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는 물론 <<바스커빌가의 개>>나 <<뤼팽과 홈스의 대결>> 같은 소설을 읽고 나는 나의 어설픈 독일어로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을 주로 읽었다"/ 38쪽




줄리언 반스 소설 <용감한 친구들>에서 언급된 '바스카빌의 개'가 궁금해진 건, 아서가 실제 다룬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다.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조지의 입을 통해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는 코멘트를 듣게 된 것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조지의 생각인지, 줄리언 반스의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코난 도일의 작품은 거의 읽은 것이 없다 보니.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바스커빌가의 개>가 탄생하게 된 히스토리를 알게 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였다. 죽은 홈즈가..부활한 것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심령학에 관심을 둔 것이 홈즈의 부활을 가능하게 한 건 아닐까...소설을 읽는 동안은,아니 중반까지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아니 거의 끝으로 가면서 이 작품이 은근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홈즈가 거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왓슨박사가..거의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기분이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였다.'왓슨 박사의 모험' 이라는 부제가 있어야 하는가 아닌가..라는 주장이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왓슨박사를 전면에 내세운 것 자체가 홈즈의 빅피쳐였다고 본다.수사를 누가 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놓칠수 있는 것을 경계한 거다.서로 다른 눈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본다.물론 이 모든 건 왓슨 박사와 절대적인 신의가 있었야만 가능한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사건이 일어났는데...수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은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알이란 프로를 볼때마다 답답했던 이유를 하나 찾았다. 누가 범인인지 알 것 같은 상황에서..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유는 '증거' 불충분! 물론 증거도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범인을 찾는 것이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바스커빌가의 개>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나게 된 것도, 누가 범인인지 알 것 같은데,그가 정말 범인이란 사실을 명확하게 해 줄 증거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이제 놀랍지 않지만..추리소설의 장점은 범인을 멋지게 찾아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걸 심농소설을 읽으면서 알았다. 그런 추리물만 찾아 읽는 것일수도 있겠고,그런 시선으로만 읽고 있는 것일수도 있겠지만....무튼 요란스럽지 않은 추리소설이란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런데 홈즈가 부활해서 다시 씌여진 작품에 대한 관심은 무척 많았던 모양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코넌 도일' 편에 바스커빌... 관련 글들이 모두 흥미롭다. 심령에 관한 부분은 나만 그렇게 생각한것이 아니였구나 싶어 반가웠고,소설 서문에 언급한 로빈슨.관련해서 그가 공저라고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당혹스럽긴 했다. 자신이 살았던 마을의전설을 이야기해준것으로 기반으로 씌여진 작품인데, 로빈슨..은 이야기가 소설에 거의 그대로 그려졌다고 생각한 듯 하다."도일은 시간이 흐른 뒤<<스트렌드>> 편집자에게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기에 고쳐서 다시 쓰면 생명이 빠져나가버리고 만다.<<바스커빌 가문의 개>>는 초고와 <<스트랜드>>에 실린 내용을 비교해보면 서로 다른 곳은 한두 군데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도일의 헌사는 로빈슨이 책에 기여한 바에 충분한 것일까? 그보다 더 큰 명예(공동 작가로 이름을 올리는)가 필요했던 것일까? 도일은 이 소설의 주요한 협력자를 로빈슨이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그것이 공저자로 인정하는 형태는 아니었다"/200쪽 '코난 도일' 중에서 소설을 읽는 내내 '증거' 에 대한 어려움을 생각했는데... 바스커빌..이야기에도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남아 있는 듯 하다. 전설을 그냥 이야기만 해 준거라면..공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텐데..홈즈보다 왓슨이 소설에 더 많이 언급된 이유와도 혹 연관이 있었을까..생각해 보게 된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에서도 조지는 아서의 추리 과정에 석연찮은 여운을 주더니..정작 코넌 도일 작품을 읽고 난 후에도 개운치 않은 무언가를 느끼게 될 줄이야..그래도 몇 편 정도는 더 읽어 볼 생각이다...^^ 


책속에 책이 언급될 되는 순간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소설과 전혀 연관 없이 등장한 것일수도 있을텐데 지나칠 수가 없다^^)  분명 읽었는데..내용이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되려나...기록 덕분에,저런 느낌으로 읽었구나,무슨 이유로 읽게 되었구나를 확인하는 기쁨도 좋고..다시 읽어 보고 싶은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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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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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나의 독서 주제는 '사랑'이다. 사실 사랑이란 주제를 정하지 않아도..작품 속에 '사랑'이 빠져 있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무튼 그렇게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다시 읽고.. 로렌스의<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박경리작가의 <타인들>을 챙겨오게 되었다. '사랑'에 관한 언급이 유혹한 탓이다..^^



