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 조선 천재 1000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재구성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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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에필로그에 보면

역사란 많은 거짓말 중에서 진실과 가장 비슷한 거짓말을 골라내는 기술이다’(루소)

라는 문구가 있는데, 정여립 모반 사건을 가장 잘 관통하는 문구로 여겨진다.

 

작품을 읽은 지 거의 한 달여가 되어 가지만 작품을 정리하기가 정말 난해하다.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작품을 정리한다고 해도 글을 읽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글쓴이를 특정

계파나 사상에 전도된 인물로 평가해 버리는 순간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썼다고 믿는 내가 받게 

될 상처의 깊이를 알기 때문에 항상 책을 읽고 즐겨 해 왔던 작품 정리를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작품을 두 번이나 완독하며 갖게 된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기록해 놓는 것도, 나의 그런 글을 읽고 비난하는 이들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부 올바른

독서의 한 방편이라는 생각에 정리를 해 보았다.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하인리히 법칙처럼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수많은 자잘한

사건들이 씨줄날줄처럼 얽혀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다.

지금도 우리의 역사학계에 여러 논쟁 중인 역사적 사실이 한 둘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도 그런 범주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본 작품 역시 그런 범주 - 개인적인 관심도에 따라 여러 사건을 들 수 있겠으나 에 속하는

사건이라 생각하며, 여기에 그런 애매모호한 사건 한가지를 더 들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도세자

죽음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내용에 관한 것일 것이다

내가 두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고 지금도 틈만 나면 관련되는 서적을 구매해 읽고 있는 이유는

역사서를 읽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두 사건의 이면에 감추어진 내용이 내가 학창 시절 배웠고

알고 있는 내용과 달라도 너무나 달라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여립 역모사건의 경우는 작품의 에필로그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당초 선조 실록에서는

언급이 없었던 사건이 서인이 중심이 되어 기록된 선조수정실록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으로

그런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역모사건이 왜 이렇게 둘쭉날쭉으로 취급되고 있는지가 내 궁금증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해당 사건이 실제 있었다는 점이고, 그 파장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점을 전제로

놓고 해당 사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의구심에 대한 몇가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정여립 사건을 접하면 접할수록 드는 의구심은

의문 1. 정여립은 여러 기성세대로부터 조정에 천거되는 큰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희망하는 공직(이조전랑)에서 좌천되자 스승과 조정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고 하는데

          단순히 그 내용이 사실일까?(작품 P 81)

의문 2. 정여립의 모반 계획을 완성하기 전에 왜 학식과 덕망이 출중했었을 당시의 권력자들은

          사전에 그런 가식을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하였던 것일까?

          * 이 의문점은 오늘날도 문제이기도 하다.

의문 3. 정여립이 모반을 획책하며 조직했다던 '대동계'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이며 진정 모반을

          위한 결사대였을까?

의문 4. 본 사건이 왜 선조 실록에는 없다가 서인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선조수정실록에는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등 같은 수준 낮은 의문이지만 나는 작품을 읽는 내내 이 의문점으로 인해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였음을 고백한다.

 

선조는 재위 41년의 태반을 당쟁과 미증유의 전란에 시달린 시기를 지나왔다.

임진왜란 발발 3년 전 발생해, 1천 여 명의 선비의 목숨을 앗아간 기축옥사의 단초가 된

정여립 사건비밀 장계로부터 시작되는데,

선조 22(1589) 만만치 않은 관직을 역임하다 전주로 낙향한 정여립이 왕이 되기 위해 일을 

꾸미고 있다는 장계를 받게 되는데, 이를 보고 받은 선조는 금부도사를 파견해 주도자인 

정여립과 그 일당을 잡아오도록 명하지만 그들은 자결해 버리고 그 시신만 확보하는데 그치고

세부 사항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자 이를 철저히 규명한다는 미명아래 동인의 영수인 영의정

정언신에게 책임을 맡기지만 증거라고는 급보외에는 없기에 조사가 답보에 빠지자 정언신을

대신해 재야에 있던 서인의 핵심정철을 우의정에 임명하며 조사를 맡기자 비로소 반역이

기정 사실로 전환되며 기축옥사는 완성된다.

