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밥솥 취사를 누르고(그동안 밥솥의 예약 기능을 사용했는데 얘는 지 꼴리는 시간에 밥을 해버린다) 아침에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밥통에 밥이 없다. 냉장고에 있던 쌀을 넣지 않았던거다. 미숫가루와 바나나로 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배가 비어선지 잠을 못자선지 어제 안주빨을 세우느라 위가 못쉬어선지 몸에 힘이 없고 어질어질 했다.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더니 이는 분명 아침을 먹지 못한채 출근을 하게 한 자기탓이라고 판단한 a는 빵을 사오겠다고 했다. a는 문을 열지 않은 동네 빵집 대신 큰 빵집으로 가서 또띠야 샌드위치와 슈크림빵, 치즈 스틱을 사왔다.  


 하나같이 맛이 없었다. 또띠야는 눅눅했고 안에 든 치킨은 퍽퍽했다. 오로지 살짝 새콤한 양념 맛으로 근근히 먹다 말아버렸다. 내가 음식을 남기다니, 내가 음식을 남기다니. 치즈 스틱은 속에 치즈 하나 든 것 말고는 성의도 맛도 없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평범한 슈크림빵을 베어물었는데 메주 냄새가 났다. 어제 먹은 청국장 맛을 아직도 기억하는건가. 조금 씹는다. 시큼시큼하다. 기미a에게 맛을 보라고 권했다. 당장 뱉는다. 나도 따라 뱉었다. 쉰맛도 구분 못하는 아치인 것이다.


 나는 거대 프랜차이즈의 음식 유통 문제와 맛없는 빵에 대해 한껏 짜증을 낸 후 몸을 일으켰다. a가 의심과 희망이 담긴 눈으로 나를 말리며 등을 떠밀었다. 우리는 씩씩대면서 큰 빵집으로 갔다. 가면서 어떻게 항의를 할지 모의 연습을 했다. 아프다고 드러누울까, 공간이 나올까, 눕다가 어디라도 찧으면 아플거 아냐, 그래 그건 좀 그렇다, 생크림 케잌 3호를 달라고 할까, 고작 슈크림빵 하나에? 본사에 이 지점 음식 문제를 올린다고 사뭇 강경한 소비자 흉내를 내볼까, 아 그건 좀 귀찮다. a는 자신이 맥주회사에서 일할 때 벌어졌던 클레임 사건에 대해 의기양양 얘기하고 나는 그게 또 좋다고 막 웃었다.


 빵집에 도착했다. 그냥 갈까. 괜히 왔다. 둘 다 혈액형과 상관없이 소심한 유형의 사람이고 아침부터 이런 일로 아침부터 일하는 분들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냥 갈까, 처음에 뭐라도 할 것처럼 굴더니 이꼴 날줄 알았다. 빵집 앞에서 미적거리고 있자 a가 쑥 들어간다. 내가 계산대에 슬그머니 상한 슈크림 빵을 올려놨더니 a는 방언 터진 사람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세상에, 빵이 상했더라구요. 여자친구한테 점수 좀 따려고 했는데 빵이 상했더라구요.(이 말 방금 전에 했잖아) 딱 먹으려고 하는데 냄새가 나서 뭔가 했는데 상했더라구요. (또또 말한다.)


 큰 빵집 직원들은 그럴 일이 없는데란 의심 대신 빵을 살짝 베어문 우리한테 해가 가진 않았는지 염려해주고 미안해하신다. 할 말이 없었다. 고의도 아니고 실수한건데 어쩌겠나. 아직까지도 또띠야 샌드위치가 넘흐 맛 없고 이런걸 비싼 가격에 파는 것도 당췌 이해가 안 가지만 그게 이분들 탓은 아니잖은가. 미안하다고 하고 계시는 분들께 '당당하게' 환불을 요구하고 나오는데 단판빵 두개를 주신다. 정말 미안하다며 방금 구운 빵이라고 먹어보란다. 한입 베어물었더니 달콤한 맛이 난다. 


