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안검사의 퇴장과 문외한 인권윈장의 등장

 

소설 <태백산맥>이 적을 이롭게 하는 표현물인지 수사했다는 검사. 이력을 보니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방명록' 사건도 있다. 그 광란의 마녀사냥이 다시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정부 들어서는 용산참사와 MBC 피디수첩, 미네르바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그래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내정을 계기로 법원명령에도 꿈쩍 않고 있는 용산참사의 진실,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수사기록 3000여 쪽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불거졌으면 하는 소박한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용산참사 유족의 항의시위로 잠깐 이 문제가 언급되었을 뿐, 연일 신문지상을 뒤덮은 것은 고급아파트 구입비용과 고급승용차 리스, 명품 소비와 위장전입 문제 등 도덕성과 신상 문제였고 결국 유럽 순방을 마친 대통령의 '결단'으로 후보자는 낙마하고 말았다.


검찰총장 후보자의 초라한 퇴임식


지난 17일 검찰총장 후보 사퇴서를 낸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의 퇴임식은 검찰청 소회의실에서 검찰간부 20여 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사진촬영은 물론 기자도 들어가지 못한 비공개로 열렸다. 행사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그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새로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하려는 현병일 한양대 교수와 이를 막아 나선 인권단체 활동가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평소 법치와 실용을 강조해온 이명박 대통령답게 한편에서는 공안검사를 검찰총장으로 또 한편에서는 인권문제는 문외한이지만 "학장, 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보여준 균형감각과 합리적인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해 현병철 교수를 국가인권위원장에 내정했다. 그러나 엄연히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가 위원장이 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고, 본인 입으로도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니 'MB식 법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인권단체는 신임 위원장의 취임을 반대하지 않을 레야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날 취임식은 무산되었다.


퇴임식과 닮은 취임식

하지만 문제는 이 정부의 인권위원회 조직축소나 독립성 훼손, 뉴라이트 측에서의 이른바 '좌편향' 논란에 대해 "학장으로서 일이 너무 바빠 그런 뉴스를 보질 못했다"고 답한 신임 위원장의 자질만이 아니라 이러한 인사를 검증하고 견제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나 절차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검찰의 총수를 검증하는 자리에서 도대체 <태백산맥> 이적표현물 수사와 '만경대 방명록' 사건이 누구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는지, 용산 수사기록을 감추고 피디수첩을 수사한 것이 어떤 정의에 근거한 것인지 따지지 못했듯이 형식적인 절차가 정답일 수만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 정부가 말하는 인권이 과연 어떤 인권이고 누구를 위한 인권인지, 거기에 용산참사 유족들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있기나 한 건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 나라 언론환경에서 실용과 법치를 넘어선 인권과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그저 소박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7월 20일, 반년이 넘게 장례도 치루지 못한, 시신을 메고 청와대에 가는 수밖에 없다는 용산참사 유족들은 병원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거리에서 아들과 같은 전경들과 또 다시 몸싸움을 벌여야 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가족 한 명은 '공권력 투입 임박' 뉴스를 보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바로 그 시각, 경찰이 출입을 가로막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항의를 묵살하며 15분 만에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취임식이 치러졌다. 한 공안검사의 퇴임식과 묘하게 닮은 모양새였다.  

 

- <미디어오늘> 기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전에 일을 보다가 용산참사 관련 행사가 있는 순천향병원으로 갔다.   
도착하니 지인 하나가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순천향병원에서 용산참사 시신과 유족은 결국 경찰에 가로막혀 나가지 못했다.
3시 50분 무렵 현병철 위원장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했다는 문자 한통이 왔다.
2009년 7월 20일, 참 뭐라 말하기 어려운 날이다. 아니 오늘만이 아니라 요즘, 참 어려운 시절이다.
- 아래는 <미디어스> 기고글

======================================================

 인권위원장을 어찌해야 좋을까요? 
- 현병철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논란에 즈음하여  

국가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또는 좋은 친구나 애인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자리

인권을 옹호하기보다는 침해하기 일쑤인 ‘국가’와 그 국가에 대항하고 저항하는 일을 숙명으로 알아야 하는 ‘인권’이 만나는 야릇한 지점에 사법·행정·입법부로부터 모두 독립되어 있다는 이 독특한 국가기구의 장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이어야 할까요?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7일 청와대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한 현병철 한양대 사이버대학장의 취임식을 막아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새삼 이 질문을 떠올립니다.

2005년 3월 무렵이었을 겁니다. 당시 두 번째로 국가인권위원장이 된 최영도 위원장의 재산이 무려 백 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어느 보수 월간지를 통해 대서특필되면서 참 말들이 많았습니다. 현행법을 어긴 것이다, 아니 더 많은 재산을 기부했다더라, 그렇지만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등등. 건실한 시민단체의 공동대표였고 몇 안 되는 인권변호사의 존경받는 원로였던 그는 결국 논란 끝에 사퇴를 해야 했습니다.

