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가 얼마나 끈질기게(?) 그러나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까지 읽은 것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인물들의 긴 대화가 있다.

이건 대화라기보다 독백. 대화이긴 한데 한 사림이 아주 오래 얘기함. 최소 한 문단, 길면 4-5 페이지? 


나는 이게 아주 좋다. 

"사유란 공동의 작업"임을 보여줄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거 같다. 

한 사람이 깊이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오래 말할 때, 듣는 사람은 그 생각을 같이 하기. 

TED에 올라오는 소설 작법 주제 동영상에 소설의 대화는 현실의 대화의 근사치여야 하고 그러므로 길거나 복잡하면 안된다고 잘라서 말하는 내용이 있었다. (...........) 하지만 발자크는요? 발자크는 왜 그런 대화를 썼는가, 오래 오래 같이 생각한 다음 결정하면 안되겠습니까. 


한 사람이 온전히 방해 없이 자기 생각에 몰두하고 오래 방해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기. (그럴 수 있기). 

다른 사람은 그 생각을 같이 하기. 


저럴 수 없다면, 중년 이후 삶에서는, 의미 있는 (혹은 "충만한") 인간 관계가 

불가능하지 않나 쪽이다. 발자크 소설은 인물들을 혼자 오래 (아주 오래) 문어체로 심오하게 말하는 대화 상황에 둠으로써 독자에게 공동의 작업으로서의 사유, ㅎㅎㅎㅎㅎ 이것을 단련시킨다. 


모든 인간 관계는 반드시 자기와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혼자 있는 상황에서, 혼자서라도, 길게 방해 없이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노후 대비에 이것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에 읽은 책 중 기억에 오래 남은 책 별로 없는데 그 별로 없는 책들 중 하나가 저것이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제목. 제목만 들어도 그 시절 무엇이 바로 떠오름. 요즘 "대설주의보" (시집 제목이기도 하지 않나? 최승호?) 눈 내리는 바깥 보면서 더욱 기억해 봄직한 제목.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제목이, 한편의 흑백 영화에 대해 그는 말했다... 던가, 그런 단편이 있는데 소설에서 그가 말하는 흑백 영화는 <태양은 가득히>. 주석 같은 것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 영화는 실제로는 컬러 영화다, 그러나 기억에서 이 영화는 흑백 영화다" 투의. 


발자크 인물이 보여주는 기나긴 대화/독백이 좋다고 생각하다가 

저 소설을 기억하기도 했다. 저 소설에서도 한 인물이 오래 혼자서 말했던 거 같기도 하다. 


발자크 식으로, 기나긴 대화/독백으로 거의 전부가 구성되는 소설. 그런데 <태양은 가득히>처럼 독자를 깊이 몰입시키는 소설. 그런 소설 요청합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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