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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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 지구상의 각 지역마다 역사의 진행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문명의 불평등, 식량에 대하여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뉴기니라는 나라에서 원주민 친구에게 받은 질문 때문이었다. 왜 흑인 원주민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했던 건지, 왜 유럽이나 미국이 제일 잘 발달하게 되었는지. 나 역시 평상시에는 인지하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는데, 원주민의 물음에 쉽사리 나만의 대답을 생각할 수 없었다. 단순히 유럽이나 미국이 먼저 발달을 했으니까 라고만 생각했을 뿐, 왜 하필 유럽이나 미국인지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자는 그 질문을 끝없이 파고들어 결국 총, 균, 쇠의 영향으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총, 균, 쇠 이전에 식량의 역사가 결국은 총, 균, 쇠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고 말한다. 유라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지중해의 동쪽)에서 작물화가 쉬웠고, 가축화가 쉬웠기 때문에 유라시아가 발전을 먼저 시작할 수 있었고,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결국, 앞서 말한 ‘화물’을 원주민들이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의 발전이 넘어오지 않고 시간만 더 있었다면 원주민들도 자연스럽게 ‘화물’과 같은 문물을 만들어 냈을 거라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하지만 비옥한 초승달지대도 너무 많은 작물화와 가축화로 인해 그 비옥함을 잃었고, 결국 문명의 중심이 점점 서쪽으로, 유럽으로 갔고, 그 뒤 아메리카 대륙으로 흘러갔기에 현재와 같은 결과에 도달했다고 한다. 결국은 식량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단지 그 행운의 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로 발전을 거듭한 종족이 다른 지역을 지배하고 그 영향력을 펼쳐 나간 것.  이런 내용들을 통해 저자는 현재 나라들간의, 문명들간의 불평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문명의 불평등이 인종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이론, 종족의 우월성으로 설명하려는 지배적 문명들의 오만함에 보내는 역사의 증언서인 것이다. 그대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혜택이 결국은 우연 때문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를 압박하는 듯하다. 





- 융합형 교육에 대하여


    나는 문과생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딱 정하고 나서 나의 진로는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 수학보다는 국어를, 과학보다는 영어를 조금 더 공부했었고, 이과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놀았다. 그렇게 대학을 와서도 경영학을 배우고 있으니, 나에게 과학과 수학은 이제는 넘볼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그리고 몰라도 되는 학문으로 생각한다. 내가 ‘인터스텔라’를 보고 유려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상관없었고, 미적분을 풀지 못해도 괜찮았다. 나는 문과생이니까 이과의 영역은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는 마패를 얻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저자의 다방면에 걸친 전문성에 감명을 받았다. 생태학에서부터 시작해서,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고고학 등등 인류 문명의 불평등을 파헤치기 위해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그야말로 사방팔방으로 공부를 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25년 동안 말이다. 그런 다방면에 걸친 전문성이 있었기에 문명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 있어서 막힐 법도 한 문제들을 때로는 이쪽 학문, 때로는 저쪽 학문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이런 다방면의 학문 융합을 통해서 저자가 인류라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가 점점 난장판으로 향하고 있고, 새로운 과학은 매일같이 나오는 와중에도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 우리 인류를 위한 것이고 인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이 책은 또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듯 다양한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도 동시에 기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학문을 배우면 서로 다른 학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전체를 볼 수 밖에 없다. 즉, 저자처럼 각각의 학문의 전문성을 기르며(이게 사실 어렵지만) 여러 학문을 동시에 섭렵하는 것만큼 좋은 배움은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너무나 지엽적인 학문들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져 가면서 한 부분에 딱 맞는 톱니바퀴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학문(이라기보다는 기존 학문의 하위 학문)들이 계속해서 생겨나 대학교에서 과로 만들어지고 미래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고 광고하는 상황. 과거부터 르네상스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 융합 학문이 대두하고 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외치고는 있지만 정작 교육 현장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 이과로 나누어버리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어설픈 전공수업만 많이 듣고 있으니 르네상스형 인재, 정부가 부르짖고 있는 창조인재가 나오기엔 아직은 척박하지 않나 싶다. 


