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 마음과 행동을 탐구하는 새로운 과학
데이비드 버스 지음, 이충호 옮김, 최재천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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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모가 고모보다 가깝게 느껴질까? 첫 데이트에서는 왜 대부분 남자가 돈을 낼까? 남자들은 왜 어린 여자를 좋아할까? 여자들은 왜 상대적으로 키가 크고 근육질에 상체가 V자형으로 발달한 남자를 더 좋아할까? 남자의 질투와 여자의 질투는 어떻게 다를까? 무엇보다도, 마음이 대체 무엇일까.



 데이비드 버스가 소개하는 진화 심리학은 여타 다른 학문에서 그 원인과 과정을 끌어내어 인간의 생존과 마음과 행동을 설명한다. 거슬러 올라가 보자. 변이, 유전, 선택. 이는 생명의 수수께끼에 대한 다윈의 답이다. 생존과 생식을 위해 모든 종은 점진적이며 무계획적으로 변화를 꾀한다. 다윈에게 보낸 논문에서 멘델은 콩의 교배를 통해 유전이 혼합이 아닌 입자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밝혔다. 그 후 동물행동학의 창시자 로렌츠는 조류에게서 나타난 각인 현상(새끼 오리는 가장 먼저 본 물체를 어미로 각인한다)을 발견하는데, 이는 진화생물학에서 나타난 새로운 물결이었다. 이후 사회 생물학을 계승하되 방향은 달리 한 진화 심리학은 인간의 적응, 모듈화된 마음, 인지능력, 정신 기관에 집중한다.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질 것이라던 다윈의 예언이 적중하는 부분이다. 




 왜 특별한 어떤 아가씨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까?

-윌리엄 제임스, 1890.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정신 기관'이라고 부른다. 심리철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스위스 나이프처럼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조적으로 작용하여 준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본다. 이는 곧 진화심리학의 입장이기도 하다. 연애, 결혼, 육아, 양육, 질투, 친밀감, 형제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에 이르기까지 진화심리학은 언어, 심리, 철학, 역사, 그리고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에 자체를 연결해 인간의 생존과 진화를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남자는 왜 결혼을 하는가? 이는 곧 올드 보이의 잘못된 질문과도 같다. 왜 나를 가두었느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왜 나를 풀어주었느냐고 물어야 옳은 것이었듯, 문제는 답에 있고 답은 문제에서 비롯된다. 즉, 남자의 결혼은 여자가 만든 규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의 번식, 유전자 복제에 더 큰 비용을 부담하는 쪽은 여자이다.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본 결혼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여자에게는 자신과 아이에게 헌신적으로 투자할 배우자가 필요하다. 뫼비우스의 띠는 이 문제가 곧 우리의 남자 조상이 자손을 성공적으로 만들려면 아이를 낳을 능력이 있는 여자와 결혼해야 했고, 결혼이라는 제도로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는 것을 방지하며, 여자의 친족과 동맹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뜻한다. '예쁜 여자'라고 쓰고 '자신의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복제할 수 있는 여자'라고 읽는다. 젊고 허리가 가늘고 머리카락과 살결이 곱고 다리가 예쁜 여자. 순서대로 번역하자면 앞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고 아직 출산 경험이 없으며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건강하고 생체역할 효율성을 지닌 여자. 



 문 닫는 시간 현상이라는 실험이 있다. 술집에서 남자 137명과 여자 8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인데 각각 다가가 술집에 있는 이성들의 매력을 평가하도록 한 것. 그 결과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올수록 남자들은 여자들을 더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시간이 없다, 얼른얼른 선택해야 한다!'하는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는 여자들이 시간대별로 큰 변화가 없는 점수를 매긴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술에 취할수록 여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비어 고글 효과와 마찬가지로, 이는 앞서 이야기한 장기적 짝짓기와 상반되는 단기적 짝짓기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는 법. 어떻게 이러한 단기적 짝짓기가 일어나는 것일까? 단기적 짝짓기를 남자가 할 수 있다는 뜻은 마찬가지로 단기적 짝짓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다는 뜻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여자가 단기적 짝짓기(이 책에서는 캐주얼 섹스라고도 일컫는다)를 통해 친부의 혼란을 통한 투자, 즉각적인 경제적 지원, 지위 상승, 다양한 유전자, 배우자 축출이나 대체, 배우자의 선호 분명히 하기, 복수(!), 장기적 배우자의 헌신 증가시키기 등을 얻는다. 결국, 인간의 '짝'이라는 개념은 분명하고 또렷한 목적을 가진 행동이다. 