 집에 가서 단팥빵 먹어야겠다 했는데 a가 벌써 깨끗이 먹어치웠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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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1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06-0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환불도 받고 단팥빵 두개도 받았다는거죠? 아..단팥빵 먹고 싶다. 난 지금 커피 내리고 있어요.

Arch 2012-06-01 15:43   좋아요 0 | URL
지금이 딱 출출할 시간이죠. 나도 배고프다.
간단하게 환불해줘서 좀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

잉크냄새 2012-06-0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쉰 냄새를 메주 냄새에 비유하는 건 천명관이도 못할 표현이네요.

Arch 2012-06-01 15:44   좋아요 0 | URL
^^ 잉크냄새님, 완전 과분한 댓글입니다.
비유라고 할 수 없는게 정말 그 냄새를 맡아서.

숲노래 2012-06-0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보면, 대형프렌차이즈 밑에서 일하는 사람 탓이 아닐 수도 있고 탓일 수도 있고...
스스로 작은 이름으로 작은 빵집을 꾸리면 한결 좋을 텐데,
그렇게 하면 돈이 안 된다 여길 수 있고, 돈이 될 수도 있고...

단팥빵을 혼자 먹어치워 못 드셨나 보군요. 저런... ㅠ.ㅜ

Arch 2012-06-04 09:00   좋아요 0 | URL
ㅋㅋ 단팥빵으로 깔끔하게 끝낸 것 같기도 해요. 달콤하긴 했지만 마구마구 먹고싶은 맛은 아니었어요.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ㅃ와 ㅁ과 기다렸다는 듯이(그렇다. 나만 기다린거 맞다) 즐찾 공개를 했다. ㅃ와 ㅁ 둘 다 서재 활동이 뜸하니 지금이야말로 즐찾계의 다크호스는 아치란걸 분명하게 해야겠다는 열망으로 눈빛이 이글거렸다. 하지만 고수는 이럴때 일수록 침착한 법. 불타는 눈빛을 감추고 정말 별거 아니란 듯이, 그깟 즐찾은 그야말로 껌처럼 재미삼아 심심풀이로 공개한다는 식으로 건성건성 대강대강 얘기를 건넸다. 


 아뿔싸!


 나보다 많다. (엉엉,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 소리가 들리는 브금 부탁해요)


 스마트폰으로 진짜 나보다 즐찾이 많다는걸 보여주며 확인까지 하는 정성에 다시금 아노미 상태,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글을 좀 줄이려고 했다. ㅃ와 ㅁ의 말처럼 양보다 질로 승부해야하는게 아니겠어 싶은거다. 요 몇 주, 검색으로 들어오는 분들 덕분에 방문자수가 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는데 새 글이 있어야지 않겠냐는 사명감에 즈질 페이퍼를 양산하는 아치는 이제 안녕. 검색으로 들어오는 사람 다 필요없다. 즐찾해서 들어와야 한다. 내 목표는 그런 것이다.


 사뭇 어줍잖은 비장미를 풍기며 어제부터 뻔질나게 서재를 드나들길 한나절 반.


 아니, 왜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1/4분기에 용을 써도 늘지 않던 즐찾이 갑자기 확 늘어났다 아무리 내가 리뷰를 기가 막히게 잘 썼다해도(어디 출신 잣인감?) 이건 좀 갑작스럽다. 잘 쓴 글이 이번 한번 뿐도 아닌데 말이다.(으하하하, 이런 문장을 한번쯤 써보고 싶었다)


 댓글이 없어 의기소침해지면 갑자기 방문자수가 늘어서 막 글을 쓰게 하고 

방문자수만 많지 추천이 없다고 하면 추천이 늘어난다.

추천만 많지 즐찾은 없다며 징징대면 기다렸다는 듯이 즐찾이 늘어난다.


 또 낚이고 말았다. 다시 양으로 밀어부치는 아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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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22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이상하긴 이상하네요. 왜 계속 활동하는 아치보다 그들의 즐찾이 많은거죠? 믿을 수 없어요!

