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작은..<가만한 당신>에서부터다. 안타까운 사망관련 뉴스를 접하면서,나도 모르게 부고관련 에세이로 시선 고정.(이럴때 읽으려고 오래전 구입하고 지금껏 읽지 않고 있었나 보다^^) 시선이 가는 한 꼭지를 읽었다. 존엄사에 관한 글도 인상적이었지만, 엘리자베스 리비 윌슨이 애정했다는 작가 이름에 시선 고정!! 그녀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끝내고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 힘들었는데, 또 다른 형사시리즈라니 ...잘 알지는 못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무조건 읽고 싶어졌다. 마르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읽는 바람에, 7권 부터 읽어서..시간이 뒤죽박죽(그럼에도 재미났다.^^) 해서 존 리버스시리즈는 첫 작품부터 읽어 보는 걸로.



비교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어쩔수 없이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몰입도가 마르틴...형사보다는 조금 덜했다. 그럼에도 뭔가 끌어당기는 힘도 느껴져서...계속 읽어볼 생각이다. 아이들이 유괴된 다는 (그 이후까지..) 설정 만으로도 읽기 불편한..딱히 자극적인 묘사가 없음에도 '유괴' 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이 있다. 게다가 존 리버스 형사에게는 형사 이전의 과거가 아픈 역사로 남아 있어서... 형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마냥 힘들다. 뭔가 예리하게 형사라는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매듭과 십자가'의 주인공은 형사 자신이다. 그의 과거가 올가미처럼 그를 목조르는 것도 모자라서 주변인들까지...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 그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이들이 먼저 아픔을 겪어야 한다. 이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그리고 따져 묻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범인의 정체가..최면술로 알게 된다는 건...조금 위험한 설정아닌가..문학적 재미는 있을 수 있어도..종종 시사프로에서 최면효과로 범인의 몽타주가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이렇게 최면효과로 범인만 잡힐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은 싱거웠으나, 범인이..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 '책'에 있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무서운지...그래서 재미 없는 책은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고 형사는 말하지 않던가 <죄벌>은 해마다 읽으면서... 무튼 <매듭과 십자가>는 흥미롭다기 보다는 조금 불편한 사건이 언급되는 바람에 힘들었고, 딱히 수사라고 할 만한 진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존 리버스 개인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 형사도 인간이란 당연한 사실이 보였고,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 또한 슬펐다. 이 소설의 스모킹 건이었던 매듭은..결국 자신의 숙명을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는 암시도 되었던 걸까..하는 생각도 했고..언제나 그렇듯, 언론에 대한 작가들의 비판에 밑줄을.....


"남자는 사만다 리버스의 스토리를 사겠다고 했다. 편집장이 수표책이 담긴 주머니를 토닥거리면서 그런 상황이 스티븐스를 불편하게 만들었다.언론이 현실을 창출하고 그것을 자신들 구미에 맞게 손질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문제는 그 뒤에서 벌어지는,훨씬 추악하고 애매한 수작들이었다.(....)역사의 그림자에만 정신이 팔린 관광객들은 결코 그것을 볼 수 없었다.그는 영 불편했다.자신의 업적과 근무시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런런 신문사들의 제안은 아직 유효했다. 그는 그중 가장 두툼한 봉투를 챙겨 넣고 조용히 사라졌다"/245쪽  시리즈에 종종(?) 등장할 거로 예상되는 짐 스티븐스가 이후 어떤 취재를 하게 될지도 지켜봐야겠다. 스스로 정의로운 기자라 생각하지만... 그는 확인이 아니, 확신으로 리버스를 공범으로 생각했다.지금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확인과 확신..의 차이가 무섭다. 다음은 숨꼭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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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삽화가 하나 있는데 네게 보여주고 싶었어,존.내가 늙은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해 했던 말 기억하지?"

