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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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새 안경을 맞추기 위해 안경점을 찾았다. 시력 검사를 마치고, 안경테를 고르고 안경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안경사와 고객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들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한 건 둘 다 여성이었던 안경사와 고객이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동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한 사람은 결혼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곧 결혼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떠들썩해진 순간부터였다. 이야기는 점점 두 사람의 사적인 부분으로 들어갔으므로 나는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둘 말고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계속해서 듣게 됐다. 결혼을 앞둔 고객은 ‘하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가 얼마 없어서 이러다가 정말 돈을 들여 알바를 고용해야할 것 같다며 쓰게 웃었다.

  그 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렇게 풀어쓰게 된 건 비단 그 고객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 고객이 정말 결혼식 당일, 자신의 친구 역할을 대행해 줄 사람을 고용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가 존재하고, 심지어는 대행업체까지 있는 우울하지만 엄연히 사실인 이야기다. 

 

  하객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고 하자. 그 사람이 결혼식 당일, 하객으로 참석해서 결혼식을 지켜봐주고 단체사진을 찍는 친구 한 명이 되어 줄 순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부터 시작 될 내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며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자는 당장 돈으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후자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이 책,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으며 떠오른 내 실제 경험담이다. 내 경험담으로 글을 시작한 건, 이 책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예로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책 전반에 있어 예를 들면서 주제에 관해 논하기 때문에, 책을 읽기에 앞서 막막한 느낌이 앞섰던 내게는 이 책을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집중 있게 읽게 한 큰 힘이 되었다.

 

  내게 큰 힘이 되었던 예시들은 크게 새치기, 인센티브,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삶과 죽음의 시장, 명명권이라는 5가지의 대주제로 나뉘어 책 곳곳에 녹아들었다. 그 덕분에 각각의 대주제가 가지는 중심 주제가 내 머릿속에서 온전하게 정립되고, 나아가 그 주제에 관한 고민을 계속 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대주제가 생각이 안 날지라도, 예시를 떠올리면 대주제가 생각나지 않을까.

  예시에 관한 예찬이 길었는데, 아무래도 미국인이 쓴 책이다 보니 예시 또한 미국이나 외국에서 행해지는 일에 대한 예시이다 보니 내 일상과는 조금 거리가 먼 예시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국과 내 일상에 맞춰 예시를 대입해서 책을 읽었다. 대표적으로 대주제 ‘명명권’에 나오는 예시 중에 이런 예시가 있다.

 

  3년이 지나 배리 본즈(Barry Bonds)가 한 시즌에 홈런 73개를 치면서 맥과이어의 기록을 깼다. 관람석에서는 73번째 홈런공을 잡기 위한 추한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기나긴 법적 논쟁으로 이어졌다. 홈런공을 잡은 팬이 그 공을 잡으려고 몰려든 사람들 무리에 떠밀려 바닥에 넘어졌던 것이다. (p.231)

 

  이 예시를 읽으면서 나는 2009년에 한국 프로야구 통산 2만 번째 홈런이 기록된 날을 떠올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배리 본즈의 73번째 홈런이 있었다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한화이글스 연경흠의 통산 2만 번째 홈런이 있었고, 홈런공을 잡기 위한 추한 싸움 역시 미국뿐만 아니라 부산 사직구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라는 식으로 예시를 대입해 더 친숙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명명권’의 주제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실제 일어난 일에, 한국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대입 할 수 있는 것은 명명권을 넘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해당하며 우리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시장은 훌륭한 선택과 저급한 선택을 구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둘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p. 33)’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 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화의 의미와 목적, 재화를 지배해야 하는 가치를 놓고 깊이 사고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p. 274)

 

  시장에서 태연하게 거래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만 했지, 사고하려 하지 않았던 내게 있어 정곡을 찌른 구절이다. 내가 사고하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는 동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여러 문제들은 마이클 샌델의 말마따나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 되는 셈이다.(p. 274)’라는 구절을 마주했을 때, 나는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사고하고 토의한다면 우리는 ‘상충하는 모든 의문에 관해 합의점에 도달(p. 34)’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관해 마이클 샌델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더욱 건강한 공공생활을 형성할 것이며, 또한 무엇이나 거래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갈 때 치러야 하는 대가를 좀 더 의식하게 될 것이다.(p. 34)’라며 덧붙인다.

