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전문의 - 하 밀리언셀러 클럽 123
라슈 케플레르 지음, 이유진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1. 

10년전 아이를 납치당했던 가족에게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유나는 식탁위에 명함을 두고 온다. 

복지담당 공무원과 피해자 가족지원 그룹의 전화번호. 

맞아. 고개를 끄덕였다. 범죄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사회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 

고통의 치유를 위해 마땅히 국가가 세금으로 이런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1990년대 초반, 개혁이라 불리며 시행되었던 정신보건 분야의 대규모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울레르 오케르 정신병원은 여전히 운영 중이었다. 이 구조조정 탓에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수용 병원을 떠나 강제로 자립해야 했다...... 수용 환자들은 감소했지만, 노숙인들은 그와 같은 수로 증가했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선택한 결과 대규모 경제 위기가 스웨덴을 강타하자 어느 주 의회도 환자들을 다시 데려올 재원이 없었다. 

유나가 정신병원으로 가는 중에 설명되는 문장이다. 

음...... 스웨덴도 구조조정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봐. 그리고 그 개혁의 결과 복지는 후퇴하지. 

경제위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노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노선을 선택한 결과 대규모 경제위기가 온다는 표현은 

더욱 인상적이네.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범죄소설의 한 모퉁이에 있는 문장이다. 

이런 문장을 대중소설에 쓰고, 읽는 스웨덴 사람들이 부럽다. 


음울해 보여. 유나는 생각하며 사실은 이런 종류의 장소는 사람이 회복될 곳이 아니라 보된되는 장소라고 혼잣말을 했다. 

정신병원에 대한 유나의 생각. 사실은 라슈의 판단이겠지. 

맞다. 정신병원 뿐 아니라 나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병원이 그렇게 느껴져. 왜 그럴까. 


나는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문장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 를 인용하고는 했다. 사람에게 일어났던 모든 소소한 일은 현재에도 따라다닌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모든 체험은 모든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만일 그 점이 정신적 외상 체험들에 대한 것이라면 과거는 현재에서 거의 모든 공간을 차지한다. 

정신적 외상. 현재에서 거의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과거의 고통이라니.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니고, 심지어 아직 지나가지도 않은 현재의 고통이라는 말은 

정말 그래. 끝나지 않는 고통, 지속되는 고통이란 중단된 시간이다. 



2. 

라슈 케플레르, 이사람 뭐하는 걸까. 

최면으로 집단치료를 한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 그래서 시간이 중단된,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사람들이 

최면상태에서 내면에 숨겨둔 학대당했던 과거의 경험을 말하고, 서로 들어주고 공감하며 치료를 한다.

이 집단에 고문전문가도 있어서, 고문 행위를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보면서 즐기던 최면 상태의 고백을 

학대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듣게 하는것이 어떤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거야. 


고문을 한 사람도 고통스럽다고? 그렇겠지.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학대당한 피해자들에게 고문전문가의 영혼을 들여다보게 하다니. 잔인하다. 

반대로 저 고문전문가가 피해자들의 내면의 상처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 상상이 되는 바람에 소름끼쳤다. 

소설속 살인자보다 이런 상황을 만든 작가가 더 잔인하다. 


캐릭터의 개성도스토리의 박진감도, 구성의 조밀함도 무엇하나 라르손과는 비교가 안된다. 

라슈는 자기가 뭘 쓰는지 모르는 느낌이다.

흉내는 내지만 산만해.

유셰프를 냅두고 에릭의 과거로 가는것도 집중력을 떨어트리고이야기가 따로 놀고

스토리가 맥락없이 길을 잃고 헤멘다는 느낌


교통사고로 이틀이나 누워 의식이 없던 켄넷이 의식을 회복하고 한나절만에 일어나서 범인을 추적하러 간다

살인범을 추적하는 것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왜 이럴까? 자기가 아는 단서를 경찰에게 알려주면 되잖아.

왜 이렇게 말도 안되는 멍청하고 무리한 스토리를 만들까.


속는 셈치고 한번더 이 작가를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피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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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전문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22
라슈 케플레르 지음, 이유진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1. 

북유럽 스릴러에 대한 신뢰가 있다. 

대체로 인간적인 감정의 오고감이 섬세하다고 생각해. 

유셰프 일가 살인사건, 베냐민 납치사건, 형사 유나와 정신과의사 에릭의 사건 추적 

뭐랄까. 이 작품은 산만하다. 정신이 없어. 

큰 줄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른 사건들이 조각조각 배치되어 전체의 스토리에 힘을 주어야 하는대 


에바 블라우는 누구야?

켓넷은 어떻게 된거지?

