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새는 종마다 제 둥지의 내실을 장식하는 형태가 다르다고 한다.

같은 종에 속한 정자새의 수컷은 기본적으로 모두 비슷한 형태의 내실을 만든단다.

거미도 종에 따라 거미줄의 모양이 다르듯 말이다.

결국 새의 외모는 물론이고 행동이나 그 행동의 결과물인 구조물까지도 유전한다는 뜻이다.

'표현형'이 새의 눈색깔과, 머리카락 색깔, 체형 등을 말하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정자새의 내실과 같은 행동의 결과물을 "확장된 표현형"이라 이름했다.

 

내 외모뿐만 아니라 내 행동의 결과물까지도 유전된다는 사실을 두고 마냥 비애감에 젖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어쩐지 씁쓸하다.

나의 글들은, 나의 독서는, 나의 달리기는 어떤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일까.

 




Gilbert O'Sullivan - Alone Again (Natur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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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일수록 현실의 고통이 깊다. 아이들에게 과자 한번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 병든 어머니를 제대로 치료해드리지 못하는 자식의 마음,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어버이의 마음을 생각해보라. 안분지족安分知足, 가난을 편하게 여기고 족함을 알라고 했지만 가난은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쓰라린 현실이요 아픔이다. 현실의 가난은 결코 미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의 빈곤 앞에서는 당장 한줌의 쌀이 시급한 것이지 성인들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병이 깊을수록 회복에 대한 갈망도 커지듯 현실의 고통과 가난이 깊을수록 판타지의 공간에 대한 갈망도 커간다. 판타지는 가난이 꾸는 꿈이다. 없는 것(재물, 빵과 행복 등)을 있게 만들고, 있는 것(배고픔, 질병, 불행)을 없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판타지에는 가난한 자의 절실한 꿈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가난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책을 찾아보자.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인천의 한 빈민지역인 '괭이부리말'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부모없이 자라는 불쌍한 고아들, 남들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서 진실한 삶을 배우게 된다. 부모님의 가출로 동생과 둘이 사는 동준과 동수, 쌍둥이자매 숙자와 숙희, 아버지의 매질에 못이겨 집을 나온 명환, 이들은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인천 만석동 달동네 아이들이다. 그들은 사람의 따듯한 정을 그리워하는 소외받은 인생을 살지만 그들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녹여주는 영호와 명희. 그들을 통해서 사랑이 어떻게 희망을 만들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프란시스코의 나비의 작가는 실제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경력을 갖고 있다.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살던 꼬마 판치토의 가족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몰래 넘어 캘리포니아로 간다. 판치토 가족은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목화와 포도, 딸기수확을 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텐트촌, 오두막, 창고 등지에서 생활하며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만 한다. 힘겨운 삶이다. 그럴수록 판치토와 그의 형제들은 서로돕고 사랑한다. 너무 작아 일하러 나갈 수 없어 혼자 남아 목화를 따던 판치토는 목화의 무게를 더 나가게 하기 위해 목화더미에 흙을 섞는다. 이런 판치토에게 양심을 속이는 일은 나쁜 짓이라며 꾸짖는 아버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이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 간절히 기도하는 가족들의 모습, 삶이 각박해져도 유머를 잃지 않는 판치토의 가족들은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를 보여준다. 돼지가 한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성실한 아버지의 삶이 아들의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지침이 되는지를 말해주는 책이다.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주인공 로버트는 아버지가 많은 걸 가졌던 사람임을 깨닫는다. 따뜻한 이웃이 있었고, 성실한 삶이 있었고, 자기 몸을 뉘일 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소년은 아픔을 딛고 홀로 일어서 아버지가 감당해왔던 삶의 무게를 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가난했지만 아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던 아버지는 진정으로 아들에게 커다란 유산을 남긴 것이다. 과연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이 책을 통하여 생각해보자.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속담도 있다. 가난이 어떻게 인간성을 고양시켜주는지, 가난이 어째서 형제애를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이 되는지,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가난의 의미를 제대로 알 기회가 없다면 그들에게 가난의 의미를 알릴 의무는 문학에 있다. 궁핍을 소재로 한 문학은 한 시대의 유행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교사, 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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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재단사 졸리 벨랭이 실수로 테레빈유를 식탁에 쏟았는데, 그 부분의 얼룩이 말끔하게 씻겨나간 것을 보고 드라이클리닝을 발견했다는데 그의 식탁에서는 아무것도 쏟아진 것이 없다. 아무것도 발명하는 것 없이 그는 우걱우걱 하루의 식량을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는다. 얼룩을 지울 만한 어떤 강력한 액체도 그의 식탁에는 없다. 촛불은 제 스스로의 격정에 몸을 섞으며 타오르고, 물고기들은 몇 시간 째 아무런 표정 없이 지느러미를 흔든다. 술을 마실까 하다가 물을 마시고 그는 컵 속에 자라나는 양파 뿌리를 본다. 그의 슬픔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그는 오래 지켜본다. 물고기들의 지느러미에도 인기척이 사라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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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스킨헤드에 가죽잠바를 입었다. 피어싱은 기본. 목걸이 팔찌 주렁주렁 문신은 더덕더덕. 그 모습이 가관이라고 생각한 길 가던 행인이 묻는다. 당신 복장이 뭐요? 그러자 이 친구 왈 <이건 다양성추구협회의 유니폼입니다> 크하, 유니폼이라, 제복이라. 촌철살인의 풍자다. 십수년 전에 문장사에서 펴낸 죠니 하트의 <원시인 BC>라는 애니매이션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을 구해주시는 분께는 당시 정가의 10배를 쳐드리겠습니다 *^--^*)