 

  옳고 그름에 대해 정확한 답이 없는 문제인 만큼 저자 또한 해결책이나 답을 제시하지 않으며 어느 쪽이 선(善)이고 선(善)이 아닌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물음을 던질 뿐이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p. 276)

 

  저자가 쉬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특정한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이며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물음처럼 정말이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 그 아무리 ‘돈’이라 할지라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과연 존재하는지에 관한 끝없는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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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리엄
로렌 올리버 지음, 조우형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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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지 않은 미래, 지구는 전쟁과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그 후 들어선 새 정부는 인간의 격렬한 감정, 그중에서도 사랑을 질병으로 규정해 치료약을 만든다. 18세가 되면 모든 사람이 테스트를 거친 후 치료를 받고, 국가가 지정한 상대와 결혼해 정해진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  

 

  새 정부가 인간의 격렬한 감정 중에 사랑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치료약을 만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치명적인 것들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이 다름아닌 '사랑'이기 떄문이다.

 

  주인공 레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외롭게 자란 소녀다. 레나의 어머니는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던 병자에,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레나는 자신의 어머니의 나쁜 피가 자신의 몸속에도 흐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어서 치료를 받고 안정적으로 사회에 편입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널 사랑해, 그들도 이것만은 빼앗아갈 수 없을 거야.”라고 말하며 절벽에서 몸을 던지던 어머니의 기억은 그녀에게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생한 공포로 남아 있다.

 

  사랑에 살고, 끝내 사랑에 죽은 엄마의 최후가 레나에게 '사랑'은 공포다. 이런 레나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루 빨리 치료를 받고 국가의 관리 보호 대상이 되어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치료일이 눈앞에 다가온 어느 날 한 소년을 만나면서 그녀가 보고, 또 믿어왔던 세상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부터가 이 소설의 진정한 시작이라 생각한다. 레나의 인생에 있어 '자유'와 '안정'의 대립이 펼쳐지고, 그 대립 사이에서 레나의 선택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레나의 갈등과 선택은 책을 읽는 내게도 전해져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선택을 해 준다는 게 나는 좋았다. 스스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도록 할 필요가 없다는 점 역시도.' 라던가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평범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레나 앞에 알렉스가 나타나면서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고 있는 것을 기분 좋은 통증이라고 생각하고, 바보처럼 웃고 싶어지고, 이제까지의 시간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며, 이 병이 나를 죽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레나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레나의 변화는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레나가 그토록 '사랑'을 거부해 온 것은 어쩌면, 누구보다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기에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나는 알렉스를 만나면서 '사랑'을 알게 되고, 나아가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모르겠어? 엄마는 모든 걸 다 남겨 둔 거야. 엄마는 바로 그것, 그것 때문에 모든 걸 다 포기한 거야. 사랑,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 뭐라고 부르건 간에 그것 때문에 엄마는 나를 버렸어. (생략) 엄마는 용감했어.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그게 진짜 문제였던 거야. 엄마는 치료를 원하지 않았고 아빠를 사랑하는 걸 멈추고 싶어 하지도 않았어. 엄마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던 걸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그들이 나에게서 그 사람을 빼앗아가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 (p.367~368)

 

  이상한 일이었지만 골목에서 그 일이 있은 직후 나는 내 이름의 진짜 의미, 엄마가 내 이름을 막달레나라고 지은 이유와 오래 전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요셉이 막달레나를 포기한 이야기가 모두 한꺼번에 이해되었다. 나는 그가 포기한 데 이유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그녀를 놓아준 것에 대한 대가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을 불사하고 그녀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사랑 때문에 그녀를 포기했다. (생략) 그것은 어쩌면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그들이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p.417)

 

  모든 사람이 레나 같고, 같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아이들에게 치료는 오직 델리아만을 예방하는 것은 아니다. 운이 좋은 누군가는 새롭고 신선하고 더 훌륭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치 찌그러진 쇳조각을 불에 담금질하면 빛나고 반짝이는 날카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게 내가 원하는 전부다. 내가 원해 왔던 전부다. 치료는 바로 이런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준다.' (p.123)

 

  레나가 알렉스를 만나기 전에 갖고 있던 생각이다. 엄마의 기억으로 고통받고 있던 레나는 치료가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거라고 믿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비단 레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은 『딜러리엄』 속 다른 인물일 수도 있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중 누군가일 수도 있다. 이처럼, 로렌 올리버는 강렬한 소설 『딜러리엄』 를 통해 다른 이의 방식대로 사느냐, 내 방식대로 죽느냐, 자유인가, 안정인가 등 수많은 질문들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것은 젊음들만의 특권이자 저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법을, 삶을 선택하는 법을 망각하는 것이야말로 질병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이 물음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다.