 

참고로 동인의 영수 정언신은 조선 역사에 드물게 전략과 군사에 뛰어난 인물로 인재를 알아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고 한다.

예로서 이순신 장군을 등용하고 기회를 주었으며 장군이 수형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적극

변호하여 백의종군으로 감형될 수 있게 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의 김시민 장군, 이억기 장군을

위시한 많은 인재를 발굴했다고 한다.

 

작품을 접하면서 내가 위에서 제시한 의구심 못지 않게 상당히 나를 힘들게 했었던 부분은

정여립에 대한 인물평이 상당히 상반되는 내용과 주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해당 인물의 정확한

실체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정여립이 누구에게 학문을 배웠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며 기축옥사 당시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최부의 제자들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보아 최부의 후학이며 서경덕의

문인인 이중호(이발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하는 점이다.

 

정여립이 조정에 나가게 된 배경을 다루는 부분을 살펴보면,


선조가 영중추부사 노수신에게 우수인재(선비)를 추천하라는 명을 내려 김우옹, 이발, 백유양,

정여립(추천 되었던 해당 인물들은 추후 기축옥사 당시 전부 큰 피해를 입게 됨)을 추천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냥 과거에 급제해 두각을 나타내거나, 어느 명망 있는 가문의 후손이라는 잇점을

안고 기득권층에 발을 담근 것이 아닌 학식과 덕망이 어느 정도 겸비된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한 때 선조를 가르친 적이 있는 한윤명역시 정여립을 당대에 가장 빼어난 유학자라

일컬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발이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굳이 들라고 한다면

당초 정려립은 전주 출신으로 당시 호남 출신들이 대부분 동인이었음에도 서인인 이이의

문하에 들어가 나는 서인 당을 찾아온 것이 아니고 이이 선생님을 찾아온 것이라 일갈하며

이이 밑에서 활동하며 이이의 추천으로 여러 중요 보직에 보임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와 권력자들의 행태를 보았을 때 그런 기개를 높이 살만은 하다고 여겨지나

그런 기개 뒤에 숨겨진 어떤 야욕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서인들이 주도된 선조수정실록을 보면 그를 아주 다른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이이 선생이 죽은 후 정여립이 서인을 버리고 동인을 선택한 이유가

서인 측에서 이조전랑으로 천거된 정여립을 이이가 한사코 막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면서

이이는 겉과는 달리 속으로는 정여립의 과격성을 견제했던 듯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내가 위에서 언급한 정여립의 야욕의 그림자가 이이 밑에서 드러났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며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말 그대로 정여립이라는 인물의 인간성이 저급한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조정에 나간 인물의 인간성을 주변인들에게 잠시 잠깐은 속일 수 있어도

긴 시간 동안은 숨길 수 없다는 점을 놓고 보있을 때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웬지 앞 뒤가 안 맞는듯한 느낌 즉, 결론을 만들어 놓고 정여립이라는 인물을 그쪽으로 몰고간

느낌이 든 인물평이라 생각되게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작품 전반에 걸쳐 혹은 부분적으로 정여립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겠지만 뜬금없이 선조수정실록등을 이야기하면서

이이의 속마음을 전하면서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이런 사람이다라고 기술하는 것은 내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더욱 웃긴 이야기는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물이라고는 하나 전주 부윤으로 정여립을

가까이할 기회가 많았던 심의겸은 윤두수에게

정여립은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 일이라도 할 만한 위인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어떤 사례를 갖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예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런 이유로 정여립이라는 인물이 저급하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문신 이경중 역시

만일 그를 쓰면 반드시 조정을 어지럽히고 선비들에게 욕을 끼치게 될 것이다

라는 말로 정여립을 평하고 있는데 이 역시 특정 근거 없이 언급한 내용으로 위와 같이 나는

정여립에 대한 역사적 인물들의 인물 평가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정여립이 그렇게 평가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선조의 눈 밖에 난 것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선조가 정여립이라는 인물을 나쁜 인물로 찍자, 주변인들이 아부하느라 관련 인물의 과거

행적을 들고파서 위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여립이 선조의 눈에 난 결정적인 사건은 아마도 선조 17사직을 하고 조정을 떠났던

정여립이 1년 후 복귀하며 올린 글에서

박순은 간사한 무리들의 괴수이고 이이는 나라를 그르친 소인이며 성혼은 간사한 무리들을

편들어 상소를 올려 임금을 기만했습니다...(중략)’

