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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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기분 좋은 아저씨들이 있을까. 왠지 이 아저씨들은 머리도 벗겨지지 않았고, 배도 안 나왔으며, 키도 안 작을 것 같고, 팔자 걸음도 아닐 것 같다. 소형 트럭을 운전하고 있어도 폼나고, 담배 연기를 뻐끔뻐끔 뿜어도 왠지 멋지고, 깡마른 치와와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도 가벼워 보이지 않고, 온동네를 슬리퍼를 신고 휘젓고 다녀도 후즐근해 보이지 않는, 아저씨 같지 않은 오빠, 오빠 같지 않은 아저씨. 이것이 글을 읽고 나의 머리속에 그려진 다다와 교텐의 이미지이다. 누가 뭐라하든 난 이 두 아저씨를 그런 아저씨들로 여기고 싶다. 왜 이렇게 이 두 아저씨 다다와 교텐에게 후한 점수를 주게 되었는지는 이들의 심부름집에 가보면 안다. 가장 이 두 아저씨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은 편견이 없다는 것이다. 이 둘은 그저 욕심없이 자신들의 심부름집에 의뢰된 일들을 묵묵히 해 나갈 뿐이다. 그 일들이란 것이 크던 작던 중요하든 하찮은 일이든 말이다. 그것도 고객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감동도 슬쩍 얹어서 말이다. 겉으로 봐선 곰같고, 지저분한 아저씨들이 말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참 바쁘게 살았고, 살고 있으며, 큰 이변이 없는 한 아마도 바쁘게 살아갈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무엇을 놓쳤는지, 또 무엇을 흘렸는지도 모른체 말이다. 또 앞으로 놓치고 흘리게 될 것이 무엇인지 모른체 말이다. 그러면서 사는 의미와 이만하면 한 세상 괜찮게 살지 않았나하는 어줍잖은 만족에 빠져서 말이다. 하지만 인간사를 통틀어 진짜 제대로 살았던, 살고 있는, 또 살아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잠시도 쉬지 못하면서 인생의 쉼표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비록 자신의 의지로 한 템포 늦춰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심부름집 다다와 교텐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폼은 나지 않지만 왠지 뿌듯함에 어깨가 벌어지고,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마음의 금고를 꽉 채우고, 주먹다짐으로 얼굴과 몸에 상처는 나지만 약한 자를 보호해 줄 수도 있는 이들이야말로 꽤나 괜찮은 직업을 가진 꽤나 괜찮은 아저씨들이 아닌가. 다다 심부름집에 심부름거리를 한 두개 가지고 찾아가 다다와 교텐식의 완전해결법을 한번 만나 보시라. 이 아저씨들 진짜 멋지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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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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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신윤복.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그들의 삶과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그린 팩션이다. 조선의 화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은 관계로 두 화원의 이야기를 두 화원의 그림으로 펼쳐놓았다. 단원과 혜원의 인생은 둘의 작품처럼 많이도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 속에서도 같은 시대의 천재 화가로써의 열망과 그림에 대한 열정은 다르다 할 수 없겠다. 색을 모르는 담백 수묵의 단원. 색에 미칠 지경의 혜원. 이 둘은 세상의 극과 극인 것처럼 너무나도 다르다. 홍도의 선이 굵으면 혜원의 선은 파리하게 가늘고. 홍도의 인물이 투박한 서민들이라면 혜원의 인물은 고운 여인네들이다. 이렇듯 다른 두 사람은 서로의 장점에 이끌리게 되고 왜 서로가 상대의 됨됨이처럼 되지 못하는지 고민하며, 단원의 혜원에 향한 감정은 점점 복잡 미묘해진다.이러한 구도와 이야기들은 그들의 그림이 함께 함으로써 더욱 생생한 빛을 내며 읽는이를 한숨에 사로잡는다. 단원과 혜원의 비밀스런 관계, 조선시대 화원으로써의 삶, 단원의 동기화원의 죽음, 정조대왕의 밀명, 색을 향한 영복의 열정, 화원을 둘러싼 권력과 암투, 혜원의 비밀 등 '바람의 화원'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참 많다. 이 많은 이야기를 풀고, 매듭짓고 하는데 있어서 매끄럽지 못함을 느낀 것은 나뿐인지.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 많은데 그것을 다 풀어놓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가지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나는 결코 단원과 혜원의 그림을 접하면서 결코 작가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 그림을 통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 보는 것이 가능하겠구나라는 것을 책장을 덮고서야 생각했으니 나의 사고를 넓여 준 소설이라 하겠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격이다. 가히 기분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사고의 전환이라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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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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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것을 좋아하니?'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아니요'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사실 달려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반 전체 아이들이 조를 나누어 모두 달리는 50~60미터 달리기와 출전할 선수가 없어 마지못해 나갔던 400미터 계주가 전부였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 수록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달리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언젠가 약속에 늦어 어쩔 수 없이 전력질주를 했던 적이 있는데 난 그때 내가 죽는 줄만 알았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runner's high라는 최고조의 기분을 경험한다고도 하는데 난 내 심장이 터지고 내 다리가 내것같지 않은 느낌 뿐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달리기의 기쁨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녀석 둘이 있다. 가케루와 하이지. 가케루는 달리기는 것이 즐거움이요, 일이요, 의식주요, 삶인 녀석이다. 또 한 놈인 하이지는 맘껏 달리고는 싶으나 다리가 안 따라주는 비운의 러너이다. 