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외노자들 때문에 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 받고 생계를 위협받습니다. 3D 기피? 불체자들 때문에 임금하락이 일어나서 기피하는 겁니다. 불법체류자를 동조하는 짓은 한국 수백만 서민을 못살게 구는 겁니다. 불체자는 외국에 대부분 송금하고 일끝나면 외국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이 땅의 서민은 어떻게 살까요? 그들의 범죄들은 또한 흉악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독거노인, 불쌍한 아이들, 학대받는 동물들, 한국에 진짜 보호해야 될 존재들은 따로 있습니다. 여론을 보세요. 전국민이 불체자와 그 동조단체들에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당장 내일이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쫓겨날지도 모를 한 사람을 위해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졌고, 위의 글은 그 카페에 '추방마땅'이란 아이디로 어떤 분이 올린 글입니다. 부분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흔히 '노가다'로 불리는 건설현장에서, 가구공단 같은 대표적 3D 업종에서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인지, 기업들이 값싼 임금노동자를 찾아 이주노동자를 불러들이는 것인지는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처럼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주민은 이웃이 될 수 없는지?


노동시장이 개방되고 여러 이유로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독거노인, 아이들, 학대받는 동물들까지 고통 받는 이웃들이 많다는 것도 지당한 말이지요. 그런데 왜 이주민들, 이주노동자들은 '서민'이 될 수 없고 '이웃'의 목록에서 빠져야 하는 걸까요? 진짜 보호해야 될 존재와 보호하지 않아도 될 존재는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 걸까요? 위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서민이라는 말, 이웃이라는 말, 국민이라는 말에 깃든 폭력이 되려 두렵습니다.


사실 세계화 시대에 이주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가와 시장이 이주와 노동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리고 비인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참으로 복잡하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라 굳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출산율이 바닥을 기고 내수시장이 침체되는 판국에 한국사회가 살 길은 다문화 사회이고, 그래서 이주민을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포용하자는 말은 더 더욱 하기 싫습니다. 그런 논리는 1회용으로 이주노동자를 싸게 부려먹고 폐기처분하는 실용주의와 오십보백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1992년 2월 22일. 스무 살 먹은 한 네팔 사내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13년 동안 봉제공장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던 그는 1999년 이주노동자 노래자랑에 참가해 문화부장관에게 감사패를 받기도 했고 5년 전부터는 아예 '스탑크랙다운(단속을 멈춰라)'이라는 락그룹을 결성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방송국(MWTV)에서 기자로도 활동을 하면서 말이죠. 미누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얼마 전 출입국관리소의 표적단속에 걸려 곧 추방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18년 동안 이웃이었던 한 사람


그를 정부기관은 '불법체류자'라고 부르고 이주노동자 관련 인권단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합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은 다들 불법전입이 아니라 위장전입이라 하고, 경찰과 출입국관리소는 불법단속이 아니라 과잉진압, 과잉단속이라고 하면서 한국정부에 신고한 것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불법'의 딱지를 붙이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적 상황에서라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저 위장체류, 과잉거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공소시효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살인은 얼마 전까지 15년이었다가 25년이 되었다네요. 강간치사죄는 15년, 아동성범죄도 15년이었다가 좀 늘어날 조짐이 있습니다. 영아유기죄는 5년, 공문서 변조 죄는 10년입니다. 반면에 한 장소에 15년 살면 점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체류 허가를 받지 않고 체류한 것이 죄라면 그 죄의 공소시효는 도대체 몇 년이어야 할까요? 흔히 위장전입으로 불리는 주민등록법 위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3년인데 말이죠.