라고 상소를 올리자 선조는 이이가 살아 있을 때 스승으로 섬기던 정여립이 스승인 이이를

비난하자 이를 크게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라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는데 나 역시 야기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런 정여립에 대해 소설가 이병주 선생은 정여립이 이이를 비방하고 나선 이유를

혼자 점잖은 태도, 자신만이 천하의 도리를 알고 있는 척하는 태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독선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고, 그 위선의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을 것

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정여립을 편들고 있지만 이런 해석은 너무도 정여립 편에 선 해석이고

변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여립은 이이와 성혼을 비판함으로써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던 것이다.

 

의주 목사 서익의 상소로 인해 정여립은 완전 궁지에 몰리며 기축옥사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선조는 상소를 보니 그의 말이 허망해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말하는 현인이란 이이와 성혼인데

이 사람을 공격하는 자들은 반드시 간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정여립을 궁지로 내몬다.

선조의 그런 말을 들은 정여립은 선조 아래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인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정여립, 그는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었던 데는 세간의 비난도 있었지만 선조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던 감정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인측에서는 정여립을 어떻게 하든 조정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려고

노력하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 특히 정여립이 기축옥사가 일어나던 선조 22황해도사

희망하지만 선조는 정여립이 오만방자한 사람이라고 하여 동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고 이 건은

훗날 황해도는 명종 때 일어난 임꺽정의 난이 일어난 곳으로 당시 세간에 떠돌던 미륵신앙과

어우러지면서 또 정여립이 조직한 대동계로 인해 서인들로부터 역모를 준비했다는 의심을 받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참고로 대동계(大同契)’에 대해 알아보면, 대동계는 본래 주나라 시대에 어질고 재능 있는

인재를 등용할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향사례(鄕射禮)‘를 지역사회에 구현한 것으로

대동이란 일반적으로 대동소이‘, ’대동단결‘, ’태평성세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이 가운데 태평성세라는 의미의 뿌리는 예기에 처음 등장하는 이상사회로서의 대동으로

이때의 동()’은 사람들이 장막 안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로 ()’

()’를 뜻하는 의미로 대동사회는 천하위공(天下爲公) , 천하는 가문의 사물(私物)

아니고 만민의 공물(公物)이라는 의미이다.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해 운영하며 유교의 이단자인 순자에 대해 자주 말하면서

인간의 본성은 요 임금과 순 임금 그리고 포악한 사람과 큰 도둑이 다르지 않으며 시정잡배도

배우면 우 임금이 될 수 있다고 공언하며 봉건사회의 강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천하는 만인의

것이라는 사상을 내세우게 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정여립과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를 확인해 보면,


- ‘기축옥사의 최고 사령관이 정철이었다면, 배후에서 조정한 인물은 송익필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라고 본다. 기축옥사 전개 과정에서 큰 영향을 준 양천회의 상소나 정여립에

불리한 여론 역시 대부분 송익필에게서 나왔으며, 송익필은 정여립을 함정에 몰아넣을

심산으로 승려 의엄을 시켜 길삼봉과 정여립을 결부시킨 정감록의 참설을 민간에 유포했고

해서지방의 백성들을 사주해 정여립에게 동조한 것으로 알리바이를 조작했다고 한다.

 

- ‘연루자를 고발하면 표창하겠다는 명을 조선 팔도에 내리자 기축옥사는 확대되어 나갔다.

정여립과 편지를 주고받았거나 옷소매라도 스친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은 결코 피해 나갈 수

없었는데 가장 우려한 쪽은 정여립이 몸을 담았던 동인이었다.

 

- 기축옥사와 관련된 인물, ‘이산해조헌과 정개청의 가문 고성 정씨와 정철의 가문 연일

정씨그리고 이발의 가문 광산 이씨사이에는 서로 결혼하지 않는 풍습이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기축옥사와 관련된 사항이지만 작품에서는 이를 이야기해 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실하여 작품에 언급된 이야기만으론 전체를 알 수 없기에 여기서 취급을 제한하였다.