Arch 2012-05-22 14:23   좋아요 0 | URL
이상하단 생각이 든건 아니고 여러모로 나는 낚이는구나, 싶었어요. 즐찾이 활동량하고 비례하는건 아닌 것 같아요.

Forgettable. 2012-05-2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속했잖아요. 즐찾 해주겠다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도 약속지킨듯ㅋㅋ

Arch 2012-05-22 15:26   좋아요 0 | URL
엉엉 ㅡ,.ㅜ;; 그랬구나, 그랬던거였어.
뭔 일인가 했어요. 정말 ㅁ이 계정 몇개 만들어서 미친듯이 즐찾하는거 아냐? ㅋㅋ 그럼 웃기겠다.

다락방 2012-05-22 15:39   좋아요 0 | URL
흐음..
나도 어제 두개 늘었던데....

Arch 2012-05-22 17:49   좋아요 0 | URL
진짜 ㅁ이 계정을 만든 것 같아요.
아니면 천재지변? ^^

잉크냄새 2012-05-22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해 찾아보니 즐찾되어 있네요.

Arch 2012-05-22 17:50   좋아요 0 | URL
히~ 귀여우세요^^
잉크냄새님의 즐찾은 은근 감동이었어요.

네꼬 2012-05-2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아요 괜찮아. 즐찾계의 바닥은 제가 맡고 있으니까 염려 마세요. (<-야, 너는 서재에서 날나리잖아!)

Arch 2012-05-22 17:51   좋아요 0 | URL
하하~ 네꼬님. 아직 제 즐찾을 모르잖아요. 제가 한수 아래일 수 있답니다.
네꼬님은 서재 날나리, 아치는 서재 미끼, 떡밥? 붕어! 그래 붕어겠구나.

이진 2012-05-2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이제껏 아치님을 즐찾하지 않고있던 제탓입니다.
오늘부터 아치님 즐찾들어갑니다!!

Arch 2012-05-23 09:56   좋아요 0 | URL
후~ 소이진님 왜 그러셨어요, 네?
저 완전 즐찾구걸쟁이 됐어요. ^^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즐찾 빼주세요. 그래야 더 열심히 양으로 승부하죠. (뭐래~)

카스피 2012-05-2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즐찾,추천,방문자수에 일희일비하는 소인입니당ㅜ.ㅜ

Arch 2012-05-24 08:58   좋아요 0 | URL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나만 그런게 ^^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박에스더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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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학교 때 장학사 온다고 마루바닥을 미친 듯이 닦아야 했던  기억들 한두개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교만 벗어나면 그런 일은 없을줄 알았다. 소심하고 겁 많은데 불만까지 많아서 매사에 부정적이었지만 학교를 탈출하는 대신 나는 얼른 나이가 먹어서 졸업하길 바랐다. 헌데 나이가 먹어서도 내용보다는 의전, 가치보다는 아부, 소신보다는 눈치로 돌아가는 주변 꼴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폭폭하다.


 어제는 본격적으로 커피 심부름과 아침에 윗 사람들 책상 닦는 문제로 팀장 주도하에 '여직원'만 모여서 회의를 했다. 예전에 비정규직이 잡일을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어린 정규직이 도맡아 일을 하는게 문제가 된거였는데 그렇더란 말은 쏙 빼놓고 쌍팔년도 예의를 들이밀며 조직에선 그러는게 아니라고 한다. 다들 예예, 꿀먹은 암말처럼 암말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뭐가 잘못되고 부당한지 애기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굳이 내 의견을 묻길래 조목조목 따지지 못하고 잘 모르겠다는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벌떼처럼 달려든다.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누구 혼자 잡일을 도맡아 하는건 기분이 나쁘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이러는 것도, 애초에 대우를 받으려고 드는 마음도 이해가 안 된다.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애초에 커피 심부름 자체가 없어야 하는데 한명만 일을 한다며 다른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본사에서는 업무경감 지시가 내려오고 요새는 각자 알아서 커피를 타먹는데 말이다. 권위란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발버둥으로 생기진 않을텐데 이 조직은 그런 일쯤에 꿈쩍도 안 한다. 여기에 있으면 내가 무척 모나고 잘못된 사람 같다. 심장이 조이고 긴장이 퐁퐁 솟는다. 