그저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몰라가는 것도 문제지만 18년이나 이 땅에서 살면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해오고 있는 사람을 단지 '실정법 위반'을 들며 쫓아내려 하는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소의 행태는 궁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바다 건너 어떤 나라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묻지 않고 10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부여한다고 하는데 한국사회가 그러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민으로, 이웃으로 살아온 그를 이 사회 구성원으로, 시민으로, 국민으로 대접하기는커녕 꼭 짚어서 쫓아내려는 국가와 이를 당연시 하면서 이주민을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리는 이 사회가 저는 너무나 불편합니다. 저는 한국인이고 그는 네팔인이지만 분명 그는 나의 이웃입니다. 국적을 이유로, 불법이라는 딱지 때문에 그를 쫒아내야 하는 것이 실용주의, 국가주의라면 이야말로 한국사회가 단속하고 추방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미디어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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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인사청문회 같은 것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히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게 되었다. 거기서 ‘품격’이란 단어가 나왔는데 정 후보자 자신이 몇 년 전부터 국가의 품격을 높이자고 외쳐왔다는 것이다. 그 말마따나 청문회에서의 답변 태도나 말씨만 놓고 봤을 때 후보자는 나무랄 데 없이 고상하고 겸손해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행적은 품위나 품격과는 거리가 멀지 않았나.

도대체 품위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현장, 그리고 참사 유족들이 등장하는 곳이다. 아직도 유족들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투쟁이라 하기에도 뭐한 말 그대로 싸움판이 수시로 벌어진다. 틈만 나면 용역들이 농성장과 참사 현장 주변에 들이닥쳐 물품을 빼앗고 폭력을 일삼는데 그럴 때면 상복이 찢겨지고 영정이 내동댕이쳐진다. 신부나 목사도 멱살을 잡히기 일쑤니 보통 사람들이야 말 할 나위 없다. 개인들끼리 해결할 일이지 정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라면서도 1인 시위가 됐든 삼보일배가 됐든 경찰은 막무가내로 막아서고 사람을 짐짝처럼 들어 차에 옮겨 싣는다. 그러고도 아무런 사과도 해명도 없다. 그 가운데 전경들 뒤에 숨어 희죽거리는 경찰간부,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농담을 지껄이고 도망가는 형사들도 만나게 된다. 분에 못 이겨 물을 뿌리고 잡동사니를 집어던지다가 결국 사지가 들리면 허망한 욕설만 난무하는 용산. 그런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어 이제 8개월을 넘겼다.

솔직히 말해 MB정부 때문에 용산참사가 일어났고 모든 책임이 이 정부에게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경찰의 강경진압, 과잉대응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몇몇은 목숨을 잃었다. 서울 전농동, 수원 권선동, 오산 수청동에도 용산처럼 망루가 세워졌고 용산과 비슷한 진압이 이뤄졌다. 어쩌면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집단이 집권을 하던 간에 성장과 개발에 대한 성찰이 없는 한 참사는 예고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지난 1월 20일. 신임 경찰청장 임명을 앞두고 경찰특공대의 전격적인 진압으로 여섯 목숨이 희생된 뒤 집권여당은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매도했고, 보수언론들은 서둘러 불순한 배후세력을 지목하기 바빴다. 청와대가 연쇄살인범 사건으로 용산을 덮자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검찰이 법원명령에도 수사기록 3천 쪽을 밝히지 않아도 아무 일 없는 세상이다. 오히려 강남 집값이 치솟고, 전세대란이 일어나고, 위장전입자들은 면죄부를 받고 있다. 여전히 재개발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 기업과 조합, 부동산 재테크를 통해 부귀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기세등등하다. 용산참사는 이렇듯 이 사회가 져야 할 무거운 짐이고 오랜 숙제다. 그래서 청문회에서 정 후보자가 총리에 임명되면 우선 용산참사 유족들과 만나 위로하고 실상을 파악하겠다고 했다지만 그런다고 이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