    매년 수능과 더불어 우리 교육에 대한 논란 중 하나는 문, 이과의 분리인데, 개인적으로 문, 이과의 구분은 당연히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이 한 단계 발전할 시기가 왔는데 사회 기득권들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유지하려고 입학사정관제다, 무스펙제도다 하며 은근슬쩍 자신들의 기득권을 오히려 더 강화하는 상황을 빨리 타도하자. 





- 혁신에 대하여


    이 책에서는 인류사에서 발생한 혁신의 원천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창조 경제가 한창 화두인 우리나라에서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인 것 같다. 저자는 한마디로 인류사에 있어 혁신, 창조라는 것은 정말 초반에만 발생한 것이고 그 이후에는 그런 창조의 원천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만들어진 더 나은 모방품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로는 한글이 있다. 우리는 한글이 세종대왕님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 한글이 만들어질 때에 유라시아에서 널리 퍼졌었던 알타이어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문자라는 것이다. 일면 타당한 말인 것 같다. 우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과학계에서의 여러 새로운 물질이나 상품은 기존의 물품에서 기능을 조금 개선시킨 것이거나 우리가 그 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 낸 것이 대부분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얼마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발명 아닌 개선이 옳지 않다거나 틀렸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창조경제를 외치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는 외국의 좋은 사례나 원천 아이디어를 개선시키는 것이 인류사에 있어서 더 자연스러운 혁신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없다. 모든 것에는 개선할 점이 있으며 그 개선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찾아내는 자가 결국은 혁신을 이루어 내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다른 나라에도 없는 정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는데 그런 것 보다는 기존의 것에서 가능성을 엿보는 역량을 키워야겠다.





마지막 문장 – 따라서 나는 인간 사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공룡에 대한 연구에 못지않게 과학적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일들이 현대 세계를 형성했고 또 어떤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보탬이 될 것임을 낙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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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냉장고 - 가전제품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냉장고의 진실
KBS <과학카페> 냉장고 제작팀 지음 / 애플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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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커지는 냉장고에 대하여


   갈수록 더 작게, 더 얇게, 더 심플하게, 요즘 기술 시대 최고의 모토이다. 핸드폰은 날이 갈수록 얇아지고, TV도 얇아지고, 정수기는 한 뼘으로 작아지고, 기능을 최소화한 제품들이 살아남는 시대이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냉장고의 방향이 다른 발전을 포착한다. 냉장고만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커지고, 기능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굴지의 전자업체들은 저마다 세계최초로 00리터의 대형냉장고를 출시했다고 광고하고 이제 냉장고에서는 얼음도 모자라 탄산수까지 나온다. 이런 기현상에 대해 파헤친 제작진은 제목처럼 인간의 ‘욕망’과 연결시킨다. 큰 냉장고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안을 다 채울 수 있다는 재력을 의미하기에 과시적인 욕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냉장고가 커지는 것은 욕망이라기 보다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수렵을 주 식량 공급으로 하던 시대를 지나 정주형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인류는 잉여생산물을 보존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동굴저장, 염장 등등 수많은 방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부지해줄 식량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도 인류사에서 총, 균, 쇠가 영향을 발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식량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초반의 많은 부분을 식량 발달 과정에 할애했다. 즉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그 근간은 결국 식량의 보존에서부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냉장고 거대화는 당연하다. 성능이 좋은, 재료들을 오래도록 보존해 줄 것만 같은 큰 냉장고를 사서 그 안에 갖가지 식량들을 채워놓으면 인간으로서의 기본 생존 조건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을 테니까 말이다. 작은 냉장고를 이용하여 단기간에 먹을 것만 구비해 놓는 것은 말 그대로 언제 나의 ‘밥줄’이 끊어지지 모를 상황에서는 불안한 방법으로 느껴진다.  그에 따라 전자회사들이 기가 막히게 이런 인간의 본성을 파악해서인지, 거대 냉장고로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소비자들은 그 안을 다 채울 자신이 없으면서도,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 기억하지도 못할 거면서도 커다란 냉장고를 구입한다.