 


*인상깊었던 구절

 

사랑은 당신이 사랑을 소유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당신을 죽게 한다. 하지만 엄밀히 그건 맞는 말이 아니었다. 사랑은 형을 선고하는 자인 동시에 형을 선고 받는 자였다. 사형집행인. 칼날. 마지막 순간의 구원. 헐떡이는 호흡과 머리 위를 빙빙 돌아가는 하늘.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기도. 사랑, 그것은 당신을 죽게 하고 또 동시에 살게 한다. (p.436)

 

“가끔씩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어야 행복해진다는 거 알지?” (생략)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가끔은 불행해야 한다는 거, 그거 알지?” (p.29)

 

인생이란 묘하다. 뭔가를 기다릴 때는 아무리 기다려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가, 돌연 기다리던 일이 찾아오고 나면 사람들은 그제야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p.55)

 

삶의 가장 신비한 점은 사적인 영역이 철저히 비틀리고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 간다고 해도,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혹은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제 갈 길을 간다는 것이다.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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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하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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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초조함의 대상이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을 안겨준다고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했다.

 

  언젠가 읽었던 에세이에서 마주했던 구절이다. 이 구절이 내게 와 닿았던 건, 나는 서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영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실제로 서핑을 하고, 수영을 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 구절을 읽던 내가 서핑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공감했다면, 이 구절은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가는 여러 구절 중 한 구절이었을 것이다.

 

  이 책, 후지타니 오사무의 소설 『배를 타라』는 일본 문단계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후지타니 오사무가 스스로도 트라우마였기에 쉽게 들추어낼 수 없었다고 고백한,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로 2010년 서점 대상 후보 7위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라고 한다. '서점 대상'은 일본 서점 직원들이 그해 최고의 소설로 뽑는 상이라고 하는데, 『밤의 피크닉』 『도쿄타워』 『골든슬럼버』 『고백』등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1Q84』는 2010년 서점대상 후보 10위에 랭크되었다고 한다.

 

  나는 『배를 타라』가 서점 대상 후보 7위에 올랐다는 사실보다는, 그 뒤에 붙는 '음악 청춘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책을 완독하고나니 '음악 청춘소설'이라기보다는, 음악을 전공하는 청춘들의 소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악을 전공하는 청춘들의 소설'이라는 점이 이 책을 읽게하는 힘이자, 최대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음악'은 『배를 타라』 속 음악을 전공하는 청춘들에게 인생인 동시에, 우리의 인생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힘들 거야. 고생할 거야." 할머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앞으로 어떤 고생이 기다리는지 몰랐던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렇지. 음악이든 음악이 아니든 결국은 고생이지." 할머님께서는 자상하게 말씀하셨다. (上, p.255)

 

  전공하던 첼로를 그만두는 것을 떠나서, 음악의 길을 뒤로하고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쓰시마에게 쓰시마의 할머님이 해주신 말이다. 쓰시마 할머님의 말씀은 그 당시의 쓰시마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음악이든 아니든 결국은 고생이지.”라는 할머님의 말씀이 내게는 ‘이 책을 읽고 있는 너도, 고생이 많다.’로 다시 읽히면서 나에게도 만만치 않은 위안이 되었다.