어머니는 그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자신을 낳은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중에서.


 

 여자는 필연적으로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는 어떤가? 위험한 말이지만 남자는 믿는 것이 약이다. 분명 자신의 아이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자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자신의 몸을 통해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알지만 남자는 자신의 신체가 아닌 여자의 신체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부성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곧, 수컷의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수컷이 암컷의 난자를 수정시켰을 가능성이 항상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의 보살핌이라는 진화한 기제는 '이 아이가 정말 내 자식일까?(자식의 유전적 근연도)', '내가 쏟아붓는 투자가 자식의 생존과 번식에 어떤 차이를 빚어낼까?(부모의 보살핌을 적합도로 전환하는 자식의 능력)', '투자를 자식에게 쓸까, 아니면 다른 활동에 쓸까?(자식에게 투자할 자원의 대체 용도)'와 같은 세 가지 맥락에서 민감하게 드러난다. 태어난 아이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면 남자는 아기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2005년의 연구결과). 아이가 자신과 닮지 않았거나 자신의 아이가 아닐 때 아이는 극단적으로는 살해의 위협에까지 노출된다는 점은 아버지의 투자가 자식의 생존에 밀접한 영향을 행사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인간은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투자를 하기 시작한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발걸음이 움직인다는 말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일부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조지 오웰


 

 움직이는 그 걸음이 의식되는 것은 그러나 왜일까? 왜 우리는 지위, 명성, 위신, 명예, 존경, 계급에 제각각 다르게, 그러나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로버트 프랭크의 말처럼, 우리는 계급에 신경 쓰는 신경계가 있는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이를테면 우리는 위험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자비로움을 세상에 알리며(익명보다 실명 기부가 더 많다)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원을 저축하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아무리 느려도 5분 내로 서열이 결정되는데, 이때 나타나는 지배성은 우리의 시각적 기억까지 다르게 인식시킨다. 똑같은 남자를 청중에게 인식시키며 교수, 학생으로 다르게 소개했을 때 청중은 지위가 높을수록 심상에서 그의 키를 더 큰 것으로 인식했다. 육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에서 그치지 않고 정신을 발현시키는 틀이기도 했다.




진화심리학의 가장 흥미진진한 측면은 사람의 행동을 통합적으로 기술하려는 노력에서 생물학, 인류학, 심리학과 그 밖의 행동과학 분야들에서 증거와 설명을 통합하는 틀을 약속한다는 데 있다. 

-보이어, 헥하우젠. 2000.


 

 데이비드 버스는 사람들은 늘 진화의 문제에 어느 정도의 저항감을 가진다고 말하며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의 영역에서 과학적 진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진 심리학, 생물학과 교집합을 이루는 사회과학을 지나 여타의 학문 분과를 아우르거나 충돌하는(부모 자식 이론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학문이 앞으로 진화 윤리학, 진화 심리학, 진화 사회학으로 더 세분될지 심리학으로 종결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만큼 이 분야는 총체적이다. 어쩌면 인간의 가족 구성, 종교, 관습이 모두 성행위, 종족 번식, 배우자 선택과 직결된다는 것은 참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짝짓기'라는 단어에서 오는 묘한 느낌만 보아도 그렇다. 이것은 자원과 유전자를 두고 작동하는 마음에의 문제이다. 투사할 것인가 합리화할 것인가. 매력, 사랑, 배우자 선택, 결혼에서 유전자가 그 스스로 독단적인 판단을 언제나 끌어내지는 않는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마음은 아무 때나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 심리학의 관심은 정신기관으로서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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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7-17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두꺼운 책을 읽으셨군요. 흥미롭지만 읽을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 과감히 포기했어요. 단지 책장에 꽂아두기 위해 없는 가뜩이나 돈을 쓰는 일을 하지 않을 뿐인데, 그걸 포기라고 하다니 좀 웃기네요. 아무려나, 두껍고 비싼 책을 다 읽은 듯한 리뷰 잘 보았습니다.

