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 같은 것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히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게 되었다. 거기서 ‘품격’이란 단어가 나왔는데 정 후보자 자신이 몇 년 전부터 국가의 품격을 높이자고 외쳐왔다는 것이다. 그 말마따나 청문회에서의 답변 태도나 말씨만 놓고 봤을 때 후보자는 나무랄 데 없이 고상하고 겸손해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행적은 품위나 품격과는 거리가 멀지 않았나.

도대체 품위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현장, 그리고 참사 유족들이 등장하는 곳이다. 아직도 유족들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투쟁이라 하기에도 뭐한 말 그대로 싸움판이 수시로 벌어진다. 틈만 나면 용역들이 농성장과 참사 현장 주변에 들이닥쳐 물품을 빼앗고 폭력을 일삼는데 그럴 때면 상복이 찢겨지고 영정이 내동댕이쳐진다. 신부나 목사도 멱살을 잡히기 일쑤니 보통 사람들이야 말 할 나위 없다. 개인들끼리 해결할 일이지 정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라면서도 1인 시위가 됐든 삼보일배가 됐든 경찰은 막무가내로 막아서고 사람을 짐짝처럼 들어 차에 옮겨 싣는다. 그러고도 아무런 사과도 해명도 없다. 그 가운데 전경들 뒤에 숨어 희죽거리는 경찰간부,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농담을 지껄이고 도망가는 형사들도 만나게 된다. 분에 못 이겨 물을 뿌리고 잡동사니를 집어던지다가 결국 사지가 들리면 허망한 욕설만 난무하는 용산. 그런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어 이제 8개월을 넘겼다.

솔직히 말해 MB정부 때문에 용산참사가 일어났고 모든 책임이 이 정부에게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경찰의 강경진압, 과잉대응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몇몇은 목숨을 잃었다. 서울 전농동, 수원 권선동, 오산 수청동에도 용산처럼 망루가 세워졌고 용산과 비슷한 진압이 이뤄졌다. 어쩌면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집단이 집권을 하던 간에 성장과 개발에 대한 성찰이 없는 한 참사는 예고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지난 1월 20일. 신임 경찰청장 임명을 앞두고 경찰특공대의 전격적인 진압으로 여섯 목숨이 희생된 뒤 집권여당은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매도했고, 보수언론들은 서둘러 불순한 배후세력을 지목하기 바빴다. 청와대가 연쇄살인범 사건으로 용산을 덮자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검찰이 법원명령에도 수사기록 3천 쪽을 밝히지 않아도 아무 일 없는 세상이다. 오히려 강남 집값이 치솟고, 전세대란이 일어나고, 위장전입자들은 면죄부를 받고 있다. 여전히 재개발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 기업과 조합, 부동산 재테크를 통해 부귀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기세등등하다. 용산참사는 이렇듯 이 사회가 져야 할 무거운 짐이고 오랜 숙제다. 그래서 청문회에서 정 후보자가 총리에 임명되면 우선 용산참사 유족들과 만나 위로하고 실상을 파악하겠다고 했다지만 그런다고 이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

지난여름 유족들이 의혹투성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기로 했다가 종교계의 만류로 유보한 적이 있었다. 유족만이 아니라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모여 참사 현장에 꽃과 채소를 가꾸고 종교인들은 미사와 예배를 이어간다. 끝 모를 무시와 모욕에 견뎌가며 잔인하고 야비하기 이를 데 없는 공권력과 매순간 맞서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이렇듯 몸부림치고 있는 이곳 용산에서 나는 이 사회의 진정한 품격이 싹트고 있다고 믿는다. 국가의 품격을 논하기 전에 그 존재이유를 부정당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용산으로 가서 용산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내일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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