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에서는 도시란 유기체와 같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런 관점이 도시사회학의 초기 사상 가운데 하나였다. ‘현대성’을 도시의 외재적 기준으로 삼는 건 문제가 있다. 역사학자가 이런 기준을 추종한다면 어떤 상업도시 또는 공업도시가 흥기할 때 역사학자는 새로운 ‘도시인’의 열정과 옛 엘리트(토지귀족 또는 고위관료)의 혐오 가운데서 어느 한쪽에 쉽게 동조하게 된다.
‘낙후성’의 의미는 복잡하다. 한 도시를 두고 ‘큰 마을’이라고 한다면 궁극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모스크바나 베이징에 온 서유럽인은 그 사회의 구조가 자신들의 사회와는 다르다는 것 때문에 도시경관이 촌스럽다고 경멸하기 쉽다. - P895

조셉 컨비츠의 이론에 따르면 도시계획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개발형 계획’은 도시의 윤곽과 포괄적인 심미적 이미지를 중시한다. ‘관리형 계획’은 도시를 끊임없는 기술적 사회적 관리가 필요한 공간으로 본다. 둘의 공통점은 도시계획 전문가 집단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며 이 집단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리형 도시계획은 19세기 80년대에 유럽과 북아메라카에서 등장했다. 도시 엘리트들은 도시 위생을 위한 초기적 조치가 필요하며, 도시 전체의 환경문제를 상시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술적 문제와 사회적 정책을 체계적 통합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관점이 조정되지 않은 개별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의 논리를 압도했다.
개발형 도시계획은 유럽의 최근 발명품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내려온 방식이었다. 획일적인 공간배치가 개발형 계획의 간단하고도 효과 높은 방식이었다. 소소의 예외를 제외하고 이 방식은 직사각형 세포의 증식분열 논리를 따랐다. - P902

개발형 도시계획이 다시 흐름을 형성했다. 형식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는 도심지역에 대한 외과수술식 개입을 통해 원대한 미학적 구상을 실현하려는 오스망 방식. - P904

수년동안 오스망의 목표와 방식은 논쟁의 중심이었다. 최종적인 결과가 증명하듯 그의 방식은 정확했고 그가 제시한 도시계획ㅇ 이념은 유럽 전체가 모방하는 표본이 되었다. - P905

도시개조에 대한 오스망의 열정은 세 분야에서—기하학 특히 직선에 대한 집착, 실용과 쾌적성을 겸비한 공간에 대한 꿈(마차의 흐름이 완만하고 행인이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가로수길), 파리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려는 야심—구체화되었다.
오스망과 동료들은 도시 전체의 개조를 위해 쏟은 기술적 노력에 못지 않게 미학적 세부 요소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17, 18세기 파리 고전주의의 면모를 현대적 대도시 환경에 훌륭하게 접합시켰다.

도시계획의 두 번째 형식에서는 독일적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일에서는 계획을 중시하는 전통과 지방정부의 강한 권위가 하나로 합쳐졌다.
독일형 도시계획은 도심지의 대규모 개조보다는 외곽의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 본질적으로 독일의 도시계획은 확장에 대비한 계획이었다. - P907

독일식 도시계획은 사회적 공간, 운송체계, 미학적 조화, 사유 부동산의 기부 등 모든 분야가 총체적인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P908

뉴델리에서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와 허버트 베이커는 현지의 계획부서 인원과 인도 노동자 3만 명의 도움을 받아 식민종주국인 영국은 물론 대영제국의 판도 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건하에서 도시의 거대한 미래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냈다.
루티엔스와 베이커의 뉴델리는 여러 양식의 통합체였다. 도시는 현지인들이 수용하는 외국의 건축언어와 인도의 고유한 요소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 P909

근대 이전 시기에 이미 ‘유럽’ ‘중국’ ‘이슬람’ 도시의 구분이 선명성을 잃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도시의 기능적 유사성은 문화적 특수성에 못지않게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런 평가를 극단으로 확대시켜 전 세계의 모든 도시가 ‘융합체’ 또는 ‘혼성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경박한 인식이다. 유럽의 인구이동과 군사적 경제적 확장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경향이 전 세계의 도시로 퍼져나갔지만 이런 현상이 모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부산물은 아니었다. 유럽 이외의 비식민지(아르헨티나, 멕시코, 일본, 오스만제국) 국가의 도시로 눈길을 돌려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미래 도시의 청사진은 대서양권, 지중해권, 태평양권, 유라시아권 등 갈수록 넓은 지역적 맥락으로 그려져 왔다. ‘식민도시’는 더 이상 도시유형을 분류하는 정의로서 유효하지 않고 ‘서방’과 ‘동방’이란 과감한 이분법은 이제 논거를 상실했다. 오직 서방의 시각에서 볼 때만 이런 구분이 가능하다. - P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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