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콰이어트"와 "교수대 위의 까치"를 사다 주었다. 친구에게 "인간과 음악", "해석을 위한 한문 입문"을 부탁했었는데 서점에 이 책들이 없단다. 이 책들은 어제 이야기한 그 정체성에 대한 반성의 흔적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구매를 하든지 하여야 겠다.

2. 콰이어트. 빠르게 훑어 보았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내용의 책에 대한 소개를 뉴욕 타임스 컬럼에서 읽은 기억이 나서 검색해 봤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동유럽 출신의 여자가 쓴 책인데 미국에서는 자신이 검정 티만 입고 있어도 사람들이 다가와서 웃으라, 힘내라 등등 하며 야단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문화의, 일종의 긍정 강박증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중에 다시 찾아봐야 겠다. 콰이어트는 그저 그랬다. 

3. 교수대 위의 까치. 그냥 읽는데 갑자기 1장이 딱 끝났다. 어라? 이러면서 2장을 읽은데, 2장이 또 갑자기 딱 끝났다. 이 책을 이미 읽은 한 친구에게 "이 책 원래 아무 내용 없어?"라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아무 내용이 없단다. 그래서 마음 놓고 책을 던져 버릴 수 있었다. 내용 없는 책을 구매해 준 것으로 차릴 예의는 다 차린 것이니 굳이 끝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4. 어제 종일 비가 왔다. 저녁 무렵에 근처에 있는 강가(운하)로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갔다. 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조용해진 강은 백조의 차지였다. 강 한가운데를 유유히 미끄러져 가는 백조가 신나 보였다. 보통 때라면 강 한가운데 길은 커누나 보트를 탄 사람들의 차지이니까. 돌아오는 길에 난데없이 위산이 쏟아져 내렸다. 석사 과정 강의는 반년 후에 끝나고 그 뒤엔 두 달 길이의 논문 학기만 남는다. 위산은 내가 그 과정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의미한다.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 블로그를 매일 매일 적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 가이드라인 - 30분 이상 시간을 들이지 말 것! 스트레스는 받아치는게 맛이라고 나는 배웠다.

5. 오늘 오전부터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주석서를 읽고 있다. 흐뭇한 건 이걸 헌책방에서 샀다는 것. 아주 옛날에 단자론을 한국어본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느낌은, "I felt -as many others have felt- that the Monadology was a kind of fantastic fairy tale, coherent perhaps, but wholly arbitrary."(이 주석서의 서론에 인용되어 있는 어떤 학생의 말)과 똑같았다. 단지론의 첫 두 항을 해설과 함께 읽은 지금 나는 라이프니츠의 논증의 철저함을 긍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형이상학적 통찰에 감탄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의 접근 방법은 이렇다. 세계는 사물들의 집적들이 아니다. 세계는 어떤 통합성을 제공하고 있다. 맞나? 맞다. 그러면 이 통합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출발점인 듯 하다. 내가 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이런 버전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은 단어들의 집적이 아니다. 문장은 단어들의 집적 이상의 어떤 통합성을 제공한다. 맞나? 맞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이 예를 들면 럿셀이나 비트겐쉬타인의 문제의식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한 사례들에 폭넓은 적용성을 가지는 것, 이것이 형이상학적(철학적) 사유의 힘이다. 라이프니츠, 그대의 시작은 좋았소.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그대의 논설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소.

6.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데카르트의 철학 저작집 제1권이 왔다. 아마존에 중고로 주문한 것이다. 책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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