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서 온 손뜨개 소품 - 머플러, 장갑, 모자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북유럽 스타일 겨울 소품 23종
스기야마 토모 지음, 맹보용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더위에 유독 약한 내가 여름을 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저녁에 야구 보면서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둘째, 읽는 순간만큼은 시원해지는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 소설. 셋째, 가장 더운 시간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무더운 여름을 버티는 나만의 방법이다. 더위에만 약했으면 좋겠지만, 더위만큼이나 추위에도 약해서 겨울을 나는 나만의 방법 역시 존재한다. 첫째, 온기로 손을 녹이고 천천히 마시는 커피. 둘째, 챙겨보기 시작한 이래로 매년 겨울 챙겨보는 영국 드라마 닥터후 크리스마스 스폐셜. 셋째, 목.도.리. 사실, 겨울을 나는 방법 세 가지 방법이 모두 목도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목도리를 좋아한다. 각기 다른 색상과 재질의 목도리.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지난 해 구매한 목도리를 올해에 두르고 다녀도 전혀 거부감이 없지만, 매 년 사 모으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드는 목도리를 하고 나와서도 목도리가 진열된 곳을 지나칠 때면 어김없이 목도리를 구경하고 있을 정도로 하고 있어도 (저걸 사서) 하고 싶은 게 목도리다. 그래서 이 책 『북유럽에서 온 손뜨개 소품』이 반가웠다. 좋아라하는 겨울 소품인 목도리는 없지만, 목도리를 좋아하는 데에는 ‘겨울 소품’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고, 그런 겨울 소품들이 23종이나 실려있다. 한 번쯤 떠서 하고 다니고 싶었으나 손재주가 없어서 하고 다니지 못했던 북유럽 느낌의 겨울 소품들.

 

 

노르웨이나 스웨덴, 핀란드 등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 국가의 상징적인 패턴인 노르딕 패턴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기분이 든다. 보온을 위한 소품이다보니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품이 바로 겨울 소품인데, 이 책에서 선보이는 겨울 소품들은 겨울 소품이지만 그리 무거워보이지 않고, 담백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까지. 아이용 겨울 소품이 아니라 성인용 겨울 소품이 담백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뜨개질에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보고, 당장 뜨개질을 시작해봐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전진배치 되어있는 뜨개질 소품 착용컷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책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뜨개질 방법도 세세히 실려 있고 도안도 있겠다 한 번 만들어봐야지 보다는, 나도 이렇게 예쁜 겨울 소품을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예쁜 소품이면 만들기가 쉽지 않아도 충분히 보람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달까.

 

 

겨울 소품을 착용하는 데에는 보온을 위한 착용도 있지만, 각각의 겨울 소품이 주는 포근한 이미지, 착용한 사람은 몸이 따뜻해지고 착용한 사람을 보는 사람은 눈이 따뜻해지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스란히, 시간이라 쓰고 정성이라 읽는 그 과정을 거쳐서 아끼는 사람을 위한 겨울 소품을 기꺼이 만드는 것이다. 겨울엔 그 어떤 선물보다 추운 겨울을 버티는 데 힘이 되는 ‘온기’가 최고의 선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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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 쯤이면 생각나는 명언이 있다.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

전직 메이저 리그 투수이자 감독이었던 토미 라소다의 명언이다.

 

지난 1일은 1년 중 가장 슬픈 날, 야구가 끝난 날이었다.

내일은 내일의 일상이 있겠지만, 야구 안하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적게는 3시간 많게는 4시간 동안 야구를 챙겨본 야구팬이라면

사무치게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야구가 떠난 자리. 밀린 드라마를 챙겨보며 채우기도 하고,

친구와의 수다로 채우기도 하지만, 역시 책을 읽는 시간만한 시간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골라본 3권의 에세이를 소개한다.

 

 

 

1. 이혜경/천운영/김미월/손홍규/신해욱/조해진 - 누구나, 이방인

 

 

 

 

 

 

 

 

 

 

 

 

 

 

 

작가의 여행에는 '끌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이병률 시인의 에세이를 통해서였다.

작가답게 여행기에 묻어나는 풍부한 감성도 좋지만, 작가의 여행기에는 보다 더 특별한 게 있다.