<토지>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럼에도 다른 책들로는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김약국의 딸들> <파시> <표류도>를 재미나게 읽으면서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이래저래 <타인들>이 궁금해진 거다. 그런데 앞서 읽은 세 작품에 비하면 조금..아니 많이 아쉬웠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듯한 느낌과 우연들이....그런데 현실에서 더 소설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소설 속 관계들이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무튼 전체적 느낌은 그랬으나.. '사랑'이란 주제를 가져와 읽는 건 분명 재미난 경험이었다. 우선 하진이란 인물은 <콜레라시대의 사랑> 속 그 남자와는 너무 다른 색깔이다 싶어서..이렇게 사랑을 밀쳐 내기만 할 수 도 있는 걸까 생각하며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내마음대로 해석^^) 염기섭의 사랑은..페르미나다사가 노년에 사랑에 대해 했던 생각과 조금 비슷한 느낌..이렇게 적고 보니, 나의 감상도 조금은 작위적이란 느낌도 든다.. 콜레라..인물과 비교해 보고 싶은 욕심에..그래서 결국 '사랑'이란 문제로 다시 돌아와 보면... 사랑이 없다고 부인할 수록.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증오 속에도 사랑이 있고, 오로지 사랑을 하기 위해 사랑을 하기도 하는 걸까 생각했다.


"미움도 사랑도 없이 막연히 산다는 것,그것보다 더 무섭고 괴로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336쪽 하진에 대한 문희의 사랑이 조금은 답답해 보여서 콜레라..의 아리사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그건 독자의 억지스러움이 있음을 인정하기로 하고...한 마디로 정의 내릴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서 이렇게 집요하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진형형인 모양이다. 하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했던 건 사랑이었고,문희는 그 사랑을 하진에게 보여준 거라 보면,그녀의 답답한 사랑일수록 진실이 숨어 있는 걸까..그녀의 진심이 늦게라도 하진에게 전달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겠다. 살짝 실망스러웠던 <타인들>이었지만 소설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니,<시장과 전장>까지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의 불행으로 출발하여<김약국의 딸들>에서는 한 가정의 불행으로 확대되고<파시>에 와서는 한 사회의 불행으로 확대되었으며 <시장과 전장>에서는 민족적 비극으로 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흐름에 놓자면 <타인들>은 개인적 비극이 민족적 비극과 연결괸 전쟁 후일담 소설의 위치를 갖는다/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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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러 가기 전 부터 유독 눈에 들어온 포스터였는데..

영화 속 언급되는 책들에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윌리엄 포크너의 책이...

그런데 이 책에 대한 뉴스가 더 당혹스러워

일단 지켜봐야겠다.

코다아야의 <나무>는 검색되지 않았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의 <11>은 아직인가 보다..캐롤의 작가일줄이야.

'퍼펙트'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마음에 들었고

음악에 조예 있는 감독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좋았다.

무엇보다 일본의 다양한 화장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감상하는 즐거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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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세 번은 읽어야 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예전에는 '사랑'만 보였는데 이제는....^^



아이들은 정말 아플 때만 병에 걸리고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 질병의 구체적 증상을 가지고서만 의사와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반면에 어른들은 특정한 나이가 되면 병도 걸리지 않았는데 증상을 보이거나 그보다 더한 경우 최소한의 증상밖에 없는데도 중병에 걸리곤 했다./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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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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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읽기다. 그리고 이번이 가장 재미나게 읽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분명 처음에도 재미나게 읽었을 것 같긴 하다.(그렇지 않았다면 다시 읽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그때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마르케스의 소설이 술술 읽혀지는 것에 대한 흥분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오롯이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았고, 오로지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에 대한 질문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집착으로 보일수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우선 아리사의 성격들이 보여 놀랐고, 페르미나 다사가 그를 사랑하게 된 이유, 헤어진 이유들이 비교적(?)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었다는 사실. 그보다 그녀가 좀 더 깊은 안목을 가졌던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그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그런데 사랑에 대한 기준과 정의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둘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고..시간이 흘러 사랑에 대한 이해가 젊은 시절과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둘은 다시 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331쪽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니... 제목에 함몰되어 조금은 의도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었다(처음 읽을때는 그랬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우리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되었고,그것이 어느 면에서는 바람직한 어떤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도 지켜보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들..물론 부작용과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그와 그녀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에  '콜레라' 가 있었을 줄이야..누군가에게는 고통이었고 아픔이었을 질병이...누군가에게는 사랑에 용기를 낼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집착에 가까웠던 남자의 사랑은...소심함과 두려움 때문이었을지 몰라도..그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집착에 가깝다고 볼 수 없었던 건 그가 끝임없이 다른이들과 사랑(?)을 나눴기 때문이다. 사랑..은 쉬이 정이 내릴수도 없지만..그렇다고 하나 콕 찍어 오로지 그것만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 읽게 된 콜레라...는 예전 읽을 때와 달랐다.집착에 가까웠던 그의 성격과 박사의 갑작스런 죽음만을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앤딩의 장면도 분명하게 기억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를 겪지 않았다면 여전히 콜레라와 사랑이 닮아 있다는 현학적인 지점에서만 허우적 거렸을것 같다. 사랑보다 인생(삶)에 관한 이야기란 생각을 하며 읽을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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