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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신간평가단 13기 에세이 분야 활동을 갈무리하며

내 마음대로 BEST 5를 꼽아본다.

 

책 소개, 작성한 리뷰에서 글 인용, 짧은 코멘트 3단 구성으로, 5위부터 쓴다.

 

 

5. 최인호 『눈물 : 최인호 유고집』

 

 

 

 

 

 

 

 

 

 

 

 

 

 

작가 최인호의 마지막 비밀 원고를 공개한 책이다. 2008년 암 진단을 받은 작가 최인호는 환자가 아닌 작가로서 죽고자 했고, 이에 깊은 밤, 탁상 앞에 앉아 자신의 고통과 정직하게 마주한 채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 작가는 새로운 눈으로 삶과 죽음을, 인간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그리고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신의 기적을 바라보고 기록했다.

 

아아, 주님. 그래도 난 정말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죽⋅고⋅싶⋅습⋅니⋅다. (p.33)

라던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내가 다 뿌듯하면서, 한없이 가슴이 저민다.

 

작가로 죽고 싶다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작가로 세상을 떠난 작가.

저 세상에서도 그는 여전히 작가로 살고, 매일 밤 글을 쓰지 않을까.

 


4. 김형경 『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포착해온 소설가이자 심리 에세이스트인 김형경의 신작으로, 이번에는 남자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남자들의 속내는 과연 무엇인지, 다양한 사례와 신화, 소설을 통해 내밀하면서도 찌질하고, 슬프면서도 아픈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많은 남자들이 읽었으면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때때로 인정하면서 남자도 모르는 남자의 이야기를 알고, 나아가 남자인 자신을 이해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테니 말이다.

 

친구와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 책에 대해 언급하고,

이 책 속 구절을 나도 모르게 들려주고 있었다.

여전히 남자를 모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남자만큼은 알고 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3. 이윤기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창작부터 번역까지 전방위작가로 살았던 이윤기가 남긴 유일한 글쓰기 산문집이다. 이 책은 쓰고 옮기는 것에 대한 39편의 에세이를 통해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를 바라보는 이윤기만의 철학을 전한다. 첫 문장의 설렘부터 퇴고의 고뇌까지, 등단의 설렘부터 창작과 번역의 세계를 오가던 시기의 고민까지 모두 담아냈다.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 (p.61)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자 신화전문가이기도 했던 그는 3년 전에 떠났지만, 그가 쓰고 옮긴 책들은 남아 오래도록 읽힐 것이며, 그는 여전히 소설과 번역과 신화라는 이름의,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을 쓰는 이윤기가 말하는 '글쓰기'에 관한 책.

그리스 로마 신화로 시작해서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이윤기의 글을 재밌게 읽었는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더 재밌었다.

 

 

2. 정철 『인생의 목적어』

 

 

 

 

 

 

 

 

 

 

 

 

특유의 역발상으로 유쾌하고 따뜻한 인생사는 법을 전해온 카피라이터 정철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수천 명의 대답을 얻어 모아 엮은 책이다. 2,820명의 설문 응답자들이 꼽은 단어는 총 3,063개였고, 이 중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어 1위~44위, 순위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함께 생각해 볼만한 단어 6개를 실어 총 50개를 추려냈다.

인생의 목적어는 지금의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이 될 수도 있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가족, 사랑, 나, 엄마, 꿈, 행복, 친구, 사람, 믿음, 우리, 열정, 너, 도전, 지금, 희망, 돈, 건강, 자유, 이름 등등 많고 많은 단어 중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어떤 것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인생의 목적어를 어떠한 단어 하나로 결정짓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의 내게 어떤 단어가 더 소중하듯, 내일의 내겐 다른 단어가 더 소중해질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어떤 단어를 온전히 마주하게 됐을 때, 나는 전보다 더 그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이 단어가 내 인생의 목적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아니 어쩌면, 한 단어를 인생의 목적어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어보다 더 단어같은 내가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1. 김중혁 『모든 게 노래』