Jeanne_Hebuterne 2012-07-18 10:06   좋아요 0 | URL
네, 이 두껍고 비싼 책은 알라딘의 알사탕과 중고샵 제도, 저의 시간 남아 돔의 삼위일체의 결과물이어요. 선물받은 책을 제외한 책 대부분은 친구에게 주거나 중고샵에 방출하곤 합니다. 보관하며 참조하기 위해 종종 다시 펼쳐보는 책이 아닌, 그저 꽂아두는 책의 운명이 참 서글퍼서요. 결국 책이 생명을 얻는 것은 어떻게든 읽히는 경우인데, 아무도 원치 않으면 도서관 기증이라도 하곤 해요. 그런 의미에서 poptrash님보다 제가 더 빨리 자주 많이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저역시 이걸 포기라고 하다니 웃기지만요.
 
Olive Kitteridge (Paperback) - NYT 선정 "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
Strout, Elizabeth 지음 / Random House Inc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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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결함에 결함을 보탠 존재이건만 동시에 사물에 깃든 이치, 사물끼리의 연관을 얻기 위해 그 자체에 내재한 모순을 이겨내고 관계를 통해 의미를 얻는 존재이기도 하다. 타인을, 자기 자신을 이해할 줄 아는 아량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기 힘들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간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인 동시에 최악의 조건인 셈이다. 


 여기 그 관계를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를 조명한 소설이 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퀼트를 짜내듯 열세 개의 이야기를 직조했다. 산뜻하고 찬란하다. 미숙함에서 믿음을, 균형에서 가치를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문장은 섬세하고 깔끔하여 생생하다. 미국 메인 주의 해안 마을에 사는 7학년 수학 교사 올리브 키터리지. 남편과 아들. 아들의 부인. 이웃. 미화되지 않은 묘사와 정직한 시선으로 이들의 관계와 일상에 집중한다. 



 'Olive is a big person. ...  It's true she always been tall and frequently felt clumsy, but the business of being big showed up with age; her ankles puffed out, her shoulders rolled up behind her neck, and her wrists and hands seemed to become the size of a man's.'(p.62)


'올리브는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그녀는 원래 키가 컸고 좀 투박해 보였는데 나이 들면서 그 큰 체구가 더욱 부각되었다. 발목을 움직일 땐 숨이 찼고 어깨는 목 뒤로 튀어나왔다. 손목과 손은 남자 손목, 손과 비슷한 크기로까지 보였다.'


 또한 올리브 키터리지는 사과를 하지 않고 단호하며 때로는 심술궂기도 하다.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는 말한다. 'You can make people feel terrible(엄마는 사람 기분을 망쳐버려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편지의 답장에 올리브는 'Don't be sorry. ... We all know this stuff is bound to happen. There's not a damn thing to be sorry about.(별 유감도 아닌 일입니다. ... 이런 일이야 일어나기 마련이에요. 유감이라고 말할 그런 망할 일 따위 없어요.)라고 답장을 쓴다. 친구에게 'Always nice to hear other people's problem(다른 사람들 문제를 듣는 건 늘 재미있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이런 올리브의 다른 면이 드러난다.


 "It kills me. Like the devil. And it must be my fault, too, though I don't understand it. I don't remember things the way he seems to remember them. He sees a psychiatrist named Arthur, and I think Arthur has done this." She paused a long time, clicked on Send, then immediately wrote, "P.S. But it has to be my fault, too. Henry said I never apologized for anything, ever, and maybe he was right" She clicked on Send. Then she wrote: "P.S. AGAIN. He was right."-(p.267)

 

 "끔찍해요. 악마처럼. 난 이해 못하겠지만 어쩌면 내 잘못일 수도 있지요. 그 애의 기억과 나의 기억은 달라요. 아서라는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다던데 그쪽에서 그랬을 거에요." 그녀는 좀 오랜 시간 편지 쓰기를 멈추었다가 보내기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시 썼다. "추신.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에요. 헨리는 내가 그 어떤 일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마 그가 옳은 것 같아요." 그녀는 보내기 버튼을 클릭했다. 그런 다음 썼다. "추신. 한 번 더. 그가 옳았어요."


