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버씨의 죽음


오월의봄 출판사는 사회 문제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의 부제를 보니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문구만 봐도 살벌하다.

여전히 노동자의 인권은 열악하다.

이전보다 노동법은 개선되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법망을 피해 요리조리 피해가는 회사와 일터는 책임 의식이 부족해 보인다.

성과 지향주의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터에서의 죽음은 너무나 흔해서 슬프다.

이 책은 노동자의 과로사와 일터에서 생기는 죽음에 대하여 다루었다. 


2. 워싱턴 불렛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비밀문서를 포함한 방대한 자료연구를 바탕으로 쿠데타, 암살, CIA  음모를 그린 기록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남미를 비롯한 세계 현대사의 사건을 딱딱하지 않게 대중의 눈높이에서 썼다.

미 제국주의의 영향은 오늘날에도 영향력이 막강하다.

비밀문서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전직 CIA 요원들의 인터뷰나 회고록을 통해서 다층적으로 볼 수 있어 기대가 된다.

저자는 그동안 제3세계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전해왔다고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그 세계에 대해 무지하고 잘 모른다. 그래서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


3. 책을 불태우다


도서관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까울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진시황이 떠올랐다. 분서갱유 사건 유명하지 않은가.

저자는 도서관 관장을 맡고 있다.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 책과 도서관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과거의 기록을 살폈다.

책의 부제는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이다.

도서관은 지식의 집합소로 예전부터 공격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중요한 자료들이 많았을테니 그럴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오늘날 책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책을 저장하는 것에 대한 고찰이 더해질 것 같다.


4. 송나라의 슬픔


신문을 읽다가 발견한 책이다.

책의 제목이 묘했다. 송나라는 당시 흥했던 왕조였고 문명의 보고라고 불리던 나라였다.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올림픽을 생각하며 중국의 현재를 생각한다.

경제력은 급성장했지만 인권 문제엔 항상 날을 세운다.

베이징 올림픽에 미국을 비롯한 최소 9개국이 외교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다.

송나라는 부의 분배와 지방 분권 . 사상적 다양성을 보장한 사회였다.

중국의 민중에 대한 탄압과 억압이 오히려 그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을 보며 과거 그들의 역사를 통해 배울 점은 없을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 책은 중국에서는 금서, 홍콩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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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1-07 12:4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이 책 찜!👆^^
화가님이 추천 해주심 역사책들 밈음이 ^^

거리의화가 2022-01-07 13:06   좋아요 4 | URL
그 책은 북플 알라디너들이라면 모두 좋아할 것 같아요^^
책과 도서관. 안 좋아할 수가 없죠ㅋㅋ
세계사는 저도 계속 공부해나가고 있어서 부족하지만 관심분야다보니 역사 관련한 책은 한번 더 눈여겨보게 되는 것 같아요. 믿어주신다니 뭔가 더 책임의식이 생기는군요.
즐건 하루 보내세요^^*

mini74 2022-01-07 17: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송나라 문치주의 뭐 이런거나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역사책 속 송나라 거리가 참 화려하던 ㅎㅎ 송나라의 슬픔 궁금하네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1-07 17:55   좋아요 3 | URL
송나라하면 사실 우리 나라와도 거리가 멀지 않지요. 유학이 본격적으로 굳어졌고 남송의 주희 이후 주자학이 성립되며 고려와 조선에도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늘 따뜻한 미니님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미미 2022-01-07 1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워싱턴불렛 재밌겠네요!제스타일ㅋㅋ 이런 주제는 다큐로도 좋더라구요^^* 존버씨도 담아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1-07 19:08   좋아요 2 | URL
네 미미님이 관심가질만한 주제의 책인 듯 해요. 감사합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도시란 유기체와 같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런 관점이 도시사회학의 초기 사상 가운데 하나였다. ‘현대성’을 도시의 외재적 기준으로 삼는 건 문제가 있다. 역사학자가 이런 기준을 추종한다면 어떤 상업도시 또는 공업도시가 흥기할 때 역사학자는 새로운 ‘도시인’의 열정과 옛 엘리트(토지귀족 또는 고위관료)의 혐오 가운데서 어느 한쪽에 쉽게 동조하게 된다.
‘낙후성’의 의미는 복잡하다. 한 도시를 두고 ‘큰 마을’이라고 한다면 궁극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모스크바나 베이징에 온 서유럽인은 그 사회의 구조가 자신들의 사회와는 다르다는 것 때문에 도시경관이 촌스럽다고 경멸하기 쉽다. - P895