 

 

  출판사 리뷰에서 ‘음악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자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전적인 스토리가 상당 부분 녹아 든 작품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은 합주, 피아노 트리오춿 같은 협주, 그리고 독주와 합주협주 등을 하는 모습이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어 클래식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그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음악적 소양이 부족해서 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때면, 나는 내가 직접 봤던 클래식 공연과 음악 관련 드라마를 떠올리며 ‘이런 모습이려나-’하고 상상하며 읽었다. 또, 처음 접하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그때 그때 검색하여 찾아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를 들었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들었다가, 생소한 곡이면 생소한 곡대로, 익숙한 곡이면 익숙한 곡대로 나올 때마다 찾아 들었다. 개인적으로 음악을 들으며 독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클래식 음악이어서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배를 타라』는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주인공 쓰시마의 학창시절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첫사랑 미나미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인 가나쿠보 선생님이다. 가장 소중했고, 가장 좋아했던 두 사람인데, 두 사람에 대한 회상의 끝은 아이러니하게도 씁쓸하다 못해 쓰디 쓰다.

 

그건 마치 교통사고처럼 어떤 시기에 하나의 경험을 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떠밀리듯 어른이 되어버린다. '좋아, 어른이 되어야지.'라고 먼저 결심을 하고 그 다음에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인간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 (上, p.8)

 

그렇게 지금의 내가 있다. 나보다 멋지고 충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몹시 고통스러운 인생을 견디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말해야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런 일상 어느 시점에서 현재의 모든 것이 저만큼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上, p.9)

 

  그러다 문득 ‘이제 이런 자신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글은 내 인생 언제, 어딘가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이라는데 이유가 없으며, 내가 더 이상 자신에게 유예 기간을 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글을 쓴 것이다. 모든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그는 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으며, 정신적 지주였던 가나쿠보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도 온전히 남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했고, 어려웠던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이 되었다. 가나쿠보 선생님의 말씀 중에 굉장히 인상깊었던 두 구절이 있다.

 

  ……나는 여러분이 왜 음악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필시 그것은 여러분에게 음악이 아주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유행도 아니고 올바른 것도 아니고, 즐겁게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에만 사람은 매료됩니다. 유행이나 올바름이나 쾌락도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져야 사람에게 호소력을 가집니다. 내가 철학에 삶을 바치려고 결심한 것은, 이 얇은 책 속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밀로의 비너스보다, 영화 속 여배우보다, 모차르트의 교향곡보다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下, p.130)

 

  흔들리는 청춘 속에서 내가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에 매료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야 가나쿠보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난 것도 늦은 때는 아니지만, 내 학창시절에 가나쿠보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를 타면 흔들린다.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에 뱃멀미를 한다.” / (생략)

  “뱃멀미를 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파도가 잦아들길 바라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는다. 파도가 잦아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바다가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뱃멀미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어른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뱃멀미가 가벼워졌다고 해서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下, p.362)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유명한 시 구절처럼, 『배를 타라』속 음악을 전공하는 청춘들도, 이 책을 읽는 나도, 이 세상의 모든 청춘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청춘’이라는 배에 탔기 때문에.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수영을 하는 사람과 서핑을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늘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를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내게 짜릿함과 행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며 서핑을 할 것인가.

 

 

 

* 인상깊었던 구절들

 

"젊었을 때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는 것이 좋다. 자신에게 어떤 음악이 맞는지 결정하려면 어떤 음악이라도 해볼 수밖에 없다. 포레와 바흐 정도라면 어느 쪽이라도 연주를 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앞으로 성장해서 <자신이 완성>되면 역시 취향이라든지 우수한 분야갸 생기게 된다. 지금은 어떤 곡이라도 열심히 연주해두는 게 좋아. 젊었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 (上, p.353)

 

"음악을 개성 있게 연주하는 건 간단하지. 어떤 음도 속일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건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이야."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것은 할아버님도 항상 하시는 말씀이었다. 위대한 음악가 중에서 악보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리히터의 피아노나 푸르니에의 첼로를 레코드로 들을 때마다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다. 악보에 적혀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실제로 한다고 해도 매우 드문 일이다. (上, p.366)

 

"철학은 대학에 읽는 책을 읽고 이미 고인이 된 훌륭한 사람의 사상을 분류하거나 정리 정돈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자신이 반드시 생각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다." (上, p.376)

 

메츠너 선생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당신은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었스비다. 음악에 공부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공부 위에 음악이 있습니다. 음악이 당신입니다. 공부는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이 내 앞에서 줄곧 공부만 하고 있는 것을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下, p.37)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 (생략)

"이히 바이스 오이히 니히트(나도 모릅니다)." / (생략)

"아바 이히 그라우베 다스 데 뮤직, 데 이히 슈피레 마인스 이스트

(그러나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下, p.38)

 

"쓰시마는 예술가구나. 놀리는 게 아니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난 쓰시마를 조금 존경하고 있어." / (생략)

"쓰시마는 탐욕스러워." / (생략)

"음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알고 싶어하지? 아마,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철학에서도 그럴 거야. 예술가란 그런 거야. 그런 탐욕스러움이 나에게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존경해." (下,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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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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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초조함의 대상이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을 안겨준다고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했다.

