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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평점 :
1.
미미여사가 사연 많은 젊은이 쇼노스케를 시작으로 도미칸 나가야, 가난뱅이 동네를 통째로 보여준다.
찬바람 불어 추운날은 동네 꼬마 아이들이 얼어죽지 않으려고 널담을 부셔뜨리고 쪼개어 불쏘시개로 쓸만큼 가난한 동네
관리인과 선생님과 노비와 글방을 하는 낭인 무사와 책장사와 노점상, 그리고 욕심사나운 그의 어머니
날품팔이 바느질쟁이와 그녀의 딸, 술주정뱅이 생선장수와 그의 어른스런 아들, 채소행상부부.
하여튼 미미여사스럽게 구석구석 시시콜콜, 비록 가난하지만 밝고 저마다 사연있는 사람들을 펼쳐서 보여준다.
한꺼번에 우루루 등장해 저마다 자기얘기를 하는대, 금새 알아볼수 있고 서로 헷갈리지 않는다.
딱 봐도 금새 알수 있어.
캐릭터들을 워낙 개성적으로 잘만들어 서로 어울리게 배치 해 놓았다는 말씀. 흐뭇하다.
200년쯤 전의 에도시대 사람들을 어떻게 미미여사는 지금 바로 옆에서 이웃을 보고 쓰는듯이 생생하게 쓸까.
2.
쇼노스케는 머리회전이 빠르지만 마음이 약하고 순한 도련님 스타일이다.
음모에 희생되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사건을 밝히기 위해 에도로 와서 유능한 관료 사카자키의 도움을 받아 지내고 있다.
가난한 도미칸 나가야의 사람들도 서적상 지헤에도 모두 이 수한 청년 쇼노스케의 겸손한 태도와 고운 마음을 알아보고
그를 좋아한다.
착한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이 봄날처럼 화사한 동네다.
알콜중독 아버지와 사는 씩씩한 골목대장 열두살 아이 다이치.
다이치의 착한누나 긴은 시골에서 온 책방 필사선생 쇼를 좋아하고 나름 적극적인데
쇼는 긴을 귀여워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면서 난데없이
도미칸 나가야 뒤 강둑의 벚나무 아래 서 있던 꿈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었던 단발머리 여인이다. 갓 피기 시작한 벚꽃처럼 조신하고 쓸쓸해 보이던, 그러면서 쇼노스케의 시선을 빼았았던 여인이었다.
꿈인지 환영인지 알수없는 벚꽃같은 단발머리 여인을 쫓느라 정신이 없다.
긴이 마음 아프겠네. 눈치없는 쇼.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물정 다 알아버려 사람을 한번 척 보면 직관으로 속까지 알아채는 다이치와
변방에 살다가 에도로 와서 물정 모르는 순진한 스물두살 총각 쇼의 대화가 재밌어.
턱없이 순진한 쇼와 몸에 컴플렉스가 있는 규수 와카의 봄바람에 온동네 사람들이 이목을 집중하며 도와준다.
내놓고 도와주며 자기일처럼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고, 멀찍이 구경하다 슬쩍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 웃었네.
오래간만에 미미여사의 에도시대가 밝고 화사하다.
쇼와 와카의 사랑이 무엇보다 화사하다.
쇼에게는 할복한 아버지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있고, 와카에게는 얼굴과 몸에 눈에 보이는 상처가 있다.
두사람 다 무시하지 못할 큰 상처와 그것으로 인한 고통이 있는대
그 고통에 휘줄리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천진난만 밝고 화사할까.
부족함없이 갖추었을 뿐마 아니라 날때부터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아픔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렇게 예쁘고, 밝을 수 있다고
늘 그랬듯이 미미여사의 소설을 읽으며 위로 받는다.
잘나지 못하고, 건강하지 않아도, 많이 부족해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행복하게 살자고.
마지막장의 쇼와 지헤에의 논쟁도 의미심장하다.
어떤 것이 잘사는 것이고, 옳바른 것이며, 무엇이 배려일까.
마음에 바람들어 덜컹덜컹 할때, 그럴때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그러다 어떤 날은 미미여사의 소설을 읽으며 잠깐 한눈팔아 화사한 봄날의 에도시대를 보고 위로를 받기도 하는것이다.
다음날 다시 바람부는 가슴이 덜컹거릴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