조셉 컨비츠의 이론에 따르면 도시계획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개발형 계획’은 도시의 윤곽과 포괄적인 심미적 이미지를 중시한다. ‘관리형 계획’은 도시를 끊임없는 기술적 사회적 관리가 필요한 공간으로 본다. 둘의 공통점은 도시계획 전문가 집단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며 이 집단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리형 도시계획은 19세기 80년대에 유럽과 북아메라카에서 등장했다. 도시 엘리트들은 도시 위생을 위한 초기적 조치가 필요하며, 도시 전체의 환경문제를 상시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술적 문제와 사회적 정책을 체계적 통합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관점이 조정되지 않은 개별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의 논리를 압도했다.
개발형 도시계획은 유럽의 최근 발명품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내려온 방식이었다. 획일적인 공간배치가 개발형 계획의 간단하고도 효과 높은 방식이었다. 소소의 예외를 제외하고 이 방식은 직사각형 세포의 증식분열 논리를 따랐다. - P902

개발형 도시계획이 다시 흐름을 형성했다. 형식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는 도심지역에 대한 외과수술식 개입을 통해 원대한 미학적 구상을 실현하려는 오스망 방식. - P904

수년동안 오스망의 목표와 방식은 논쟁의 중심이었다. 최종적인 결과가 증명하듯 그의 방식은 정확했고 그가 제시한 도시계획ㅇ 이념은 유럽 전체가 모방하는 표본이 되었다. - P905

도시개조에 대한 오스망의 열정은 세 분야에서—기하학 특히 직선에 대한 집착, 실용과 쾌적성을 겸비한 공간에 대한 꿈(마차의 흐름이 완만하고 행인이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가로수길), 파리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려는 야심—구체화되었다.
오스망과 동료들은 도시 전체의 개조를 위해 쏟은 기술적 노력에 못지 않게 미학적 세부 요소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17, 18세기 파리 고전주의의 면모를 현대적 대도시 환경에 훌륭하게 접합시켰다.

도시계획의 두 번째 형식에서는 독일적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일에서는 계획을 중시하는 전통과 지방정부의 강한 권위가 하나로 합쳐졌다.
독일형 도시계획은 도심지의 대규모 개조보다는 외곽의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 본질적으로 독일의 도시계획은 확장에 대비한 계획이었다. - P907

독일식 도시계획은 사회적 공간, 운송체계, 미학적 조화, 사유 부동산의 기부 등 모든 분야가 총체적인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P908

뉴델리에서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와 허버트 베이커는 현지의 계획부서 인원과 인도 노동자 3만 명의 도움을 받아 식민종주국인 영국은 물론 대영제국의 판도 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건하에서 도시의 거대한 미래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냈다.
루티엔스와 베이커의 뉴델리는 여러 양식의 통합체였다. 도시는 현지인들이 수용하는 외국의 건축언어와 인도의 고유한 요소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 P909

근대 이전 시기에 이미 ‘유럽’ ‘중국’ ‘이슬람’ 도시의 구분이 선명성을 잃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도시의 기능적 유사성은 문화적 특수성에 못지않게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런 평가를 극단으로 확대시켜 전 세계의 모든 도시가 ‘융합체’ 또는 ‘혼성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경박한 인식이다. 유럽의 인구이동과 군사적 경제적 확장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경향이 전 세계의 도시로 퍼져나갔지만 이런 현상이 모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부산물은 아니었다. 유럽 이외의 비식민지(아르헨티나, 멕시코, 일본, 오스만제국) 국가의 도시로 눈길을 돌려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미래 도시의 청사진은 대서양권, 지중해권, 태평양권, 유라시아권 등 갈수록 넓은 지역적 맥락으로 그려져 왔다. ‘식민도시’는 더 이상 도시유형을 분류하는 정의로서 유효하지 않고 ‘서방’과 ‘동방’이란 과감한 이분법은 이제 논거를 상실했다. 오직 서방의 시각에서 볼 때만 이런 구분이 가능하다. - P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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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사회 - 말해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관계에 대하여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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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첫 책으로 〈여자들의 사회〉를 읽었다.

정말 오랫만에 에세이였다.
돌아보면 10대 때는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여유가 없었다.
20대에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한두푼 모은 것 가지고 책을 겨우 살 수 있었지만 지적인 욕망이 생겼어도 아는 게 전혀 없어 타인의 시선에 비친 개인과 세상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게 에세이였다.