지난여름 유족들이 의혹투성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기로 했다가 종교계의 만류로 유보한 적이 있었다. 유족만이 아니라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모여 참사 현장에 꽃과 채소를 가꾸고 종교인들은 미사와 예배를 이어간다. 끝 모를 무시와 모욕에 견뎌가며 잔인하고 야비하기 이를 데 없는 공권력과 매순간 맞서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이렇듯 몸부림치고 있는 이곳 용산에서 나는 이 사회의 진정한 품격이 싹트고 있다고 믿는다. 국가의 품격을 논하기 전에 그 존재이유를 부정당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용산으로 가서 용산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내일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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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카메라' 하면 개그맨 이경규가 떠오릅니다. 1990년대 연예인 한 명이 TV에 나와서 아는지 모르는지 슬쩍 속아 넘어가는 장면을 일요일 저녁 온 식구가 모여 함께 보고는 했죠. 그걸 보면서 참 불편했는데 이상한 점은 불편해 하면서도 꼭 끝까지 봤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어서 불편했던 것인지, 불편해서 재미있었던 것인지 헷갈립니다. 하여튼 사람들의 엿보기 심리, 관음증에 대한 대중의 욕망과 쾌락을 연예인의 사생활과 잘 버무려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오락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검찰이 '몰래카메라'를 수사한다고 합니다. MBC 시사 프로그램인 <불만제로>에서 어떤 유치원이 아이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제공한다고 고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취재과정에서 <불만제로> 제작진 한 명이 유치원 보조교사로 위장취업하여 몰래 촬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유치원에서는 "제작진이 인터뷰 거절 의사를 묵살하고 퇴거 요구에 불응한 채 유치원 곳곳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했다"며 지난 4월 경찰에 <불만제로>를 고소했지만 경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고소인이 제작진의 처벌을 강하게 원하고 있고 언론 자유와 개인 사생활의 범위 등을 판단해 볼 여지가 있어 몰래카메라와 관련된 국내외 취재사례와 판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몰래카메라>만큼은 아니지만 한때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도 즐겨보았고 또 거기서도 왠지 모를 불안함과 위태로움을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언론, 그 중에서도 방송이 대단한 권력이라 할 수 있는데 때로는 몰래, 때로는 공공연하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경찰과 검찰처럼 수사를 하고 취조를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다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오리발을 내밀다가 찍어놓은 영상을 들이밀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겠다고 읍소를 하는 업자들을 보며 한편 통쾌하기도 했지만 방송의 위력을 실감하며 어떤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몰래카메라의 원조 격은 1990년대 MBC의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1980년대 보안사(현재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1990년 말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보안사가 정치계, 노동계, 종교계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천3백여 명을 상대로 정치 사찰을 벌였다는 것으로 이 일로 해서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까지 바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근 2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다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기무사가 민주노동당 당원을 비롯해서 문화예술단체까지 미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동영상에 담았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와는 달리 기무사는 물론 거대 신문사와 방송사, 그리고 검찰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엿보기와 엿듣기, 사찰 분야의 대한민국 일인지라 할 수 있는 국정원(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민간인 사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들의 엿보기 심리를 이용한 상업방송의 문제는 물론 심각합니다. 흥행성공-시청률 상승-광고수입 극대화라는 고리에서 움직이는 상업방송의 선정성에는 분명히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익적 성격을 띠고 있는 시사 프로그램에서의 몰래카메라를 또 다른, 그리고 더 큰 권력인 국가기관이 검찰수사로 통제하려 한다면 거기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정보수집-고발과 폭로-단죄와 처벌이라는 수순을 갖고 있는 국가권력기구의 몰래카메라가 가져다주는 공포가 더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몰래카메라와는 다르지만 우리는 도청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것은 불법이고 그 불법도청으로 알게 된 것을 공개하면 처벌받는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은 19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 일어난 '초원복집 사건'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전 법무부장관과 지역 검사장, 경찰청장 등이 한 음식점에서 모여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기로 모의한 것을 국민당 정주영 후보 쪽에서 도청하여 세상에 알린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은 엉뚱하게도 '관권선거 모의'에서 도청 문제로 이동했고 김영삼 후보는 영남표 결집이라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2004년에는 MBC 이상호 기자가 1997년 대선 당시 삼성그룹 고위 임원과 중앙일보 회장이 만나 특정 후보에게 대선자금을 불법적으로 지원하기로 공모한 내용이 담긴 안기부의 도청 테이프를 공개한 '안기부 X파일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도 역시 삼성과 중앙일보라는 재벌과 거대 언론사의 불법 대선자금 논의보다는 불법으로 얻은 것을 증거자료나 수사의 대상으로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독수독과 이론(독이 있는 나무에서 열린 열매는 독이 있다)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설왕설래하다 이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뒤따랐음에도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독수독과 이론은 1937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유래된 말로 수사기관이 술 밀매꾼의 전화를 도청하여 기소한 사건에서 법원은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 발단입니다. 2년 뒤 수사기관이 문제의 도청 내용을 단서로 수사를 벌인 뒤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이 증거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원칙은 독일에서도 적용되었습니다. 1980년의 어느 날 독일 잡지 슈피겔에는 정부 기밀과 관련된 글이 실렸는데 수사기관은 한 언론인을 기밀 유출자로 지목하고 용의선상에 올렸고, 법원의 영장을 받아 도청에 나선 수사기관은 이 언론인이 자신의 누나 집에 기밀 문건을 숨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를 근거로 법원에 기소를 하였지만 독일 재판부는 독수독과 이론을 근거로 증거능력을 부정하였습니다. 이때 독일 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서 불법 도청한 대화에서 얻은 증거, 영장 없이 체포한 피의자의 자백에 의한 증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압수한 서류를 통해 수집한 증거 등이 대표적인 독수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 독수의 개념을 넓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독수독과 이론은 국가권력기구인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이 고문이나 도청 등 절차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수사하는데 경종을 울린 것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거대한 권력의 잘못을 은폐하고 유야무야 하는데 편리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들은 법원의 영장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메일을 뒤지고, 도청을 하고, 또는 법원의 영장도 없이 몰래카메라를 찍고 제 맘대로 사찰을 하면서 말이죠.