"그가 총으로 놈들을 다 쏴 죽여야 했다고 했었지"

순간 리버스는 그 말의 숨은 뜻을 깨달았다. 그가 이 단서를 잘못 해석한 것이었다/237쪽 <매듭과 십자가>에서 '죄와벌'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예전에 읽은 책들이 현재..지속적으로 소환(?)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죄와벌>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2016년이었는데, '매듭과 십자가' 덕분에 나의 감상기를 읽으면서..라쟈에 대해 작가도 아주 후한점수를 주지는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로쟈가 살해후 이름을 바꾼 대목이..'매듭과 십자가'에서도 나온다(왠지 오마주한 것 같은 기분..^^



2012년 <죄와벌>을 읽을 당시 친구와 나는 호들갑을 조금 떨었던 것 같다.이렇게 재미나게 읽어낼 줄 몰랐다면서..그러면서 십년 후에 다시 읽어 보기로 약속까지 했었는데...너무도 빨리(?) 죄와 벌을 다시 읽게 되고 말았다.이게 다 영화 <이레셔널 맨> 때문이다.우디알렌은 그저 살짝 죄와벌의 소재를 차용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그러니까 내가 조금더 확대 해석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는 거다.중요한 건 영화를 함께 본 지인이 ..죄와벌의 결말을 물어 왔을때 ..내가 할 말이 없었다는 거다.읽었다면서 어떻게 결말도 기억해 내지 못할수 있을까? 그저 로쟈가 광기에 사로잡혀 노파를 죽이고..로쟈의 친구 라주미힌이 어떤 성격의 인물이 어떤 유형히고..정도에서 나는 멈췄던 걸까? 분명 내가 감동하고 흥분했던 기억은 로쟈가 노파를 죽이는 장면은 아니었을 텐데..당시에는 흥분만 했을 뿐 '죄와벌'에 대한 리뷰도 남겨 놓지를 않았다.아마도 도선생님의 책을 드디어 읽는 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던 것 같다.그런데 다시 읽는'죄와벌' 은 조금 힘들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묻지마 살인들이 나를 공포로 엄습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여야 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인것처럼 혹은 무슨 계시인것처럼 라스콜니코프는 말한다.그런데 그렇게 그가 늘어 놓는 이유 어떤 것에도 그럴수 있어 라는 교감이 생기질 않았다.만약 그가 정말 노파를 죽인 것이 아니라 고리대금업이 사회의 악이라 생각해서 처단한 것이라면 그녀를 죽인 후 그는 당당하게 자수를 했어야 하는거 아닌가 물음이 따라온다.(물론 그렇다해도 살인은 어떤 식으로도 이해받을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이레셔널 맨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분이기도 했다.철학과 교수는 정의롭지 못한 판사를 죽이는 것이 사회를 위해 필요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격려를 한다.그러나 엉뚱하게 다른 이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사실을 알게 되면서도 그는 자수를 권하는 제자까지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우디알렌은 가볍(?)게 교수에게 벌을 내린다.안타까웠던 건 교수는 분명 벌을 받았는데..본인이 지은 죄를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는 거다.이런 생각을 하며 <죄와 벌>을 읽고 있으려니 죄를 지은 건 노파(그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라스콜니코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거다. 2부에선 로쟈에 대한 벌이 어떤식으로든 그려지지 않았을까? 소냐가 그를 위해 뭔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도 같은데 톨선생의 '부활'과 또 묘하게 겹치는 것 같아 우선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요는 1권에서 도선생이 우리에게 보여준 건..아니 그려내건 한 청년이 광기에 사로잡혀 노파를 살해하고 이후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끝임없이 여러개의 자아 속에서 혼돈을 겪는 과정까지다.재미난건 노파를 죽일 당시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푼 후 자신을 로지온이라고 불러다는 대목이었다.뭔가 새로 태워나고 싶은 로쟈의 염원같은것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로쟈를 정신병자라는 인물로만 놓고 보면 죄와벌은 읽기가 너무 힘들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도선생은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에만 집착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그렇지 않게 사회가 돌아갈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화로운 인간'이란 텍스트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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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풀보다 사람의 '입'이 더 무섭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면서

남자가 조금은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사람의 '입'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독풀' 보다 무섭다.

아니 독풀 만큼..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내 얼굴의 근육들은 일제히 경직된 것처럼 인사조차 나오지 않았다.그녀도 앞을 응시하고는 있지만 마치 뻥 뚫린 어두운 하늘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듯한 공허한 눈길로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마흔이나 먹은 그 무지한 여자는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모조리 다 듣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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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게 되는 책들에서 조지 엘리엇의 이름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표지가 선뜻 손이 가질 않았는데..결국 읽게 되는 날이왔다. 끝내고 나니, 민음사 출간 소식이... 그런데 <끝내주는 괴물들>에서 커소번..을 언급해서 이 책을 읽은 보람을 새삼 느낀다. 무엇보다 오만하다고 생각했던 커소번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란 시선이 흥미를 끈다. 콕 찍어 커소번에 대한 느낌을 아니라고..말해주는 시선을 만나게 될 줄이야^^