 바깥에서 안으로. 안에서 바깥으로. 짧은 이야기를 통해 가족, 작은 마을의 소소한 사건이 연결된다. 그 고리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타인과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What can I do for you, Christopher?" she'd ask, meaning Do Something for me! "Shall I fly out and visit you?"(p.149)


 "뭘 도와줄까, 크리스토퍼?" 그녀는 묻곤 했다. 실은 그 말은 '나한테 뭔가 좀 해 줘!" 라는 뜻이었다. "비행기로 너한테 갈까?"


 그러나 아들은 '아니오.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각자의 생각은 다르고 감정과 기억마저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이 모이는 지점은 비슷하다. 헨리와 올리브의 행복은 다르게 만져질지언정 비슷하게 떠오른다.

 

 The year that followed-was it the happiest year of his own life? He often thought so, even knowing that such a thing was foolish to claim about any year of one's life; but in his memory, that particular year held the sweetness of a time that contained no thoughts of a beginning and no thoughts of an end, and when he drove to the pharmacy in the early morning darkness of winter, then later in the breaking light of spring, the full-throated summer opening before him, it was the small pleasure of his work that seemed in their simplicities to fill him to the brim.(p.10)

 

 이듬해, 아마 그때가 헨리의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해였을까? 일생 중 어떤 때가 되었든 간에 그렇게 우기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이따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는 어느 특정한 해가 감칠맛 있게 단 느낌과 함께 존재했다. 그가 차를 운전하여 겨울 새벽어둠 속에, 그다음엔 봄빛을 받으며, 한여름에도 약국으로 출근할 때에 그를 소박한 충만함으로 채워준 것은 그가 하는 일에서 느꼈던 작은 기쁨이었다.


 Olive's private view view is that life depends on what she thinks of as "big bursts" and "little bursts." Big bursts are things like marriage or children, intimacies that keep you afloat, but these bursts hold dangerous, unseen currents. Which is why you need the little bursts as well: a friendly clerk at Bradlee's, let's say, or the waitress at Dunkin Donuts who now how you like our coffee. Tricky business, really.(p.68)

 

 올리브는 속으로 인생이 "큰 기쁨" 과 "작은 기쁨"이라고 그녀가 분류하는 것들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 아이들과 같은 것과 같이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이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한 구석이 있다. 이 점 때문에 "작은 기쁨"이 있어야 한다. : 브래들리의 친절한 점원, 커피 취향을 알아주는 던킨 도넛의 웨이트리스 같은 존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올리브는 사람들은 등만 돌리면 남의 험담을 한다고 말하며 그들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있기에 아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녀는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상처받을 때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각자의 생각과 마음이 서로의 삶을 아우른다. 사람들의 이해가 만났다가 어긋나서 모퉁이에서 부딪히는 풍경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거듭하여 공감과 존중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마음이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돌아서는 순간이 있다. 생각과 느낌이 궁금하여 묻고 싶어지고 잠시 숨을 고르게 되는 순간. 그 도중 느끼는 실망. 비롯되는 기대. 이 사이사이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귀 기울여 목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관심 없이는 감정도 없다. 살아가면서 스치는 바람과 기대는 다이아몬드처럼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단단해서 부서지지 않지만 동시에 그 단단함으로 다른 보석에 상처를 주는 것이 다이아몬드라면 다른 한편으로 마모되고 상처받는 돌들이 있다. 삶에는 마찰 부분이 닳아서 없어진 그 돌들이 만드는 빛이 찬란한 순간이 있다. 대상을 확실히 이해하여 아는 일은 상황과 사건이, 어떠한 사람이 사람의 삶의 조각조각이 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람을 결국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하여주는 일이다. 그 길은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해 완성된다. 해야 하는 일. 사는 동안 어우러져 나타나는 풍경.

 

마치 이 한 편의 시처럼.



저물녘, 변산

  권정우


바닷가에 와서 보니

해는 매일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우리의 하루와

한 생도 

몸을 낮출수록

더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조금 닳은 듯 한 조약돌을 손을 내밀어 처음 보는 것인 양 어루만질 때의 촉각. 읽고 나면 다시 다짐하게 된다. 나는 올리브 키터리지와 같은 소설작품을 통해 스스로 얼마나 쉽게 판단을 내리고 추측을 하는지, 뉘우치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읽기와 쓰기는 오락에 그치지 않고 해봄 직한 가치를 지닌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해야 할 일. 사람이 가진 가장 유리한 조건과 가장 불리한 조건을 끄집어내어 파도를 겪어내고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하는 일.






