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하순에 찾아가본 智異山
지리산 둘레를 따라 만난 풍경 ①
지리산 둘레를 따라 만난 풍경 ②
한걸음 한걸음이 건강이요, 재미요, 즐거움이다. 인생의 근심걱정은 금권주의, 사회의 본질적 속악함과 함께 - 김이 솟아 오르는 골짜기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 달라붙는 추악한 독기처럼 - 아득히 저 아래쪽에 남는다. 위쪽에서 우리는 맑은 공기와 날카로운 햇빛 속에서 신들과 함께 걷고, 인간은 서로를 알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안다. 어떤 감정도 '우리 종족의 시조들처럼 충실한 동지들'과 더불어, 어느 냉혹한 절벽을 공격하러 전진하는 감정보다 영광스러울 수는 없다. 설령 바깥쪽으로 툭 튀어나간 기울어진 바위 선반 위에서 오로지 구두징 한 개의 마찰만으로 육체가 희박한 공기 속에 떨어져 내리는 것과, 영혼이 저 위 천국으로(그렇게 희망하자) 날아 오르는 것을 막고 있을 뿐일지라도 한 손의 손가락에 아직도 한 파티의 생명을 맡길 수 있고, 아랫도리에 '무릎이 풀어지는 공포'의 기미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통쾌한 일은 없다.
-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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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11. 8.19(금) 13:30 ∼ 8.21(일) 13:30
○ 산행 코스 : 백무동 → 장터목(1박) → 천왕봉 → 세석평전 → 벽소령 → 연하천(2박) → 노고단 → 성삼재
거의 5년 만에 다시 지리산을 종주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지리산을 찾았던 게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1981년) 였으니, 그로부터 따지면 지리산과 인연을 맺은지도 어언 30년이 되었다. 정말 세월이 빠르다는 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리산을 오를 때마다 늘 '지리산을 처음 올랐을 때의 추억'을 되새기곤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유달리 '그 시절 그 친구들과의 추억들'이 몹시도 그리웠고, 특히나 이번 산행 코스는 여태껏 올랐던 방향과 정반대 방향(천왕봉 → 노고단)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왜냐하면 산행 도중 수없이 마주치게 된 풋풋한 젊은이들(특히 대학생들이 많았다)을 보면서 30년 전의 '우리들' 모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쓸 도리가 도무지 없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오른 대개의 대학생들은 너무나 싱그러운 젊음을 푸른 나뭇잎처럼 발산하고 있었고, 나는 어느덧 딱딱한 껍질을 온 몸에 두르고 있는 나무처럼 제법 많은 세월을 살아 온 중년이 되어 있었다.
<앨범 속 사진 1> 1981년 8월,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지리산 정상에 오른 모습
(그 당시엔 멋도 모르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종주산행을 했나 보다. 사진 속 수박 한 통이 인상적이다)
언제부터 산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30년 전 처음으로 가 본 '지리산'은 정말 좋았다. 제법 거창한 4박5일의 종주 산행이었던 데다가, 텐트와 5일분의 식량 때문에 짐도 무거웠고, 등반대의 구성원이 남학생 6명과 여학생 2명으로 이뤄지는 바람에 텐트를 남학생용 대형(7∼8인용) 1개, 여학생용 소형 1개(3∼4인용)로 구색을 맞춰 가져 갔는데, 대형텐트는 정말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고, 텐트를 치고 걷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기 때문에 더욱 고생이 심했고, 그만큼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득 찬 산행이 되었다.
그 당시를 다시금 회상해 보면, 아무튼 그 땐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친 산길을 걷고, 하루 세끼씩 꼬박 꼬박 8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하고, 설겆이를 마치고, 또 야영을 하는 과정들이 결코 만만치 않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서로 돕고 도우며 '진한 우정'이 싹트게 되었다. 그 때 함께 산행을 한 친구들은 물론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마침 내일 6쌍의 부부가 저녁모임을 갖는데, 대부분 이 때 함께 등반을 간 친구들이다(한 쌍의 부부는 이 때 등산을 함께 간 남학생과 여학생이다).
