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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첫번째 기고 글이 본의 아니게 뜨거운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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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참 무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난 1차 용산 추모제에서 유족들은 시신을 빼돌리고 유족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부검을 한 경찰과 정부로부터 아직껏 사과의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며 울부짖었다.

참사의 책임을 떠넘기려 전국철거민연합 '마녀사냥'에 나선 조중동 기자들에게는 제발 우리를 두 번 죽이지 말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2차 추모제가 열린 1월31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7명의 여성을 연쇄 살해한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다. 그 기사 어디에도 살인범에게 희생당한 피해자 유족의 입장은 실려 있지 않았다.


   
  용산 참사를 겪은 유가족 대표가 연단에 올라가 "이명박 대통령께 눈물로 호소한다"며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신상공개 반대는 가해자 인권만을 위하는 것인가

살인자 인권 운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는 또 한 번 시달릴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용산참사 유족과 함께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는, 줄곧 흉악범 신상공개를 반대해온 인권단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이 가장 많이 받는 비난은 “왜 가해자 인권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아니라 피의자의 인권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와 함께 국가권력으로부터 언제든지 피의자로 지목될 수 있는 모든 주권자들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피의자의 인권을 박탈해야만 피해자 인권이 보장되는가. 흉악범 신상공개를 둘러싼 논란에서 정작 피해자와 유족의 입장은 생략되기 일쑤다.

가해자의 얼굴이 몇날 며칠 언론에 등장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유족이 살인범의 얼굴이 만천하에 알려지기를 바랄 수도 있고 그 이상의 요구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유족을 진정 위하는 길일까.

사람들은 또 묻는다.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에게도 인권이 있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 인간이 아닐 수는 없다. 또한 흉악범이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 우리마저 그럴 수는 없다. 인간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만행을 저질러 타인의 인권을 유린했지만 사회는 그를 인간으로서 처벌해야 한다.

그렇다고 범죄자에게 모든 인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징역형은 많은 인권을 제한한다. 거기에 초상권 하나 더 박탈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초상권은 인격권 중 하나다. 얼굴공개는 초상권을 침해함으로써 더 이상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세계인권선언 제5조는 “어느 누구도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대우 또는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적고 있다. 이제 한국사회는 “연쇄살인범만큼은 (육체적 고문만 빼고) 정신적 고문이나 가혹행위, 모욕적인 대우나 처벌은 해야겠다”고 말하는 것인가. 

언론은 어떤 알 권리를 위해 무례해져야 하는가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언론이 있다. 사실 언론만큼 무례한 집단도 없지만 사회정의의 실현과 실체적 진실의 규명을 위해 우리 모두 그 무례함을 감수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제 입맛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를 들먹이며 집단적 단죄를 서슴지 않는 언론이라면 문제가 많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한미FTA 협상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삼성비자금 X파일 사건이나 수 차례의 과거사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서는 국익과 사회통합을 내세워 국민의 알 권리를 묵살해왔다.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한 바로 그날 군부대 내의 유흥주점 운영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잠입취재 한 MBC기자에게 유죄가 확정되었다는 소식 또한 두 신문은 외면했다.

그리고 용산 4지구 참사현장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열흘이 넘도록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분노하는 연쇄살인범의 얼굴공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와중에 용산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만 대통령의 무죄추정 원칙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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