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7
자크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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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인가, 소개 받은 시집인데,기억나지 않는다. 다행인 건 소개받은 시집의 제목을 메모해 둔 덕분에, 2025년이 가기 전에 읽을수 있게 되었다. 올해 유난히 벤치를 사진에 많이 담았던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시집의 제목만 놓고 보면, 외로워서 뭔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제목 자체가 이미 시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막상 시집을 펼쳐 보았을 때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이 쓸쓸해서...조금 힘들었다.


(중략)

당신은 거기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이제 다시는 저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저 행인들처럼/조용히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저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부분


콕 찍어 '절망' 이란 단어가 들어갔으니, 벤치에서 행복한 시선을 느낄수 없을 거란 건 예감했으나, '늙음'을 상징하는 단어일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아직은 거기까지 가 있지 않아서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늙어감에 대한 생각을 여전히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해서 처음엔 마냥 슬펐고, 반복해 읽으며 마냥 슬퍼해 하지 않기로 했다. 마냥 벤치에 앉아 있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아니 오게되더라도 절망을 그냥 잘 끌어안고 싶다. 그러나 이 마음이 쉽지 않다는 건 얼마전 서경식선생님 책을 읽으면서도 느낄수 있었다. 그래서 바람은, 고독한 노년의 시간이 절망으로 채워지지 않는 다양한 무언가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거다. 시 하나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거워질 인가 싶지만,앞으로 우리가 더 심각하게 마주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느 복잡한 이론보다 심플하고 간결하게 노인문제를 설명해준 기분.. 그런데 또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유한한 삶에 너무들 아웅다웅 살지 말라는 메세지로 읽혀지기도 했다. 다른 시들에서 내내 이런 은유가 보인 탓일게다. 특히 '불어 작문' 같은 시를 읽을 때는 시인들의 시선이 부러워질 따름이다.


아주 젊을 때 나폴레옹은 말라깽이였고/포병 장교였네/나중에 그는 황제가 되었네/그러자 그는 배가 나오고/많은 나라를 삼켰네/그가 죽던 날 그는 아직/배가 나왔지만/그는 더 작아졌다네/ '불어 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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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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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결단코 변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변할 수 없는 걸까?


내가 살고 있는 자그마한 나라에서도 서로 생각이 달라 싸운다.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를 넘어선다. 나도 그 속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 인종문제, 종교문제로 싸우는 문제에 놀랄일도 아닐텐데,흡인력 있는 작가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크리스마스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제목에 대한 끌림이 있었다. '죄'라는 단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 큰 이유가 되었을 터. 종교는 없지만, 한 해 동안 내가 잘못한 것들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어.공적인 얼굴, 사적인 얼굴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얼굴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인간에게 사진에서 보이는 짓거리들을 감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면 아무것도 없어. 전부 껍데기에 불과한 거야.그래서 그 공백을 환상으로 채우는 거지. 보통 사람이라면 역겹다고 할 만한 욕망으로 가득한 환상.(...)"/217쪽~218쪽



학교에서 일어난 총격사건. 백인선생을 쏜 흑인학생. 그런데 대치하는 중에 라트렐도 죽고만다. 경찰은 정당방위였다고 말하지만, 흑인시민사회에서는 과잉방어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라트렐을 죽인 경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그가 왜 백인선생을 쏘게 되었는가로 흘러간다. 모두가 우러러 보는 훌륭한 선생님의 실체가 들어난다.파도파도 넘쳐나는 사건들. 다크한 이야기인데, 너무 잘 읽혀져서 놀랐다. 타이터스처럼 외면하고 싶은 순간,장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는 어느 한쪽만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균형' 잡기. 어느 때보다 필요한 화두가 아닌가 싶다. 백인이라고 모두 백인우월주의를 지향하지 않듯,라트렐같은 학생이 모두 피해자로 보는 것도 위험하다는 뜻이다. 해서 읽는 내내 주제의 무거움과 흡인력의 놀라움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결말조차 개운한 해피앤딩이었다고 말할수 없는데.. 만약 해피앤딩으로 끝났다면, 앞서 진행된 이야기 모두가 허구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타이터스가 살아 남은 것에 안도를 했다.비록 보안관이란 옷을 벗었야 했지만,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문제에 대해 더 심오하게 공부를 하게 될 거라 믿고 싶다. 그가 어릴적 지닌 트라우마 관련 부분은 작위적이란 인상을 받았지만, 그 역시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의든 타의였든...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죄를 지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피를 흘릴수 밖에 없는 운명인데..이 명제를 부정할 수도, 부정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부정하는 순간 혐오의 대열로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응징을 받았다. 그래서 또 개운하지 않은 지점도 남았지만.... 지금으로싸는 그게 최선은 아닐까..여전히 악독한 짓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는 건 불편하지만..그럴수록 명심해야 할 말은,그들과 나를 구분해서 생각하지 말아야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란 사실(요즘은 이런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ㅠㅠ) 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덜 피를 흘리며 살아갈텐데..나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는 수밖에 