 

  언젠가 읽었던 에세이에서 마주했던 구절이다. 이 구절이 내게 와 닿았던 건, 나는 서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영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실제로 서핑을 하고, 수영을 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 구절을 읽던 내가 서핑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공감했다면, 이 구절은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가는 여러 구절 중 한 구절이었을 것이다.

 

  이 책, 후지타니 오사무의 소설 『배를 타라』는 일본 문단계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후지타니 오사무가 스스로도 트라우마였기에 쉽게 들추어낼 수 없었다고 고백한,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로 2010년 서점 대상 후보 7위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라고 한다. '서점 대상'은 일본 서점 직원들이 그해 최고의 소설로 뽑는 상이라고 하는데, 『밤의 피크닉』 『도쿄타워』 『골든슬럼버』 『고백』등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1Q84』는 2010년 서점대상 후보 10위에 랭크되었다고 한다.

 

  나는 『배를 타라』가 서점 대상 후보 7위에 올랐다는 사실보다는, 그 뒤에 붙는 '음악 청춘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책을 완독하고나니 '음악 청춘소설'이라기보다는, 음악을 전공하는 청춘들의 소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악을 전공하는 청춘들의 소설'이라는 점이 이 책을 읽게하는 힘이자, 최대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음악'은 『배를 타라』 속 음악을 전공하는 청춘들에게 인생인 동시에, 우리의 인생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힘들 거야. 고생할 거야." 할머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앞으로 어떤 고생이 기다리는지 몰랐던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렇지. 음악이든 음악이 아니든 결국은 고생이지." 할머님께서는 자상하게 말씀하셨다. (上, p.255)

 

  전공하던 첼로를 그만두는 것을 떠나서, 음악의 길을 뒤로하고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쓰시마에게 쓰시마의 할머님이 해주신 말이다. 쓰시마 할머님의 말씀은 그 당시의 쓰시마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음악이든 아니든 결국은 고생이지.”라는 할머님의 말씀이 내게는 ‘이 책을 읽고 있는 너도, 고생이 많다.’로 다시 읽히면서 나에게도 만만치 않은 위안이 되었다.

 

 

  출판사 리뷰에서 ‘음악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자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전적인 스토리가 상당 부분 녹아 든 작품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은 합주, 피아노 트리오춿 같은 협주, 그리고 독주와 합주협주 등을 하는 모습이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어 클래식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그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음악적 소양이 부족해서 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때면, 나는 내가 직접 봤던 클래식 공연과 음악 관련 드라마를 떠올리며 ‘이런 모습이려나-’하고 상상하며 읽었다. 또, 처음 접하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그때 그때 검색하여 찾아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를 들었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들었다가, 생소한 곡이면 생소한 곡대로, 익숙한 곡이면 익숙한 곡대로 나올 때마다 찾아 들었다. 개인적으로 음악을 들으며 독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클래식 음악이어서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배를 타라』는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주인공 쓰시마의 학창시절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첫사랑 미나미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인 가나쿠보 선생님이다. 가장 소중했고, 가장 좋아했던 두 사람인데, 두 사람에 대한 회상의 끝은 아이러니하게도 씁쓸하다 못해 쓰디 쓰다.

 

그건 마치 교통사고처럼 어떤 시기에 하나의 경험을 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떠밀리듯 어른이 되어버린다. '좋아, 어른이 되어야지.'라고 먼저 결심을 하고 그 다음에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인간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 (上, p.8)

 

그렇게 지금의 내가 있다. 나보다 멋지고 충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몹시 고통스러운 인생을 견디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말해야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런 일상 어느 시점에서 현재의 모든 것이 저만큼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上, p.9)

 

  그러다 문득 ‘이제 이런 자신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글은 내 인생 언제, 어딘가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이라는데 이유가 없으며, 내가 더 이상 자신에게 유예 기간을 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글을 쓴 것이다. 모든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그는 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으며, 정신적 지주였던 가나쿠보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도 온전히 남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했고, 어려웠던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이 되었다. 가나쿠보 선생님의 말씀 중에 굉장히 인상깊었던 두 구절이 있다.