흔히들 자유권이라고들 말하는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같은 인권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과 같은 사회권에 2기 인권위원회의 힘을 쏟겠다는 최 위원장의 이야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그가 가진 백 억 대의 재산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였고, 따라서 올바른 결정이라 여겼습니다. 다만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 고위 공직자, 그리고 국가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어지고 그에 따라 마땅한 제도적 절차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더랬습니다.


파리원칙과 현병철 위원장


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하는 질문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단 한 줄로 답하고 있습니다.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무엇이 인권문제인지, 어느 정도가 전문적 지식이고 경험인지, 어떤 사람이 공정성과 독립성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인지 등등 이 규정은 추상적이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들의 선출에 공개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검증절차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얼마 전 국회에서 열렸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인권기구의 설립과 운영의 바이블로 불리는 ‘파리원칙’(정식 명칭,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이 원칙은 “인권위원 선정 과정에서 인권 향상과 관련된 사회 세력의 대표성을 갖는 협력관계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국회가 그러한 대표성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서둘러 국가인권위원장 선임과 관련한 바람직한 협력관계의 제도적 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인권 향상과 관련된 사회 세력의 대표성을 가진 협력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 인권위원회 보고서는 “이 보고서는 정부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수많은 보고와 권고, 결정이 휴지조각처럼 나뒹굴었습니다. 이 정부 들어서는 아예 인권위원회 조직이 반 토막 나버렸고 이에 임기가 4개월 남은 위원장은 불만을 토로하며 사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는 보란 듯이 인권문제와 인권위원회와 인권현장에 대해 문외한인 현병철 교수를 인권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국가인권위원장의 역할


현 교수는 내정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정 소식을 듣고 머리가 멍했다.” “너무 이쪽(인권위 업무)에 대해서 모른다.”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현황 파악을 먼저 해야겠는데, 구체적인 것(계획)은 아직 없다.”(한겨레) “학자로서 인권을 공부했지만 인권위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어, 인권 운동 단체 등을 많이 만나며 현안을 점검하겠다.”(연합뉴스)고 합니다. 인권위의 '좌편향' 논란이나 독립성 훼손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학장으로서 일이 너무 바빠 그런 뉴스를 보질 못했다"(연합뉴스)고도 이야기했다 합니다.

이 사람을, 아니 국가인권위원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20일)은 며칠 전 하지 못했던 취임식을 다시 한다고 합니다. 같은 날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는 구호를 든 노동자들이 모인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경찰병력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6개월 동안 온갖 모멸과 수모를 겪고 있는 용산참사 유족들, 시설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는 장애인들, 그런 시설을 탈출해 역시 ‘함께 살자’며 인권위원회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장애인들, 오늘하루도 인간사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주노동자들, 대형마트의 횡포와 정부의 무관심에 견디다 못해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하는 자영업자들, 정부정책에 반대했다고 이메일이 공개된 방송작가와 헌법소원을 했다고 징계를 받고 군복을 벗어야 하는 군법무관, 반정부적인 정치적 표현을 했다고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교사와 학교 밖으로 입시경쟁으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

이들에게 이번 국가인권위원장 임명은, 현병철 교수의 발언은, 아니 어쩌면 국가인권위원회 그 자체는 폭력이고 모욕이고 서글픔이지는 않을까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머큐리 2009-07-2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저것 논란이 안되는 사람을 고른다고 고른것이 결국 이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인권사항에 대해 고민한 적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원장으로 앉히고 그걸 넙죽 받아 쥐는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결국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모르면 염치라도 있던가...

나무처럼 2009-07-20 23:55   좋아요 0 | URL
이명박 정부 머릿속에는 법학자에 학장 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 아닐까요. 이런 식으로 인권을 욕보이는 것 같아 더욱 화나는데 그냥 취임식을 받아들이는 인권위원들도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2006년 평택 대추리 사건으로 편집장이 구속되었을 때 쓴 글이다.
별로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편집장이 구속되었으니 기자가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무언의 강압에 밀려 난생 처음 써본 탄원서.
편집장은 지금 용산참사로 벌써 몇 달째 수배 중이다.
또 탄원서를 써야 할 날이 오려나.
이런 글 따위는 몇 번이라도 쓸 수 있으니 제발 용산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 되었으면 좋겠다.  

-------

탄 원 서

재판장님께.

박래군이 구속됐다니 서글플 따름입니다. 어떻든 미군에게 기지를 지어주려는 정부의 외곬수를 수차례 보고 겪으면서 분노도 당혹감도 무뎌졌나 봅니다. 다만 한 사람의 갇힘이, 그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할 그를 아는 여럿의 슬픔이 전해와 서글프고 또 속상합니다.