    이런 세태를 단번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유명한 연예인 두 명이 각각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들고 와서 그 안에 있는 재료들을 요리사들이 15분 동안 요리해 내어 대결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어서인지 여기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인기가 대부분 있고 그에 따라 냉장고도 상당히 크다. MC들이 우왕좌왕할 정도로 2중, 3중식으로 되어 있는 냉장고도 있고, 어떤 연예인은 냉장고가 하나가 아닌 4개를 들고 나왔다. 물론 국내 대기업의 협찬으로 출연하는 신제품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일반 시청자에게 압도적인 냉장고들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재료가 뭔지 모르고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책에서 지적한 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요리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냉장고 안의 얼마 없는 신선한 재료들로 훌륭한 요리들을 15분 안에 탄생시킨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냉장고에서 그런 요리가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시간에 쫓겨, 혹은 재료가 부족한 것 같아 하지 못했던 요리들을 요리사들이 뚝딱 해내는 것을 보고 나는 책에서 제시한 로컬 푸드와는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 본다.



- 요리의 부흥에 대하여


    나는 요리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한다. 비록 요리는 잘 못하지만 TV를 볼 때면 거의 올리브 채널만을 보며, 요리과정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 생각이 나를 변화시켜 요즘은 집에서 혼자 파스타도 해먹고 요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냉장고도 더 들여다 보고 우리집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그리고 나도 요리사처럼 요리하기 위해 소위 말하는 ‘제품’은 쓰지 않고 신선한 야채나 원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려고 한다. 그에 따라 원재료 소비도 늘어나고 좋은 제품을 고르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단순 로컬 푸드 운동보다 더욱 큰 가능성을 본다. 로컬 푸드는 단순히 지역 재료를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원재료를 사용해 요리해온 사람들이 타겟인 운동으로 시간이 없어, 혹은 몰라서 ‘제품’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파급력이 작다. 하지만 만약 많은 사람들이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원재료의 원산지를 따지게 되고, 더욱더 신선한 재료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방송에서 요리를 장려하거나 요리하는 과정에서의 행복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냉장고의 변화 역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한참 방송의 핫이슈인 요리사들의 방송진출이 한편으로는 반갑다. 일반인들에게 요리의 즐거움을 전수하여 스스로 해먹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원재료의 소비도 증가시키고 냉장고의 크기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요리사들이 너무 엔터테이너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제이미 올리버 같이 요리를 통해 사회적으로 변화하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지금 명성을 얻고 방송에 나오는 요리사들의 깨어 있는 행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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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 -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
심은록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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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에 대하여


    도통 어렵다. 현대에서 비싸게 팔리는 작품들은 모두 잘 모르겠다.  낙서와 같은 그림이 명작으로 호평 받는 것에 크게 놀랐고, 중국인이 대세로 급부상하는 것에도 놀랐고, 엄청난 가격에 완전 크게 놀랐다.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를 통째로 넣은 작품. 송아지를 절반으로 잘라 박제해 놓은 작품. 장 미쉘 바스키아의 낙서로 이루어진 작품. 아니쉬 카푸어의 구름을 형상화한 알루미늄 조각. 현대미술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비즈니스가 미술과 결합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미술이 더 주목을 끄는 방식으로 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미술 경매 역사에 또 하나의 기록이 나왔다.  2015년 5월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연작 중 하나의 작품이 1억 79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1968억이라는, 무슨 1968년도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에겐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  피카소로 인해 미술 경매 최고액이 1,000억 원을 넘었다고 했는데, 또 다시 그로 인해 2,000억 원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평한다. 왜 하필 피카소인가, 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자신들이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외치는 피카소인지 일면상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기억을 되살려 보니 약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책에 나온 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그 동안의 화랑을 통한 경매에서 벗어서 직접 물건을 판매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기존의 방식을 거부한 새로운 방식으로 대다수의 의견들이 미술 경매 시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화랑들의 영향력 때문에 판매에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하지만 정작 결과는 대성공으로 허스트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었다.  놀라운 점은 그의 작품들을 산 주인공들이 다름 아닌 허스트를 비판한 화랑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허스트가 한참 잘 나갈 때 그의 작품을 많이 사 놓았었는데, 이번 새로운 경매에서 실패하면 그의 가치가 추락할 것이기에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대부분의 비싼 작품들을 모두 사버린 것이었다. 이번에 최고금액을 기록한 피카소의 작품 역시 낙찰자의 신원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면 화랑과도 같은 부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더 강해질수록 작품 그 자체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든다. 돈이 압도해 버리는 작품들. 이제 당분간 사람들은 이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을 볼 때 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보다 1968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내가 이걸 살려면 몇 년을 일해야하지, 이거 내가 스크래치 한번 긁으면 얼마 물어야하지 이런 생각하면서….



