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노랗게 무르익어라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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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당신의 글(소로우가 잡지에 발표한 산문)을 읽고 전에 당신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다시금 내 기억 속에 떠올랐습니다. 지난번 콩코드에서 당신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당신은 우리의 문명 사회를 떠나는 것에 대해 진지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당신 친구들이 속해 있는 이 사회가 그립지 않겠느냐고. 당신의 대답은 매우 단호하고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니오. 난 아무것도 동경하지 않습니다." (13쪽)



 

"강둑 위를 환하게 비추는 햇볕의 따뜻함을 느낄 때, 황금빛 모래를 헤치고 드러난 붉은색 흙을 바라볼 때, 부스럭거리는 마른 잎 소리와 개울에서 눈이 녹아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내가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낀다. 다른 어느 곳에서 인간 세상의 왕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야생의 숲에서 학생이 되고 자연의 아이가 되고 싶다."

소로우가 '향수병에 걸린 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듯' 자신만의 고독한 숲으로 들어가자,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거기에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소로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할 일은 충분하지 않겠소?" (39쪽)

 

 

 

소로우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의 육신은 하버드 대학 안에 있었지만 마음과 혼은 언제나 소년 시절의 풍경 속에서 살았으며, 공부하는 데 보내야 할 대부분의 시간들은 고향 마을과 숲을 찾아 헤매고 호수와 시내를 탐험하는 데 쓰여졌다고 고백한다.

한번은 하버드 동문이기도 한 에머슨이 하버드 대학은 모든 분야의 지식을 가르친다고 사람들에게 설명하자 소로우는 "하지만 그 근본은 가르치지 않지요."라고 일축했다. (51쪽)

 

 

 

양가죽은 양들이 갖고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소로우에게 대학의 강의와 교육은 울창하기만 한 숲이었다. 그가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스스로 폭넓은 독서와 자기 수양을 통해 얻은 이득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소로우는 하버드를 졸업할 때 졸업장을 위한 수수료 1달러 지불을 거부하며 말했다.

"양가죽은 양들이 갖고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졸업장은 양피지로 만들어졌다. (51쪽)

(나의 생각)

이집트의 신전을 두고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그냥 놓아두라'고 했던 『
월든』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 * *

피라미드


여러 민족들은 그들이 다듬어서 남긴 석재의 양으로 자신들에 대한 추억을 영구화하려는 광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차라리 그만한 노력을 자신의 품행을 가다듬는 데 바쳤다면 어땠을까? 한 조각의 양식良識은 달까지 솟아오른 기념비보다 더 기릴 만한 것이 아닐까?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그냥 놓아두라. 테베의 장관은 천박한 장관일 뿐이다. 인생의 참다운 목적에서 멀어져버린 100개의 대문을 가진 테베의 신전보다는 어느 정직한 사람의 밭을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돌담이 더 의미가 있다. 야만스럽고 이교도적인 종교와 문명은 화려한 신전들을 짓는다. 그러나 기독교, 참다운 기독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한 민족이 다듬는 돌은 대부분 그들의 무덤으로 간다. 그야말로 그들은 스스로를 생매장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야심한만한 멍청이의 무덤을 만드느라고 자신들의 전 인생을 허비하도록 강요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차라리 그 작자를 나일 강물에 처박아 죽인 후, 그 시체를 개들에게 주어 뜯어 먹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당당했으리라.(『월든』 中에서)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어느 날 오후, 소로우는 수선을 맡긴 구두를 찾으러 월든 호수를 떠나 마을로 나왔다가, 세금 징수원과 마주쳤다. 그가 세금을 내지 않으면 당장 잡아 가두겠다고 협박하자, 소로우는 '지금 당장 나를 잡아 가두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징수원은 지체하지 않고 그를 콩코드 감옥에 가두었다.

소식을 들은 에머슨이 감옥이라는 새로운 은신처에 기거하고 있는 소로우를 찾아와 물었다.

"자네는 왜 이런 감옥에 있는가?"

소로우는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왜 감옥 밖에 있습니까?"

소로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의 고모가 세금을 납부해 버림으로써 그의 의미 있는 저항은 하루 만에 막을 내린 듯 보였지만, 그는 이것을 계기로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시민의 불복종>을 쓰게 된다. 이 역작으로 증명되듯 감옥에서의 하룻밤은 소로우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로우는 그 하룻밤을 회상하며 말했다.

