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하니 조만간 극장에서 퇴출될 듯한 분위기라 땡땡이치고 영화를 보러 갔다. 예상대로 극장 안은 한산했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보고 싶었다. 변영주라는 이름과 (사실 그의 전작들은 보지 않았다.) 아일랜드로 새롭게 조명을 받은 김민정, 더 이상 가수 활동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선언한 윤계상이 모여 어떤 조합을 보여줄까 기대 반 호기심 반이었다고나 할까.



 



김민정과 윤계상이라는 배우가 19살 고등학생 역할이라는 것만 알아도, 이 영화가 성장 영화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발레 교습소가 배경이라니,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발레라는 클래식한 소재로 도전, 배움, 그리고 어려움의 극복 내지는 희망을 얘기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영화는 이러한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한참 벗어난다.



수능 시험을 끝내고 앞으로의 길이 막막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강아지조차 무서워하는 주제에 집에서 멀다는 이유만으로 제주대 수의학과를 택한 수진(김민정), 비행기 조종사인 아버지의 강권으로 항공대에 진학하고자 하지만 성적이 한참 모자라는 민재(윤계상), 공부는 뒷전이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동완, 전문 백댄서가 되고 싶은 창섭,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미래에 대한 비전은커녕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는 기태 등등. 뿐만 아니다. 발레 교습소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또 있다. 발레를 좋아하는 중국집 종업원, 비디오 가게 아저씨, IMF 때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요쿠르트 아줌마, 적은 수강생 때문에 구청에서 구박당하는 발레 선생, 아내를 잃고 아들에게 기대를 걸지만 아들과 어떤 식으로 대화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버지.



감독은 이 영화를 성장영화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나는 감독이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않을 생각인가, 그래서 이 한편에 하고 싶은 모든 얘기를 담으려고 한 건가 의심하게 된다. 진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 사내 아이들의 우정, 첫사랑, 어른으로 살아가는 고달픔,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 그 속에 만연한 폭력, 게다가 성적 소수자의 외침까지, 에피소드마다 뭔가 하나씩은 들어가 있다. 당연히 이야기는 이리 저리 튀고, 인물들의 감정은 느닷없이 생뚱맞다. 게다가 중간중간 삽입된 유머조차도 간신히 이어질까 말까 하는 흐름을 흐트려 놓는다. (이런 지경인데도 옆자리에 앉은 여자애들은 훌쩍이는 것 같더라만.) 한마디로, 전혀 몰입이 안되는 영화다.



모든 걸 담아내고자 한다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독은 몰랐던 걸까. 과욕이 어째서 나쁜건지를 보여주는 실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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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2-0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주 감독의 밀애를 보고 한숨만 나왔어요.

아무래도 극영화의 장르에 안착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듯 해요.

김민정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ㅊㅊ 합니다!

로드무비 2004-12-0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영화보다 <마이 제너레이션>이 보고 싶던데......

<밀애> 보고 많이 실망했거든요.

비디오로 나오면 한번 봐야지.

그나저나 블루님도 보면 꽤 신랄해요.^^

chika 2004-12-0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

urblue 2004-12-0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주 감독이 다음 영화를 만든다면 보고 싶을까, 안그럴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신랄이라고 하시면..음...

2004-12-09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