일러두기-본문은 링크한 random house trade paperbacks에서 발췌하였으며 원문 번역은 한국어판 발췌가 아닌 잔 에뷔테른의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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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06-2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키터리지]를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Jeanne_Hebuterne 2012-06-25 19:17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몇몇 구절에 감탄하며 기억하려 애썼습니다만 어제 다시 읽으니 당시에 모른 체 지나갔던 부분들이 들어왔어요. 올리브의 고집스러운 외모, 암담한 대화, 거기에서 읽을 수 있는 삶에 지친 사람의 모습. '에브리맨'이 굳건하게 버티고 서기를 손을 꼭 잡고 당부했다면 올리브 키터리지는 '알면서 왜 그래, 이 사람아' 라고 슬쩍 웃으며 옆에 함께 앉아 있는 작품 같아요. 굳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대조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문체가 슬쩍 그렇게 일러줍니다. 레와 님은 무엇을 발견하실지 궁금해요.

hnine 2012-06-25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글을 읽고 little bursts, 즉 인생의 대소사 중 '소소한 사건'들이 왜 가치있고 중요한지 깨닫고 가네요.
권정우님의 저 시에도 참 깊은 뜻이 담겨 있군요.

Jeanne_Hebuterne 2012-06-25 20:03   좋아요 0 | URL
어떤 것이 가치있고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작품이었어요. 소소하고 별 일 없어도 낙담하지 말아라. 큰 일이 생겨도 별 일 아닐 것이다. 라고 속삭여주는 느낌과 함께.작은 조각들을 그러모아 큰 그림을 그린달까요.

큰 기쁨과 작은 기쁨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는지 인용을 꽤 많이 하더군요. 아마 이 책을 읽게 되신다면 저 부분을 앞뒤 문맥과 관련하여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해요. 저 인용 단락만으로도 좋지만 앞뒤 글과 함께 읽으면 또 기분이 다르거든요.

무심하게 지나치는 단어와 문장이 새롭게 느껴지고 그 뜻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시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읽는 사람을 긴장시키기도 하구요.

blanca 2012-06-2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쥬드님이 인용해 주신 원문을 떠듬떠듬 읽으니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었던 그 기억들이 다시 돌아오네요. 삶 전체를 이렇게나 섬세하게 아름답게 슬프게 잘 이야기한 책이 있을까요? 큰 기쁨, 작은 기쁨. 요새는 작은 기쁨이 얼마나 삶에 있어 유용한 것들인지를 깨달아 가는 중입니다. 살수록 배워야 할 것 투성입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Jeanne_Hebuterne 2012-06-26 12:36   좋아요 0 | URL
허망한 삶, 생의 작은 승리. 이러한 글귀를 블랑카 님의 올리브 키터리지 관련 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광도 좌절도 없는 삶. 어제, 오늘, 내일이 비슷한 삶이 평범하고 밋밋하다 생각하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라는 걸 속삭여 줍니다. 블랑카 님도 비슷하게 느끼셨을까요?
살아있는 순간들이 굵직하니 큰 기쁨만으로 채워지기는 어렵겠지요.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겠으나 배울 점은 뜻밖에 작은 기쁨과 작은 슬픔에서 필연적으로 더 빈번하게 나올 거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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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을 겪은 사람이 있다. 그 일 후에 그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누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범위는 넓으나 그 맥은 각자의 스펙트럼으로 잡는다. 그런 일이 있었다. 내게는 이유가 중요했는데 타인에게는 결과가 중요한 일. 아니 에르노는 그런 개인의 경험을 글로 쓴다.
 