"정부 사람들은 나의 가장 큰 소망이 감옥의 돌벽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들이 나의 명상의 문에 열심히 자물쇠를 잠그려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의 명상은 나의 허락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그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나의 명상이야말로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자 나의 육체를 처벌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정부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일말의 존경심마저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을 동정하게 되었다." (64쪽)

(나의 생각)

'수많은 군사와 맞서 그 총사령관도 빼앗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남자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고 한 공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子曰 三軍 可奪帥也 匹夫 不可奪志也(자왈 삼군 가탈수야, 필부 불가탈지야)

소로우도 공자의 말씀을 익히 알고 있었고, 그의 책에서도 논어의 이 대목을 인용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공간이란 어떤 종류의 공간인가?

월든 호숫가에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소로우에게 사람들은 묻곤 했다.

"당신은 그곳에서 무척 외롭겠군. 특히 비나 눈이 내리는 날과 밤 같은 때는 이웃이 그리울 것 같은데."

소로우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거주하는 지구 자체가 우주 공간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저 별의 넓이는 인간이 만든 기계로는 측정할 수도 없는데, 저 별에 살고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의 거리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어째서 내가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지구는 은하수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당신의 질문은 내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그의 동료들로부터 분리시켜 그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공간이란 어떤 종류의 공간인가? 아무리 발이 애를 쓰고 있더라도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 살고 싶은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들끓는 곳은 분명 아닐 것이다." (71쪽)

 

 

 

글 속에서는 노동의 미덕이, 펜에서는 삽질에서 오는 강인함이, 연구에서는 야생의 자연이 함께하기를

한번은 에머슨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소로우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

지혜로운 자에게는 어느 곳이든 같은 곳이고, 각자 서 있는 곳이 그의 가장 좋은 자리이다. 소로우는 여행을 통해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의 영혼과 만났다.

<야생 사과>에서 소로우는 말하고 있다.

"야외에 적합한 사색이 있는가 하면, 집 안에 적합한 사색이 있다. 나는 나의 사색이 야생 사과와도 같이 산과 들을 돌아다니는 도보 여행자를 위한 것이기를 희망한다. 집 안에서 맛을 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맛이기를."

글쓰기에 있어서도 소로우는 글쓰는 일과 노동, 펜과 삽, 실내에서의 연구와 바깥에서의 활동을 동시에 갖출 것을 주장했고 또 실천했다. 글 속에서는 노동의 미덕이, 펜에서는 삽질에서 오는 강인함이, 연구에서는 야생의 자연이 함께하기를 그는 바랐다.

문학 비평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소로우의 글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다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완벽한 표현이 저절로 우러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사색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또한 소로우가 그렇게 태연히 앉아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사방을 산책하면서 정열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콩코드 강과 매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의 서문에서 소로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서재와 도서관, 심지어 시인의 다락방 냄새조차도 나지 않고 오직 들판과 숲의 냄새만 난다고 믿는다. 또 이 책은 지붕을 덮지 않은 툭 트인 하늘 아래 펼쳐 놓고 사계절 비바람을 맞도록 만든 야생의 책이어서, 어떤 서가에서도 보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28∼129쪽)

 

 

 

성경이라면, 어느 성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로우는 자신의 저서에 동양 고전들을 자주 인용하곤 했다. 심지어 그는 기독교의 성경처럼 동양 경전들에도 '성경'이라는 명칭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양 경전의 가치와 우월성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한번은 그를 찾은 한 손님이 '성경'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자 소로우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성경이라면, 어느 성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제 그만 고전 작품들을 잊자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고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지성을 갖추게 될 때, 그때 가서 고전을 잊어도 늦지 않다. 베다 경전들, 조로아스터 교의 경전들이 기독교의 성경과 어우러져 바티칸 궁전 같은 곳을 채울 때, 인간은 비로소 천국에 오를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137쪽)

 

 

 

제가 언제 그 분과 싸운 적이 있었던가요?

"나는 기독교와 비기독교를 구별하는 행위의 쓸모없고 불공정하고 철없는 편견과 무지를 개탄한다. 나는 브라흐마 신과 크리쉬나 신과 부처의 위대한 혼을 하느님만큼이나 좋아한다."

소로우의 이런 직설적 발언들은 콩코드 교회의 교적에서 그의 이름이 삭제되게 만들었다.