 

  ……나는 여러분이 왜 음악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필시 그것은 여러분에게 음악이 아주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유행도 아니고 올바른 것도 아니고, 즐겁게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에만 사람은 매료됩니다. 유행이나 올바름이나 쾌락도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져야 사람에게 호소력을 가집니다. 내가 철학에 삶을 바치려고 결심한 것은, 이 얇은 책 속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밀로의 비너스보다, 영화 속 여배우보다, 모차르트의 교향곡보다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下, p.130)

 

  흔들리는 청춘 속에서 내가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에 매료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야 가나쿠보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난 것도 늦은 때는 아니지만, 내 학창시절에 가나쿠보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를 타면 흔들린다.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에 뱃멀미를 한다.” / (생략)

  “뱃멀미를 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파도가 잦아들길 바라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는다. 파도가 잦아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바다가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뱃멀미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어른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뱃멀미가 가벼워졌다고 해서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下, p.362)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유명한 시 구절처럼, 『배를 타라』속 음악을 전공하는 청춘들도, 이 책을 읽는 나도, 이 세상의 모든 청춘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청춘’이라는 배에 탔기 때문에.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수영을 하는 사람과 서핑을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늘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를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내게 짜릿함과 행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며 서핑을 할 것인가.

 

 

 

 

* 인상깊었던 구절들

 

 

"젊었을 때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는 것이 좋다. 자신에게 어떤 음악이 맞는지 결정하려면 어떤 음악이라도 해볼 수밖에 없다. 포레와 바흐 정도라면 어느 쪽이라도 연주를 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앞으로 성장해서 <자신이 완성>되면 역시 취향이라든지 우수한 분야갸 생기게 된다. 지금은 어떤 곡이라도 열심히 연주해두는 게 좋아. 젊었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 (上, p.353)

 

 

"음악을 개성 있게 연주하는 건 간단하지. 어떤 음도 속일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건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이야."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것은 할아버님도 항상 하시는 말씀이었다. 위대한 음악가 중에서 악보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리히터의 피아노나 푸르니에의 첼로를 레코드로 들을 때마다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다. 악보에 적혀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실제로 한다고 해도 매우 드문 일이다. (上, p.366)

 

 

"철학은 대학에 읽는 책을 읽고 이미 고인이 된 훌륭한 사람의 사상을 분류하거나 정리 정돈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자신이 반드시 생각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다." (上, p.376)

 

 

메츠너 선생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당신은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었스비다. 음악에 공부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공부 위에 음악이 있습니다. 음악이 당신입니다. 공부는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이 내 앞에서 줄곧 공부만 하고 있는 것을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下, p.37)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 (생략)

"이히 바이스 오이히 니히트(나도 모릅니다)." / (생략)

"아바 이히 그라우베 다스 데 뮤직, 데 이히 슈피레 마인스 이스트

(그러나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下, p.38)

 

 

"쓰시마는 예술가구나. 놀리는 게 아니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난 쓰시마를 조금 존경하고 있어." / (생략)

"쓰시마는 탐욕스러워." / (생략)

"음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알고 싶어하지? 아마,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철학에서도 그럴 거야. 예술가란 그런 거야. 그런 탐욕스러움이 나에게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존경해." (下,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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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평범한 걸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이름은 ‘굶주림’이란 뜻의 'hunger' game이다.

 

 

  소설의 배경은 폐허가 된 북미 대륙에 건설된 독재국가 '판엠'. 판엠의 중심부에는 '캐피톨'이라는 이름의 수도가 있고, 모든 부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주변 구역은 캐피톨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로부터 시작된 판엠의 피비린내 나는 공포 정치를 상징하는 것이 앞서 말한 '헝거 게임'이다. 헝거 게임은 해마다 캐피톨을 둘러싼 12구역에서 각기 두 명씩의 십대 소년 소녀를 추첨으로 뽑은 후,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게 하는 잔인한 유희다. 또 이 모든 과정은 24시간 리얼리티 TV쇼로 생중계된다. 마침내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경기장'에 던져지는 스물 네 명의 십대들. 죽지 않으려면 먼저 죽여야 한다. 이제 오직 단 한 명의 생존자를 가려내기 위한 잔혹한 게임이 시작된다.