바로, '관찰력'이다. 작품의 동기가 되거나 혹은 소재가 되는 영감을 얻는 것도 바로

이 관찰력에 있을 것이다. 모든 작가가 으레 그러하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 한 편의 희곡이 쓰여지까지는 작가의 관찰력과

그 관찰력을 통해 빚어진 그 무엇이 있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이걸 두고 '감성'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여행기가 담긴 책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데,

이 책의 작가들이 다녀온 여행지가 신선해서 더 눈이 갔다.

누군가는 알래스카의 곰을 보기 위해, 누군가는 운명이 우연처럼 다가와서,

또 누군가는 그저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가방을 꾸려 다녀온 곳이

알래스카, 폴란드, 몽골, 터키, 카리브 해, 라오스라니.

여행지 역시 소설가답고, 시인답다 생각했다.

부제인 '느리고 낯설게'라는 형용사가 참 잘 어울리는 '이방인'.

잠시나마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작가들의 여행기는 어떤 느낌일까.

 

 

 

2. 시미즈 레이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참새는 방앗간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독서광은 서점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약속 장소는 늘 이 곳으로 잡고 싶고, 어제 책을 샀어도 오늘 또 들어가서 구경하고,
사람이 북적거려도 기분 좋은 유일한 곳이 바로 서점이다.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서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면 어떤 느낌일까. 한겨레 대중문화팀장이자 건축칼럼니스트 구본준의 추천글처럼,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아름다운 서점을 닮았'을 것이고, 아름다운 서점이 곧 천국일 것이다.

 

 

 

3. 이애경 -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그냥 눈물이 나던 때,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되었고 인연으로 남은 에세이 『그냥 눈물이 나』의

저자 이애경의 새로운 에세이다. 윤하, 조용필 곡의 작사가이기도 한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글은 충분히 노랫말 같이 느껴진다. 리듬감이 있어 노랫말 처럼 잘 읽히고,

읽고 난 뒤에는 여운 덕분에 나도 모르게 노랫말을 곱씹으며 되새기게 되는 그런 글. 이 책에서

예를 들면 이런 글이다.

 

안 보이면 걱정될 때부터 사랑일까,
보고 있을수록 걱정될 때부터 사랑일까.
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부터 사랑일까,
너에게 시선도 못 주고 네 옆을 재빨리 지나갈 때부터 사랑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네가 생각날 때부터 사랑일까,
머릿속에서 떨쳐 내려고 애쓰는 때부터 사랑일까.
- '어디서부터 사랑일까' 중에서 (p.17)

 

책 소개 속 글도 인상적이다.

 

결국 서른 썸싱(something)이 된다는 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게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잘 견뎌 내는 방법을 알아 가게 된다’는 것.

 

그 방법을 더듬어 가는 위로와 격려의 글들을 담은 책이라니.

그냥 눈물이 났다면, 이제는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을 알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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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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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여느 날처럼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책 표지에 눈이 가서 집어 들고, 책을 펼쳐서 마주한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는 구절 덕분에 사 읽게 된 에세이가 있다. 바로, 이 책 『밤 열한 시』의 작가 황경신의 이전 에세이집 『생각이 나서』다. 글과 사진, 그리고 황경신만의 감성이 담긴 책 『생각이 나서』를 읽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내가 가장 좋아라하는 시간인 ‘밤 열한 시’를 보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더랬다.

 

그랬던 에세이집 『생각이 나서』 그 후 3년 동안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이 바로 『밤 열한 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출간되어 그런지, 가을을 시작으로 겨울, 봄, 여름으로 이어지며 120편의 글이 네 계절로 나뉘어 담겨있다.

