니와 바다는 평생 그를 괴롭혔고 또 그를 형성했다.어머니와 바다가 없었다면 그 둘의 광기를 목격하지 않았다면 뒤라스의 문학이 존재했을까. 오해는 없길 바란다. 뒤라스의 문학을 만든 것은 광기를 응시했던 그의 시선이지 광기 그 자체는 아니다"/18쪽
영화로 본 '연인' 속 엄마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오버랩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를 균열내기>에서 언급된 소설 가운데 태평양...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