- 이우환의 그림과 나의 그림에 대하여


    책의 말미에 저자가 중국 미술의 급부상을 파헤치기 위해 중국에 방문한 일화를 써놓았는데, 거기서 이우환씨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중국 예술가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데 우리나라의 예술가 중에 이우환씨를 특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였다. 사실 나도 이우환씨를 나도 모르게 알고는 있었다. 나는 노트북 배경화면을 명작으로 꾸며 놓았는데, 10개 정도의 작품을 몇 시간 마다 바뀌도록 하여서 지루하지 않게 하였다. 이걸 설정할 당시에 국내 작품도 한 두 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이중섭의 ‘황소’라는 작품과 함께 이우환의 ‘점으로부터’를 골라서 설정해 놓았었다.  이중섭은 내가 잘 알고 있었는데 나머지 한 명의 한국 작가는 도통 아는 사람이 없어 네이버 인기 검색어에 뜬 사람으로 정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 작가의 이름을 까먹었었는데, 책을 읽다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 사실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 중 하나는 하얀 캔버스 안에 가운데 점만 찍어 놓은 작품도 있는데, 나도 똑같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완전히 똑같이 할 수 있기에 그의 작품과 나의 작품의 차이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궁금하다.  전문가들은 이 두 개의 작품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 선이나 면이 들어가지 않은 점 하나를 그린 그림. 지금 쓰면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생각하기에 이 차이는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다. 누가 나에게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 나에게 있어 최고의 작품


    나도 명작을 참 좋아한다. 느낌이 있는 그림들, 인정을 받은 그림들을 가지고 싶기에 그들의 전시회를 찾아가 엽서라도 사서 방에 붙여 놓는 것이 취미 중의 하나이다. 나는 수많은 명작들 중에 이중섭의 ‘황소’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엄청나게 강렬하게 붓질을 해서 황소의 근육이 정말로 살아 있는 것 같고, 그 힘이 나도 느껴진다. 나를 바라보는 황소의 시선 역시 강렬해서 나와 황소간에 교감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황소자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려웠던 작가의 생애나 그의 성향을 떠나서 이 작품을 내 방에 걸어두고 싶다. 