역사. 객관. 서사. 결과. 이유. 상황. 판단.
에르노의 글은 일기가 아니다.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은 묻지 않는다. 물 바깥으로 끄집어 내어 이미 죽어가는 물고기 머리를 바닥에 계속 패대기치지 않는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패대기치다'의 뜻을 '매우 짜증 나거나 못마땅하여 어떤 일이나 물건을 거칠게 내던지다'라고 정의한다). 에르노는 절제하지 않는다. 그대로 나타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에르노의 글이 '날 것'이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 '날 것'의 한계 때문이다. 절제하는 감정과 그릇을 담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다른 매체에서 있으나 에르노는 역사를 곧바로 겨냥한다. 슬퍼도 울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파악하는 핵심을 보는 생각하기의 전형이다.
 
아이리쉬의 초록색과 에스키모어의 흰색을 나는 하나의 단어로 바꾸어 쓴다. 내게는 그 한 단어가 전부이다.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 나는 내 감정의 어휘가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은 마음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나를 대하는 타인의 다양한 반응에 가변차선로를 적용할 일도 이제 없을 것이다. 가지치기를 했다. 남은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정격전압. 부러 멋부리지 않고도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글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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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play - 3집 X & Y [일반반]
콜드플레이 (Coldplay) 노래 / 워너뮤직(팔로폰)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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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드플레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음반, 싱글앨범, 가사, 밴드 멤버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이제 밴드가 활동한지도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 와서 이제는 이 밴드를 이야기하는 것이 브릿팝씬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차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되었다. 음반 하나라든지 싱글 하나만 내놓고 사라진 밴드가 얼마나 많은가. 가장 유명하게는 영화 청춘 스케치(위노나 라이더가 그토로 아름답던 시절) 삽입곡 'my sharona'가 그랬고 가장 근접하게는 쿨라 쉐이커의 'K'가 그러했다. 물론 콜드플레이의 경우 첫 앨범이 워낙 대단하여 한 번 반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덜했으나 혹시 아는가 하는 노파심이 두번째 앨범에서는 기우였음이 드러났고 마침내는 이 밴드의 실력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초에 비틀즈가 있었다면 블러와 오아시스는 그 후손들 중의 하나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블러, 오아시스의 이종사촌격으로 켄트와 버브(한글로 쓰니 이상하구나-verve)가 있었으며 우울증에 걸린 이들로는 뮤즈. 첨단기기에 가장 능숙한 이들 중 하나로는 라디오헤드(ok computer가 90년대에 나왔다니!), 약간 동떨어졌나 싶은 행동을 가끔 하지만 그래도 핏줄인가 싶은 이로는 스웨이드. 사춘기의 방황하는 자녀로는 트래비스. 이렇게 흐르고 또 흘러 브릿팝에서 콜드플레이를 듣게 되었다. 아차. 동네 형들 같다가 어느 순간 메가스타디움급 밴드가 된  U2의 입김을 어찌 잊을까. 콜드 플레이는 그들의 역사를 잇는 밴드다. 지금의 리뷰는 가장 최근작이 아닌 이 음반에 관한 것이므로 이 음반에만 집중하자면 이 음반에서야말로 브라이언 이노의 프로듀싱이 빛을 발한다. 산만하지 않고 원숙하며 진중하고 단단하다. 새롭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전작의 수려함에 비해서 새롭지 않다는 뜻이다. 팝씬에서 밴드가 자신들이 잘 하는 사운드를 더욱 원숙하게 내놓는 것을 평단에서는 종종  '매너리즘에 빠졌다' 라고 평가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X & Y는 여러번 숙고한 듯한 소리를 들려준다. 스트링이 동동 떠다니는 듯한 이질감도 없고 딜레이는 효율적이다. 가사를 마치 자신들의 감성을 여러겹 덧칠을 하듯 덧씌웠는데 이는 전작의 내뱉는 듯한 혈기에 비하면 신중하기까지 하다. 물론 muse에 비하면 밝기까지 하다.  fix you의 '빛이 너를 인도할 거야'라는 가사는 결국 그들이 어쩔 수 없는 긍정을 구두 밑창에 은근슬쩍 깔고 있는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말하는 게 힘들고 힘없이 싸우고 있을 때 정신이 흐트러져. 뭔가 고장이 났고 넌 그걸 고치려 들었지. ... 널 사랑하려고는 했는데 제대로 될지 의문이야' 라는 가사를 듣노라면 보컬 크리스 마틴의 굵직한 저음에서 특유의 가성의 폭이 이 가사에 얼마나 적절한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다 밑바닥에 깔린 청년의 감성.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결국은 '노래'로 종착되는 이 밴드의 여정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우울함, 감성, 슬픔을 겸손하고 조용하게 절제하여 표현하는 방식. 