책의 내용을 읽다 보니 나의 10대와 20대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관계에 많이 서툴렀던 사람이었다.
작가도 여자들 사이의 관계가 어려웠음을 고백했는데 나와 비슷해서 놀랐다.
(오히려 나는 대학 때 이후 남자들과의 관계에 더 익숙한 편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쿨했다.)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는 것이 어려웠고 그 사이에 끼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나는 장난을 잘 받아들이는 타입이 아닌데 누군가가 장난을 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보니 늘 나는 겉돌았다.
사람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웠고
나의 속내를 내비쳤다가 한 두번 호되게 당한 이후로는 그마저도 시도조차 안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가두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 책은 다양한 영화, 드라마, 책에서 표현된 여자들의 세상을 다루고 있다.
과거에 좋아했던 컨텐츠가 나오면
‘아~ 맞아. 내가 이래서 좋아했지.‘ 했다.

〈빨간머리앤〉은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처음엔 애니메이션으로 접했고 이후엔 원작인 책을 읽었다.
마지막으론 넷플릭스에서 보았는데 셋 다 다른 느낌으로 풀어내어 모두 감동이 있었다.
작가는 빨간머리앤을 선택한 이유로 여자들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앤을 선택한 이유는 여성들의 연대와 서사가 있어서였다.
앤은 주체적이고 자기 표현에 스스럼이 없었다.
그녀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나는 늘 주눅들고 소심해서 어릴 적 발표하는 것조차 떨려하던 아이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출신이나 성별, 외모 등에 굴하지 않고 늘 앞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내 인생 영화 중 하나이다.
얼마 전 개봉 20주년으로 상영하기도 했다.
이번 상영 때 보지는 못했고 개봉 당시 본 게 다라 군데 군데 잃어버린 서사가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영화의 스토리가 다시금 떠올라서 반갑고 좋았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여자 친구들의 미묘한 관계를 참 잘 표현했고
그녀들이 일을 하게 되면서 부딪치는 것들을 스스로도 헤쳐 나가기도 하지만 친구로서 기대고 보듬어준다는 점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젊고 풋풋하며 아름다운 청춘이 저절로 그려진다.
거기에 영화음악까지 좋다니.
이 영화가 책의 리스트에 있어서 참 좋았다.

작은 아씨들은 공교롭게도 작년에 북클럽을 하면서 재독한 책이었다.
나는 자매들의 부모님이 참 훌륭하시다라는 생각을 했고 조가 글을 쓰고 책을 내며 결혼을 해서 교육에도 힘쓰는 모습이 멋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자매들의 성격이 다 다를까 생각했다가 아 나도 그랬지 싶어 피식 했다.
나에게도 여동생이 있다. 서로가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잘해주기보다 각자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서로에게서 찾으려 무던히 애썼던 것 같다. 덕분에 질투하고 많이도 싸웠다.
나에게 없는 그녀의 모습들이 어찌나 샘이 나던지 갖고 싶었던 적이 많다.
이제는 예전 일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나름 심각했었다.

나머지 셋 리스트는 못 본것들이다.
여자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시간 내서 하나 둘씩 꺼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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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6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앤 ㅎㅎ 넷플릭스의 앤이 셋 중 제일 센 캐릭터같아요 ~ 빨리 시즌 4가 나와야하는데 소설과는 또 달라서 그 나름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저도 앤을 좋아하는 이유가 기억의 집님과 비슷해요. 고양이를 부탁해도 반가운 *^^*

거리의화가 2022-01-06 20:37   좋아요 2 | URL
넷플릭스 빨간머리앤은 제작사와의 마찰로 만들어지려다 취소되었다더군요. 안타까운데 뒷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여기까지여서 더 좋다는 의견들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반갑죠^^ 좋은 영화에요.

scott 2022-01-06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배두나!
지금은 세계적인 !배우가 될지 그 시절에는 몰랐습니다!!
화가님의 2022년 첫 책!
이 책 커버에 모든 것,말해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관계가 그려져 있네요 ^ㅅ^

거리의화가 2022-01-07 07:04   좋아요 1 | URL
네 출연진 중 배두나는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네요ㅎㅎ 여자들의 관계를 그려낸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에세이인데 좋았어요.
 

