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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억 속으로 ㅣ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스릴러 :
이 호칭은 영화에서 비롯되어 연극·방송·소설 등에서도 쓰인다. 넓은 의미에서의 서스펜스드라마의 일종으로 요괴·괴기극, 범죄·탐정극 등에 많으나 공포심리만 묘사된다면 구태여 이를 장르에 넣을 필요는 없다. 공포감을 주는 쪽보다도 공포감을 느끼는 쪽이 빠져들어가는 과정 표현에 주체(主體)가 있다. -네이버 두산 백과
일상적인 사건에서의 공포. 낯설게 보이는 어떤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스릴러는 그렇게 속삭인다. 그 안에는 연민과 성찰, 반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알 수 없어서, 혹은 알기 때문에 인간은 '무섭다'고 말한다. 어떻게 될지는 알지만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일들. '어두운 기억 속으로'는 그런 감정에의 초대장이다.
강박과 불안. 장애와 극복. 아는 남자와 모르는 남자. 알 수 있는 일상과 모르는 사건.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다는 불안을 엘리자베스 헤인스는 스릴러의 외피와 시간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펼쳐 보인다. 4년 전의 여자와 4년 후의 여자는 다른 사람이다. 4년 전의 독자와 4년 후의 독자가 다른 사람이듯, 이 속에서 변함없는 인물은 단 한 사람, 여자를 쫓는 '리' 밖에 없다. 법정에서 시작하여 현관문에서 끝난다. 현관문에서 이어지다가 낯선 벌판에서 끝난다. 흠집을 보고도 넘어가는 자의 오만함. 다른 차원의 사랑을 보이는 사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완벽한 로맨스에서 시작해서 데이트 폭행으로 치닫고 한 사람의 세계를 부수는 것으로 전개된다.
데이트 강간을 피하기 위해 제시되는 방법으로는 첫째 평소 자기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태도를 지닐 것, 둘째 남성 우월인 태도를 지녔거나 상대의 행동과 생활을 지배하려는 남성, 신체적·언어적으로 공격적인 남성, 술을 지나치게 마시거나 술을 마신 후의 행동이 형편없는 남성과는 데이트하지 말 것, 셋째 상대를 잘 모를 경우 남성의 집에 가거나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 말 것, 넷째 성관계를 갖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함께 숙박업소에 가지 말 것, 다섯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잘 모르는 곳에서는 데이트하지 말 것, 여섯째 상대를 잘 모르면 상대의 차를 이용하지 말 것, 일곱째 데이트를 할 때 술을 지나치게 마시지 말고, 자신의 술은 스스로 따라 마실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본 데이트 강간의 정의 중 데이트강간을 피하는 지침.
엘리자베스 헤인스는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이 왜 도망치지 않는지 생각하다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 그녀의 의문은 작품 속에서 캐시가 읊조린다. '그냥 뚜벅뚜벅 걸어나가면 되는데, 왜 그러지 않지?' 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그녀들이 하던 말을 떠올린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다음 자신도 말한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고. 의사를 표현했지만 술을 마신 후 리를 막을 수가 없었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사랑에 빠졌으므로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낯선 곳으로 가지 않았다. 이미 깊이 사귄 후 차를 타고 함께 나갔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에 있다. 분명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녀가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다른 친구와 연락을 하는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어느 순간 그녀의 방탕함,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시켰다는 책망이 될 때, 즉, 도덕적 기제가 다른 의미로 적용될 때 그녀는 길을 잃는다. 그녀는 'then'과 'now' 사이에 있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플롯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주목하게 한다. 즉, 소설의 핵심 중 하나-궁금하게 만들기-를 다른 구조-낯설게 하기-를 통해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독자는 그녀가 무언가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무엇을 가졌는지도 알게 된다. 그 둘 사이의 간극.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가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 헤인스는 그녀가 현관문을, 창문을 몇 시간 동안 점검하고 살갗이 벗겨져 나갈 때까지 샤워도 아닌 샤워를 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 모든 것은 관찰력의 힘이다. 관찰이라 함은 곧 대상을 들여다보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 즉 이 모든 것은 허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 있는 일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는 일. 혹은 일어났음에도 부정하는 일.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작용하여 머릿속을 장악하고 행동을 지배하는 일. 어쩌면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남자와 여자는 일종의 폭력을 데이트 상대에게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배려와 존중이 어떤 식으로 이해되는지를 궁금해하는 독자를 위한 엘리자베스 헤인즈의 묘사. 상대방이 없는 빈집에 들어가는 일. 물건의 위치를 바꾸어 놓는 일. 상대에게 완전히 집중하는 일. 그것이 도를 넘는 일. 이것은 상대의 기분에 달린 일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그에게, 그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부당한 일을 참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랑한다고 하여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일.
'어두운 기억 속으로'의 캐시가 한 일은 무엇일까? '리'를 만났다. 무언가 조금씩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움을 요청하고 거부하고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의사를 다시 표현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모든 것을 '다시' 하려고 했을 때 다른 모든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네가 틀렸어, 그 사람의 세계는 단지 저 안에서만 존재해. 데이트 폭력이 데이트 강간으로. 만약, 생각해 본다. 그녀가 폭행을 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저 그가 그녀를 지나치게 사랑해서 조금 조심하는 것 뿐이라고, 형용사와 부사가 가득한 비난 혹은 반대의 말을 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데이트 폭력을 겪는 여자는 폭행을 당하지 않고서는 주위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없을까. 길가다가 수시로 뒤돌아보고 현관문을 몇번이고 점검하고 전화번호를 바꾸어도 신체상의 손상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그저 기분의 문제에 그칠 수도 있지 않은가. 저문 날의 오후에서 박완서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서야 남편의 의처증에서 헤어난 여자의 이야기를 썼다. 십여년 전 한국의 고등법원에서는 평생 남편의 학대와 폭력에 시달려 남편을 고소한 여자에게 '백년해로 하시라'며 기각을 했다.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같은가. 이 폭력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허물어지고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러나 모든 여자가 착각하게 되는 일. 그것은 어쩌면 캐시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역사-그녀에게 집중하지 않는 남자들을 만나는 것-에서 비롯된 정반합의 과정에서 리를 만났다면, 그 결말은 곧 스튜어트가 된다.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 하지만 그 요약하지 않은 그 부분을 보면 리와 스튜어트, 곧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와 미친 것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정신과 의사 스튜어트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의 그 어느 부분도 나는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일부일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놀라운 묘사. 현실을 뛰어넘지 않는 객관화.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배려심. 가해자의 히스토리가 간과된 것이 아쉽지만(단순한 면이 없잖아 있다) 그의 논리를 조금씩 독자를 애태우며 보여주는 필체. 새로운 주제의 새로운 접근과 관찰이 눈부시다.
http://www.womensaid.org.uk/messages.asp?topicid=61635§ion=00010001000800210001
-Women's aid의 'into the darkest corner'관련 포스팅
Elias String Quartet live in Montpellier, France, 19th July 2010
Mendelssohn String Quartet op80, first mov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