 

 

 

 

 

 

 

 

 

 

 

 

 

 

소설가이자 뮤지션인 김중혁이 음악을 통해 일상을 들여다본 에세이집이다. 김정미, 김추자의 옛 가요부터 써니힐의 최신 가요까지, 페퍼톤스 같은 인디 음악부터 가인 같은 대중음악까지, 그리고 비틀스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 킨크스, 팻 메스니에 이르는 ‘색깔 있는’ 곡들까지, 30년이 넘는 그의 음악 편력이 48개 꼭지로 재탄생했다. 웃기고 유쾌하며 애틋한 일화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

 

캐롤은 언제 들어도 캐롤이지만, 눈 내리는 겨울에 들어야 제 맛인 것처럼 음악과 계절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벚꽃 흩날리는 봄에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듣고, 무더운 여름에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듣고, 낙엽지는 가을에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듣고,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에는 박효신의 <눈의 꽃>을 듣는 나로서는 반가운 구성이었다. 

 

 

이 책 속 겨울 꼭지에 담긴 겨울 노래들을 듣고 있다.

봄이 오면 봄 꼭지에 담겼던 노래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좋아라하는 중혁님의 글도 좋지만, 사계절로 묶어 나온 책의 구성이 참 좋다.

그 어떤 음악은, 누군가에게 계절이 된다.

그래서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책을 다시금 읽고 싶다.

 

 

* 알라딘 신간평가단 13기 에세이분야 활동을 갈무리하며.

 

이제껏 해온 서포터즈(리뷰어) 활동 중 가장 신선하고 흥미로운 활동이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매월 초 작성하는 주목 신간페이퍼를 작성하는 일.

처음엔 욕심부리면서 작성했던 페이퍼가 하나 둘 늘어가면서

매달 새로나온 책 코너에 들어가서 전반적으로 새로나온 책을 살피는 버릇이 되고

버릇은 습관이 되었다. 오프라인 서점에 방문해서 신간을 살피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한 번이었지만, 우수 리뷰로 선정되었던 일도 기억난다.

으... 그 기쁨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늘 혼자 읽고 혼자 쓰는 독서와 서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 홀로 서평이 조금은 인정받은 것 같아서 읽고 쓰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또, 블로그에도 꾸준히 알라딘 신간평가단 도서 서평을 업로드하는데,

서평을 읽고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해서 읽고 리뷰를 쓰는

이웃분도 계셨다. 이거야말로 신간평가단 활동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일이다.

소설과 에세이분야라는 편독, 에세이 분야에서도 한국 에세이나 내가 흥미로워하는

에세이만 찾고 읽고 썼던 나에게, 신간평가단 활동은 여러 외국에세이를 접하고

읽고 쓰는 활동이 되었다. 새삼스럽게, 에세이를 읽으며 세상은 참 넓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게 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13기 에세이분야 활동 덕분이다♥

 

 

2013.03.06 덧붙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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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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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연(緣)이 있다면 이런 걸까. 이 책 『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기 전에 김광석의 이야기를 먼저 접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서였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글에서, 이윤기는 친구와 함께 강원도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듣게 된 ‘젊은 목소리에 실린, 결코 젊지 않은 노랫말이 인상적이어서 심상치 않았던 노래’에 관해 이야기한다. 7년째 미국 생활을 하던 이윤기였던지라 그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이며 가수는 도대체 누구냐고.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야. 왜? 잘 부르지 않나?”

“잘 부르기는 하는데, 젊은 녀석이 이렇게 슬픔의 끝을 알아버려서 어떻게 살아?”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p.214)

 

슬픔의 끝, 아름다움의 끝, 끝의 슬픔, 끝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던 이윤기였기 때문일까. 김광석을 처음 접한 그가 슬픔의 끝을 알아버린 젊은 녀석이 어찌 사냐고 묻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울리는 절창에서 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종말을 예감한다. 하지만 절창은 거기에서만 꽃핀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p.214)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일지라도 이윤기의 물음에 답하는 친구의 말은 언제 생각해도 애달프다.