어쩌면 이 밴드의 정체성을 파악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듯 브라이언 이노의 프로듀싱, U2의 재림인가 싶은 사운드, 트래비스의 멜로디컬 라인 같은 점들이 이 밴드의 특성인데 어찌 헛갈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크리스 마틴 스스로가 '우리는 트래비스에게서 비롯되었고, 트래비스로부터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을 보면 이들의 정체성은 곧 80, 90 년대 이후 브릿팝 씬의 총합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또 어떤가. 'All I want to do is rock'이라고 트래비스가 말하여도 결국 그들이 만드는 음악은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였다. 일어나면 언제나 일요일이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너에게 가까워지는 것 같아. 너에게 닿으려고 나는 글을 써. 이렇게 말하던 밴드다. 그 노래를 듣고 자라난 콜드플레이는 'Give me real, don't give me fake' 라고 노래한다. 이것은 팝의 방향이기도 하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이제는 자유자재로(물론 처음부터 그랬지만) 다루고 가사는 누가 누구와 사귀다 헤어졌다는 사랑노래에서 벗어나 정치적이기도 하다. 기타는 견고해졌고 보컬은 효율적이다. 드러밍은 가사 라인을 잘 붙잡아 준다. 정체되고 보수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이전의 싱글들에 비하면 임팩트에 있어서는 덜할지라도 물흐르듯 흘러가는 원숙함과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담담함에 있어서는 전작을 능가한다. 키보드 장식 없는 인트로. 구태의연하게 변주된 사운드가 아닌 달리 만들어낸 멜로디의 스트링을 사용하고 일렉트릭 사운드를 필요한 때에 사용하며 일관적이기까지 하다. 이대로 계속 가기를.

덧-viva la vida에서 앨범의 틀은 견고해졌으되 멤버간의 결속은 덜했음을 떠올리며 살짝 불안했더랬으나(크리스 마틴이 옐로우를 뉴욕에서 부르다 마이크에 입술을 부딪혔 때 보이던 멤버들의 미소!) 이건 몇 년도 전의 일이니 다시 몇 번의 라이브를 더 겪어봐야 알 일. 아직은 결속이 건재함이 분명하다. 꼭 새 앨범이 최근에 나와서 이리 말하는 건 아니고. 

또다시 덧-링크의 앨범은 정규음반. 나오고 한참이 지나 한국에서 발매된(꼭 이러더라) 두 장 짜리 음반이 별도로 존재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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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5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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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미 쇼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미란다는 '결혼은 행복한 결말(해피 엔딩)이 아니라 그냥 결말(엔딩)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사는 일에도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부친이 숨을 거두며 결론을 말한다. '삶은 하나의 오렌지였다' 


실은 이 문장에는 오렌지 대신 사과, 파인애플, 책상, 그리고 그 클리셰 초콜렛 상자까지 무엇이 들어가도 문장이 성립된다는 것이 포인트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단락이 없다. 단원의 구분이 없다. 단지 쉼표, 마침표, 울림이 있을 뿐이다. 이 일이 끝나면 모든 것이 결말을 맞이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주로 그것들은 삶의 중대한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하나의 행사에 불과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유학을 가든 이직을 하든 사표를 내든 무엇을 하든 일의 성격은 달라질 것이나 그것을 겪는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이며 그 혹은 그녀의 고유한 특성대로 움직이는 것이 분명한데 달라지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여기, 아내가 사고로 장애인이 된 남자가 그리고 쓴 그림과 글 모음이 있다. 뉴요커, 스타일리스트, 어느날 승강장에서 추락, 척추뼈 마비, 반신불수, 휠체어, 그리고 그 다음의 생활. 여기에는 그 일을 굳이 겪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그러나 상상하고 싶지 않은) 모든 일들이 있다. 그녀의 남편 대니 그레고리는 단 한 번도 장애인의 남편으로 사는 것을 꿈꾸어본 적이 없는 남자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조용히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모든 생활은 당신이 꿈꾸어왔던 어떤 것이었는지를. 