 

기축옥사 당시 성혼이 올린 상소문에 이런 글이 있다.(P278)

치도는 할 말이 따로 없다. 임금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선을 좋아해야 한다. 말이 마음에 거슬리

면 반드시 정도에 의거해 따져보고, 말이 마음에 들면 반드시 정도가 아닌 것에 의거해 따져

보아야 한다. 그것 뿐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위정자들은 해당 글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예전에도

이런 작품류를 읽으며 왜 선거철만 되면 우리 역사에서 모반을 꿈꾸었고, 개혁을 주도했다

실패한 인물둘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한 적이

있다. 왜일까?

선거는 개혁의 단초이고 개혁을 통해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위정자들을 보면 왜 조선시대의 식자층처럼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거나 혹은 권력자의 뜻과 일치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야인으로 돌아서는 의연한 자세가 없는지가 아쉬울 따름이다.

 

자신을 임명해 준 리더에 대해 원칙과 명분도 없이 무조건 쓴소리만 하는 것이 진정한 참모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가 리더와 정책적인 의견 충돌로 자신의 자리를 내

던졌다 라는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런 사람이 아예 없기 때문이 아닐까?

당 태종이 책사인 이사를 두고

나는 이사 때문에 몸이 말라가지만 백성들은 편안해 지고 있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리더와 책사(참모) 모두가 맘 편했던 세상은 임진왜란 당시 끝없이 부하의 허물과 잘못을 감싸고

돌았던 선조원균뿐이었음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답답한 작금의 세태다.

 

작품의 에필로그를 들추다 보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혁명이 발생하는(라스웰, P332)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첫째 지식인을 뒷받침하는 정도가 약할 때

둘째, 분배 정책에 실패했을 때

셋째, 지배 세력이 무능할 때

넷째, 지식인이 폭력을 억제할 능력을 상실했을 때

다섯, 반 지식인의 조직이 강할 때

지금의 정부와 정권은 위에서 언급되고 있는 조건 중 몇 가지가 충족되고 있는지를 처절히

스스로 돌아보기를 바란다.

 

추신) 정철, 송익필.....그들은 한 때 정권의 실세였고, 넘사벽이었던 주역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한 짓만큼 되돌려 받고 역사에서 아주 저급하게 퇴출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히, 송익필 선생의 말로는 나는 선비로소이다’(임상혁, 역사비평)라는 작품에 잘 나와 

        있으니 참조하시기..........

        하여간 세상 만사는 자신의 행한 결과가 자신에게가 아니더라도 그 결과는 후손에게라도 

        반드시 뿌린만큼 거두게 되어 있음. 후손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음. 

        자신이 하지도 않은 조상의 악행으로 인해 후손인 자신이 손해를 보니...그래도 어쩔 수 

        없음. 그러니 어느 후손의 조상이 될 수 있는 나나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나 매사에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옳지 않은 일을 하며 살면 안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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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흑역사 -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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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8


인간은 대체적으로 두 살 반쯤 되었을 때 처음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왜 거짓말을 할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처음 만난 사람과 10분 대화하는 동안 거짓말을 평균 세 번 한다고

하며, 또 다른 연구에서는 평균적으로 거짓말을 하루 한 번 이상 한다고 한다.

작품을 읽고 본질적인 질문에 자문자답을 해 보지만 철학적 깊이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별로 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딱히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작품은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한한 삶을 살면서 부지불식간

마주하게 되는 생명과 관계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거나 개인적 욕심이 증폭되면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간의 뇌와 사회가 가진 여러 가지 특성 때문에 거짓말은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거짓과 유사한 범주에 속하는 기만은 자연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점차 발전한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인간은 기나긴 역사를 통틀어 그저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을 날조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고, ‘세상그 자체에 대해서도 허튼 소리를 잘 지어내는 동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품에서 제시하는 허위 사실이 퍼져 나가고 굳어지는 이치를 크게 7가지로 보고 있는데,

  1)     노력장벽        2) 정보공백     3) 개소리 순환구조    4)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

  5)     자존심의 덫     6) 무관심       7) 상상력 부족

  *  상기 내용과 관련되는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은 책을 구매해 보시기를

작품을 읽다 재미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자민 플랭클린에 대한

이야기로, 저자는 그를 84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어이없고 황당한 농간을 꾸준히 저지르며

즐긴 한마디로 진짜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 도발꾼이었다라고 표현할 정도의

농간꾼이었다고 한다.