베냐민은 누가 납치했어?

유세프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거야? 온 몸이 상처인대 어떻게 살아?

각각의 질문은 따로 놀고 


에릭은 실력있는 정신과 의사인대 왜 아내에게 이렇게 멍청한 마초짓을 하는걸까? 

약물중독을 감안해 준다해도 석연치 않고. 

과거로 돌아가 그 이유가 서술되는대, 해명을 하기는 하는대, 마땅치 않다. 

이것저것 미끼를 너무 많이 깔아버리니까, 수습이 안되는 스토리에 캐릭터는 울퉁불퉁 튀어 버린다. 


데뷔작이라 그런거라고,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리는 흔한 실수를 한거라고 일단은 이해하기로 한다. 

케프레르가 스티그 라르손을 잇는 다는 것은 국적이 같다는 것 말고는 아직 유보다. 

이 정도 작품을 라르손의 계보에 연결하는 것에 동의안됨.

데뷔작이니까, 유보한 상태로 더 읽어볼 수는 있다. 후하게 평가한다면 그렇다는 거다.  



2. 

에나벨라는 살 곳이 아무 데도 없었고, 석달동안 노숙 신세였는데, 그나마 청소하는 건물들의 계단통과 창고에서 숨어 지낼 수 있었다고 낮게 이야기했다. 꽃과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서 루센룬드씨댁 아파트 열쇠를 받았을 무렵에야 그녀는 마침내 제대로 씻고 편하게 잘 수 있었다. 

6주도안 태국으로 여행간 집주인에게 열쇠를 받아 그 집에서 몰래 선잡을 자다가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납치 현장을 목격한 페루 출신의 이십대 여성 이주노동자 에나벨라 

이런 장면들은 좋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비추어 보여줄때 

분명 우리 주변에 살면서도 없는듯이, 존재가 가리워진 사람들을 호명해서 보여줄때, 우리 옆에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산다고.


잠깐 등장하는 단역이지만 이런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스토리의 개연성을 풍요롭게 높여준다. 

목에 나찌 문신이 있는 아이다와 그녀의 정신지체 남동생 니케 

이런 인물들이 우리와 섞여 살고 있다고 


유나는 집무실 복도를 걸어가 게시판에 모자를 벗어 걸고는 게시물들을 훑어 봤다. 요가강습, 캠핑카 매물, 경찰 노조 공지사항, 사격동호회 시간 변경 알림.
스웨덴은 경찰도 노조가 있구나. 
왜 대한민국은 경찰도 소방관도 노동조합은 안돼고 심지어 선생님고 공무원도 노동조합이 불법일까. 
경찰노조가 상식처럼 등장하는 이런 소설을 보면, 한국의 노동에 대한 혐오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회보장청이 의사 면허를 부여하기 전에 요구되는 18개월간의 일반의 직무를 마친 후에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했다. 소말리아, 모가디슈 남쪽에 있는 키스마요에 도착해서, 폐기처분된 스웨덴 병원 물자, 1960년대 뢴트겐장비, 유효기간이 지난 의역품, 업서지거나 구조 조정된 병동들에서 나온 녹슬고 얼룩덜룩한 병상들 뿐인 천막 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매우 강렬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평범한 소년이나 소녀에게 재산, 장학금 혹은 자선의 도움 없이도 전국 모든 대학에서 의사, 건축가, 혹은 금융경제학 박사가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생겨서 의사가 된 에릭은 의사면허 취득후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한다. 
이런 스토리를 읽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대, 실제 이런 사회에서 살면 어떤 느낌일까. 

이런 스웨덴에서도 십대인 아들과의 대화는 영 소통이 잘 안돼는걸 보면
어른들이 보기에 십대가 어려운 것은 만고불면의 진리인가봐. 

범죄소설의 스토리라인은 부실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흥미로왔다. 
북유럽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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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시간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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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대체 61시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사고가 나고, 가까운 마을로 옮겨 숙박하게 되는대 

우연히 그 조그만 마을에서 엄청난 사건을 만난다. 

사실 이런 정도의 우연은 왠만하면 억지스렵기 마련인대, 리처에게 이런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냥 보통이고 일상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리 차일드의 실력이라고 인정. 

헐리우드 스타일 액션 히어로, 리처는 중독성있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12,000개의 느긋한 영혼들은 지금쯤 따뜻한 집에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텔레비전이나 보고 앉아 있겠지. 한편 마을 북쪽에서는 교도소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용광로처럼 뜨겁고 초조하게 부글거리고 있었다. 서쪽에서는 폭주족이 아무도 뭔지 모를 음험한 짓을 꾸미고 있고, 미지의 장소에서는 얼굴 모를 살인청부업자가 두번째 암살 계획을 준비 중이었다. 