 

가을에는 “언젠가라는 말처럼 슬픈 말도 흔치 않다. 이미 가버린 과거의 언젠가이든, 아직 오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의 언젠가이든. (p.31)” 이라 이야기하고, 겨울에는 “비록 덜 사랑하는 자가 권력을 가질지는 몰라도 / 사랑이 행하는 일을 온전히 겪는 사람은 / 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자이다 / 정말 아름다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p.117)” 이야기하고, 봄에는 “그리운 사람을 /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 그것 말고는 다를 도리가 없는 / 봄의 한가운데 (p.169)”라고 이야기하고, 여름에는 “밤 열한 시 /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 어떤 기대를 품어도 괜찮은 시간 / 일어나지 않은 모든 일들에 대해 / 그저 포기하기에도 괜찮은 시간 / 의미를 저울에 달아보거나 / 마음을 밀치고 지우는 일도 무의미해지는 시간 (p.254)"이라 이야기하는 글들과 무심하면서도 감성적인 김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나서』를 읽던 그때처럼 언제, 어디서 읽어도 그 찰나가 꼭 밤 열한 시 같은 기분이 든다.

 

때론 시 같이 읽히고, 때론 노래 가사처럼 읽히고, 때론 일기 같이 읽히는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문득 나의 밤 열한 시가 떠오른다. 어떤 날은 드라마를 보고 있고, 어떤 날은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떤 날은 라디오를 듣고, 어떤 날은 글을 쓰고, 어떤 날은 글씨를 쓰고, 어떤 날은 차를 마셨던 밤 열한 시. 열흘이면 열흘 깨어있는 시간. 생각하기 보다는 활동하기 바쁜 시간. 모든 글을 밤 열한 시에 쓴 건 아니겠지만, 내가 밤 열한 시를 그렇게 보내온 동안 이 사람은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들은 글이 되었으며, 한 권의 책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새로웠다. 누군가의 밤 열한 시는 이런 시간일까, 하고 말이다.

 

황경신이 말하는 밤 열한 시 같기도 하면서 나만의 밤 열한 시 같기도 한 시간들. 우리는 그 시간들 속에서 사랑을 생각하고, 이별을 생각하고, 기억을 생각하고, 마음을 생각하고, 말을 생각하고, 시간을 생각하며 매일 밤 열한 시를 보냈고, 보낼 것이다. 밤 열한 시는 그런 시간이니까.

 

p.s. 매 글의 본문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원고지 칸 안에 담긴 글들이었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는 구절에 빠졌던 그때처럼 간결해서 훅, 하고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그런 글. 원고지 칸 안에 글을 담은 구성이 크게 한 몫 했다. 원고지에 손으로 쓰인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과 글 안의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는데, 글의 감성과 구성이 주는 아날로그함이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p.s 2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황경신 『생각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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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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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던 때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그 당시 담임선생님이 애니메이션에 무척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셨다. 무슨 시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실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셨다. <귀를 기울이면>을 시작으로 그 당시까지 나온 애니메이션을 모두 보여주셨으니,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절반은 그 때 섭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안 그래도 애니메이션을 좋아라했던 나였지만,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매일 TV에서 방영해주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애니메이션이었달까. 상상했거나 혹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상상력 그 이상으로 쉼 없이 펼쳐지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애니메이션에 빠져든 기억이 난다. 그렇게 봤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내 인생 한 부분을 채웠고, 여전히 살아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발음할 때면 늘 어려워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는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이어서 기대가 됐던 책이다. 그가 그 만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어떤 소년문고를 읽었고, 어떤 유년을 보냈을까 궁금했다.

 

책은 2010년 <마루 밑 아리에티> 개봉과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랫동안 즐겨 읽어온 소년문고 400여 권 가운데 추천한 50권 한 권 한 권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1부와 자신의 유년과 어린이문학, 자신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2부로 나뉘어있다. 이런 책을 추천했구나, 하며 1부를 가볍게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2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2부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혼자 날 수 있게 되면 정말 굉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p.38)’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 책 <바람의 왕자들> 소개라던가 <마루 밑 아리에티>의 원작이 된 <마루 밑 바루우어즈>에 관한 소개, 비행기의 원시적인 엔진이나 기체에 대해 생생하게 쓰인 책 <플램바즈>에 관한 소개 등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을 소개해 준 1부는 1부대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런 책을 읽었구나’하는 정보가 되었다면, 2부는 ‘소중한 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는 제목의 미야자키 하야오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보는 게 아니라 읽는 느낌이었달까. 그도 그럴게, 처음 책을 만난 무렵이라던가 처음으로 읽은 책, 어린이문학연구회 입회에 관한 이야기 등 이 책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어린이문학은 “다시 해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그런 어린이문학이 제 연약한 성정에 맞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어린이문학은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p.83)

