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과 교수였는데 루소 전기 쓰신 

레오 담로시. the great courses에 이 분이 하신 강의가 2개 있다.  

소설의 역사, 그리고 기본의 <로마 제국 쇠망사> 강독. 


소설의 역사 강의에서는 <미들마치> 주제일 때 특히 더 귀기울여 들었었다. 

"이 소설에 대해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유명하다. 영문학이 유일하게 가진, 어른을 위한 소설. 나는 그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삶을 비극이게 하는 조건들의 탐구다. 누구도 그것들을 피해가지 못한다. 모두가 그 안에 엉켜 있다. 학부생 수업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 그 비극을, 그 조건을 알아보는 학생이 거의 없다. 나는 공부도 잘했고 무엇에서든 우수했는데 어떻게 내가 삶에서 패배할 수 있는가. 나의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성인 대상 클래스에서 이 소설을 같이 읽으면 눈물을 흘리며 몰입하는 독자들이 있다. 이 독자들은 나는 이걸 안다고 말하면서 운다. (....) 네가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이제 너는 이 소설을 "처음" 읽을 거라는 것. 나는 그런 네가 부럽다." 


대강 저런 말들이었다. 그는 하버드에 오래 재직했다. 41년생. 

<로마 제국 쇠망사> 강의는,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인생을 산 게 아니라고...... 물론 담로시 자신이 그렇게 말한 건 아닌데, 저렇게 느끼게 하는 강의. 만일 인생이 축복이기도 하다면 그 축복의 정체, 정수를 저 책에서 찾을 수 있... 그렇게 느끼게 하는 강의. 어느 해 특히 쓸쓸했던 가을에 고요히 칩거하면서, 오후엔 "낙엽을 태우면서," 읽는다면, 이제 나는 죽을 수 있다... 는 만족감을 줄 책이라고 느끼게 하는 강의. 




좋은 강의 듣다가 "동문수학"이란 결국 강의로 결정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졸업하고 10년, 20년이 지나도 얘기할 수 있는 강의들이 있다면. "발자크 수업에서 <파리에 온 위대한 시골 남자> 읽을 때 C교수님이 이렇게 말했었잖아.."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이 말과 함께 같이, 아 그 소설에서 그 라틴구역. 소르본 대학 학생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배불리 먹이던 그 식당. 뤼시엥이 공부하러 가던 쥐느비에브인지 하튼 그 도서관. 낭만과 환멸. (....) 등을 기억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런 동문수학을 못했다면, 그랬다면 그냥 알아서 각자, 각자의 집 문을 기준으로 동문수학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리고 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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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가 얼마나 끈질기게(?) 그러나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까지 읽은 것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인물들의 긴 대화가 있다.

이건 대화라기보다 독백. 대화이긴 한데 한 사림이 아주 오래 얘기함. 최소 한 문단, 길면 4-5 페이지? 


나는 이게 아주 좋다. 

"사유란 공동의 작업"임을 보여줄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거 같다. 

한 사람이 깊이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오래 말할 때, 듣는 사람은 그 생각을 같이 하기. 

TED에 올라오는 소설 작법 주제 동영상에 소설의 대화는 현실의 대화의 근사치여야 하고 그러므로 길거나 복잡하면 안된다고 잘라서 말하는 내용이 있었다. (...........) 하지만 발자크는요? 발자크는 왜 그런 대화를 썼는가, 오래 오래 같이 생각한 다음 결정하면 안되겠습니까. 


한 사람이 온전히 방해 없이 자기 생각에 몰두하고 오래 방해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기. (그럴 수 있기). 

다른 사람은 그 생각을 같이 하기. 


저럴 수 없다면, 중년 이후 삶에서는, 의미 있는 (혹은 "충만한") 인간 관계가 

불가능하지 않나 쪽이다. 발자크 소설은 인물들을 혼자 오래 (아주 오래) 문어체로 심오하게 말하는 대화 상황에 둠으로써 독자에게 공동의 작업으로서의 사유, ㅎㅎㅎㅎㅎ 이것을 단련시킨다. 


모든 인간 관계는 반드시 자기와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혼자 있는 상황에서, 혼자서라도, 길게 방해 없이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노후 대비에 이것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에 읽은 책 중 기억에 오래 남은 책 별로 없는데 그 별로 없는 책들 중 하나가 저것이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제목. 제목만 들어도 그 시절 무엇이 바로 떠오름. 요즘 "대설주의보" (시집 제목이기도 하지 않나? 최승호?) 눈 내리는 바깥 보면서 더욱 기억해 봄직한 제목.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제목이, 한편의 흑백 영화에 대해 그는 말했다... 던가, 그런 단편이 있는데 소설에서 그가 말하는 흑백 영화는 <태양은 가득히>. 주석 같은 것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 영화는 실제로는 컬러 영화다, 그러나 기억에서 이 영화는 흑백 영화다" 투의. 


발자크 인물이 보여주는 기나긴 대화/독백이 좋다고 생각하다가 

저 소설을 기억하기도 했다. 저 소설에서도 한 인물이 오래 혼자서 말했던 거 같기도 하다. 


