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조제
묘하게 긁어대는 듯한,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다가도 문득 안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태어나서 빗질이라고는 한 번도 하지 않은 듯 부스스 흩어진 머리카락
시설에서 함께 도망친 아이(이름 기억나지 않는다.)에게 엄마처럼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하던 엄숙한 얼굴
조제가 풀썩 떨어져 내린 후 빈 의자와 싱크대
언젠가 너도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될 때가 오겠지. 나는 다시 내가 나온 심연으로 돌아갈거야. 그렇지만 그때와 똑같을 수는 없겠지.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
전동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달리고, 혼자 먹을 식사를 준비하던 담담한 표정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
아직 사랑을 시작하기 전엔 울며 가지 말라고 매달렸지만, 이미 사랑을 겪고 난 후엔 사랑이 변한다는 걸, 그것조차 삶의 일부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조제의 변화가 대견스럽다. 자신의 장애가 츠네오의 여자 친구가 말했던 ‘무기’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그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해 이만큼 보여줄 수 있는 건 일본이기 때문일까.

02 츠네오
처음 조제네서 밥을 먹을 때, 억지로 한 젓가락 입에 댔다가 너무너무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던 발랄함
여자 친구 앞에서 다른 여자 생각에 커다랗게 웃는 철부지
이런 저런 핑계 대지 않고, 자신이 조제에게서 도망쳤음을 인정하는 남자
길거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던 모습
사랑이 변했으므로 조제를 떠난 남자. 그가 떠났기에 조제를 사랑한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도망쳐놓고, 다시는 조제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길에서, 그것도 새 애인 앞에서 울어버리는 이 청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03 할머니
조제와 마찬가지로 심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깊게 주름이 패인 어두운 얼굴
느릿느릿, 그러나 확실한 말투
조제가 늙으면 꼭 이 할머니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다가 눈물 한 방울을 떨구었다. 어느 장면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조제가 불쌍해서도 아니고, 이들의 어긋난 사랑이 가슴 아파서도 아니고, 이유를 모르겠다. 풋풋하고 용감하고 꿋꿋한 조제와 츠네오 앞에서 눈물을 보일 까닭이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