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이전의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방어시설이 지켜주는 공간이었다. 성벽은 군사적 목적을 상실한 뒤에도 관세구역의 경계로서 기능을 이어갔다. 이 기능까지도 필요없게 된 뒤에는 공간의 상징적 표지로 남았다. 역사적으로 모든 제국은 성벽을 쌓을 수 있는 기술 조직 재정 능력 덕분에 주변의 ‘야만인’을 복종시키고 패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야만인은 성벽을 허물 줄은 알아도 성벽을 쌓을 줄은 몰랐다. 성벽과 성문은 도시와 농촌, 집약과 분산을 가르는 경계였다. - P867

인류가 발명한 사회기반시설 가운데서 그 어떤 것도 도시구조를 파괴하는 데 철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철도의 등장으로 "전통 도시의 내부 구조가 처음으로 열상을 입었다." - P874

사람들이 철도건설에 열정을 보였던 이유는 철도와 역이 도시 내부로 들어오면서 건설에 방대한 양의 토지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도시 내부의 철도와 기차역 공사가 끝났을 무렵에 영국의 철도회사가 소유한 토지는 도시 전체 면적의 5퍼센트에서 9퍼센트 사이였고 추가로 10퍼센트 정도의 토지에 대해 간접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철도는 거대한 뱀처럼 도시 안으로 파고들어와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처음에는 도시 안에 철도와 역을 건설하면 빈민가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현실의 결과는 달랐다. 철거민의 이주대책에 대해서는 누구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 P875

마차는 도시교통에서 중요한 초기의 발명품이었다. 마차 운영에는 특별한 선진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민간 마차주가 상업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노선을 정해진 가격으로 운행하는 교통수단으로서의 마차는 미국인의 발명품이었고 1832년에 처음으로 뉴욕 거리에 나타났다. 그로부터 24년 후에 도시 여객마차가 파리의 거리에 등장했다. 마차 운임은 운영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말이 끄는 버스의 속도는 빨라야 사람의 평균 보행속도의 두 배를 넘지 못했다. 마차는 또한 많은 양의 말똥을 쏟아냈다. - P879

궤도전차의 등장은 도시의 시내 교통에 진정한 의미의 혁명을 가져왔다. 궤도전차의 속도는 마차철도보다 두 배나 빠르면서도 요금은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집 앞에서 전차를 타고 공장으로 출근하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 P883

19세기 말, 인류는 아직 자동차 시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자동차라고 하는 새로운 기술혁신이 처음에는 미국에서, 다음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문자 그대로 도시의 폭발을 불러왔다. - P884

지하철은 철도기술과 하수도 공사를 통해 터득한 터널기술이 결합된 산물이었다. 런던 지하철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도시계획자가 마련한 구상이 아니라 찰스 피어슨이란 개인이 제시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였다.
최초의 지하철에는 창문도 없는 열차를 증기기관차가 앞에서 끌었다. 폐쇄된 터널 안에서 이런 기술은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열차 안의 조명은 석유등이나 가스등이라 매우 어두웠고 열차가 만석이 되면 경사면을 오를 때 기관차가 멈추거나 후퇴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시의 부동산 거물들은 자기 소유의 토지 위나 아래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철도도 그랬지만 지하철도 처음에는 회의론자들의 비판의 대상이었다. - P885

교외화는 도시 주변지역의 발전 속도가 중심지역을 초월하는 과정, 그래서 도심지와 교외지역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방식이 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대략 1815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최종적으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반면에 유럽인은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거주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았다. - P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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