참으로 리처 스럽다. 이게 뭔 난리람.  



2.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재닛 솔터다. 

"마음씨 착한 노부인입니다. 우리 마을에 살죠. 일흔이 넘었는데, 옛날에 교사 겸 사서로 일했고요. 완벽히 신뢰할 수 있는 증인이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도서관학과 교수로 일했던 할머니 

동화속에 나오는 공주같다고 피터슨은 소개했지만 

거물 갱의 범죄를 증언하기로 하고 암살자들의 표적이 된 그녀와 잭의 감정선이 세련되고 안정감있게 진행된다. 

자기 분야의 일에 유능했으나 지금은 은퇴한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군더더기 없이 존중하며 신뢰한다. 


할머니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리는 소설은 많지 않다. 

보통 시골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은 하루종일 창가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말많고 지루하고 심술궂은 사람들로 표현되거든. 

저격수의 목표가 된 상황에서 흔들림없이 이제껏 지켜온 삶의 원칙대로 행동할 기회를 경험하고 있으므로 

나는 매우 대단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스스로의 처지를 표현 한다. 품위있는 용기.  

나같으면 맨붕이겠다. 차마 외면하지 못해 증언한다고 마음 먹었다 해도, 도망가고 싶을걸.  

그러니 동화속에 나오는 공주 같다고 소개한 피터슨의 말에 일리가 있다. 



3. 

사이렌은 북쪽으로 1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그 소리는 얼어붙은 밤공기를 가로질러 머나먼 곳까지 울려 퍼졌다. 아득하면서도 또렷하고, 친숙하면서도 낯설었으며, 비탄과 절박함의 중간에 있는 듯한 소리였다. 사이렌은 길게 부르짖으며 속삭이듯 흐느꼈다. 들판을 가로질러, 눈 덮인 고요한 거리를 지나 높고 날카로운 청명한 대기를 갈랐다. 

리는 사물과 상황을 참 잘 표현한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는대도 스토리에 힘이 있는 것은 

시시콜콜한 리얼함과 저렇게 적절한 표현, 그리고 안정감있는 캐릭터의 조화다. 

비탄과 절박함의 중간에 있는 듯한 소리, 맞아 나도 사이렌 소리는 그렇다고 생각해. 


정육점 냉장고에라도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뱃속에서 갈비뼈에서, 다리와 엉더이, 눈과 얼굴, 폐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한국에서 경험했던 최악의 날씨와 비길만 했다. 하지만 한국에 있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명령을 받고 있었으며, 월급도 받고 있었다. 

웃었다. 나는 우리나라 날씨가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대 ^^;

리처는 지금 사우스다코타주의 볼턴에 있다. 눈이 많이 온 겨울이고 눈폭풍이 두개나 다가오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정육점 냉장고에라도 들어와 있는 것처럼 춥다. 

그런데 그가 경험한 최악의 날씨가 한국이다. ㅎㅎㅎ 이런. 

우리나라 겨울이 그렇게 춥나? 러시아나 중국이 훨씬 추울걸. 재밌네. 


수십년 전, 세계를 휩쓴 냉전의 광풍 때문에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쏟아붓던 시절에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국방비로 얼마나 황당한 짓들을 많이 했던지. 

세금걷어서 무기자본에게 같다 바치는 것 말고도 말이다. 


미 공군이 2차대전때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마약들이 버릴수도, 팔수도, 태워버릴 수도 없는 처치 곤란의 물품이 되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짱박아 뒀는대 

영리한 마약상이 알아채고 빼돌려 러시아 마피아에게 팔아먹으려 한다는 스토리는 

황당하지만, 그럴듯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소설보다 훨씬 상상초월로 황당하더라고. 


재밌다. 지금까지 읽은 리처 중 상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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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연 소년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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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기서 우리는 단 한번도 자기 냄비와 숟가락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여덟명이 한꺼번에 냄비 하나에 달려들었죠. 아프가니스탄은 결코 미스터리 가득한 모험의 땅이 아니예요. 아프간 하면 죽어 누워있던 한 농부가 떠올라요. 깡마른 몸에 커다란 손을 가진 농부가요......총격이 시작되잖아요. 그럼 간절이 빌게 돼요. (누구한테 비는지는 나도 몰라요. 아마도 신이겠죠) 땅아, 갈라져서 나를 숨겨다오. 돌아, 갈라져 다오......"


똑같이 전쟁을 하고 죽이고 영혼이 파괴되는데, 기억하는 품위가 러시아는 다르다. 

