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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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미 쇼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미란다는 '결혼은 행복한 결말(해피 엔딩)이 아니라 그냥 결말(엔딩)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사는 일에도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부친이 숨을 거두며 결론을 말한다. '삶은 하나의 오렌지였다' 


실은 이 문장에는 오렌지 대신 사과, 파인애플, 책상, 그리고 그 클리셰 초콜렛 상자까지 무엇이 들어가도 문장이 성립된다는 것이 포인트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단락이 없다. 단원의 구분이 없다. 단지 쉼표, 마침표, 울림이 있을 뿐이다. 이 일이 끝나면 모든 것이 결말을 맞이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주로 그것들은 삶의 중대한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하나의 행사에 불과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유학을 가든 이직을 하든 사표를 내든 무엇을 하든 일의 성격은 달라질 것이나 그것을 겪는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이며 그 혹은 그녀의 고유한 특성대로 움직이는 것이 분명한데 달라지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여기, 아내가 사고로 장애인이 된 남자가 그리고 쓴 그림과 글 모음이 있다. 뉴요커, 스타일리스트, 어느날 승강장에서 추락, 척추뼈 마비, 반신불수, 휠체어, 그리고 그 다음의 생활. 여기에는 그 일을 굳이 겪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그러나 상상하고 싶지 않은) 모든 일들이 있다. 그녀의 남편 대니 그레고리는 단 한 번도 장애인의 남편으로 사는 것을 꿈꾸어본 적이 없는 남자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조용히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모든 생활은 당신이 꿈꾸어왔던 어떤 것이었는지를. 

결국 하늘 아래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교해 보면 거기서 거기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성서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글귀를 떠올리지 않아도 새로운 것은 기껏해야 배반 정도인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사람이 가장 놀라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이 배반이 아닐까. 상상하지 못했던 것.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예측하지 못했떤 어떤 일은 사람을 그 현상으로부터 튕겨낸다. 균형, 견제, 파악, 생각, 행동, 이 모든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진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무조건 모두 지하철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거나 그런 이의 배우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이라는 부사구가 들어가는 순간 사람의 삶은 여지없이 전체주의의 전제에 압사당하기 마련이니까.

여름철 산들바람이 부는 순간 같은 책. 그래서 살짝 이마에 맺힌 땀. 그 송글송글 맺힌 형체가 더 드러나도록 만들어주는 글과 그림들. 표지의 밝은 노란색의 건물과 푸른 하늘색의 하늘 같은 책. 그리고 그 앞의 애완견 같은 흑색의 글씨들의 글귀들. 대니 그레고리는(둘 다 어째 이름 같다. 이름과 성이 아니라 이름과 이름) 종종 가장 그림을 그리기에 힘든 자세를 찾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든다 했다가 안든다 했다가 뭔가 새로운 것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림이 제대로 안될 때엔 꼭 삶이 제대로 안되는 기분이라는 말은, 아니, 혹시 그 반대인가 하는 이 사람의 부가의문문을 보며 더욱 명확해진다. 그림의 붓이 가는, 펜이 가는 길은 개인의 서명과도 같다. 어떤 이의 필체를 흉내내야 할 때에는(나는 왜 이런 것을 체득했나) 모양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펜이 흐르는 선을 흉내내야 한다. 비슷한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은 펜 선이 가는 그 길을 흉내낸 다음의 일이다. 이것은 그러니까 잘 그린 그림일 수도 있고 못 그린 그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는 반기를 들 수가 없게 만드는 그림이다. 그림에서 나오는 이 사람의 마음. 이 사람의 눈이 흐르는 길. 이 사람의 생각의 흐름. 시선의 고정과 흑백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적인 것이 자신의 아내의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그린 부분이다. 아름다운, 지혜로운, 글래머(이건 아마 글래머러스-의 번역이지 싶은데 그렇다면 멋있는, 멋을 부린, 쿨한, 차라리 쉬크한, 이렇게 번역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지만 어디까지나 원문을 못본 독자의 의견일 뿐), 섹시한 패티를 그렸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얼굴이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러다 덧붙인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한 사람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아주 많은 역사가 담겨 있다. 그것을 모두 알아서는 안될 일. 가만히 보면 사물이 말을 거는 일이 생긴다고 대니 그레고리는 말한다. 결국 이 사람의 그림 그리기, 일기 쓰기는 모든 생활의 총합이다. 어느 순간은 더하고 어느 순간은 빼게 된다. 이 이합집산에서 남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의 아내가 휠체어를 평생 타야 했을 때 이 남자는 머뭇거리고 주저한다. 그리 책에 쓰진 않았지만 독자는 누구나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 앞으로의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 대니 그레고리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패티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쩌면, 이 두 문장 아래 갈등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누구나 갈등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I love my wife. I am in love with her.
I love my wife. but I am not in love with her.

글쎄, 한국 말로는 러브가 무조건 사랑인지라 무엇이라 옮길 수 없지만 이 미묘한 차이를 무엇이라 설명해야 했을까.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더이상 마음이 간질간질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묘한 중앙분리대. 이 때 결국 이 두 사람을 여전히 함께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존경, 신뢰, 고마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런 중요한 요소들은 개인에 따라 다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돈, 신체, 가정형편, 뭐 이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너무 속된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아름다움은 껍데기일 뿐이라면, 아름다운 췌장이라도 보여주어야 가능한 것일까? 성과 속은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하지만 그보다도, 이런 것은 어떤가.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몽테뉴가 말한 것 처럼, "나의 삶은 지독한 불행으로 가득한데,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앞날을 예측하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세워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고 궁리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병원 대기실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장례 치르는 집에도 묘지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던 그 흉한 일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당신에게 하지 못한다. 
-책속에서

결국 모든 흉터는 살아남은 자의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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