 

  소설의 시작은 제 74회 헝거 게임에 참여할 아이들을 '추첨'하는 날이다. 만 열 두살이 되면 추첨 대상이 되고, 추첨 대상이 된 첫 해에는 유리공 안에 이름이 적힌 쪽지가 한 장 들어간다. 만 열세살이 되면 두 장 들어간다. 그런 식으로 매년 한 장 씩 늘어나서, 마지막 해인 만 열여덟 살 때는 일곱개의 쪽지가 들어가게 된다.

  추첨 대상에 대한 기준은 나름 '공평'한 축에 속한다. 앞으로 언급할 추첨 시스템에 비하면 말이다. 이 추첨 시스템으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12번 구역을 "안전하게 굶어 죽을 수 있는 곳."이라 표현하는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과 같이 가난해서 배를 곯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웃지 못할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유리공에 이름을 더 집어넣으면 배급표를 받을 수 있다. 배급표 한 장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만큼의 곡식과 기름에 해당한다. 또 가족들을 위해 이런 식의 거래를 여러 번 하는 것도 허용된다.

  탄광에서 폭발 사고로 아빠를 잃고, 엄마와 동생 프림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 캣니스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유리공에 이름을 더 집어넣는다. 그렇게 해서 유리공 안에는 올해 열여섯 살인 캣니스의 이름이 스무 장 들어가 있다. 올해 열여덟 살이고 7년째 혼자서 다섯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일의 이름은 도합 마흔 두 장이다. 먹고 살기 위해 추첨에서 뽑힐 확률을 높일 수 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범한 걸 기대해서는 안 되는 헝거 게임답게, 12번 구역에서 몇 안되는 기분 좋은 곳 중 하나인 광장에서 추첨이 열린다.

 

  캣니스도 어쩔 수 없는 '추첨' 대상이 되는 만 열두 살. 캣니스의 동생 프림도 만 열두 살이 되어 처음으로 추첨에 참가하게 된다. 캣니스는 프림 앞으로 배급표를 받는 일을 절대 없도록 하였기 때문에 유리공 안에 든 프림의 이름은 한 장. 뽑힐 확률은 가장 낮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헝거 게임 시즌이 되시기를! 그리고 확률의 신이 언제나 당신의 편이기를!" 이라는 대사가 트레이드마크인 12번 구역 담당 수행원 에피 트링켓이 종이쪽지 한 장을 집어 꺼내 호명한다. 다행히 캣니스의 이름이 아니다. 동생 프림로즈 에버딘이다.

  프림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캣니스의 머릿 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캣니스는 무대에 오르는 프림을 붙잡는다. 그리고는 숨을 헐떡이며 외친다. "내가 자원할게요! 내가 조공인으로 자원할게요!"라고. 그렇게 캣니스는 헝거 게임에 참가한다.

 

  '서바이벌'하면 생각나는 일본 영화 <배틀 로얄>을 떠올린다. 칼부림 영화(칼 외에도 여러 무기들이 나온다지만)를 못 보는 탓에 영화의 도입부밖에 보지 못했지만, 헝거게임은 배틀 로얄의 설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뒤지지 않는다. 헝거 게임에 관련된 수많은 설정 중에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설정은 ‘24시간 리얼리티 쇼로 생중계’라는 설정이다. 게임에 참여하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게임을 보는 것을 의무로 하여 이를 갈며 시청하게 만든다. 이와 대조적으로, 게임이 끝난 후에 경기장은 유적으로 남고 그대로 보존되어 캐피톨 주민들이 놀러 가거나 휴가를 보내는 인기있는 관광지가 된단다. 그 곳에서 캐피톨 주민들은 한 달 동안 머무르며 지난 헝거 게임을 다시 시청하고, 지하묘지 투어를 하며, 조공인들이 죽음을 맞은 현장들을 방문한다. 심지어 재연에 참가할 수 있다니.