하이지가 가케루를 만남으로써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녀석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 지쿠세이소의 거주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아.. 그런데 하이지, 가케루, 지쿠세이소 거주자들을 차례차례 만나면서 늘어나는 이해 불가능 사람들이 속출한다. 달리기에 무관심했던 지쿠세이소 거주자들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점점 달리기의 매력에 빠지고 작고, 큰 달리기 대회에 출전하면서 달리기에 미친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달리기'란 것에 궁금증이 확 인다. 도대체 두 다리를 빨리 교차시켜 속도를 높이는 이 기본적인 반복 운동인 '달리기'가 무엇이길래 지쿠세이소 거주자들은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소설에서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역시나 '달리기 위해 태어난' 가케루가 이야기 해준다. 그럼 소설 속인 아닌 현실에서의 달리기 매력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사실 가케루, 하이지, 지쿠세이소 거주자들이 완주를 하고 이 이야기의 끝에 내가 도착했을 때에도 난 달리기의 매력에 빠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달리기를 알기 전의 지쿠세이소의 거주자들처럼 내 다리를 적당히 차례차례 교차시켜 적당한 속도를 내면서 걷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내 다리가 좀 더 빨라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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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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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5분의 지식채널e를 만난 것은 네덜란드 화가 고흐편이었다. 항상 무심한 TV리모콘의 채널 내림, 올림 버튼으로 어쩌다 화면을 접했던 EBS였는데 이순간만은 채널이 고정되었다. 공중파로서는 꽤 획기적이며 신선하고 모험적인 시도였음이 그 짧은 순간에도 느꼈졌다. 마치 뮤직비디오 같기도 하고 광고 같기도 했던 영상 5분에는 영상을 넘어선 이야기와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지식e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8개 항목을 책머리에 밝히고 있다.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입니다. 빈틈 없는 논리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사고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엄격히 구분짓는 잣대가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이해입니다. 말하는 쪽의 입이 아니라 듣는 쪽의 귀입니다. 책 속의 깨알같은 글씨가 아니라 책을 쥔 손에 맺힌 작은 땀방울입니다. 머리를 높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나의 '지식'이라는 것들이 생각하는 힘이였는지,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 경계를 넘나드는 이해심이었는지 자문해본다. 부끄럽지만 나의 지식이라는 것들은 그러지 못했다. 나의 입은 항상 떠들어대기 좋아했으며 나의 눈은 책 속의 깨알같은 글자들을 따라가기에 바빴으며 얄팍하게 알고 있었던 정보로 다른 사람들 위에 있고자 하였다. 나는 미처 몰랐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 너머의 삶을, 내가 붉은 악마들과 태극전사를 응원할 때 하루 종일 바느질만 하는 아이들의 삶을, 반짝반짝 빛나고 예쁜 보석을 보고 헤벌죽 웃고 있을 때 점점 더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꽃집의 아름다운 꽃들이 항상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만이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손이 책장을 넘기면 넘길 수록 알지 못했던 것들이 후두득 쏟아져 나왔다. 지식e가 나의 지식을 조금은 생각하는 힘 쪽으로, 나의 사고를 좀더 자유롭게, 나의 마음의 높이를 조금은 낮게, 나의 논리에 조금은 빈 공간을 만들었다. 이 만큼 좋은 조언자, 친구는 없을 듯 싶다. 샛노란 책이 나를 노랗게 물들여 따뜻함으로 이끌었음이다. 이 이끌림 꽤나 괜찮다. 모두 물들어 봄직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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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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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아함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갖추어야만 우아한 삶을 살 수 있는 건지. 최소한이 아닌 적당한 의식주가 보장되어 있어야 하며 적당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경제력과 예술을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수준? 이 소설은 이러한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다. 쉰 넷의 수위 르네는 평생 넓은 집에서 풍요롭게 살아본 적도 없으며 교육을 맘껏 받아보지도 못한, 일반적 시각으로 본다면 우아함하곤 한참의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이다. 열두 살 팔로마. 그녀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 시각에 비추었을 때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우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학식있고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까지 고루 갖춘 부모님에 엘리트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언니. 어느 누가 봐도 남부럽지 않은 생활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하지만 팔로마의 삶은 우울하고 비관적이며 심지어 자살 계획을 짤 정도로 삶이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진정 우아한 삶의 조건은 무엇인가? 소설에선 르네의 일상과 사색 그리고 팔로마의 사색일기를 통해 삶이 질적으로 풍요롭고 진정 사람이란 이렇게 살아야만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르네와 팔로마의 철학적 사고가 쉽게 다가오진 않는다. 이것은 이것이다. 저것은 저것이고, 그것은 그것이다라는 정의식 해답이 아닌 다시 우리의 사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이는 소설이 아니라 철학책인가. 소설이든 철학책이든 혹은 헐리우드 영화든 예술영화든 우리가 보고, 듣고, 읽는 것엔 우리의 뇌를 통과한 우리의 생각이 남게 마련이니 이 소설을 완주한 독자라면 사색의 문을 통과하여 우아함에 한 발짝 다가간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축하의 말을 전해야겠다. 당신의 우아함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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