그의 활약상에 관한 이야기는 작품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작품에서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고 요즘 우리 사회를 비롯한 전 지구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가짜 뉴스커피와 신문과 함께 지난 17세기부터 기득권층의 암적 요소로 여겼다고 한다.

이유는 바로 개소리 순환구조그릇된 정보가 한번 어느 신문에 실리면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가 신속히 반박하지 않는 한 나머지 신문에도 모두 실리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에 항시

골치 아픈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패러디를 만들어 놓으면 진짜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아무리 소수일 망정 꼭 있었다는

점이었고, 가짜 뉴스가 문제인 진짜 이유는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문제를 떠나

가짜 뉴스 자체를 믿는다는 점이 아니라 진실한 진짜 뉴스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는 작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짜뉴스의 횡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1887년 창간된 더 라이터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윌리엄 힐스라는 인간은 신문이란 매체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신문기자는 일을 잘하려면 훌륭하게 꾸며낼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는 점은 작금의 사회에서 기자들이 왜 기레기라 불리우는지, 언론을 믿지 못하는 사회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역사까지는 아니어도 최근에 벌어진 근세사만 살짝 들춰보아도 알 수 있는 거짓말에 관한

사건을 작품에서 재미난 사례로 언급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거짓말이 한 두개가 아닌 것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태생적으로 바른 소리를 하면 입이 삐뚤어지는지 일상화가 되어 버린 정치인들의 거짓말,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밝혀지고 있는 여러 범인 은폐조작 및 강요사건, 치매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우기는 성희롱 사건, 선거철마다 이용되어 온 간첩단 사건, 다단계의 거두 조X,

X도를 필두로 라X사건 등 서민들 피눈물 빨아먹고 나자빠진 펀드 사기사건, 자동차 사고가 난

딸을 위해 법인 명의의 명품차를 제공하였다는 어느 철면피 아버지의 횡령사건, 광우병 걸린

소고기 먹으면 앉은뱅이 된다는 어느 유명인의 이야기, 오로지 회사만을 위해 일해온 종업원들을

상대로 펼치는 기업인들의 내로남불 수준의 거짓말 등은 진실의 흑역사가 아직도 살아 숨쉬며

우리를 옹죄고 있음을 확인하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거짓의 흑역사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이 그런 정보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개개인이 정말 똑똑해져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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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혼돈의 시대, 당신을 위한 정치 인문학
육덕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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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서양 속담에

남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주일은 걸어 다녀보아야 한다

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당사자보다 나은 것도 없으면서,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을 두고 장기판 훈수 두듯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여러 인간들의 허튼 

소리에 대해 경각심을 알려주기 위해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작금 돌아가는 우리 국가 경제와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구두'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즉,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도 뭐가 문제인지를 내 신발을 신고 있는 상태

에서도 불편함을 느끼기에 그런 이야기가 피부와 닿는 교훈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촛불 정국아래서 호기롭게 시작한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투명할 것이라는 기대는 연일 계속

되는 적폐청산, 이제 웬만하면 거둘 때도 된 각종의 XX사건 진상 위원회폭등하는 서민 주택 값

꽃다운 청춘을 짓밟힌 애절한 할머니들의 성금으로 자기들의 사욕을 채운 시민단체들과 어느 

폴리페서의 일탈에 대해 눈을 감는 모습에서 대다수의 서민들은 새롭게 백마 타고 올 철인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말로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나온 진실의 흑역사(톰 필립스, 윌북)이라는 작품의 서문에 이런 글이 게재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래 869일 동안 거짓이나 오해를 유발하는 주장을 10,796건 했고 

  201897일에는 고작 120분만에 거짓이나 오해를 유발하는 주장을 125건 했다

고 한다.

비록 얼마 남지 않은 정권의 시간이지만 나는 후세의 사학자들이나 정치 평론가들이 우리의 

지도자를 그런 시각으로 평가하지 않기를 정말 기원해 본다.

작품이 이야기하고 있는 4개의 큰 줄기가 있다.