 

“죽었어, 벌써. 작년에.”

 

그가 떠난지도 18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수식은 끝이 없다. 짧지만 뜨거웠던 김광석, 다시 김광석, 오늘도 김광석, 내일도 김광석. 이 책의 제목 또한 김광석을 수식하는 말이 된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은, 우리의 김광석, 나의 김광석이 아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이다. 숱한 기념 음반과 평전까지 출간된 걸 감안하면 낯선 사실이기까지 한데, 실제로 김광석 본인의 글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러 시간에 흩어져 남긴 일기, 수첩 메모, 편지, 노랫말 들을 모은 것으로, 저작권자인 유가족의 동의하에 그의 숨결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의 성격에 따라 재구성한 책이라고 한다. 우리는 오늘도 김광석을 듣고, 노래하고, 추억하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김광석을 가지고 있지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은 접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의 이야기는 어떨까 하고.

 

마음의 평안이나 그저 안일한 평화가 주는 심심함보다, 가슴이 파이고 흐느끼는 밤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쪽을 택하리라 쓴 김광석(p.25), 의사가 출근 전이었고 간호사는 무슨 준비하러 간다고 나간 사이에 아이를 받아냈던 김광석(p.126), 마흔이 되면 멋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김광석(p.152,)을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혼자 부르는 노래,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 미처 부르지 못한 노래 총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첫 번째 파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김광석이 아직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 전의 생활과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글들. 그 중에서도 나는 ‘늙지 않는 시인’이라는 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기형도 산문집을 읽다. 짧은 여행의 기록. 느낌이 많다. ‘짜쉭’ 스물아홉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에 목매다는 것이니까. 다른 이들보다 좀 나은 것은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스물아홉 살, 어느 삼류 극장에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둔, 그 짧은 여행의 마지막 눈빛은 어떠했을까. (p.40)

 

기형도 산문집을 읽고, 기형도는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완성했다고 쓴 김광석. 그의 말마따나 나 역시 써본다. 김광석은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노래를 완성했노라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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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눈물 - 최인호 유고집』은 작가 최인호의 마지막 비밀 원고를 공개한 책이다. 2008년 암 진단을 받은 작가 최인호는 환자가 아닌 작가로서 죽고자 했고, 이에 깊은 밤 탁상 앞에 앉아 자신의 고통과 정직하게 마주한 채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나갔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 작가는 새로운 눈으로 삶과 죽음을, 인간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그리고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신의 기적을 바라보고 기록한 책이다.

 

쌓여진 책 더미 사이에서 발견된 미공개 원고 200매에는 ‘고통의 축제’라 명명한 암 투병 생활 속에서 신자이자, 작가이자, 결국에는 인간 최인호가 눈물로 기록한, 내밀한 고백이 담겨있었다.

매번 ‘사랑하는 벗이여’로 시작되는 글로 채워진 이 책은 책 속 구절로 미루어볼 때, 가톨릭 주보에 연재된 칼럼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모든 글의 끝은 주님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지만 시작은 달랐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플라톤 『향연』,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심판’. 키에르 케고르『죽음에 이르는 병』, 스타인 벡 <분노의 포도>, 프란시스 톰슨 <하늘의 사냥개> 등 소설, 시, 그림, 조각, 벽화가 한 작품씩 언급되고,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주님을 향한 글에 녹여낸 느낌이었달까.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책 전체가 주님에 대한 글로만 담겼으면 읽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매 글마다 작품이 언급되어서 무리 없이 잘 읽혔다. 신자이자 작가가 이 작품을 접했을 때는 이렇게 느끼는구나 했고, 특히 종교에 관련된 작품일 경우 내가 해석해내지 못했던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여러 분야의 작품이 언급되다보니 자연스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언급되는데,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동안 12장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자화상은 대부분 권총으로 자살하기 3년 전에 시작해서 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더라도 얼마든지 그림 그릴 소재는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고흐에게 있어 자신의 얼굴이야말로 그가 마음 놓고 그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소재였습니다. 그의 자화상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표정으로 점점 더 침울해 가고 얼굴은 말라 가고 두 눈은 점점 더 광기에 젖어 가고 있습니다.