브레히트의 <민주적인 판사>란 시를 떠올립니다. 아는 영어라고는 '1492년' 밖에 없는, 그래서 번번이 미국 시민권을 얻지 못하는 이민자에게 그의 처지를 알게 된 판사가 마침내 "미국이 독립한 해는?"이란 질문을 합니다. 재판장님은 박래군에게 무엇을 물을 생각입니까? 

몇 차례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도 시민 대접을 받지 못하는 대추리, 도두리 마을 사람들에게 정부는 끊임없이 "얼마를 보상받고 싶냐?"고만 묻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라고 물어봐도 "왜 법을 지키지 않냐?"는 질문만 되돌아옵니다.
 

묻는 말에만 답하라는 현실은 힘없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함께 질문도 하고, 답도 함께 찾기 위해 시작된 평화행진이었습니다. 어쩌면 '평화'를 앞에 건 행진이었기에 단장을 맡은 그가 그처럼 쉽게 연행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준비된 폭력, 계획된 불법인양 말합니다. 이미 정치인들에게는 훈장이 되어버린 민주화 운동 경력까지 끄집어와 그의 죄질을 논합니다.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아니라 다시 평택으로 달려가 정부가 잘못한 증거를 마저 찾아낼까 염려되어 가두려함에도 짐짓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질이 나쁜 것은 박래군이 범했다는 죄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입니다. 그럼에도 정의로움을 가두어 잘못을 감추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분노보다, 슬픔보다 더 한 부끄러움이 되풀이되지 않길, 그가 하루라도 빨리 석방되어 가족과 동료의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부탁드립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06-18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무처럼 2009-06-18 15:06   좋아요 0 | URL
기자라기 보다는 뭐 거기서 잡지만들면서 밥벌어먹고 살지요^^
 

 이것도 오래된 글이다. 정확히 언제 써서 발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


이라크에 우리가 보내야 할 것은 군대가 아니라 평화입니다 

 - 이라크 추가파병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인권단체 호소문    

 

우리는 어제는 이 비극의 방관자였으나 오늘은 공범이 되었습니다. 파병에 대한 찬반을 떠나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무사귀환을 염원했던 김선일씨의 충격적인 피살소식이 전해진 후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비단 유족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그 기간은 무척이나 길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광화문에서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파병철회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일부 언론은 ‘응징’과 ‘척결’, ‘보복’과 같은 날선 단어들로 파병방침 불변과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사태는 비정규전 형태로 악화되어가고 테러의 표적이 이제 미국에서 우리에게로, 일본과 스페인에서 터키 등으로,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라크 내부의 거센 저항으로 주권이양이 며칠 앞당겼다지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에는 역부족임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입장을 표명하고 주장하기에 앞서, 어느 새 이 전쟁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고인의 유족들앞에, 학살과 인권유린이 일상화된 현장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이라크 국민들 앞에 뼈아픈 뉘우침으로 머리를 숙입니다. 아무리 부인한다고 해도, 우리는 김선일씨 피살의 방관자였으며 이라크 침략 전쟁에 가담한 국가의 일원인 까닭입니다. 우리는 어느 덧 전범국의 국민이 되고 말았습니다.

평화와 인권은 이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단지 저들의 바람일 뿐입니다  

 

김선일씨 피랍사건이 전해지자마자 나온 정부의 단호한 ‘파병방침 불가’ 입장에서 야만의 시대,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의 그림자를 엿보게 됩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국제사회의 약속’ 앞에 한 개인의 위기에 처한 생명은 어떤 변수도, 고려의 대상조차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외치는 평화와 인권이 그들에게는 한낱 휴지조각에 다름이 아님을 절감했습니다. 그러나 자고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은폐의혹들에 분노하면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이 정부 몇몇 부처의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 경중을 따지는 것으로 봉합될 때 고인의 희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며 제2, 제3의 불행이 초래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우리는 다시금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통해 인류가 인권의 가치가 확인하였듯, 우리는 근현대사의 질곡속에서 이름도 없이 숨져간 죽음을 통해 이 땅에 민주주의가 도래했고 인권의 가치가 확립되었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철학과 윤리인 것입니다. 혹여 지난해 미선이 효순이 추모 촛불집회는 단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민족감정에 지나지 않았다면, 탄핵 사태 이후 우리가 지키고자 목이 쉬게 외쳤던 민주주의가 선거용 구호에 불과했다면 우리는 과연 이제 무엇에 분노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이들은 평화니 인권이니 하는 것은 이상에 불과할 뿐이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국익’과 ‘현실’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지금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의 현실 앞에서 전혀 변화할 줄 모르는 국익론과 현실론이 바로 허위의식이자 관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테러가 일어나면 그 근본원인은 도외시한 채 이 기회에 테러방지법이나 만들겠다는 그들의 탁상공론에 우리는 할 말을 잊게 됩니다.