 

아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아이에게는 거듭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p.100)

 

뭐랄까 내 안에 서랍 같은 게 있는 듯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무언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p.105)

 

아내가 『고도모노토모』(어린이의 벗이라는 뜻)를 구독해 그 잡지가 집에 꽤 많았는데, 열심히 읽은 것은 어른이었습니다. 어린이책도 꽤 많이 샀지만 아이들이 펼쳐본 흔적은 없습니다. 특히 정성껏 갖춰두면 읽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놓아두면 읽는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입니다. (p.132)

 

솔직히 말하면 많은 책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50권이 아니라 단 한 권이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p.137)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효과를 보려고 책을 건넨다는 발상은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읽히려고 해도 아이들은 읽지 않습니다. (중략)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책만 읽는 아이는 일종의 외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놀면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으니까요.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p.141-2)

 

어린이문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p.155)

 

2부 중에서 공감하며 읽은 구절을 모아봤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어린이문학은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고, 아이는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으며, 유년 시절 읽었던 책은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내 안에 가득 담겨졌을 것이며, 책은 '갖춤'의 문제가 아니고, 책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많이 읽는 게 중요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게도 그런 책이 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나는데, 몇 학년 때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짓말하다 죽은 말 이야기>라는 책으로, 비룡소에서 출판되었고, 말 일러스트가 있었는데 하체만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이 한 권의 책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소설을 즐겨 읽는다.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상상력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와 같은 상상력의 힘을 알게 된 책이었으니까.

 

어제, 그리고 오늘 읽은 책이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될지라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내일도 책을 찾아 읽었으면 한다. 이와나미 소년문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채우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그 애니메이션이 내 유년시절을 채우고, 유년시절을 보낸 지금의 내가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책이, 독서라는게 그런 거 아닌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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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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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문득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 패러디해봤다.

 

그가 초상화를 수집하기 전까지는 초상화는 다만 한 장의 초상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초상화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 초상화는 그에게로 가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웃자고 패러디 해본 건 아니고, 이 책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에 대한 느낌이 딱 저러했다. 저자도 서문에서 말하지 않던가. ‘이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물론 당시에는 나도 미처 몰랐다.’ (초상화 수집에 대해) 고 말이다.

 

작가의 초상화를 수집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시, 소설, 희곡 등 작품이 곧 작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실제 작가의 얼굴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작가의 이목구비가 궁금할 때도 있고, 얼굴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인상이 궁금할 때도 있고. 그렇게 궁금해 하다가 기회가 되어 작가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목구비가 이렇게 생긴 사람이 이런 작품을 쓴 거구나,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 이런 작품을 쓴 거구나 싶은 생각. 그리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작가의 얼굴을 보면서 작가의 삶을 읽게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얼굴에 생긴 주름과 작가의 눈빛 그 사이에서.

 

이 책의 매력은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전하는 작가의 얼굴, 초상화 이야기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진정한 매력은 그가 초상화로 운을 띄우고 소개하는 작가들 이야기, 문학 비평에 있었다. 그의 글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고, 특유의 솔직하고 명료한 표현만큼은 일관되어서 책을 펼쳐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초상화보다 글에 더 집중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작가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지 모르고 읽었을 정도로)

 

아쉬웠던 건,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어로 글을 쓰는 문학평론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인데, 내가 독일 문학에 생소해서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가 대부분에 대해 모르고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알고 읽으면 더 재밌었겠지만, 모르고 읽는 것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가들의 작품이 ‘고전’이어서 가능했다. 1920년생으로 올해 나이 93세인 저자와 작가와 작품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작가가 쓴 작품이 고전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고전만이 가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 덕분에 나는 저자의 셰익스피어 혹은 괴테에 대한 평론을 읽고, 공감할 수 있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中)

 

김춘수 시인의 꽃 마지막 구절처럼,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수집한 것은, 단순히 작가의 초상화가 아니라 잊혀지지 않는 한 장 한 장의 초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초상화 수집이었으나 자신에게 있어 인생의 일부가 되었고, 한 문학평론가의 이력에 한몫을 담당한 수집이었으니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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