소로우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그를 찾아온 이모가 그에게 물었다.

"이제 하느님과 화해했는가?"

그러자 소로우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한 번도 그분과 다툰 적이 없는데요." (138쪽)


(나의 생각)

마지막 문장은 소로우의 글을 다룬 다른 책에서 봤던 번역이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제가 언제 그분과 싸운 적이 있었던가요?"

 

  

 

나에게 단순하고, 값싸고, 소박한 주제를 달라

누군가는 소로우의 글을 읽고, 그는 자연을 인간의 언어로 옮겨 놓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로우 자신은 말한다. 작가는 모두 자연의 서기라고. 자신은 글쓰는 옥수수이며 잔디이며 대기라고. 소로우의 문학의 주제오아 소재는 그의 삶만큼이나 소박하고 직접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주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생활이 모든 것이다. 나에게 단순하고, 값싸고, 소박한 주제를 달라. 나는 평범한 것을 기술한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매력적이고 진정한 시의 주제이다. 나에게 무명의 생활, 빈자와 천민의 오두막집, 세상의 평범한 나날들, 메마른 들판을 달라. 좋은 시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워서 어째서 모든 사람이 다 시인이 되지 못하는가 의아할 정도다. 시란 건강한 말에 다름 아니다. 멋진 시 구절들을 대하노라면 내가 겪은 평범한 일들을 그저 이 시인이 보고 듣고 느낀 대로 토로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쓰는 문장은 오랜 경험의 결과이며 속표지에서 책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책 속에는 저자의 인품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 이것은 저자 자신도 교정할 수 없다고 소로우는 말한다.

소로우는 또 보스턴 자연사 협회의 명예회원이자 통신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단체에서 소로우에게 자연사 연구 분야에 국한시켜 보고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소로우는 번번히 거절했다. 자신의 내적 정신과 관찰 사실을 따로 분리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사람들이 소로우에게 새를 연구하고 싶을 때에도 정말로 새에게 총을 겨누지 않느냐고 비웃듯 묻자, 소로우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당신들을 연구하고 싶을 때는 꼭 당신들을 쏴야만 한단 말입니까?" (143∼144쪽)

 

  

 

한 번에 한 세상

일생 동안 소로우가 일관되게 지켜온 삶의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본연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그의 삶의 원칙은 죽음이 다가와도 흔들림이 없었고, 특유의 유머와 신랄함을 잃지 않았다. 소로우를 방문한 한 종교인이 내세에 대해 설명하자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한 번에 한 세상"

······

소로우는 말했다.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라고. 작고 야트막한 돌로 된 그의 묘비에는 이름과 사망한 날짜 이외에는 어떤 글도 새겨지지 않았다.

"내가 가진 가장 뛰어난 재능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땅을 껴안을 수 있다. 그 안에 묻히더라도 역시 즐거울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그동안 한 번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217쪽,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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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11-2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로우에게서 너무 멀어진 저를 봅니다. 이제 월든을 다시 꺼낼 시간인 것 같아요.

oren 2013-11-22 15:29   좋아요 0 | URL
소로우는 늘 한결같이 거기에 머무르고 있으니 언제든 dreamout 님께서 마음 내킬 때 다가가시면 반갑게 맞아주리라 믿어요. 댓글로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야클 2013-11-2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덕분에 슬슬 소로우에 관심이.... ^^

oren 2013-11-22 15:32   좋아요 0 | URL
야클 님 오랜만이네요.
야클 님께서 소로우를 만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다가오기를 바랄께요~
그리고 또 소로우와 함께 하는 시간은 천천히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더불어 바랄께요~

페크pek0501 2013-11-2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겨울이야말로 독서의 계절이에요 저에겐요...
오렌 님이 관심 가진 책에다가 소로우 지음, 류시화 옮김...이라... 더 관심이 가네요. ^^

oren 2013-11-27 17:06   좋아요 0 | URL
소로우가 쓴 책들은 대부분 번역하신 분들이 단단히 마음먹고 달려들어 쓴 책들이라 번역이 좋은 것 같아요.
이 책을 번역하신 류시화 님 또한 '월든' 호수를 여러번 찾았고, 소로우가 쓴 여러 책들을 두루 살펴본 이후에 이 책을 번역한 흔적이 역력하더라구요. 소로우를 친근하게 만나기 위해선 이 책도 아주 좋은 길동무가 되리라 여겨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