흥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언론이 그 속성을 자제하지 못하면 3류 찌라시로 전락하듯 공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권력은 조폭이나 양아치와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그래서 “취재과정에서 윤리강령 및 내부규정을 엄격히 준수해서 촬영했고 공익을 목적으로 취재활동을 벌인 점에 비춰볼 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불만제로>의 윤리강령과 내부규정이 궁금한 만큼이나 이를 수사하겠다는 국가권력기구의 윤리강령과 내부규정 또한 궁금합니다. 한 법률가는 “언론기관이 사회비리를 밝히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사용해 취재한 행위는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국가기관이 국가안전을 위해 몰리카메라를 사용해 사찰한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불만제로>를 공권력을 동원하여 수사해야겠다고 하듯 마찬가지로 민간인 사찰을 일삼은 기무사와 국정원에게도 대충 비슷한 잣대를 대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겠지요. 

 

- <미디어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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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9-21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방금 미디어 오늘에서 기사를 봤는데. 언론의 자유와 공익성, 방법의 문제가 엮인 것이지만, 졸속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수사란 점에선 이견이 없을 것 같아요.

나무처럼 2009-09-21 14:41   좋아요 0 | URL
독수독과 이론을 검찰에 적용시키면 나쁜 정권 아래의 나쁜 검찰이 수사한 결과는 역시 나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

뷰리풀말미잘 2009-09-21 14:42   좋아요 0 | URL
아치님은 모르는 것도 없으셔.
 

화합과 통합이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이며 바야흐로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하고 진심어린 참회와 용서가 앞서야 한다.   

 

 

지난 6월 10일자 동아일보는 전북 군산 개야도에서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 두 명이 37년 만에 참회와 용서, 화해를 했다는 아름답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했다(‘참회와 용서’ 37년 앙금을 풀다). 한 젊은 어부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끌려가 두 달 가까이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한 끝에 친구를 간첩으로 지목해야 했다. 그는 친구가 간첩임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며 불고지죄로 구속되었다가 8개월 만에 풀려났고 졸지에 간첩이 된 친구는 꼬박 7년을 복역하고 출소 뒤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고향을 등져야 했다. 이제 흰머리가 성성한 노년의 두 친구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주선으로 다시 만났고 이 사건은 현재 법원에 재심신청을 준비 중이라 한다.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누구와 화합해야 하나