결국 하늘 아래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교해 보면 거기서 거기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성서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글귀를 떠올리지 않아도 새로운 것은 기껏해야 배반 정도인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사람이 가장 놀라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이 배반이 아닐까. 상상하지 못했던 것.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예측하지 못했떤 어떤 일은 사람을 그 현상으로부터 튕겨낸다. 균형, 견제, 파악, 생각, 행동, 이 모든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진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무조건 모두 지하철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거나 그런 이의 배우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이라는 부사구가 들어가는 순간 사람의 삶은 여지없이 전체주의의 전제에 압사당하기 마련이니까.

여름철 산들바람이 부는 순간 같은 책. 그래서 살짝 이마에 맺힌 땀. 그 송글송글 맺힌 형체가 더 드러나도록 만들어주는 글과 그림들. 표지의 밝은 노란색의 건물과 푸른 하늘색의 하늘 같은 책. 그리고 그 앞의 애완견 같은 흑색의 글씨들의 글귀들. 대니 그레고리는(둘 다 어째 이름 같다. 이름과 성이 아니라 이름과 이름) 종종 가장 그림을 그리기에 힘든 자세를 찾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든다 했다가 안든다 했다가 뭔가 새로운 것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림이 제대로 안될 때엔 꼭 삶이 제대로 안되는 기분이라는 말은, 아니, 혹시 그 반대인가 하는 이 사람의 부가의문문을 보며 더욱 명확해진다. 그림의 붓이 가는, 펜이 가는 길은 개인의 서명과도 같다. 어떤 이의 필체를 흉내내야 할 때에는(나는 왜 이런 것을 체득했나) 모양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펜이 흐르는 선을 흉내내야 한다. 비슷한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은 펜 선이 가는 그 길을 흉내낸 다음의 일이다. 이것은 그러니까 잘 그린 그림일 수도 있고 못 그린 그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는 반기를 들 수가 없게 만드는 그림이다. 그림에서 나오는 이 사람의 마음. 이 사람의 눈이 흐르는 길. 이 사람의 생각의 흐름. 시선의 고정과 흑백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적인 것이 자신의 아내의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그린 부분이다. 아름다운, 지혜로운, 글래머(이건 아마 글래머러스-의 번역이지 싶은데 그렇다면 멋있는, 멋을 부린, 쿨한, 차라리 쉬크한, 이렇게 번역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지만 어디까지나 원문을 못본 독자의 의견일 뿐), 섹시한 패티를 그렸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얼굴이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러다 덧붙인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한 사람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아주 많은 역사가 담겨 있다. 그것을 모두 알아서는 안될 일. 가만히 보면 사물이 말을 거는 일이 생긴다고 대니 그레고리는 말한다. 결국 이 사람의 그림 그리기, 일기 쓰기는 모든 생활의 총합이다. 어느 순간은 더하고 어느 순간은 빼게 된다. 이 이합집산에서 남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의 아내가 휠체어를 평생 타야 했을 때 이 남자는 머뭇거리고 주저한다. 그리 책에 쓰진 않았지만 독자는 누구나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 앞으로의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 대니 그레고리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패티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쩌면, 이 두 문장 아래 갈등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누구나 갈등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I love my wife. I am in love with her.
I love my wife. but I am not in love with her.

글쎄, 한국 말로는 러브가 무조건 사랑인지라 무엇이라 옮길 수 없지만 이 미묘한 차이를 무엇이라 설명해야 했을까.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더이상 마음이 간질간질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묘한 중앙분리대. 이 때 결국 이 두 사람을 여전히 함께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존경, 신뢰, 고마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런 중요한 요소들은 개인에 따라 다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돈, 신체, 가정형편, 뭐 이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너무 속된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아름다움은 껍데기일 뿐이라면, 아름다운 췌장이라도 보여주어야 가능한 것일까? 성과 속은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하지만 그보다도, 이런 것은 어떤가.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몽테뉴가 말한 것 처럼, "나의 삶은 지독한 불행으로 가득한데,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앞날을 예측하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세워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고 궁리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병원 대기실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장례 치르는 집에도 묘지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던 그 흉한 일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당신에게 하지 못한다. 
-책속에서

결국 모든 흉터는 살아남은 자의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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