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을 정말 기억 못한다. 워낙 내 이름이 특이해서인지 상대방은 내 이름을 아는데 난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잠깐 공인으로 살던 때, 학생회 간부시절 참 민망한 일이 많았다. 최근에는 알콜성 치매인지 사람 얼굴도 몰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한다. 몇 주 혹은 몇 달 전에 안면을 튼 사이라고 얘기해주면 그때서야 '아, 그랬지'하며 떠오른다. 서너 번은 봐야 저 사람이 누군지 안다. 안면인식장애 초기 증세가 아닌가 의심해본다. 내가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놈이라서 그런가 자책도 한다. 그래도 점점 실례를 범하는 일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내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얼굴을 몰라봐도 어여삐 봐달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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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었는데 문득, 아래 시가 떠올랐다. 왜일까?
너 죽은 날 밤
차 간신 몰고 집에 돌아와
술 퍼마시고 쓰러져 잤다.
아들의 방.
아들이 밤중에 깨어보니
내가 화장실에서처럼
소변보고 있었다.
태연히.
그리곤 방을 나가
화장실에 누웠다.
태연히.
- 황동규 작 '너 죽은 날 태연히-같이 술 마시던 시절의 김현에게'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