그 언급된 줄기는 비록 코로나라는 이상한 놈의 뒤에 숨어 있지만 정치를 조금 알고현실 경제

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주객이 전도되어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훗날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며 평가할 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든 

내용과 분석을 

‘3류 정치 평론가에 의해 분석된 치졸한 편협주의로 똘똘 뭉쳐진 저급한 넋두리

였다는 평가가 나오게 될 지

청나라의 침공으로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남한산성에서 인조대왕에게 피를 토하며 구국의 길을 

 외치던 최명길 선생의 부활

을 상징하는 내용과 버금가는 내용이었다고 평가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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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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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작품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과 생각은

'내가 작품과 같이 자연이 어우러진 길을 오롯이 혼자 걸었었던 적이 있었을까?'

였다.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 대도시에서 성장기를 보낸 도시인들에게는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이 꿈만 같은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도 부러운 내용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한국의 성인 남자라면 아마도 나이가 들어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걷는 수단으로 걷기운동에 몰입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군대에서 경험한 천리행군, 100킬로 행군을 통해 걷기를 

혹독히 체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곳곳에 도보 여행자들을 위한 순례길이 많이 생겨나 좋다고는 하나 작품과

같이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그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장소 개발이

아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너무도 부러운 작품이었다.

어찌되었던 작품은 단순한 과 관련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있지 않고 을 매개로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가족 이야기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점은 우리 모두 잊고 

살아왔던 것을 상기시켜 주는 작품이면서 내면적 성찰을 촉발시키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통해 나를, 내가 살아온 길을,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나만의 문구들을 정리해 보면

 1) 길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가게 하기도 한다.

 2) 내가 어렸을 때, 길은 내 삶의 전반을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공통된 매락이었다.

    걷기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부분이었다. 걷지 않고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길은 모든 곳에 있었다

 3) 개울은 힘들이지 않고 지형을 헤치며 나아간다 그리고 똑바로 일직선을 그리며 흐르지

    않는다. 또한 가장 짧은 거리나 빠른 길을 골라 가지도 않는다

 4) 모든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선택이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5) 길을 잃는다는 것은 현재 온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6) 걷는 것은 인간에 필요한 삶의 일부다

 7)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말 세상은 온통 무대다라는 말은 배역보다는 우리가 그 배역을

    연기하는 장소를 더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8) 천천히 걷는 것은 일종의 절제된 기술이다.

 9) 길은 자유와 모험의 상징이다.

10) 우리는 길을 어딘가로, 미래를 향해, 우리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경로로 생각한다

     그러나 길은 뒤쪽, 우리가 그동안 지나온 시간과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문구들이라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독서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큰 교훈을 던져주는 문제적 작품은 아니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은 저자가 뇌전증이라는 건강상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걷기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 역시 나이가 나이인지라 1년 전부터 외국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면서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헬스클럽도 다니며 뛰기도 하고 근력운동에도 매진하였지만 최종적으로는

걷기 운동을 선택하고 그 운동에 몰입하고 있다.

 

타지에서 단순히 체력 증진을 위해 선택한 운동은 내가 평소에 즐겨하는 뛰기 운동이었는데

오로지 무작정 뛰는 유산소 운동만이 진정한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우연히 새벽에 마주한 현지인들의 걷기 운동의 모습을 보면서 저게 운동이 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1년 여의 시간을 그들을 따라 걷다 보니 걷기의 매력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걷기 운동의 효과를 확인하고는 그 매력에 흠뻑도취 되어 걷기 

운동의 매력에 빠져 있는 상태다.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새벽 걷기 운동의 잇점이 하루의 시작을 차분히 생각하며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뛸 때 자신의 몸에 집중하지만 걷기 운동은 뛸 때는 몰랐던 더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간과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개인적 성찰의 시간을 더 맣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걸으면서 찬찬히 어제의 일을 반성하고 되짚어 보면서 오늘 해야 할 일 중에서 어제와 같은 

실수 내지는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나 스스로도 상당히 놀라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된만큼 주변인들에게 걷기 운동의 효과를 널리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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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기술 -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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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나온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작품의 제목만 갖고 내용을 예측해 보았을 때에는 단순히 개인의 절제력을 함양해 줄 수 있는

누구나 쉽게 알고 있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해당

작품을 열어 보았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처음 가졌던 생각과는 다른 내용과 전개가 나를