1981년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됐다가 남파된 아버지에게 포섭되어 간첩활동을 했다며 박씨와 그의 어머니, 동생, 숙부, 고모 등 일가족 7명을 ‘가족간첩단’으로 만들었던 진도 간첩단 사건. 1980년 신군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교사, 공무원 등이 모여 반국가단체를 결성했다고 몰아간 아람회 사건. 북한예술단 공연을 본 소감을 ‘함부로’ 말했다가 재일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며 간첩으로 몰린 김양기씨 사건.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간첩활동을 했다는 이른바 모자 간첩단 사건. 5촌 당숙, 사촌 여동생까지 한꺼번에 엮인 신씨일가 간첩단 사건. 이들은 올해 들어 법원의 재심으로 2, 30년 동안의 빨갱이 누명을 벗은 조작간첩 사건들이다.   

 

 

이례적으로 몇몇 사건에서는 재심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사과하고 법원의 과오를 반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공언한 ‘사법부 과거사 청산’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됐고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파동에서 보듯 청산해야 할 과거사의 항목은 날로 더해지고 있다. 생사람을 잡아 간첩으로 둔갑시켰던 경찰은 도시재개발과 노동자파업 현장에서 용역과 상부상조하며 시민을 테러범으로 둔갑시키고, 검찰은 수사기록까지 감추면서 이를 뒷수습하고 있다. 또한 미네르바 사건을 시작으로 정부정책을 반대하는 네티즌을 색출하고 TV 시사프로그램 작가의 이메일을 뒤져 반정부인사 낙인찍기에 여념이 없다. 게다가 과거 조작간첩 사건의 한 몫을 담당했던 중앙정보부, 안기부의 후신 국정원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보란 듯이 활보하고, 보안사의 후신 기무사도 이에 뒤질세라 대통령 대면보고라는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민간인 사찰을 일삼는다. 반성이니 참회니 하는 말을 꺼내기조차 무색한 지경이다. 

가증스러운 보수언론의 행태

 

더욱 기막힌 것은 한 사람의 일생, 한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조작간첩 사건을 다루며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듯 무미건조하게 단신처리로 생색을 내거나 미담기사로 그럴듯하게 포장해내는 보수언론의 행태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들 보수언론은 기무사의 불법사찰 행위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사법부 내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게 비밀결사, 이념조직이 아니냐며 다그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이 쌍용자동차 파업에 개입했다며 조작사건을 부추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는 답변을 받아낸다. 이 지긋지긋한 색칠하기 위에 덧씌워진 화해의 메시지에서는 최소한의 염치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의 화합과 통합의 제스처는 그저 얄밉고 괘씸할 따름이다.

- <미디어 오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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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세월을 무릅쓰고 일주일 동안 처갓집에서 휴가를 보냈습니다. 오래전 약속이라 피할 수 없었지요. 그곳은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마침 컴퓨터도 벼락을 맞아 인터넷도 끊긴 터라 더위만이 아니라 골치 아픈 세상사에서도 제대로 도망친 꿀맛 같은 휴가였습니다. 그래도 간간히 텔레비전으로 보는 평택 쌍용자동차 뉴스에 애를 태우고는 했습니다.