발자크 식으로, 기나긴 대화/독백으로 거의 전부가 구성되는 소설. 그런데 <태양은 가득히>처럼 독자를 깊이 몰입시키는 소설. 그런 소설 요청합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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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Femme de trente ans Balzac Folio Classique | eBay





아주 빡세게 새벽부터 황혼까지 월화수목금금금 발자크만 읽으면 1년 안에 <인간희극> 다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보기도 했다. 새벽부터 황혼까지 월화수목금금금. 이런다면 가능할 것임. 그런데 그러는 게 불가능 ㅎㅎㅎㅎㅎ 어찌 그게 가능하겠. 


발자크의 이 수십편 소설들을 대기해 놓고 읽어가는 건 

어린 시절 "소년소녀 모모 전집"들을 그렇게 읽던 것과 비슷한 감정 일으킨다. 

당시 어린이들 사이 읽은 권수 경쟁 있었다. 나는 150권 읽었다, 나는 300권 읽었다, 경쟁. 

<인간희극>을 그렇게 읽어도 좋을 거 같다. 판본 하나를 정해 두고 (판본에 따라 편수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거 같으니), 그 편수 안에서 너는 9편? 나는 7편 (오늘 3편 읽겠다). 94편 완결을 향해 가는 경쟁. 


어린이가 좋아하는 책 읽을 때의 흥분, 즐거움, 몰입. 그 비슷한 것들 주기도 한다. 

그것들 덕분에 화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재생되기도 하고. 아 정말, 몇십년 전 그 감정! 그 기대! 


기가 막히는 대목들 있다. 

<파리에 온 시골 출신 위대한 남자> (제목...... 크흐.....) 여기엔 시골에선 위대했으나 파리에서는 노바디인 남자 뤼시엥. 뤼시엥이 파리에서 작가로 성공해 보려고 하면서, 작가로 성공하는 게 어렵겠으면 저널리스트로 우선 성공해볼까, 하게 되는데 그러는 뤼시엥을 파리에서 만난 정신의 귀족 친구가 만류한다. 저널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정신의 매춘. 이 취지에서 구구절절 기나길게 이어지는 만류의 말. 그 한 대목에서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너는 재치있는 문장을 쓰겠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쓴 문장을 읽으면서 너의 친구들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 저런 말들이 강력한 호소력과 함께 풍경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는 소설을 썼다는 그것에 감탄, 경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이다. 



월드컵에 아무 관심 없었는데 

모로코가 4강 진출하고 프랑스와 대전하게 되고 나서 급, 급급 관심. 오늘 자정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마치 대선 때와 비슷한 상태 된다. 안 자고 버티다가 알고 잘 것인가, 그러기엔 너무 심야인데. 

모로코가 결승에 진출하면 (아니어도) 파리가 불타오르겠는데. 21세기의 발자크는 어디에....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들은 정말 너무 많다. 

기본의 <로마제국 쇠망사> 이것도 넣어야지, 

<미들마치>도 넣어야지, 

추리, 호러, 환타지, SF의 고전들도 다 넣어야지. 칸트도 읽어야 하고. 

발자크 읽기 과제가 남아 있음이 다행이기도 한 것이다. <미들마치>는 발자크가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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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2-14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부분이 <잃어버린 환상 Illusions Perdues> 하고 비슷한데 두 작품이 연결된 것인가요?
저도 발자크 욕심이 좀 있어서 말입니다. ^^

몰리 2022-12-14 15:11   좋아요 2 | URL
1890년대에 나온 영어판으로 보는데 여기 실린 해설에 따르면 <파리에 온 위대한 시골 남자>가 <잃어버린 환상>의 프리퀄 격인 거 같더라고요? 이 해설이 그 시절엔 흔히 그렇게들 썼는지 모르겠는데 무척 불친절하고 독자가 프랑스 문학사, 문화사에 아주 박식할 걸로 여기고 쓰고 있고, 그래서 정확히 간파되지는 않았는데 두 소설이 연결된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발자크... 오직 발자크 소설에서만 볼 수 있을 거 같은 요소들이 있는데 그게 너무 좋습니다!

scott 2022-12-14 17:45   좋아요 1 | URL
연결 되어 있습니다
발자크의 기나긴 작품
따라한 프루스트

결국 코르크로 막은 방구석에서 ^^

scott 2022-12-14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로코 우승 응원합니다

모로코 축구팀원들 전부 모로코 밖에서 태어났지만 조국을 위해 하나로 뭉친! ㅎㅎ

모로코 우승하는 순간 마카롱은...엘리제궁에서 안 나올지도 ㅎㅎㅎ

프랑스에게게 축구로 복수를 ^^

몰리 2022-12-14 19:23   좋아요 1 | URL
영국전에서 케인의 실축 다음 음바페의 그 기쁨 가득 웃음. ㅎㅎㅎㅎㅎ 그 장면 정지화면으로 두고 French jubilation이라고 영어 뉴스에서 진행자가. ㅎㅎㅎㅎㅎ 모로코에 지면 그것의 정반대 반응이 나올 것인가.