"어디 출신이든 어디에 살고 있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다 똑같아.질투하고 미워하고 비비 꼬이거나 역겨워하지, 훔치기도 하고 거짓말도 해.훔친 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남편이나 아내 혹은 아들 딸들을 탐하지.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형제애를 외치며 하나님 안에 살고 있다고 맹세하지만 교회 밖으로 나오자마자 당신이나 내게 게으른 깜둥이 새끼들이라고 욕하고(...) '저들은 죄인들이야,저들은 괴물들이야,우리는 아니여.카론은 달라' 라고"/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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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과 공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624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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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작약과 공터>를 빌려왔다. 손이 자연스럽게 넘겨진 페이지는 앞서 대출했던, 혹은 더 앞서 대출한 이가 인상깊게 읽은 곳을 표시해 놓은 지점이었다.


가끔/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이 웅덩이를 만들지만//

웅덩이를 피해/늘 그랬다는 듯/ 스탭을 밟는 게 생이다//

눈물을 흘렸지만/다시 스탭을 밟는 것//

눈물을 기억하지만/눈물에 말을 담그지 않는 것/ 그게 생이다//

내일 또/눈물이 흐르고/그 눈물도 고이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벼운 스텝으로/눈물 사이로 지나쳐 가는 것/ 사는 일이다//

절반은 눈물 절반은 스텝 // '스텝'


조금 건조(?)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시의 내용은 읽는 이들 저마다 공감할 지점이었다. 슬플때 화장한다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누군가는 춤을 출수도 있겠구나..생각하다가, 슬픔을 잘 견뎌내는 방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슬픔 한 가운데 있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겠지만, 눈물에 리듬을 담아 사뿐히 사뿐히..빠져 나오고.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눈물에 스텝이란 이름을 더하니깐,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거란 생각.. '스텝'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앞서 읽은 이용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면 유쾌한 순간보다 불쾌감을 느낄때가 더 많았는데... 뭔가 함께 읽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작약과 공터>를 읽고 싶었던 건 순전히 '작약'과 '공터' 때문이었다. 말장난 같지만.. 작약을 좋아하는 지인의 마음을 엿보게 될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나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보여지는 작약 화려함 너머의 알 수 없는, 아니 이제는 조금 알것도 같은 상상이 되어지는 세계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잔인함과 슬픔) 그래서 낭만은 무너졌고, 쓸쓸함과 오롯이 마주한 기분이었다.  '스텝'을 읽고 시작한 덕분인지..아니면 '스텝'이 '작약과 공터'의 에필로그 역활을 해 준 것이었는지.... 읽는 시들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혀지는 시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스텝'이 가장 경쾌(?)하게 읽혀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풍경과 호수>를 읽으면서..다짐했다. 풍경 속에 박제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도 하면서 살아야겠다. 조금은 애쓰며 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고.


사실 기쁨이라는 게 케이크 꽂는/가느다란 양초보다도 짧고/잘 살라고 만들어 준 오늘을 우리는/ 여전히 잘 못 살고// '풍경과 호수 '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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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의 책을 다시 읽어 볼까 하는 마음이 든 순간 을유에서 나온 포크너의 책이 보였다. 내가 죽어...를 읽고 난 후 <곰>도 읽고, <소리와 분노>도 읽고 싶었지만..그렇게 하지 못했다. 2026년 1월 포크너의 책들을 다시 읽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에서 포크너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분노' 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자주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죄를 지은... 을 인상깊게 읽게 되면서 출판사도 급 관심이... 생겼는데 

맙소사..



두 책을 나란히 읽어 보고 싶어졌다  '분노' 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할 정도의 이야기일 것 같아서.


"스콧은 다시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타이터스가 듣기에 마치 세탁기 안에서 벽돌이 돌아가는 소리 같았다. 한 인간의 불안을 대변하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분노의 소리"/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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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영웅의 가면 뒤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 테죠"/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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