이 다른 품위가,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 질 수 있을까. 

이 품위가 상처받은 영혼들의 치유에 도움이 되는 걸까.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던 소비에트의 젊은이들은 대조국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과 다르다. 

소비에트가 침략군이기 때문이다. 

독일이 러시아에 침략을 해 인민들을 죽이니 이 적들을 물리치러 참전하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죽인다는 명분을 준다.

설사 이 전쟁에서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죽은 영웅이 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르다. 

세계혁명의 임무를 수행하는 줄 알고 가서, 죽이고 살아왔더니, 

애들도 죽이고 여자도 죽인 살인자 취급을 받는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목숨을 담보로 조국으로부터 사기 당한 셈이지. 

제 정신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명분없는 전쟁이라 환멸과 야만이 더 심하다. 

명분없는 전쟁이란 이유없는 학살이고, 내 생명을 왜 위험속에 두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하는지 모르는 전쟁이다. 


"또 어린 아프간 소녀가 있었어요......아이가 소련 병사들한테 사탕을 받아 먹었어요. 그러자 다음날 아침, 거기 사람들이 아이의 두 손을 잘라 버렸죠."

미국이 침략한 베트남전쟁만 있는 줄 알았더니, 소련이 참략한 아프간 전쟁도 있었구나. 왜 나는 여태 몰랐을까. 

아프간 전쟁을 처음 본다. 



2.

"---- 카라반을 기다려요. 한번 매복을 나가면 보통이 이삼일이에요. 뜨거운 모래속에 누워서, 필요하면 그래도 용변도 봐야 하죠. 그렇게 삼일이 지날 때쯤이면 거의 정신이 나가요. 증오심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라서 제일 먼저 나타닌 대열에 미친듯이 총질을 하게 되죠. 총격을 마치고, 모든게 끝난 후에야 깨달아됴. 카라반은 그저 바나나와 잼을 운송중이었다는 걸요. 그래서 다 먹어치웠어요. 평생 먹고도 남을 그많은 양의 단 것을요......"

전쟁은 미친짓이다. 

누가해도 미친짓이다. 

정의로운 전쟁 따위는 없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오래전 2차대전의 얘기를 회상해서, 30년쯤 지난후에 기억을 꺼내어 들려준다. 

이연소년들은 바로 몇년전, 길어야 10년쯤 전의 이야기다. 아직 과거가 된 시간이 아니다. 

모든것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냄새도, 소리도, 짜증도, 두려움도, 억울함도. 


어머니들이, 그것도 바로 얼마전에 아들의 시신이 담긴 차가운 아연관을 붙잡고 몸부림치던 그 어머니들이 학교들과 군사박물관들을 찾아다니며 '조국 앞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라'고 소년들에게 호소한다. 

저 바보같은 엄마를 어쩌면 좋으니. 잔인한 세월이다.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들이 죽은 자식을 앞에서 다른 아들들에게 전쟁에 나갈 것을 호소하다니.

스베틀라나의 두번째 전쟁이야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그녀의 작품들을 더 찾아 읽고있다. 

아연관, 왜 관을 아연으로 만들었을까? 관은 원래 목재, 나무로 만드는 것 아닌가?


1979년부터 1989년까지 9년 1달 19일동안 계속된 전쟁.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으로 인한 전쟁이야기. 

여자청소부들과 도서관 사서들, 호텔 직원들이 새로 아프간에 오는 걸 보면서 우린 처음에 도무지 이해를 못했어요. '겨우 두세개 조립식 건물 때문에 청소를 새로 부르고, 20여 권밖에 되지 않는 낡은 책들 때문에 사서를 새로 들여? 왜 이런 전쟁터에 여자들이 수천 명이나 필요하지? 무엇때문에?' 글쎄 뭐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점잖게는 설명을 못하겠어요......교양있는 말로는......쉽게 말해 딱 한가지 이유예요......남자들이 미쳐버리는걸 막기 위해서죠......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그 여자들을 멀리했어요. 그 여자들이 우리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도 그랬어요.

미쳐버릴 만한 상황에 소년들을 밀어넣고, 미치지말라고 섹스할 수 있는 여성을 공급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전쟁이 여성을 어떻게 공급하는지. 

미군 옆에는 창녀촌이 있고, 일본군 옆에는 위안부가 있었고, 소비에트 군사들 옆에는 청소부와 사서들이 있었군. 



3. 

책 마무리에 아연소년들 책에 대한 재판 과정과 내용이 붙어 있다. 