 그래서 이 책을 무척 읽고 싶었다. 분명 뭔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저자 소개는 어떤가.

 2004년 봄부터 만 4년간 KBS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를 진행했다. 당시 그는 정관계, 재계, 학계의 거물급 인사들을 데려다놓고, 말 못 할 속사정까지 낱낱이 털어놓게 만들어 청취자들을 열광시켰다. ‘한국에 이런 인터뷰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논리적이고 치밀한 그의 인터뷰는 미국 대통령이나 북한 주석과 인터뷰를 해도 ‘맞짱’ 뜰 것 같은 특유의 포스로 유력 뉴스메이커들을 놀라게 했다. 

 1년 동안의 미국 연수를 마치고 다시 취재 현장으로 복귀해 현재 ‘취재파일4321’에서 활동하고 있다. 법조 출입, 종군 취재 등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탁월한 근성을 발휘하는 그는 집요함과 치열함으로 무장한 우리나라 대표 여성 저널리스트다. 

냉철한 기자정신과 정확한 현장감각,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철벽같은 논리의 소유자인 박에스더는 이 책에서 ‘다른’ 대한민국을 속 시원히 커밍아웃했다. 권위주의 · 집단주의 · 합리성의 부재 · 비교 · 차별 등 일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집단적 고질병에 대해, 너무도 당연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구시대의 잔재들에 대해 박에스더는 묻는다. 우리는 왜 의심하지 않는가? 우리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목전에 둔 지금, 가장 먼저 무너뜨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의 좌절 고백이자, 스스로 찾아낸 희망에 대한 고백들이다.  (알라딘 저자 소개 중)


  한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맞짱 뜰 것 같은 특유의 포스'라니. 첫 대목부터 흥미로웠다. 조직의 지진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까닭, 서울대 대학원 시절에 타대학 학생으로서 받은 차별, 진보의 수사가 논리에 압도당해 대중을 설득할 수 없는 이유, 한국 성문화의 위선과 성욕을 배출해야하고 조절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변하는 특정 부류의 야만성에 대해 얘기한 부분은 설득력 있었다. 시끄러운 민주주의가 아니라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한방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약한 시스템의 사회 한국에서 사람들이 인맥에 목숨거는 이유, 도덕만 있고 철학은 없다, 진보는 이데올로기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프레임을 짜야한다는 주장 역시 신선하고 공감 됐다.


 하지만 미국 연수 1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본걸까. 한국의 단면을 놓고 미국 것이 더 낫다란 식의 주장과 몇몇 일화는 공감되지 않았다. 좀 더 센 얘기를 바란걸까. 아니면 좀 더 깊은 얘기를 바란걸까. 좋고 의미있지만 뭔가 살짝 아쉬운 책이다. 강준만 선생님처럼 한국인의 특성을 분류하고 자료를 통해 근거를 제시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주장'만을 쓴 글인데 주제에는 동의하지만 내용에는 반신반의하달까. 



 암튼,

 이번주 당번인 나는 찍소리 못하고 잡일을 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던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던가(그런 출구가 있다면) 아니면 삭히는 수 밖에 없다. (고작 커피 심부름 때문에 전전긍긍이라니, 커피 심부름 때문에 회의를 여는 조직에선 일상화된 심리상태) 권위주의를 해체할 수 있는 권위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개인의 경험을 녹여낸 이 책은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연수간 딸을 대신해 아이를 봐주러 부모님이 미국까지 온다는 얘기에서 저자와 나 사이의 거리를 느꼈다. 이 책이 살짝 아쉬웠던 건 내용이 주장 일변도여서가 아니라 고민의 질 자체가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는게 아니다. 이해는 되지만 공감은 안 된달까. 저자의 분명한 어조를 접할 때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접힌 부분 펼치기 ▼

 * 쿠바, 미국-> 강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있다. 약한 시스템의 나라 한국, 공정하게 작동하는 제도를 가진적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합리적 민주주의 문화 절실

* 달콤하지만 아슬아슬한 권위주의 실체- 자신의 권위와 체면이 손상됐다고 느끼는데서 오는 좌절감과 공포 때문. 권위는 권위주의에서 오지 않는다.