현대 이전의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방어시설이 지켜주는 공간이었다. 성벽은 군사적 목적을 상실한 뒤에도 관세구역의 경계로서 기능을 이어갔다. 이 기능까지도 필요없게 된 뒤에는 공간의 상징적 표지로 남았다. 역사적으로 모든 제국은 성벽을 쌓을 수 있는 기술 조직 재정 능력 덕분에 주변의 ‘야만인’을 복종시키고 패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야만인은 성벽을 허물 줄은 알아도 성벽을 쌓을 줄은 몰랐다. 성벽과 성문은 도시와 농촌, 집약과 분산을 가르는 경계였다. - P867

인류가 발명한 사회기반시설 가운데서 그 어떤 것도 도시구조를 파괴하는 데 철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철도의 등장으로 "전통 도시의 내부 구조가 처음으로 열상을 입었다." - P874

사람들이 철도건설에 열정을 보였던 이유는 철도와 역이 도시 내부로 들어오면서 건설에 방대한 양의 토지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도시 내부의 철도와 기차역 공사가 끝났을 무렵에 영국의 철도회사가 소유한 토지는 도시 전체 면적의 5퍼센트에서 9퍼센트 사이였고 추가로 10퍼센트 정도의 토지에 대해 간접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철도는 거대한 뱀처럼 도시 안으로 파고들어와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처음에는 도시 안에 철도와 역을 건설하면 빈민가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현실의 결과는 달랐다. 철거민의 이주대책에 대해서는 누구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 P875

마차는 도시교통에서 중요한 초기의 발명품이었다. 마차 운영에는 특별한 선진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민간 마차주가 상업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노선을 정해진 가격으로 운행하는 교통수단으로서의 마차는 미국인의 발명품이었고 1832년에 처음으로 뉴욕 거리에 나타났다. 그로부터 24년 후에 도시 여객마차가 파리의 거리에 등장했다. 마차 운임은 운영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말이 끄는 버스의 속도는 빨라야 사람의 평균 보행속도의 두 배를 넘지 못했다. 마차는 또한 많은 양의 말똥을 쏟아냈다. - P879

궤도전차의 등장은 도시의 시내 교통에 진정한 의미의 혁명을 가져왔다. 궤도전차의 속도는 마차철도보다 두 배나 빠르면서도 요금은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집 앞에서 전차를 타고 공장으로 출근하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 P883

19세기 말, 인류는 아직 자동차 시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자동차라고 하는 새로운 기술혁신이 처음에는 미국에서, 다음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문자 그대로 도시의 폭발을 불러왔다. - P884

지하철은 철도기술과 하수도 공사를 통해 터득한 터널기술이 결합된 산물이었다. 런던 지하철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도시계획자가 마련한 구상이 아니라 찰스 피어슨이란 개인이 제시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였다.
최초의 지하철에는 창문도 없는 열차를 증기기관차가 앞에서 끌었다. 폐쇄된 터널 안에서 이런 기술은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열차 안의 조명은 석유등이나 가스등이라 매우 어두웠고 열차가 만석이 되면 경사면을 오를 때 기관차가 멈추거나 후퇴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시의 부동산 거물들은 자기 소유의 토지 위나 아래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철도도 그랬지만 지하철도 처음에는 회의론자들의 비판의 대상이었다. - P885

교외화는 도시 주변지역의 발전 속도가 중심지역을 초월하는 과정, 그래서 도심지와 교외지역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방식이 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대략 1815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최종적으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반면에 유럽인은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거주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았다. - P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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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는 20세기 후반에는 공항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라와 나라 사이, 대륙과 대륙 사이 거래와 교류의 핵심 접촉점이었다. 먼 나라를 건너온 여행자가 이국에 도착한 후 첫 번째로 보게 되는 것은 부두의 각종 시설과 항구 연안의 건축물이었으며, 여행자가 처음 만나는 사람은 세관 직원, 부두의 짐꾼이었다. 여객, 화물, 대륙을 넘는 이민의 무리가 몇 배로 늘어나면서 해운업의 중요성은 규모면에서나 문화적 의미에서도 전례 없이 높아졌다. - P826

새로운 항구는 특수한 세계를 형성했다. 곳곳에 화물이 산처럼 쌓였고, 쿨리들이 맨몸으로 짐을 날랐고, 가끔씩 기계도 보였다. 그곳은 상류사회 사람들과 가족을 이끌고 이민하는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내리는 부두와는 단절되어 있었다. 두 부두는 각기 독립된 세계였다. - P832