용기로 포장된 비겁함과 지혜로운 듯 보이는 기회주의는 결코 해답을 주지 못 합니다  


누구는 명분과 실리를 논하고 있습니다. 모든 전쟁에 명분이란 없었다며 파병 철회를 철부지의 주장으로 치부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미관계의 불이익을 거론하며, 제2의 IMF를 각오해야 한다며 들이대는 저들의 ‘실리론’에서 병자호란 전후 명나라 보은을 내세웠던 사대주의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 일제말기 ‘내선일체’만이 조선의 이익이라 주장하던 이들의 논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과거 민주주의를 요구하면 분단의 특수성을 들이밀고, 평화를 이야기하면 북한의 위협을 들먹이며, 반인륜적 인권탄압을 자행하던 독재정권을 우리는 온 국민적 저항을 통해 종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익’과 ‘현실’을 주장하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시기상조다, 이상론이다 몰아붙이는 이들의 그림자에서 독재자의 모습을 너무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논거를 댄대도 비겁함은 용기가 될 수 없습니다. 테러에 굴복하면 안 된다며 ‘보복’과 '응징‘을 주장하다가도 파병철회는 곧 한미관계의 불이익이라 단정하면서 추가파병을 주장하는 저들의 행태는 강한 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 한없이 강한, 거짓과 기만을 일삼는 권력 비겁한 속성입니다. 기회주의는 결코 지혜가 아닙니다. ‘현실론’을 내세우며 파병방침 불변을 주장하는 것은 변화무쌍한 국제관계에서 비현실의 세계, 자기모순의 악순환에 들어서는 첫걸음입니다.

당신의 양심에 목소리에 귀 기우리길 호소합니다  

 

더 이상의 침묵은 이 부당한 전쟁범죄에 공범이 되고, 더 깊이 연루되어 감을 의미합니다. 오직 양심에 귀 기울이는 것만이 평화를 담보합니다. 우리가 이라크에 보내야 할 것은 군대가 아니라 평화의 염원과 인권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은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세상, 차별을 하지도 당하지도 않으며, 커다란 이익에 목매지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살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실현 가능한 세상인 까닭입니다. 저들의 국익에는 바로 이 모든 것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 전 썼던 성명 하나를 찾았다. 지금 보니 쑥스럽다. 또 언제 이런 성명을 쓸 날이 오려나.
노무현은 죽었고 국가보안법은 여전하다.   

------------------

 

[노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에 대한 19개 인권단체 공동논평]
국가보안법을 인권박물관에 전시하라!  


노무현 대통령은 5일 방송 대담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의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악법,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환영한다.  


국가보안법은 대통령의 말대로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던 ‘독재정권안보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권침해를 일으켜온 반인권 악법이었고 그 이상의 실질적이고도 상징적인 억압이었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통일운동가 뿐만이 아니라 학자들에게는 학문 활동으로 인해, 예술가들에게는 작품으로 인해, 대학생들과 노동자, 민중에게는 그들의 정의로움으로 인해 지금 이순간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민주주의의 현존하는 위협이다. 하기에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은 4.19 민주이념계승을 명시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 기초한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며, 너무나 당연한 사실의 재확인이었다.

우리는 열린우리당에게 집권여당으로서의 결단을 촉구한다. 이미 국가보안법은 인권에 입각하여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논의가 필요치 않은 주제이지 않은가. 충분한 논의를 운운하며 또다시 신중론을 펴는 것은 역사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국민과 민주주의를 불신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당장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중단하고 폐지를 당론화하라.  


또한 우리는 한나라당에 경고한다. 국가보안법은 결코 헌법이 아니며, 안보란 자국민의 통제와 감시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인권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이 그들이 지향하는 자유주의의 가치인지 답해야 할 것이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주장을 되풀이하며 국가보안법을 어떻게든 남기려 한다면 한나라당도 국가보안법과 함께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56년, 아무리 빨라도 늦었다. 인권과 민주주의에게 더 이상의 인내를 강요하지 말자. 국가보안법을 이제 인권의 박물관에 보내 오욕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인권교육의 자료로 쓰게 해야 한다. 17대 국회는 국가보안법을 당장 폐지하여 입법부로서의 직무유기를 하루빨리 중단해야 할 것이다.

2004년 9월 6일
국제민주연대 / 다산인권센터 / 동성애자인권연대 /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 불교인권위원회 / 새사회연대 / 안산노동인권센터 / 에이즈인권모임나누리+ /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 원불교인권위원회 / 인권실천시민연대 / 인권운동사랑방 / 자유·평등·연대를위한광주인권운동센터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전북평화와인권연대 / 천주교인권위원회 /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이상 19개 인권단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