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스포일러 있음.
































시간은 흘렀고, 엔터테이너는 예술가가 되었고 그때의 소녀는 색정광이 되었습니다. 자, 이제 총소리가 들렸으니 웃음을 지을 차례입니다. 그것은 귀찮아서 하지 않으려다 끝내 졸라서 하고야 마는 사정 같은 흔적에 불과하니까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를 보는 일은 늘 도식적일지언정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도그마 선언은 20년 전에 이루어졌고 이제는 원더키드가 그리던 그해가 되었으니 옛일 곱씹는 노인 같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는 일만 남았어요. 모름지기 비평은 원작의 뒤꿈치를 조용히 따라가는 일. 감상은 작가의 눈을 응시하는 일. 말하지 않음으로써 의견을 말한다는 요즘 애들 사이에서 유난히 늙어버린 눈매를 드러내며 그러나 웃을 때도 종종 있어야겠지? 하고 계산한 듯한 라스 폰 트리에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네, 당신과 함께 혹은 당신 없이. 안티 크라이스트(2009), 멜랑콜리아(2011), 님포매니악을 라스 폰 트리에의 우울증 3부작이라고 부릅니다만 님포매니악을 그 안에 넣을 수 있을까...... 좀 망설여집니다. 형벌 3부작. 섹스 트리오. 안티 크라이스트 3 명. 그 사이 교집합은 여자입니다. 





 라스 폰 트리에는 늘 빛과 그림자, 현상과 그림자, 깊이와 그림자, 상징과 그림자를 넣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에 꼭 그림자가 들어가는 라스 폰 트리에의 도식이 재미있어요. 그는 늘 대립 항을 혼란스럽게 하고 상징을 끼워 넣고 은유에 방점을 찍으며 태양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닌 태양 속의 존재로서의 그림자를 이야기합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지? 왜 간첩을 잡아야 해? 왜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하지? 아마 한국에서 그가 유년을 보냈다면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해서 이루지 못하는 목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차례로 익사시킨다며 숫자를 곳곳에 숨겨놓는 피터 그리너웨이와도 그다지 사이가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목표와 생각을 없애버리려고 작정한 사람 같습니다. 이것이 그의 '영화'를 여는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흑점으로서의 그림자는 안티 크라이스트에서는 부모의 섹스 앞에서 떨어져 죽는 아이의 얼굴에 서린 기묘한 미소로 나타납니다. 멜랑콜리아에서는 지구 종말에 앞서 이별을 고하면서 남편이 아내에게 말합니다. '좋게 끝낼 수도 있었는데.' 전자를 보면서는 그 섬뜩함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마음이 멈추었고 후자를 보면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딸꾹질을 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정사 도중 침대에서 나와 베란다로 갑니다. 가는 도중 부모의 정사를 보고(화면은 움직입니다), 눈길을 돌립니다. 아기의 것이 아닌 기분나쁜 미소의 숏이 나옵니다. 이 때 진실은 알 수 없는 침몰한 배와 같이 밝힐 수 있으나 밝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지와 도식, 은유의 삼위일체를 라스 폰 트리에는 무간도처럼 펼칩니다. 아이의 미소를 읽으려 애쓰는 순간, 님포매니악의 조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너무 상투적이어서 당신 주장에 반박해야 직성이 좀 풀릴 것 같은데 너무 피곤하네요."











 '좋게 끝낼 수도 있었는데'라는 대사 또한 그렇습니다. 지구가 곧 멸망합니다. 과학을 신봉하는 남편이 온갖 대처를 하다 도망치고 자식을 생각하며 절망에 빠지는 아내가 림보에 갇히지만 정작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 멜랑콜리아와도 성교를 나눌 수 있는 저스틴만은 의연합니다. 넘치는 노란빛과 푸른빛의 향연 속에서 저스틴은 조용히 말합니다. '지구는 사악해. 우리는 그를 위해 슬퍼할 필요가 없어.' 영화의 마지막은 넘치도록 다가오는 행성 멜랑콜리아와 지구의 키스입니다. 그것을 거대한 종말이라고 보아야 할지 출구라고 해야 할지를 판단하려면 그다음 장면이 나와야 했을테지만 라스 폰 트리에는 다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선과 생명이 사라지고 판단과 가치가 소멸하는 순간. 당연하게도 그 뒤의 시점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후'는 없습니다. '완전히 알든가, 아예 모르든가! 중간 따위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일례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저스틴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만이 멜랑콜리아에서는 온전해 보입니다. 비평과 평론은 모든 것을 알 수도, 아무 것도 모를 수도 없다는 점을 떠올려 봅니다. 멜랑콜리아의 얽히고섥킨 쇼트은 해석에의 비웃음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작품 님포매니악은 어떨까요. 일단 님포매니악은 제목과 달리 색정광 조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실패한 무식쟁이 셀리그만의 이야기입니다. 온갖 것을 다 알며 친절하게 평을 붙이고 이해해주며 재워주고 집어넣으려 하는 셀리그만이 왜 실패한 무식쟁이란 말인가? 오히려 쓰러져 있는 사람 구해왔더니 색정광인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한 번 하자고 들이밀었더니 총을 쏘는 조에가 더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실패한 평론가에 보내는 조소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거친 밤 쓰러진 조에를 셀리그만은 부축해 옵니다. 그의 온갖 성 편력기를 다 들은 셀리그만은 예의 바르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사라지는듯싶더니 다시 돌아옵니다. 조에는 온갖 남자와 다 잠을 자본 색정광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자신의 성적 편력에 관련한 것입니다. 셀리그만은 성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며 지식인, 교양인, 책벌레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몇 시간에 걸쳐 온갖 형상의 성기를 다 구경하기 때문에 이 순간 셀리그만의 발기도 되지 않은 성기를 아무 생각 없이 넘기기는 좀 어렵습니다. 안된다는 조에의 목소리, 무지 화면, '너는 수천 명이랑 섹스했잖아!', 무지 화면, 총소리, 자리를 뜨는 발소리. 죽은 것은 발기도 안 되는 성기를 들이밀다 총 맞아 죽은 늙은 남자 지식인. 아, 한심해서 눈물이......