사회사의 관점에서 볼 때 항구도시(특히 점진적으로 공업화한 항구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시장의 다양성과 유동성이다. 이런 도시에서 노동력 수요의 출처는 매우 다양했다. 선원에서 짐꾼까지, 조선소의 숙련기술자에서부터 경공업 분야의 비숙련 노동자까지, 선장과 1등 항해사에서부터 도항사와 항구공사 기술자까지, 그리고 온갖 종류의 서비스업이 존재했다.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었다. - P834

식민시대 초기의 건축은 아시아의 건축언어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프랑스 식민자들은 호치민에서는 정치적 메시지를 확고하게 전달하기 위해 베트남식 건축 요소를 공개적으로 금지했다. 그들의 의도는 프랑스 문명의 우수성을 베트남 전체에 전파하고 전 세계에 프랑스 문화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코린트 양식, 네오고딕 양식, 초기 바로크 양식 등 각종 건축 양식이 뒤섞였다. 같은 시기에 영국령 인도에서도 역사적 전통을 대하는 태도에 거리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최소한 영국식, 프랑스식, 베네치아식 고딕 양식에다 이른바 ‘인도-사라센’ 양식이란 건축 요소를 결합시키려는 시도는 있었다. - P844

식민도시의 많은 특징은 있다와 없다로 나누는 ‘2진법’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식민도시의 격리 혹은 ‘종족적 분리’를 주목하고 어떤 역사학자들은 다른 문화의 혼합, 융합 또는 이종교배를 주목하여 여러 대형 식민도시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찬양한다.
어느 쪽을 주목하든 둘 사이에는 미세한 여러 층차가 존재한다. 식민도시의 사회적 구성요소는 원칙적으로 식민자와 피식민자 둘로 나뉘지만 그것이 생활의 모든 용역을 빠짐없이 규정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위계와 종족적 위계는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겹친다. 인종차별이 성행하던 시대에도 피부색과 종족적 동질성이 계급적 차이를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했다. - P847

‘식민도시’의 이상형이란 분명한 윤곽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식민지에 있는 도시라고 해서 모두가 전형적인 식민도시는 아니다. 그리고 유사한 기능을 가진, 식민지에 있는 도시와 비식민지에 있는 도시 사이의 차이가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도 안 된다. - P850

19세기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놀랍고도 새로운 형식의 식민지는 통상항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통치자들은 외국인의 무역활동을 특정 지역에 한정하고 엄격하게 감시 통제했다. 중국, 일본, 조선이 1840년부터 잇달아 국제무역을 개방하기 시작한 뒤로 열정적인 자유무역 신봉자라도 시장의 힘만 믿었다가는 이 새로운 경제 공간에 ‘침투’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수한 제도가 필요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한 위협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온갖 종류의 국제적 협의—실제로는 ‘불평등조약’—를 거쳐 서방 상인들에게 일방적인 특권이 주어졌다. 그중 가장 중요한 특권은 아시아 국가의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치외법권이었다. 이 밖에도 서방은 자신의 무역관리 기구를 만들어 소재국 정부가 관세정책을 통해 가하는 통제를 벗어날 수 있었다. - P853

로우(미국의 중국학, 도시사 학자: 1947~)의 훌륭한 분석에 따르면, 1861년 개항 이전의 한커우는 서방 사회학에서 주장하는 정태적이며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정부의 절대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동방도시’가 결코 아니었으며 또한 1861년 이후의 한커우는 절대로 전형적인 ‘식민도시’도 아니었다. 한커우 사회는 외래 인구의 유입을 받아들여 보다 다원적인 도시가 되었으며, 지역 엘리트가 주도하여 사회 저층 집단도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활동 영역을 찾을 수 있는 공동체를 발전시켰다. - P862

식민도시는 제국도시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제국도시는 제국의 통치 중심이자 식민자의 권력의 원천이었ㄷ. 제국도시의 정의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제국도시는 정치권력의 중심이자 정보의 집결지다. 제국과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주변부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생겨난 기생적인 수혜자이며, 또한 지배이념의 상징적 전시장이다. - P864

도시계획과 건축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런던은 제국의 수도라 할 수 없었다. ‘제국적’ 특징은 런던의 다른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항구와 부두에서 일하는 수많은 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노동자, 런던 시내를 관광하는 다양한 피부색의 여행객, 식민지에서 귀국한 관리들의 이국정취가 넘치는 생활방식, 음악당에서 연주되는 해외 작곡가들의 작품이 런던의 진정한 제국적 위상을 반영했다. 제국의 핵심 실력이 최대한 빛을 발한 곳은 밤거리를 밝혀주는 가스등이었다. 런던은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었다. - P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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