신해철이 다양성추구협회의 유니폼은 아니고 그보다는 훨씬 더 온건한 복장, 후드티를 입고 <100분토론>에 나온 걸 두고 이죽거리는 양반들이 있나보다. 딴따라에게 정장을 바라는 이 문화적 후진성을 웃어냐 하나 말아야 하나. 한 국가에는 다양한 문화층이 있고 각개의 문화층에는 제 집단을 대표하는 상징이나 표지가 있게 마련이다. 민노당의 노타이, 연예인의 턱수염이 그것이다. 장동건이 공식석상에 턱수염을 깎지 않았다고 해서 이 따샤 너는 공석에서 턱수염도 안 깎느냐고 따지면 되겠나. 딴따라에게는 폼이 밥줄이고 생명 아닌가. 윤도현의 문신은 나도 락커이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은 아닌가. 락커라면 물론 좀더 위악적인 포즈가 필요하다. 자본에 대한 어떤 저항의 난폭한 제스쳐 말이다. 그런데 윤도현에게는 폼은 있어도 저항의 불온함은 없다. 사실 그는 노래 잘하는 엔터테이너로 족하다. 라커는 희망사항이겠지. 그러니까 의상은 정체성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사람이 '희망하는 정체성'일 뿐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장차 이러이러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나를 만들어 가듯 옷도 사람을 만든다는 거다. 김기덕은 야구모자를 쓰고 칸느의 시상식에 올랐다. 김기덕은 야구모자 그 자체다. 폼이건 뭐건 상관없다. 벗으면 자연인 김기덕이요, 쓰면 영화감독 김기덕이다. 앙드레김은 국회의 청문회에 예의 그 화이트럭셔리자켓을 입고 나왔다. 멋진 김복남씨. 그런 문화적 배짱이 있어 대한민국은 그런 대로 살만한 나라다. 앙드레김의 정장, 생각만 해도 우습다. 국회를 코미디장으로 만들지 않은 앙드레김에게 더블클릭!!!! 사자머리 선글라스 전인권에게도 더블클릭(그래도 당신 이은주 발언은 너무 한 거야. 침묵하면 어디가 덧나?) EX는 노래한다. ..예쁘게 봐주세요......그래 예쁘게 봐주려면 무엇을 못 봐주나. 애정이 문제지.

강아지하품이란 말속에는 세상 평화가 다 들어있다. 하품이란 단어의 저 무방비성, 강아지란 단어의 저 천진난만함, 그 둘의 절묘한 배합이 이루어내는 고즈넉함. 강아지하품! 내가 말해놓고도 참으로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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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0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장이 어쩌고들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박정희가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단속하지 않고
복지문제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지금 훨 괜찮은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삼십년전이나 지금이나 꼴통들 머릿통은 안바뀌는군요

감각의 박물학 2005-11-0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슬픔이여 안녕>을 쓴 사강은 마약으로 구속되었을 때 기자들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 쯤 되어야 할 터인데......
 

Long Goodbye-camel


 
입적(入寂)


이렇게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이라면 좋겠네
자귀나무 잎새들의 그 기나긴 입맞춤이 끝나고 나면
그것으로 타임아웃의 휘슬이 불어지면 좋겠네
일렬종대로 서있는 가로수들이여
어쩌면 生은 라인 밖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니
부디 똥볼을 질러다오
저 함성과 아우성의 그라운드 바깥으로
내겐 어떤 불멸도, 어떤 루즈타임도 필요없으니
한 번의 휘슬 그것이라면 좋겠네
갈팡질팡 떨어진 잎새를 질질 끌고다니는 바람 앞에서
대체 소멸 이후는 무엇인지
화환도 없이, 갈채도 없이 
어떤 루즈타임도 더는 없었으면 좋겠네
음악이 끝나면 또 침묵의 음악
그 꽁꽁 얼어붙은 시간의 심장 속이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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