그 당시엔 1인당 회비를 15,000원씩 거뒀던 걸로 기억하는데(한 학기 등록금이 대략 50만원쯤 했다), 꽁치 통조림은 너무 비싸 정어리 통조림을 훨씬 더 많이 준비해 갔던 기억이 특히 생생하다. 매 끼니때 마다 '정어리 통조림 찌개'는 빠지지 않았고, 배낭을 꾸릴 때마다 그 속에 그득했던 정어리 통조림이 과연 '몇 개나 줄었는지' 세어보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번에 지리산 종주 산행을 다녀와서 '30년 전 추억'도 떠올려 볼겸 책장 한 켠에 수북히 쌓인 '앨범'을 뒤져보니 내가 산을 좋아하긴 좋아했나 보다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얻은 여름휴가때도 배낭에 텐트를 짊어지고 곧장 설악산으로 달려 갔으니 말이다.
<앨범 속 사진 2> 1988년 8월, 직장생활 1년차 여름휴가때 설악산을 찾은 모습
(이 때부터는 월급도 타고 등산화도 사 신었지만, 여전히 청바지를 입고 산행을 했던 모양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회사 산악회의 총무와 간사 등을 (아마도 10년쯤) 떠맡아 주말마다 이 산 저 산을 참으로 많이도 쏘다녔던 것 같다. 앨범 속을 뒤져보니 온통 '****** 산악회'를 내걸고 찍은 단체사진만 수두룩하다. 그래도 지금 되돌아 보니, 그 때가 참으로 행복했고 참으로 젊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앨범 속 사진 3> 1990년 10월, 직장생활 3년차 가을에 용문산을 오르다가 찍은 사진
(총각사원 시절에 함께 간 직장 선배님이 찍어준 사진인데, 그 분의 취미가 사진촬영인줄 나중에 알았다)
지리산을 처음 갔을 때 내 나름대로 마음 속에 '다짐'해 둔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적어도 5년에 한 번씩은' 꼭 지리산을 오르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부부가 지리산 정상을 함께 오르는 모습을 보고 나서 마음먹은 것인데) 60세가 넘어서도 저렇게 지리산을 함께 종주할 수 있는 사람을 '평생의 반려자'로 삼자는 것이었다. 사실 아내와 함께 지리산을 찾은 건 여러 번이었지만 '종주산행'은 여태껏 함께 해보지 못했다. 다만 두 아이가 대학입시를 마치는 대로 함께 '종주산행'을 다녀오자는 구두약속만 해놓은 상태다.
어쨌든 처음 지리산에 갔을 때의 다짐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실행된 건 없지만, 딱 10년 만에 두 번째 종주산행을 다녀올 수 있었고(똑같은 노총각 신세의 고교 동창 세 명이 함께 갔다), 그 뒤로도 야간산행과 종주산행을 몇 번 더 다녀왔던 것 같다.
<앨범 속 사진 4> 1991년 10월, 10년 만에 두 번째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면서......
(이 때는 4박5일 동안 야영을 하면서 [화엄사 → 천왕봉 → 칠선계곡]으로 종주산행을 했다)
지리산은 언제 찾아가도 늘 어머님 품 속 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곤 한다. 다른 산에서는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독특한 감정이다. 그리고 지리산의 품은 다른 어떤 산들도 감히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만큼 드넓고 넉넉하다. 지리적으로도 남한의 8도 가운데 3도를 차지할 만큼 넓다. 산이 높고 깊은 만큼 그 품에서 흘러 나오는 섬진강의 맑은 물은 또 얼마나 오랜 세월에 걸쳐 얼마나 많은 생명들에게 젖줄이 되어 왔던가 싶은 생각도 든다.