스베틀라나를 고소한 사람들의 말과 글, 재판부의 입장, 

아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어머니, 자신의 진술을 뒤집어 부인하는 참전 군인, 그리고 매국노라는 손가락질

판결문과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글 

이 재판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두번째 전쟁이다. 기억과 정의에 대한 전쟁. 

온 나라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고 논쟁하고 고민한다. 

그렇게 느껴져. 

스베틀라나의 작품에 대한 소비에트 소속이었던 국가 국민들의 응답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해. 

그녀 혼자 쓴 글이 아니라, 이 다큐 문학은 많은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을 복원해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다. 

한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동시대를 산 많은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과 합동의 마음이 이루어진 작품 

러시아.



4.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주장했던 사람들과 정치권 지도자들은 약탈자로서의 본심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살인 명령을 거스를 용가기 없는 사람들을 모두 범죄의 공범자로 만들었습니다. 살인이 그 어떤 '국제의무'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무슨 그따위 의무가 있답니까!"


1970년대 우리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었다. 

반공의 기치를 내걸고, 베트만 인민들을 학살하고, 돌아온 병사들이 온전한 영혼이었을까. 

우리는 왜 참회하지 못할까. 

우리는 왜 파병되었다 시체로 돌아온 군인의 어머니의 말을, 돌아온 병사들의 고통스런 증언을 듣지 않았을까.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아직도 보수의 선봉대가 되어 여전히 국가에 이용당한다. 

부끄러워. 

우리는 증오 없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증오 없이 사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전에 대해 성찰했다면, 우리는 좀 다른 사회에 살고 있을까. 

나의 모국 대한민국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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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블라인드
라그나르 요나손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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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슬란드, 이 서늘한 동네에 호감을 갖고 있다. 

인두리다손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최고다. 

라그나르의 느와르도 멋지네. 

다크 아이슬란드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 군침도는 시리즈의 시작이 즐겁다. 


"대답은 지금 당장 해야 하네. 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애들이 아주 많아. 자네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많고, 나는 자네의 학문적 배경이 마음에 들어. 철학과 신학, 작은 마을에서 좋은 경찰이 되려면 딱 그런 공부가 필요하지."

수도 레이카비크에서 경찰대학에 다니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은 아라손에게

북쪽 조그만 마을 경찰인 토마스가 전화로 제안을 한다. 

작은 마을의 좋은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청년이 좋다고 말할줄 아는 경찰이

대한민국에 몇명이나 있을까. 46년을 살면서 단 한명도 못봤다. 


일은 꽤 마음에 들었다. 경찰서는 근무지라기 보다는 직원식당에 가까운 사교의 중심지었다. 커피를 마시러 놀러오는 단골손님들도 있었다. 심지어 일주일에도 몇번씩 찾아와 이런저런 일들에 수다를 떨러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경찰서 좋으네. 동네 사람들이 수다떨러 찾아오는 직원식당이나 카페같은 경찰서라니. 

이런점이 북유럽 소설의 장점이지. 



2. 

아이슬란드 북부의 겨울, 눈이 많이 내려 외부와 교통이 단절되는 겨울은 이 마을의 특징이다. 

교통만 단절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도 정체되는듯이 고통과 슬픔이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무엇도다 도시의 속도가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익숙하고 변화가 없다는 뜻. 

이웃도 일상도 편안하지만 오래묵은 고통이 지속되어 정체되는 것조차 일상의 풍경인 것처럼 익숙해지기도 한다. 


눈내린 외딴 마을은 크리스티 스럽다. 추리소설 전통에서 자주 응용되는 밀폐된 공간 

이 조그만 마을은 정말 양파껍질 같다. 

흐롤푸르의 사망을 둘러싸고 드라마 클럽 인물들 모두의 사연을 군더더기 없이 소개한다. 

누구나 과거의 삶 중에 슬픔도 있었고 말하고 싶지 않은 사연도 있다. 

겉으로는 아무일도 없는 듯이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에 부적절한 관계와 사기와 살인, 거짓말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의 캐릭터오 포지션이 모두 섬세하게 배치된 구성도 좋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진다니까. 

 

재밌어. 

추리소설은 마무리가 중요한대, 요나손은 고전 추리소설의 밀폐된 공간을 현대적 열린 결말로 세련되게 마무리한다. 

다음편을 기대하시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더 좋고, 소박하고 평이한 문체도 좋다. 

지나치게 멋을 내거나 예민하게 보이려 비비꼬인 문장도 내 취향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실용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좋아. 


인드리다손에 이어 요나손도 좋구나. 

아이슬란드를 정말 한번은 가봐야겠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도 북부의 눈덮인 해안에서도 술을 먹어보고 싶다. 


책을 덮자마자 다음편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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