죽기 전 자화상을 완성하고 나서 고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자화상은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이다.” (p.193)

 

이 글에서 최인호는 자신이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며 이제야 알겠으니 자신을 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이 부분이 나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더라도 얼마든지 그림 그릴 소재는 발견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자화상을 그린 고흐. 그 자화상이 고흐의 말마따나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얼굴을 그려서라도 붓을 놓고 싶지 않았던 화가로서의 고흐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작가 최인호도 고흐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인해 손톱 한 개와 발톱 두 개가 빠졌으나 직접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는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어서,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고무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칭칭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 조각을 씹으면서 미친 듯이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필한 최인호. 자신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해달라던 최인호. 정말이지,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 죽고 싶다고 주님께 외쳤던 최인호. 처절한 노력 끝에 그는 자신이 원한대로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 최인호로 세상을 떴다.

 

아아, 주님. 그래도 난 정말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죽⋅고⋅싶⋅습⋅니⋅다. (p.33)

 

라던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내가 다 뿌듯하면서, 한없이 가슴이 저민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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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시간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내가 원하는 시간』과 함께 읽은 에세이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표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빠나 아들 중에 어느 한쪽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그 사랑을 느낀다면 이는 너무 늦다. 살아 있을 때, 내 눈에 보일 때, 그때 소통해야 한다.

 

비단 아빠와 아들간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살아 있을 때, 내 눈에 보일 때, 그때 소통해야 된다는 걸 우리는 안다. 쉽지 않아서 문제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의 주인공 로렌초 역시 다르지 않다.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드디어 성공의 길이 열리는 순간, 그는 아버지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서로 상처를 준 채 아버지와 점점 더 멀어진다. 그런 그에게도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오지만 사랑을 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로렌초는 결국 그녀를 떠나보내고 만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버지가 건강 검진을 받던 날 암일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헤어진 그녀는 두 달 뒤에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랑하지만 한 번도 가깝게 느껴본 적이 없는 아버지, 사랑했지만 이제는 떠나버린 여인. 삶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모든 것을 되찾기로 결심한 로렌초.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혈연’인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연’인 그녀와의 이야기가 함께 다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다고 말할 수 있을 2년의 시간이 로렌초에게는 애석하게 길기만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혈연간의 정을 되돌릴 순 있어도 연인간의 정을 되돌리기엔 너무 길었다 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모든 내일을 단 하루의 어제와 바꿀 수 있다면…’하고 소망하며 노력하는 로렌초의 마음이 절절해서, 안타까웠다. 앞으로의 모든 내일을 내주고서라도 단 하루의 어제와 바꿀 수 있다면 하고 소망하는 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소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그랬다. 돈으로 행복한 삶은 살 수 있어도 행복을 사진 못한다고. 이 책 『내가 원하는 시간』을 읽고 있던 중에 읽게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줄 곧 이 말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 <만추>에 대한 한줄 평으로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라 말하던 영화 평론가 이동진님의 말처럼, 행복 역시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라서, 돈으로 행복하게 보이는 삶을 살 순 있어도 행복은 살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이란, 상대방이 순수하게 나를 위해 내어주는 그 시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르고, 굳이 행복이라 명명하지 않아도 그 순간 느껴지는 그 온전한 마음을 우리는 행복이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인상 깊었던 구절

 