저는 둘 다 응원하는 심정.
누가 넣든 골 들어가면 소리지르고 뛰고 싶어지는. 이 경기는 진짜 치맥에, 박수 치고 소리지르면서 보고 싶어지는 경기. 세기의 명경기가 나온다면 나중에 그냥도. ㅎㅎㅎㅎㅎ 틀어놓고 맥주 마시면서 다 알아도 또 소리지르고.

포스트잇 2022-12-14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글이한테 물어보니 새벽4시랍니다~

몰리 2022-12-14 19:29   좋아요 0 | URL
갈등하고 있었는데 마음 편히 자고 내일 일어나서 (일어나자마자 ㅎㅎㅎ) 확인해야겠습니다.
 




이 영화 좋으니까 찾아봄. 

몇 달 전 이거 봐야겠다고 검색해 보다가 

아마존 video on demand (이게 정식 명칭이던가, 아무튼 아마존에서 개별 단위로 구매하는) 이것밖에 길이 없는 거 같아서 미친 척하고 그걸로 결제해서 봤었다. 무려 15달러 정도 했던 듯. 그런데 이게 pc에서는 재생이 되는데 아이패드에서는 안된다. 아이패드에서는 "이 영상은 미국 내에서만 스트리밍이 된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pc에서는 도저히 볼 수준으로 재생이 되지 않는다. 정지화면으로 5-10초 지속의 무한 지속. 무한 반복. 영화 감상의 지옥이 거기 있었다. 


꾹 참고 

특히 보고 싶었던 장면들 일부를 보는 것에 성공한 다음 나머지는 포기했었다.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으며 또한 이 영화를 소장하고 있다면 당신은 얼마나 행운인가. 




캐롤 사임즈처럼 세상을 보고 역사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는 "공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 세계의 일부를 구성함. 그걸 알기 때문에 갖는 책임감. 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이기도 하겠고 한때 "대학(큰 배움)"의 의미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적지 않게 강의들을 들었는데, 이런 게 예전 미국의 "엘리트" 교육이었겠구나 같은 인상이 강하게 든 건 사임즈의 강의가 처음. 사유하는 인간이라면 책임을 모를 수 없다. 그냥 저절로.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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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4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지화면으로 5-10초 지속의 무한 지속. 무한 반복]
이 상태라면 아무리 세기의 미모 여도 참기 힘든데 ㅎㅎㅎ

역쉬 맷 데이먼 보다 알랑 드롱이 ^^

몰리 2022-11-05 10:49   좋아요 1 | URL
알랑 드롱. 프랑스의 국보 정도 아니고 인류 유산.
오직 이 한 사람만 외모 찬미 하겠습... ㅎㅎㅎㅎ

라로 2022-11-05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타입은 아닌데요,, 어쨌든 돈 주고 고생하셨어요!! 진짜 저 같으면 열뻗쳐서 이메일 보냈을 거에요,, 환불하라고....

몰리 2022-11-05 16:54   좋아요 0 | URL
검색하고 구입하고 하는 과정에서, 이건 환불 절대 안된다는 메시지가 아주 곳곳에서 나오더라고요. ㅎㅎㅎㅎㅎ 그거 웃겼어요. 엉망진창인 서비스구나, 그래도 유지하는구나. 환불 요청 엄청나게 들어오는구나.

너무 보고 싶었던 거라 그렇게 봤어도 만족. 정말이지 고생하면서 본 거라, 다시 이 영화 보면 영화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라거나 이 영화는 계속 정지하는 영화인데, 같은 착각이 한참 유지될 거 같아요.
 




건축탐구-집. 인천 구도심에서 69년생 집 리모델링 해 살고 있는 젊은 부부 출연한 에피 있는데 

두 사람은 그 집을 보고 그 집에서 살기 위해 결혼했고, 그 집에서 살아야 했던 건 그 집이 줄 "나무 하늘 햇빛" 때문에. 

나무 하늘 햇빛. (....) 나도 나도. 조금씩만 허락된 세 가지. 누리지 못하는 세 가지.    


산골에서 텃밭 농사 지으면서 사는 어느 부부 (나보다는 젊으신 게 확실한. 혹시 이제 젊다고는 못할 나이라 해도) 채널에서는 어느 날 보다가 뜻밖에 심쿵 한 적이 있는데, 텃밭에서 장면 전환하고 갑자기 저 멀리 보이는 하늘과 산 때문에. 하늘 그리고 산. 한국의 산이 아름답다 느낀 적 별로 없는데 그 순간 알았던 거 같다. 어떤 아름다움인지. 세잔이 그렸다는 그리고 또 그렸다는 그 산보다 이 산이 더 아름다워. 저 선과 저 색. 저 산을 명상하러 가고 싶다. 




일상 완전히 무너진 5일 보내고 

어제부터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다. 

그 하늘과 그 공기. 스탠포드나 예일만이 아니라 

한국의 어디서든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만들 수 있는 그 하늘과 그 공기. 

............. 그렇습니다.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라면, 아니어도, 나무 하늘 햇빛. 그 산의 선과 색. 

그 하늘 그 공기 만들면서,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겁니다. 너도 쓰고 나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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