오로지 프레드 자신만 모르(?)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은 인내를 요한다.그러나..고백하자면 누군가의 본심을 알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대부분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프레드만의 문제도 아닐 뿐더러 알아낼 방법도 쉽지만은 않을 터....도로시아의 결혼생활이 힘든것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는 지점에서 부터 어긋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주 잠깐씩 등장할 뿐인데도 신기하게..도로시아 부부의 심리상태가 계속 소설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2부에서의 단연 하일라이트라면, 페더스톤 노인의 죽음과 유산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괴팍한 노인으로 그려진 노인은 죽기 전까지도 돈으로 권력놀이를 즐겼다. 친인척들에게 환상을 갖게 하고..저마다 자신이 가장 많은 유산을 갖게 될거라 굳게 믿는 모습이라니.... 마침내 죽음이 임박한 노인은..어떤 마음에서인지, 유언을 변경하려한다. 그러나 메리는 자신이 임의로 불태울수 없다며..노인의 유언장을 건드리지 않았고.... 조금은 예상한대로..그의 재산은 조슈아 리그에게로 모두 돌아갔다. 이후 사람들이 노인을 향해 쏟아 내는 악담과 원망은, 죽은 이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이가 단 한명도 없음을 보여준다.그런가하면 2권에서도 한 커플이 탄생했다. 리드게이트와 로저먼드. 도로시아는 약간 결이 다를수 있지만 리드게이트 부부 역시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것인지..사랑한다고 생각해서 결혼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로의 본심을 충분히 알았다기 보다, 자신들이 생각한대로 믿는 경향이 더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은 게으르기도 하고, 요행을 바라는 듯한 성향을 가진 프레드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유산을 둘러싼 사람들의 위선과..커소번이란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1권에서 충분히까지는 아니어도 도로시아를 사랑해서 결혼했을까..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는데.2부에서는 커소본의 오만과 위선과 독선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그렇게 느낄수 있는 지점들이 보여서 놀랐다.작가는 그렇게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피력했지만...그가 진정한 학자라면 갖지 않아야 할 덕목이란 생각 때문에 더 야박하게 평가한 탓일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인간 커소번으로 생각하고 보면, 그가 도로시아를 향해 느낄수 밖에 없는 질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미들마치는 가상의 마을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거대한 사회를 만화경처럼 그려낸 소설이란 느낌이 든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들이 왁자지껄하게 그려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런 가운데 조용히..그러나 강렬한 심리전을 보이고 있는 도로시아커플의 모습을 따라 가는 것도 은근 재미나다. 그들이 언젠가 서로의 마음을 툭 터놓게 되는 날이 과연 오게 되기는 할까.....




"커소번 신부는 자신이 일생토록 전념할 위대한 연구를 도와줄,초월적 진리를 향한 여정을 함께할 솔메이트를 만나고 싶어 한다. 혹자는 커소번이 아무 생각 없이 자기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해줄 노예를 원했을 뿐이라고 비난하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208쪽 망겔선생의 시선으로 보자면, 동상이몽..같은 마음이었다고 이해하면 될까.. 신부는 도로시아가 배우자인동시에..자신과 학문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도로시아는 학문 자체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것에서 오는 차이... 도로시아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신부가 야속했는데... 신부 입장에서 보면 도로시아가 자신을 좋아한 이유에 혼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커소본의 목표는 지식의 추구 자체로서 그것을 온전히 성취하는 일은 언제나 지평선 저 너머에 있다. 만약 도러시아가 지식을 향한 탐구를 끈기 있게 계속해나갔다면, 그리하여 그 활동이 본질적으로 영영 끝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가치 있다는 것을 커소번처럼 깨달았다면 자기 의문에 대한 해답의 그림자나마 찾았을지도 모른다"/213쪽