  이런 무시무시한 설정들에 비해,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죽어나가는 대목의 수위는 약한 편이다. 그게 <배틀 로얄>과 <헝거 게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배틀 로얄이 설정보다는 죽는 장면의 수위가 센 편이라면, 헝거 게임은 수위는 약하되 설정이 센 편이다. (물론 배틀 로얄의 설정은 헝거 게임과 비교했을 때 약한 편이지, 배틀 로얄만을 놓고 봤을 땐 전혀 약하지 않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설정이었으니까.)

 

  내가 헝거 게임을 오롯이 읽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배틀 로얄보다는 수위가 약하고, 매체가 '영화'가 아닌 '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인공 캣니스의 내면 심리 묘사 덕분이었다. 부재한 아빠를 대신해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온 캣니스라 그런지, 여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강인한 면모 뒤로, 12번 구역 멘토 헤이미치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이라던가, 12번 구역에서 함께 참가한 피타와의 과거, 현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 루와 카토를 비롯한 다른 구역의 참가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대목이 그려진다. 소설 곳곳에서 캣니스의 내면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캣니스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더한다.

 

  주인공 캣니스와 함께 소설의 흐름을 이끄는 캐릭터 피타는 이렇게 말한다. "그저 내가 계속 바라고 있는 것은캐피톨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야. 나는 그저 헝거 게임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니고,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피타의 말을 통해 게임에 참여한 모든 아이들은 결코 헝거 게임의 일부가 아니며, 비록 게임이라는 궁극의 엔터테인먼트에 가려졌을지라도, 판엠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이상의 존재다. 이러한 생각에 도달한 캣니스가 소설의 후반부에 꾀하는 반전이 무척이나 짜릿하고 재밌었다.

  판엠에 헝거 게임이 행해지는 것처럼, 모든 시대는 각자의 공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도 억압하고 통제하는 자가 있고, 억압과 통제를 받는 자는 자유를 위해 저항하며 살아간다. 캐피톨의 무자비한 폭력과 힘이 200% 묻어나는 헝거 게임 속에서 캣니스의 모험 아닌 모험을 통해 우리는 캣니스가 활을 쏘아 목표물에 명중했을 때처럼 통쾌함을 느낀다.

 

 

  영화 <헝거 게임>을 개봉을 앞두고 읽게 되어서 나만의 캣니스를 상상하며 읽는 재미는 없었지만 캣니스 역으로 제니퍼 로렌스를 캐스팅한 건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제니퍼 로렌스의 눈을 보고있으면, 캣니스 에버딘도 저런 눈이 아닐까 싶은 생각 덕분에 소설에 더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래는 인상깊었던 구절 모음.

 

  "너보다 훨씬!"

  다시 나를 놔두고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간 헤이미치가 카메라에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외친다.

  "너보다 훨씬!"

  관객들에게 하는 말일까, 아니면 너무 취해서 대놓고 캐피톨을 비난하는 것일까? 그가 다음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무대 아래로 떨어져 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p.29)

 

  "정확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저… 나는 내 자신으로서 죽고 싶어. 그게 말이 되나?"

  피타가 묻는다. 나는 머리를 흔든다. 자기 자신으로 죽지 그럼 누구로 죽겠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난, 그들 때문에 변하고 싶지 않아.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괴물로 날 바꿔놓는 그런 거 말이야."
  나는 열등감을 느끼며 입술을 깨문다. 내가 숲이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동안, 피타는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순수하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p.147)

 

  어느 때보다 작아 보이는 루, 그물로 만든 둥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기 동물 같은 루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루를 이대로 버려둘 수가 없다. 이제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도 없는, 너무나 무방비한 모습. 1번 구역 남자애도 죽고 나니 약해 보인다. 그를 미워하는 것도 부적절한 것 같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게 만든 캐피톨이다. (p.235)

 

  헝거 게임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으면서도,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어디 있었는지, 자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 자기 기분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좀 우습다. 모든 이야기는 경기장에서 죽어가는 소년 소녀들이 아니라 자기들에 대한 화제뿐이다. 12번 구역에서는 이런 식으로 헝거 게임에 빠져 들지 않는다. 우리는 게임을 보는 게 의무이기 때문에 이를 갈며 시청하고, 끝나자마자 되도록 일상생활에 전념하려고 애쓴다. 준비 팀을 싫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아버린다.(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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