"고문이 보도되지 않는 것보다 기사거리조차 안 되는 현실이 더 심각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스런 사실을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들고 내려간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스탠리 코언 지음, 창비)이라는 책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200일을 넘긴 용산참사와 먹는 물과 전기, 의료진의 출입까지도 막혔다는 평택 쌍용 공장을 떠올렸습니다. 그래도 두 사건은 비교적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지난 7월 인천에서는 장애인이 도망을 갈 지 모른다는 이유로 석 달 동안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화분받침에 담긴 밥을 먹어야 했던 사실이 시설 내부 고발자의 폭로로 알려졌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장애인 시설을 다녀간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목격했지만 아무도 이런 인권침해를 고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언론도, 사회도 이러한 장애인 시설에서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대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치부해버린다는 점입니다.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하는 장애인 인권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동안 받은 이메일을 열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장애인 단체에서 보낸 이메일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울시가 각 구청에 불법농성 참여자가 활동보조서비스를 지원받는 사례가 없도록 철저를 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가리키는 '불법농성'이란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탈시설, 자립생활의 권리를 서울시에 요구하며 벌인 62일간의 농성을 말합니다. 이 농성에 참여한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을 했지만 서울시는 "서울시정에 반대행위를 한 농성자이기 때문에 지원결정을 유보"한다고 했답니다. 서울시가 보건복지부에 "불법 농성자들에게 활동보조를 지원해야 하느냐?"고 문의했더니 보건복지부는 "활동보조 지원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사회생활 등에 대하여 지원해야 한다."는 답변을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서비스는 교육이나 의료, 치안이나 소방, 공공교통과 같은 공적 서비스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적 서비스를 서울시정에 반대했다고, 합법적 사회생활이 아니기에 중단한다는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의 말은 소화전까지 단수시키고 의료진의 출입을 막은 쌍용자동차와 어쩜 그리 일맥상통한지요. 앞으로는 반정부 집회 참가자는 버스도 타지 못하게 하고 육교도 건너지 못하며 집회현장에서 다치면 구급차가 출동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는 공적 서비스 그 이상의 것, 바로 생존권이라는 사실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2005년 겨울 한 중증장애인이 집에 보일러가 터져 그만 얼어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2007년 겨울에도 홀로 살던 정신지체 장애인이 추위와 배고픔에 탈진해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몸의 근육들이 서서히 위축되어가는 근육이양증 장애를 가진 아들이 화장실에서 넘어져 혼수상태에 이르자 인공호흡기를 뗀 비정한 아버지에 대한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습니다.

최소한 활동보조서비스만 있었다면 이들의 죽음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장애운동 단체의 주장이었고, 수 십 일 동안의 농성과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를 버리고 한강다리를 기어서 건너는 투쟁 끝에 비로소 마련된 것이 바로 활동보조서비스였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나 지자체가 적선을 하듯 내키면 주고 안내키면 마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들 스스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임을 부인하는 것이자 장애인의 생존을 갖고 야바위를 치는 범죄 집단이라고 자임하는 꼴밖에 안 되겠지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진실을 알려야

또 한 통의 이메일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라는 단체의 성명서로 이러한 공공기관의 탈을 쓴 파렴치 집단을 감시하고 고발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의 한심스런 작태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차강석 씨는 중증장애인으로 한 카드사에 신용카드를 신청했습니다. 평소 발가락으로 한 글자씩 자판을 두드리는 그이는 무려 세 시간에 걸쳐 신용카드 신청서를 작성해 카드사에 보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카드사 상담원이 전화를 했고 언어장애도 있는 차 씨였기에 활동보조인이 대신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상담원은 본인확인이 어려우니 본사로 직접 찾아와 카드를 신청하라고 하여 대필사인과 신분증 사본을 갖고 본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카드사는 소득세 납부를 위한 재산세 영수증을 요청했고 이를 우편으로 보냈지만 자필 사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다시 법정 대리인인 아버지와 카드사를 방문하라는 요구를 받아야 했습니다. 거리가 먼 카드사 방문이 쉽지 않은 차 씨는 아버지의 사인을 받아 발송하였으나 카드사는 직접 집에 방문하여 신청서를 받아가겠다고 했고 마침 방문했던 날 아버지가 집에 없자 결국 카드 발급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불 나는 일에 대해 차강석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지만 더 참담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서 말미에 있는 관련법 개정이 국가인권위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진정을 각하 처리를 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성명서에서 만약 인권위가 조금이라도 해결의지가 있었다면 "그 곳이 어떤 카드사였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차강석 씨가 진정으로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어야 했다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말고 함께 사는 길을 찾아보자"고, 용산참사 유가족은 "죽은 이들의 사인이 무엇이고 그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명명백백히 밝히자"고 수십 번, 수백 번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국회와 법원, 경찰과 검찰, 그리고 자본과 보수언론은 결코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 하지도, 그 답을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불법의 딱지에 연연해하지 않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일이 필요한가봅니다. 앞의 책 저자도 말합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적합한 청중들에게, 인간에게 소중한 사안에 관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말이죠. 


-<미디어스>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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