그리고...한 권의 책^^










"(...)커소번이 아무 생각 없이 자기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 해줄 노예를 원했을 뿐이라고 비난했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보르헤스가 역사상 최고의 탐정소설이라고 평가한 이든 필포츠의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에서 주인공은 이상적인 배우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208쪽 배우자에 대한 생각보다, 보르헤스가 인정한 탐정소설..이란 말에 시전 집중.. 여름에 읽을 계획이었던 추리와 탐정이야기를..9월에 읽게 될 것 같은 기분(엄청난 리스트에 한 권 더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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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에서 '파리의 노트르담'에 관한 내용을 소개해 준 걸 기억한다.방송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파리의 노트르담' 하면 종지기 카지모도 밖에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기에 당시 카지모도와 에스메랄다 그리고 클로드 신부의 숙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퍽 흥미롭게 다가왔다.이건 그야말로 숙명이 아닌가? 불구의 종지기는 아름다운 집시 여인을 사랑했고,집시 여인은 또 다른 장교를 사랑했고,가장 잔인한 숙명은 신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에게 속세의 사랑의 감정을 품어야 한다는 그 잔인한 숙명까지...그런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는 쉬이 넘어 가질 않았다.그렇게 오랜 시간 '파리의 노트르담'은 내게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알았다. 이 소설은 그저 카지모도와 에스메랄다 그리고 클로드 신부의 사랑이야기가 아니였다는 것을.15세기의 파리 혹은 19세기의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역사를 파리의 노트르담이 지켜 보고 있었다는 것을.그러니까 종지기 카지모도 도 클로드 신부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였던 거였다.다만 읽는 이가 누구에게 애정을 품는가에 따라 조금 크게 부각되어지는 것이였을 뿐. 그래서일까? 나는 숙명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괴로워 한 클로드 신부에게로 시선이 갔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다룬 탓도 있지만 클로드 신부를 보면서 오래전 보았던 우리나라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신을 따른다는 것이 숙명인 자에게 속세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은 과연 숙명을 저버리게 되는 것일까? 만약이란 가정법은 무의미하지만 클로드 신부가 자신의 신부로서 숙명을 벗어 던질수 있었다면 ,숙명이란 것이 오로지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에스메랄다에 대해 그토록 무서운 집착을 갖지는 않았을 텐데...그런점에서 보면 에스메랄다 나 카지모도는 얼마나 자유로운 인물들인가? 자신을 구원해 준 이를 위해 사랑할 숙명을 기꺼이 받아 들였으니까 말이다.그래서 나는 클로드 신부가 행복에 관한 생각을 읇조릴때 마음이 스산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보바리 씨도 그랬지만, 노트르담에서도 콰지모도에 관한 이야기라 흥미롭게 읽혔다. 오래전 읽은 나의 노트르담..을 살펴봐도 '추함'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 그러니까 망겔 선생의 시선으로 소설 속 인물과 만나는 시간은 즐거웠다. 노트르담성당의 아름다움을 위해 추한 콰지모도가 필요했다는 설정..이라니 무엇보다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던져진 질문은 놀라웠다. "카지모도는 겉보기와 정반대의 내면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질항아리에 예쁜 꽃들을 담아 에스메랄다에게 보여줌으로써 세공된 크리스틸 화병에 꽂힌 시든 꽃들과 비교하게끔하는데,이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으나 아무도 그걸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다정하고 관대하고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고 감사를 표할 수도 있으며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그런데 이 모든 것이 아무 소용도 없다.이 소설의 제목에 이름을 내준 건물이 그 어마어마한 아름다움으로 규정되듯,그는 괴물처럼 흉측한 외모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험한 관점으로서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등이 구부정하고 이가 들쑥날쑥하고 눈이 비뚤어진 카지모도가 실상 훌륭한 사람이라면 정교하게 세공된 석제와 스테인드클라스로 이루어진 노트르담 이면의 실상은 과연 무엇일까?"/ 202쪽  소설을 읽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뮤지컬을 보면서..는 카지모도에게도 사랑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해서 신부가 더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숙명'이란 화두가 그런 시선으로 보게 했던 걸까.. 아니면 내 무의식에 카지모도의 추함...이 작용한 걸까.. 오리지널 내한 팀이 다시 국내에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그때는 카지모도의 마음으로 읽어봐야 겠다.^^



"내면과 외면 또는 보이는 것과 감춰진 것 사이의 괴리는 문학에서 흔히 다뤄지는데도 우리는 현실에서 이런 괴리를 맞닥뜨리면 어김없이 속아 넘어간다. 부드러운 눈빛을 지닌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실은 클라우스 바르비(나치치하 게슈타포 책임자)였다거나, 근엄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심술궂은 입매를 한 사람의 사진이 알고 보면 테레사 수녀의 것이라거나(...)우리는 도통 깨우치지 못한다. 얼굴이 카지모도처럼 생긴 사람에게는 좋은 구석이 있을 수가 없다고 자꾸만 믿어버린다"/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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