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자의 디자인 공부 - 불필요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스테판 비알 지음, 이소영 옮김 / 홍시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어떤 책의 표지는 다른 책의 표지보다 아름다운지, 왜 어떤 회사의 휴대전화는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사용감이 좋은지, 왜 저 자동차는 다른 자동차보다 날렵한지 궁금했다.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아홉 가지 흉을 가리는 일일 거라 생각한 적도 있었고 마이클 잭슨의 성형처럼 다른 자아 소유의 문제일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디자인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스스로 말한다. 동시에 홀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 묘한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부서로 취급받기도 하고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것'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기술과 함께 혁신을 이룬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그 발전의 계단을 오르게 하는 원동력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히틀러가 독일 모든 국민에게 보급하기 위해 제작을 지시하여 만든 폭스바겐 비틀은 그 자체가 혁신이었다. 수용 불가능한 차체에 수용해야만 하는 모든 기술을 넣은, 엑스선을 투과했을 때 일 인치의 빈 공간도 없는 혁신은 디자인의 모든 단계가 정직하게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그 과정을 에코 불에서 강의하는 프랑스 철학자 스테판 비알은 세 가지 단계로 나눈다. 사람들의 필요를 관찰하는 단계, 실험 단계, 실행 단계.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고 아이디어로 만들면서 배운다. 구상은 결코 실현 '이전에' 오지 않고 실현 '이후에' 온다. 실행 단계에서 디자인은 능동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디자이너가 하는 선택에 모두가 관여하게 된다. 무엇을 구상했다 한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디자인의 영역에 있다. 모든 사물이 아니라 모든 것이. 디자인은 모든 역설과 현상의 총합이었다. 단지 공기같이 당연하게 느껴져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스테판 비알은 이 역설을 설명하고 디자인에 대해 고찰을 하기 위해 먼저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어원, 디자인의 역사를 이 책에서 설명한다. '구별되는 기호로 나타내다, 선으로 그리다, 가리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지금 생각하는 이 개념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태어나 20세기 초에 독일에서 고안되었으며 미국에서 구현되었다. 무엇이든 만들기 좋아했던 영국의 관리 헨리 콜이 '기능'과 '장식', '지능'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공업 생산 원칙을 확립하고 예술의 위대함과 기계의 능숙한 솜씨를 결합하고자 하는 의도로 만국 공산 박람회(흔히 만국 박람회라고 일컬었다)를 개최한다. 그 후 윌리엄 모리스는 장식미술에 관해 '나는 내 삶의 물질적인 틀이 쾌적하고 아름다우며 너그럽기를 요구한다.' 라고 1884년의 저술에서 말하였고 독일에서는 발터 그로피우스가 주도한 바우하우스가 수공업과 미술에 중심을 두고 두각을 드러낸다. 미국에서는 산업 디자인의 형태로 25년의 세월에 걸쳐 그 틀을 형성했다. 이 짧은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디자인은 산업에 맞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산업과 더불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디자이너는 자본주의와 공범 의식을 느끼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한 것처럼 포장했다는 소비를 부추겼다는 죄의식을 떠안고, 때로는 사회 체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마저 안고 있다.
앞 장에서분명히 보았듯이 마케팅 디자인은 현실이고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현실이며, 명확히 규정되는 현실이고, 우리가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여기서 마케팅 디자인이라는 말로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시장을 '수단'인 동시에 '목적'으로 파악하는 디자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디자인에 윤리가 있다면, 이 윤리는 "단순한 수단이자 도구, 과정의 역할로, 즉 여러 수단 중 하나로 시장을 제한해야 하며 시장을 결코 목표나 목적, 의도로, 다시 말해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원리에만 기반을 둘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칸트 식으로 만든 다음 명령을디자이너의 도덕률로 세울 것을 제안한다. "그대가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만큼이나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그대의 사람됨에서도 언제나 시장을 결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다룰 수 있도록 행동하라." 이것이야말로 디자이너의 정언 명령이다. 이것이 없다면 디자인은 맹목적인 성격을 띠고, 디자이너는 전반적인 무책임과 역설적인 광기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가 되고 만다. 디자이너의 윤리성이라는 문제는 디자인의 정체성이라는 문제의 일부다. 바로 그런 까닭에 "이 분야가 시작될 때부터 디자이너는 마치 원죄를 회개하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활동을 끊임없이 정당화해온 것이다.-57페이지
디자이너는 스스로 윤리적 입장을 정해야 한다. 동시에 디자이너의 시니피앙은 소비자의 시니피에를 넘어서야 한다.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발생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형태와 기능의 합치, 본질로의 환원, 기능과 단순함의 결합을 통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활동은 디자인의 도덕적 토대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했다. 수단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목표는 자본을 넘어서 사회를 조각하는 작업을 하는 일이라고 스테판 비알은 주장한다. 사회를 구현하고, 우리가 숨을 쉬는 환경을 개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아이디어, 이것이 진정한 디자이너의 목표이다.