책을 읽는다는 건 멋지고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똑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는, 그 책은 거의 불가항력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읽은 책에 다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세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세계, 상황들이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비추어질지 궁금했고 무엇보다도 그 세계가 나를 다시 받아줄 수 있는지 혹은 내 안에 들어와 숨 쉴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읽으면 몇몇 페이지들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이번에는 내가 그 페이지들 속의 내용을 변화시킨다. (p.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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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 - 아빠, 그 애잔한 존재들에 대하여
유승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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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원>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본 서평을 멀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작년에 본 서른 편의 영화 중 ‘올해의 영화’라며 최고로 꼽았던 영화는 <소원>이었다. 모 영화 블로거님의 평처럼 ‘처참한 상황을 선동하지 않고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이야기하던 영화 <소원>에서 내가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아빠(설경구)와 딸 소원이(이레), 부녀(父女)관계였다. 딸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해도 손이 떨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목이 메는 아빠. 영화의 후반부, 그런 아빠마저도 결국 폭발하고만 법정씬에서 “집으로 가자”며 아빠의 손을 잡던 소원이. 힘든 시간이었을 테지만 법정에 참석해서 범인을 지목하는 일을 해낸 건, 소원이 역시 범인이 죗값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소원이가 집에 가자며 아빠의 손을 잡고, 아빠는 그제야 정신이 든다. 그 상황에서 소원이는 이성을 잃은 아빠를 말리고자 했던 걸까. 어떤 생각이 들어, 행동에 옮긴 것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아니, 당연히 아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범인의 죄를 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면 자신의 손으로라도 처단하고 싶어하는 아빠 이전에, 소원이의 ‘아빠’로서 소원이에게 최선을 다해 힘이 되고자 한 아빠였다. 사건이 일어난 그때가 떠올라서 아빠를 멀리했던 소원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가까이 다가가고자, 아빠는 소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코코몽’ 탈 인형을 쓰고 소원이 앞에 나타난다. 그 무더운 여름, 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탈 인형을 쓰고 소원이 주위를 맴돌며 등∙하교를 챙기던 아빠의 노력을 알아준 소원이가 탈 인형의 머리를 들어올려 아빠의 땀을 닦아줄 때까지.

 

 

서론이 너무 길었다. 대뜸 영화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이 아니고, 이 책 『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아빠’가 떠오르는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원>을 보고 한 번도 글로 정리한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책의 구성 덕분이었다. 喜(희) 아빠의 미소가 필요한 순간들, 怒(로) 자녀를 분노하게 만드는 아빠들, 哀(애) 때로는 아빠도 눈물을 흘린다, 樂(락) 힘들어도 웃는다, 나는 아빠니까 라는 ‘희로애락’ 총 네 파트로 나눠서 영화와 책 속의 아빠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소원>의 아빠는 怒(로)를 제외한 喜(희),哀(애),樂(락)에 해당되는 아빠였던지라 많은 작품 속 그 어떤 아빠보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프롤로그 속 작가의 말마따나 소설과 영화는 인생의 축소판이고, 그 안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무궁무진하게 담겨 있다. 한국∙외국 소설과 한국∙외국 영화가 각각 여섯 편에 담긴 아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내가 읽고, 본 책과 영화 속 아빠들이 떠오른다. 앞서 언급한 영화 <소원>을 비롯해, 영화 <어바웃 타임>, 책 『7년의 밤』의 두 아빠 최현수와 오영제, 영화 <화이>의 아빠들 등등. 내가 읽고, 본 모든 작품과 이 책에서 언급되는 소설과 영화에서 그려지는 아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조금이나마 내 아빠를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도 하다.

 

 

아빠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슈퍼맨이 아니며, 가족과 함께 걷는 인생길의 한 동반자일 뿐이라는 것을. 아빠와 자녀 어느 한쪽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그 사랑을 느낀다면 이는 너무 늦으니, 살아 있을 때, 내 눈에 보일 때, 그때 소통해야 된다는 것을.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알고 있지만’ 어렵다고 말하지 말고, ‘알고 있으니’ 잘 하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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