비록 내가 태어난 고향은 태백산맥 자락에 가깝지만, 어른이 되어 지리산을 찾고 부터는 이 곳에 매료되어 마음 속으로 늘 동경하는 곳이 되었다. 이른 봄 남녘의 지리산 자락에서부터 피고지는 구례의 산수유와 광양의 매화향기와 여름 내내 비구름과 운무를 가득 머금은 지리산의 여러 능선들과 계곡들, 가을과 겨울이면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과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지리산의 모든 계절이 나에게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이번 산행은 독특하게도 '동네 성당 산악회'에서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그 선배를 따라 (종교의 장벽을 무시하고) '지리산이 좋아서' 무작정 따라 나섰다. 그 덕분에 오히려 일행들과 함께 휩쓸리지 않고, 산행 내내 조용히 마음속으로 내가 살아온 나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가져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올해는 유독 늦여름까지 비가 많이 왔던 만큼, 이번 산행에서는 우리 일행 역시 이틀을 꼬박 빗속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지리산의 최대 장관인 '천왕봉 일출'도 볼 수 없었으며, 지리산의 숱한 비경과 절경들을 카메라에 담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다음에 또 지리산을 찾게 되면 어둠을 헤치고 말갛게 솟아 오를 붉은 태양과, 태고의 세월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은 멋진 지리산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다.
이번 산행에서는 비록 많은 비를 맞으며 힘든 산행을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무릎이 풀어지는 공포'를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체력적인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30년 전에 처음 지리산을 찾았을 때 마음 속에 다짐했던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산을 찾아 다니고 싶고, 또 내일 만날 '오랜 친구들'과도 '다시 한번' 의기투합하여 지리산 능선을 함께 걸으며, 별이 빛나는 밤마다 까마득한 옛 얘기를 오래도록 함께 나눌 수 있는 날들을 기다려 본다.
1. 백무동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 (Shooting Date/Time 2011-08-19 오후 12:28:14)
2. 비빔밥과 청국장이 맛있었던 '옛고을' 식당
3. 지리산의 위용이 느껴지는 모습~
4. 장터목 산장을 불과 몇백미터 앞두고 마주친 장관...... (Shooting Date/Time 2011-08-19 오후 5:41:09)
5. 빗물을 잔뜩 머금은 '모시대'(장터목 산장 도착 몇십미터 전)
6. 장터목 산장의 저녁 풍경 (Shooting Date/Time 2011-08-19 오후 6:10:22)
7. 비바람 몰아치는 지리산 정상(1,915M) (Shooting Date/Time 2011-08-20 오전 6:58:04)
8. 잠시 '빗줄기가 약한 틈'을 이용해서 찍은 '곰취' (Shooting Date/Time 2011-08-20 오후 1:46:39)
9. 지리산 산행길 내내 반겨준 '원추리'
10. 소박하고 수줍게 핀 '둥근이질풀'
11. 벽소령을 지나 연하천으로 가는 길목에서~ (Shooting Date/Time 2011-08-20 오후 4:34:15)
12. 비구름만 가득하다가 아주 잠깐 보여준 운무 (벽소령과 연하천 사이)
13. 산행 3일째, 마침내 연하천 산장에서 맞은 눈부신 일출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5:52:48)
14. 연하천 산장에서 맞은 지리산의 아침 풍경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5:57:33)
15. 어느새 하늘은 가을이 느껴질 만큼 푸르고......
16. 아침에 보는 지리산 운해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7:37:10)
17. 토끼봉을 지나며......
18. 아침 햇살에 빛나는 '둥근이질풀'
19. 화개재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들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9:24:57)
20. 아침 이슬을 머금은 '원추리'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9:30:27)
21. 오고, 가고 또 머무르고.....
22. 운무에 휩싸인 반야봉과 삼도봉
23. 등산로는 아니지만 '가 보면' 좋은 곳
24. 저 멀리 섬진강이 아스라히 보이는 곳
25. 아름다운 동행~
26. 종주산행의 종착지, 노고단 풍경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후 1:03:1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