 


 네, 저는 앞서 '한심해서 눈물이......'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가 슬픈 것은 발기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해석을 갖다 대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신호라고 생각하고 온갖 평론을 들이밀기 때문입니다. 아주 엄청난 성적 표현이 아닌 심술궂은 유머를 시도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본질입니다. 조에는 '사람을 죽이는 게 어렵다지만 내 생각에는 안 죽이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을 할  때는, 그리고 그 말이 미래와 과거 시제를 아우르며 나왔을 때는 좀 더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대신 셀리그만은 기제, 프로이트, 휴머니즘, 체계 따위를 포장하여 해석합니다. 너무 상투적이어서 반박하고는 싶지만, 지금은 피곤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조심해야 했습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평론가 앞에 라스 폰 트리에는 이렇게 유머로 답하는 듯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고 온갖 용어 뒤에 숨는다 이거지. 그럼 좀 귀찮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한 방 쏴줄 테니까 이제 그만하고 이야기나 좀 똑바로 들어.' 물론, 트뤼포처럼 '평론가 따위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말에 관한 반박으로 아주 훌륭하게 영화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트리에처럼 지질한 남자 성기로 유머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감독과 평론의 이 묘한 관계를 보면 '안 죽이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조에의 말이 더 절묘하게 들립니다.





크기와 촉감, 소리와 만족도. 무엇보다도 크고 아름답고 단단하게 일생에 걸쳐 자신을 증명하는 일은 피곤하기 짝이 없지만 태어난 이상,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를 일. 여기서 잠깐,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어떻겠습니까. 스케일과 조명 활용, 이펙트와 완성도. 이 남성성이 영화의 성질로 대치될 때 관객은 이 뻔한 섹스에 희열을, 평론가는 이 스크린 속 모든 도구가 자신을 향해 비웃음의 윙크를 보내는 것을 느낍니다. 이 영화까지 찾아본 관객들은 이미 아기가 베란다에서 추락사하고 자기 음핵을 가위로 자르는 여자도 봤고(안티 크라이스트), 지구가 마지막을 맞는 장면(멜랑콜리아)까지도 보았습니다. 더는 아름다움은 없는 '님포매니악'은 두 전작에 비해서는 파행성이 덜합니다. 셀리그만의 이성과 과학, 지식으로 조에의 색정증과 비이성을 치료하려는 시도 자체가 뻔하니까요. 라스 폰 트리에의 이 '우울증 3부작'은 적그리스도, 우울증, 신성모독, 불경스러움, 자기파괴를 거쳐 이렇게 뒤틀린 유머로 끝을 맺습니다. 물론, 이 유머라는 것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쓴웃음을 남깁니다만. 

 이 삼부작을 보고 난 후,'1Q84'의 남자가 남긴 말이 떠올랐습니다. '설명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설명해줘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거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5-08-2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은데 뭔가 엄두가 안나는 영화들이네요.
한국어판도 있는건지 우선 검색부터....


Jeanne_Hebuterne 2015-08-26 15:14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어지간하면 안보시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요. 제 지론인데 한국에 김기덕이 있다면 외국엔 라스 폰 트리에가 있다는....님포매니악은 함께 보던 남자가 으억, 하는 비명을 지르며 화면을 꺼버리더라고요. 정말 진심으로 다는 댓글인데요, 어지간하면 보지 마셔요.......

yamoo 2015-08-30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님포매니악의 그 감독이군요! 전 괜찮게 봤습니다만, 찾아서 보게 되는 감독은 아닌 거 같아요. 근데, 진 님의 페이퍼를 보면 한 번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요~
한 번 보고 말겠어요!ㅎ

Jeanne_Hebuterne 2015-08-31 12:52   좋아요 0 | URL
안돼요 안돼요 야무님 복세편살이란 말도 있는데 굳이 저런 걸 찾아봤다가 꿈자리 뒤숭숭해지고..안됩니다. 도그빌 때 까지만 해도 좀 성격이 쎈 엔터테이너 정도로 생각했어요. 니콜 키드만이랑은 둘이 숲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고, 뷰욕은 두번다시 같이 작업안하겠다고 착취한다고까지 말하고..의외로 샬롯 갱스부르와 괜찮게 작업했나봐요. 음...근데 굳이 보시겠다면 님포매니악은 안보셔도 될 것 같기도 해요. 에디팅 작업에 아예 참여도 안했다고 그러고, 찍기만 하고 후반 작업은 아예 손놔버렸다니 라스 폰 트리에의 뜻이 끝까지 반영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멜랑콜리아가 그래도 이 셋 중에 가장 괜찮았어요. 굳이 꼭 보셔야 한다면 그나마 멜랑콜리아를 권해드려요. 영화 초입은 정말 우아하기까지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