당혹하게 하였지만 필자가 주장하시는 삶의 연륜에서 묻어져 나오는 여러 내용에 동의하면서

큰 틀에서의 절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 시간이었고 한 참 작품을 읽다 보면

내가 무슨 철학 작품을 골랐나?’하는 의구심이 들어 책 표지를 펼쳐본 게 아마도 서 너 번은

될 정도로 쉽게 읽혀질 작품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저자께서 주장하시는 여러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싫으신 분들은 소제목으로 붙여진

기꺼이 뒤처지고 더 많이 내려놓을 용기

선택지 줄이기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기뻐하고 감사하기

단순하게 살기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

라는 제목만 가슴에 새기며 살아도 해당 작품을 섭렵한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읽는 본인도 연륜이 쌓여가면서 위의 소제목처럼 나의 일과 삶을 바라보는 자세와 생활방식이

작품의 주장처럼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 나도 절제의 달인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크게

든 시간이었다.

 

 

작품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에게 다가온 몇 문구를 먼저 제시하면

1) 인간이 살면서 모든 것을 다 해봐야 한다는 유혹은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문화의 본질적 요소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불필요한 욕망을 절제하고 기꺼이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단 한 가지에 마음을 쓸 줄 알아야 한다.(P 93)

 

2) 절제의 기술은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내 앞에 놓인 

   무언가를 기쁘게 내려놓는 마음이다.(P170)

 

3) 오늘날 사회는 우리 앞에 무수히 많은 선택지를 늘어놓고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떠넘긴다. 결과가 잘못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선택을 한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필요하지도 않은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헤매지

   말고 불필요한 선택지는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P183)

 

4) 절제의 기술을 배우는 일은 단지 공허한 금욕주의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충분히 행복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P200) 


저자는 총 5가지 항목으로 절제술을 세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각 항목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항을 정리해 보면

 

1. 선택지 줄이기

-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 개념의 자기 절제만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다

  절제 능력이란 오롯이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상황과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 절제의 기술은 실존적이며 윤리적으로 중요한 상황에서 의미를 가진다.

- 신이여,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온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스토아 철학의 요지)

- 절제는 계속해서 쾌락 쳇바퀴를 달리는 행위, 새로운 쾌락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행동을 

  멈추는데 쓰여야 한다.

- ‘얀테의 법칙이란 내가 대체 뭐라고?”라는 태도를 바탕으로 하며, 성공에만 목매는 일은 다소 

  천박하다고 여기는 생각을 말한다.

   ---> 심리학에서는 이런 전략을 방어적 비관주의라 부르며 고난과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비

         하기 위해 미리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

- 우리는 삶에서 선택할 것이 많은 걸 대체로 좋아하지만, 거기에는 부작용도 있다.

- 행복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타인들에게 올바르게

  매여 있는 상태다.

-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방법

  1) 선택의 자유를 어떤 방법으로든 자발적으로 구속한다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2) 가장 좋은 것이 아닌 그럭저럭 괜찮은 것을 찾는다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3)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4) 우리가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5)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덜 기울인다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결국 최대의 만족을 얻으려는 생각이 삶을 망친다는 것이다.

 

2.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 욕심을 부려 전부 다 가지길 원할수록 삶은 장황해지고 너저분해질 뿐이다.

- 마음의 순결함은 단 한 가지만 바라는 것으로 오직 ()’을 바라야만 한다(키르케고르)

- 실존적 관점에서 한 가지만 바라려면 다른 것들은 기꺼이 포기하고 내려놓는 절제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 원하는 것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원하는 만큼 하는 것이 성공이다.

                                                                                                   (토니 로빈스)

- 세상에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도덕이나 종교가 우리에게

  거듭해 가르치는 교훈이다.

- 논쟁에서 이기는 일보다 진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해서 생기는 실망보다 욕망의 결핍이 더 나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옳은 것을 이루려 욕망하는 일이 더더욱 중요해 진다

행복한 삶이란 내면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다.

- 우리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꺼이 놓아버리는 것들 역시 우리라는 사람을 만든다

 

3. 기뻐하고 감사하기

- 서양 철학의 기본 사고방식에 따르면 우리 각자는 자립적인 인간으로서 각자 내면의 소망과

  취향을 최대한 실현하려는 존재다.