    그럼에도 수많은 명작들보다 더 기대되는 작품이 있다. 중요한 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란 것이다. 바로 나와 내 인생의 동반자가 같이 그려진 그림. 내 인생의 동반자가 그린 그림이거나 내가 그린 그림이거나 상관 없다. 결혼을 한다면 이 팍팍한 현실에서 낭만이라도 찾자 하고 유화물감이랑 캔버스 따위의 화가느낌 물씬 나는 도구들을 챙겨, 대관령 목장 같은 곳으로 떠나 거기서 나와 부인이 등장하는 풍경화를 그리고 싶다. 평화롭고, 사랑이 들어있고, 무엇보다 진심이 들어가 있는 그림.  둘만 간직하는 그림.  내 20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그림 연습해서 자화상 그리기 인데, 정말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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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
E.F. 슈마허 지음, 이상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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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알고 있는 해답에 대하여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은 정말 구구절절 옳다. 교육이 중요하고, 적정기술이 중요하며, 우리가 이 잘못된 길을 바꾸지 않으면 향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말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이 책의 핵심 내용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책의 내용대로만 된다면 살기 좋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해답이다. 정답이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분명 이 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고, 성과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해답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이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을 알면서도 도대체 왜 우리는 큰 것을 향해서 가는 것일까? 혹시 개개인의 힘은 너무 약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큰 것을 원해서일까? 하지만 저자인 슈마허는 그의 이 이론을 인정받아 버마 정부에게 경제 고문으로의 역할도 수행했지만 버마가 적정기술, 중간기술로 성공했다는 뉴스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렇다는 말은 결국 이성을 뛰어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결국 이기적일 수 밖에 없고, 이기적인 종족만이 살아 남는다. 적정기술을 통해 전체의 이득을 꾀하는 자들보다 큰 기술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꾀하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적정기술, 정답을 외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돌연변이일 것이다. 신체적, 육체적 돌연변이가 아닌 정신적 돌연변이. 이런 정신적 돌연변이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과정을 흔들어야 한다. 자신 회사의 특허를 모두 공개하여 전인류적 발전을 도모하는 앨런 머스크,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빌 게이츠, 이런 사람들이 슈마허를 포함하여 정신적 돌연변이 들이며, 이런 돌연변이들이 많아져야 돌연변이가 주류가 되고, 인간 중심의 경제학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이런 제2의, 제 3의 앨런 머스크를 탄생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의 본성을 건드려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장애인 학교의 철폐를 주장한다. 장애인 학교 제도는 비장애인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이기심을 조장하는 제도이다. 장애인 학교 없이 모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같이 학교를 다닌다면,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이해, 서로를 도와준다는 배려심, 협동심을 자라면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식들에게 안 좋은 것을 보이기 싫다며 ‘님비’를 외치는 사람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리며 추진할 사람이 필요하다. 작은 근본을 만드는 것, 거기서부터 작은 기술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 손을 쓰는 업무에 대하여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간디는 물레라는 기계를 참으로 좋아하며 물레와 같은 기계의 확산을 주장했었다. 방직이 주 수입원인 인도에서 능률을 올려주는 기계인 물레는 사람의 일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기계였다.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부속품이라 느끼지 않기에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었고,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냈기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저자 슈마허 역시 이런 간디의 주장에 동의하며 손을 쓰는 업무, 직접 창조하는 업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과거에 우리는 일과 놀이의 구분을 딱히 두지 않았었다. 일이 곧 삶이고 재미였다. 농사일을 보자면 내가 가꾸는 벼나 밀이 자라서 가을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 않는 농부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손으로 일을 했고, 일의 전체 과정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모두가 창조, 창의라고 외치며 손이 갈만한 일은 모두 기계에게 맡겨버리고 생각만 하라고 강요한다. 어려운 계산, 물건을 옮기는 일 따위는 쉴 새 없이 일하는 기계가 대신하고, 노동자들은 컴퓨터를 바라보며 수치를 입력한다.  큰 그림은 알지 못한 채, 자신에게 주어진 좁은 범위의 일만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타자를 치며 손을 쓰는 것만 같지만 사실 글을 쓰는 것은 컴퓨터일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손 쓰는 일을 좋아하는지, 또한 얼마나 쓰고 있지 않은지 잘 보여주는 것이 현대 직장인들의 색칠 열풍이다. 어린 유치원생들에게 색에 대한 감각과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한 색칠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동호회를 만들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직장에서 쓰지 못한 나의 손, 나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내면의 욕구가 아닐까 싶다. 레고의 끊임없는 인기 역시 이를 방증한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레고, 손을 써가며 내가 원하는 모양을 창조하기 위해 열중하는 모습은 우리를 참으로 순진하고 열정적으로 만든다.  현대 사회가 이런 기류를 계속해서 이어간다면 색칠 열풍이나 레고 열풍과 같은 손을 쓰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가능성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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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마이 스토리
박지성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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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한 열정에 대하여