'디자인적 사고'라는 말은 정확히 말해 "디자인을 하나의 생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결국 이 표현은 디자인에 고유한 사고 절차를 의미하는 '디자인 사고 프로세스'의 약어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암시하는 바는, 디자인은 철학 활동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의 실천이거나 사유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자인은, 주체가 생각한다는 사실만으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ㅈ어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디자이너다"가 된다는 말이다. 이 때, 디자인은 데카르트의 자아처럼 생각하는 주체로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디자인은 특히 "생각하는 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130페이지
벨리브는 일정금액을 예치금으로 두고 연간 29유로를 내고 30분 내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파리의 자전거 이용 시스템. 자전거와 주차대의 군더더기 없는 형태, 파리 시민이 도시를 이동하는 방법을 변화시킴으로써 형태조화 효과와 사회조형 효과, 경험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그 이전에 또다른 디자인 효과는 아름다움의 효과를 가장 먼저 가져온다. 공간, 입체, 구성, 조형, 섬유, 모든 것에서 드러나는 디자인의 첫번째 효과는 형태적 아름다움의 효과. 이 즐거움을 하찮은 것, 없어도 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추구는 인간의 근본을 이루는 정신이 아니던가. 사람은 모든 존재를 유용하게 여기고 잘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해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장식 이전의 아름다움을, 기능을 통해 장식의 의미와 정당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필립 스탁의 '라 마리' 의자는 순수함, 가벼움, 유동성을 지닌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사용자의 편리한 이용을 도모하며 사물의 유동성을 고려했다. 우아한 선, 섬세한 윤곽, 입체의 순수함, 덩어리의 균형, 테두리의 사정, 드로잉의 완벽함, 시각적인 유혹, 그래픽의 매혹. 스테판 비알은 이런 조건을 형태조화의 조건으로 규정한다.
사람은 사물 속에서 살아간다. 무언가를 만지거나 활용한다. 살아가며 느끼고, 경험하는 무엇을 디자인은 돕는다. 더 나은 디자인은 더 좋은 경험을 낳는다. 사용자는 사물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을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그 사물이 우리 자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은 앞에서 언급한 아름다움, 형태조화, 경제성, 사회조형의 효과를 넘어서고 이 개념들을 합치시키는 '경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유려한 미관, 일체의 통일감, 이런 최초의 시각적 흥분을 넘어서면 맥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활용 콘텐츠 접근성, 공간 절약성을 통해 경험치를 가중시킨다. 본체가 모니터 안의 공간으로 사라진 이 기기를 사용하는 이는 필시 공간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가구를 배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실내 구도를 바꿀 수 있다. 디자인은 이 모든 조건을 아울러 매 순간 우리를 끌어당긴다.
디자인을 미학적 가치를 담은 활동의 결과물로 보자면, 모든 미학적 경험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떠한 활동과 사물을 통해 내가 무엇을 경험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로 무엇을 느꼈고 어떤 것을 새롭게 일구어냈는가? 이것으로 하여금 나의 무엇이 달라졌고 나는 어떤 의미를 얻었는가? 디자이너와 디자이너의 제품을 사용하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가 날마다 살아있는, 살아가는 삶의 영속성과 일치하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일상의 사물을 재구성하고 활용하며 삶의 각도를 재단하고 사물을 의미 있게 활용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디자인의 가치와 혁신은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드러날 것이다.
디자이너는 기법과 용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그 자신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사용하는 물건에 우아함과 시적인 정취를 불어넣고, 삶의 매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태어나게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저 찻잔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도 가능하다. 또 식기를 사용하면서도 가능하다. 그리고 자동차 문을 밀면서도 가능하다. 우리의 직업은 이 모든 순간을 양질의 순간으로 만드는 일, 물건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반대로 우리 안에 있는 더 나은 것을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파트릭 주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