- 우리 삶을 구성하는 상호의존성은 삶의 기본 조건으로 우리가 서로 의존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관계망이 제 역할을 하려면 구성원 모두가 절제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 우리가 침묵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면 침묵을 배울 이유가 없다. 침묵을 배울 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말하는 능력은 이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은 말하는 능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침묵하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나온다.(키르케고르)

- 침묵과 복종과 기쁨은 우리에게 윤리적 특성과 존엄을 부여하는 것들이며, 자기 절제를 토대로 

  삼는다.

- 사람은 관조적 지혜와 실천적 지혜를 둘 다 부여받은 유일한 생물이다

- 덕은 두 악덕 사이의 중용이다.(아리스토텔레스)

- ‘절제는 인색함과 한없는 관대함 사이에서,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으로

  절제를 그리스어로 소프로시네라 했다.

- 정치가 다양한 생각과 이해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일이라면, 절제와 침묵, 성찰은 우리가 

  배울 가치가 있는 능력이다.

- ‘좋은 품성을 지녔다는 말은 자기 충동에 아니요라고 말하며 유혹에 저항할 능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품성은 저항하는 능력,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능력, ‘아니요라고 말하는 능력과 관련 

  있다.

-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한다. 심지어 절제까지도. 잘 다듬어진 감정만이 올바른 절제를 기를 수 

  있다. 감정이 이성과 대립하지 않고 세상에 대해 믿을 만한 지식을 제공해 줄 때 올바른 절제를 

  할 수 있다.

- 윤리는 추상적이고 지적인 게임이 아니라 실천적 모험이다.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절제라는 품성을 갖추려면 건강하게 잘 가꾸어진 감정이 필요하다.

 

4. 단순하게 살기

-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경적, 정치적 측면에서 절제가 필요하다.

- 경제적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잘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회다.

- 예전에는 성실히 일하고, 아끼고 저축하며 절제를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 좋은 시민이었다면 

  작금에는 모든 것을 소비하며 만족을 모르는 사람, 계속 앞서가기 위해 노력하길 멈추지 않는 

  사람이 좋은 시민으로 변모했다.

-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불안은 너무나도 친숙한 감정이다.

- 어떤 흐름에서 뒤처지고 마음을 내려놓다 보면, 지금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집단적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을 개개인에게 떠넘길 때가 많다.

-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적게 가지는 것에 만족하려면 성숙하고 잘 다듬어진 정신이 필요.

- 우리가 무엇이 의미 있는지 깊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여가가 중요하다.

- 절제는 힘든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긍정적인 가치로서 절제의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하게 살기 운동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5.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

- 어떤 선택을 하든 필연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놓치기 마련이다.

- 우리는 내려놓는 일과 뒤처지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단순한 삶에 즐거움을 

  느끼고 좋은 삶을 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1) 선택해야 할 때를 선택하라              2) 오직 최고만 좋다는 생각을 지양하라

  3) 대부분의 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       4) 감사하라

  5) 무언가에 중독되었다고 느낄 때 쾌락 쳇바퀴를 생각하라

  6) 남과 비교하지 마라                       7) 한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라

좋은 환경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굳건히 뿌리 내리는 삶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혁신과 파괴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혁신적 사고를 하려면 우리가 사는 

  시대와 장소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 기존의 틀을 완전히 부술 때보다는 틀을 강조하고 유지하는 큐레이터와 보호자들이 있을 때

  더 잘 이루어진다. 미래에는 이런 존재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솔직히 작품을 정리하며 많은 생각을 해 보는데, 저자가 말씀하시려는 내용의 실체적 진실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말았으나, 작품의 뒷부분에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려는 내용을 보는 순간

내가 어떤 이유에서 이 작품을 골랐는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쳇바퀴에서 내려오는 일은 단지 개인의 의지력에만 달린 문제가 아니다. 쳇바퀴가 존재하지

않는 문화를 창조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이런 사회와 문화를 창조하는 가장 훌륭한 길은 우리가 물려받은 좋은 의례를 지키고 삶의

미학을 창조해내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하나의 가치를 굳게 지키고 그 위에 바로 서 있으려면, 다른 것들은 내려놓을

수 밖에 없다.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많은 것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실존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우리가 행복한 삶을 꾸려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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