책을 읽으며, 박지성이란 사람의 선수 일대기를 읽으며,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 정말 끈기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느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반전이란 것을 느끼지 못했고 순탄하게 성공한 것만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이었지만 아마 박지성 선수 특유의 겸손함이 자서전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그의 끈기와 순수한 열정은 감출 없었던 같다. 아무리 축구 선수였다지만 자서전이기에 축구 외적인 일도 많았을 텐데, 박지성 선수만큼은 정말로 축구에 관련된 이야기 밖에 없었다. 정말 축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느낄 만큼 축구만 바라보고 축구만 했다.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말할만한 위치에 올랐을 적에도 항상 축구에 대한 것에만 신경을 썼을 , 외에는 관심사 밖이었다. 은퇴를 이유도 부상으로 인해 축구를 이상 없기 때문이었지, 결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같지가 않다. 문제로 마찰을 빚은 적도 없고, 그는 단지 그를 원하는 팀으로, 혹은 단계 높이 있는 팀으로 가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 자체였다. 퍼거슨 감독이 그를 영입한 이유도 탁월한 공간 이해력과 더불어 그의 열정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축구 선수, 프로 리그에서 뛰는 축구 선수 치고 축구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박지성 선수는 중에서도 깊게 축구를 사랑하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클럽의 수장에게 발탁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강심장도 아니고 힘들었던 적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축구를 이유가 결국 축구가 좋아서였다고 서술하였다.  사실 책으로는 동안의 고생을 온전히 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책을 읽은 같은 독자들은 더더욱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실제로는 정말 엄청난 압박과 경쟁, 고통이 있었을 텐데, 모든 이겨낼 정도의 열정.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다. 한국 스포츠사에서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다.



-        --  스포츠 영웅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스포츠 스타는 각별하다. 우리와는 다른 . 그리고 엄청난 훈련. 죽을 같은 고비를 넘기고 얻어낸 승리. 승리와 패배가 가장 명확한 스포츠에서 승자에 대한 찬양은 더욱 높아지고, 모든 것을 성취한 것으로 비친다. 어떻게 보면 경쟁이 가장 심한 것도 스포츠 테니까. 우리가 사회를 매번 세우기 한다면서 비판하지만 스포츠에서는 세우기가 너무나도 당연하다. Winner takes all이라는 명제가 너무나도 확실하며, 그것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기에 모두들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승자를 가장 드러내는 것은 당연 올림픽이다. 서로 모여서 경쟁하자는 어떻게 보면 경쟁이란 역사의 시초를 만들어 올림픽은 지금도 가장 치열하고 열망의 대상. 외에도 다양한 대회에서 많은 영웅들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박지성 선수와 더불어 김연아 선수, 심권호 선수, 장미란 선수, 황영조 선수 많은 영웅들이 우리 기억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렇게 스포츠 영웅들에 열광을 할까. 가장 깨끗해서 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에 이르는 길은 정말 만가지가 존재한다. 학연, 혈연은 진부해서 말할 것도 없고 , 돈을 이용한 방법 몰라서 못하는 것도 많고 아는데 못하는 방법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 사회 내에서의 성공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총리 후보자의 성공 진위 여부부터 기업체 사장의 비리까지. 하지만 스포츠는 다르다. 스포츠는 순전히 몸을 이용하는 분야이다. 부정을 하든, 머리가 똑똑하든, 결국은 몸으로 쟁취해야 한다. 가장 순수하다. 인간 사이의 경쟁 가장 공정하다. 너의 몸이 약한 것은 너가 그만큼 노력을 했다는 이유가 되고 승리의 자리에서 박탈 당하기에 충분하다. 온전히 힘으로 이루어냈다는 . 점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인정해 주는 같다. 박지성 선수, 김연아 선수의 발에 우리 모두 경탄하고, 사재혁 선수의 눈물에 우리 모두 숙연해 진다. 가장 진실한 경쟁. 우리는 스포츠를 항상 우리의 사회와 따로 떼어내서 보지만 스포츠의 이런 정신을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스포츠를 즐겨 하고 정신에 공감할 있다면 조금은 진실된 경쟁 사회로 가까워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 한국 스포츠계는 오히려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아 부정이 많은 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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