* 중년, 집중력이나 단기 기억력 등은 떨어지지만 판단력, 종합능력, 직관력, 통찰력, 어휘력은 훨씬 뛰어남.

* 내 여행의 여러 날들 중에 저런 '멍한' 순간이 한번이라도 있었나 되돌아봤다. 없었다.

*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진입장벽을 철저히 높여놓는다. '배타주의' 승장의 여유로움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한다면 혹시 내가 다시 패자가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다.

* 장하준 교수, 학력 인플레 현상으로 '분류 작업'에 드는 비용만 쓸데없이 낭비된다.

* 소비자가 원하는 건 치킨을 싸게 먹는 것. 가격 체제 공개하고 합리적인 치킨 가격 공시... 시끄러운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다. 시민들은 오히려 당국, 특히 청와대나 대통령의 '한 방' 개입에 더 익숙하다.

* 진보 패널들은 논리에 목을 맨다. 논리의 완결성 있어야 설득하고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정치 주체들은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대중의 필요에 의해 나왔다는 것을 대중이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진보는 '진짜 진보'란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선명성' 경쟁을 한다. 지나친 원리주의는 현실에의 적용을 헷갈리게 만든다. 제도적으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해야 하지만 이것은 가르친다고 되는게 아니라 합리와 논리를 뒤어넘는 '감정'을 갖고 있는 인간이 '느끼게' 해야 한다.

* 정치는 사회를 읽고,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위로 조직화해 해결책을 찾도록 강제하는 것. 이념이나 논리에 대중들은 감동 안 한다. 대중들은 그저 살고 싶을 뿐이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들어주려는 사람이 필요하다.

*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사람만이 진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권위주의 통치체제 하에선 가능한 얘기였다. 선민의식 버려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

* 우리는 아직 강한 시스템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 그저 분노를 분출만 하는게 아니라 제도 안에서 그 분노를 조직화하고 그 조직을 통해 서로 정정당당하게 대결해 승패를 가르고 그 결과에 따라 타협하고 더 좋은 시스템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합리적 민주주의의 경험을 아직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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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2-05-2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글 아주아주 좋은데, 아까 추천하고 댓글도 달려다가, 이 많은 추천에도 아무도 댓글은 안 달기에 눈치 보여서 참았는데, 근데 저도 추천했다고 말 안 하고는 배길 수가 없어서 이렇게 달아요.

Arch 2012-05-22 09:56   좋아요 0 | URL
와, 댓글이다! ^^ 저도 깜짝 놀랐어요. 이 글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추천 누를 때 내가 눌렀다고요, 막 이러면서 알려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네꼬님도 그렇구나~

생일상, 엄청 부러웠답니다~ 저도 막 강요해서 받고싶을 정도로 ^^
 

   같이 연극이랑 음악회, 극장에 다니는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활동한적이 있다. 의기투합해서 서로 뭉치긴 했지만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지 알 수 없어 분위기는 서먹하기만 했다. 다행히 영화를 보고 옮긴 자리의 흑맥주는 아주 맛있었다. 연신 맥주를 마시고 주절주절 떠들다보니 어느새 언니 동생하면서 찧고 까불게 되었다. 만화를 그리는 동생도 있었고, 인터넷 웹디자인을 하는 동생도 있었다. 그렇다. 이제 이런데 나가면 '나는 언니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만화를 그린다는 친구가 인물화를 그려서 당사자에게 주는 장면을 포착했다. 상당히 미화되긴 했지만 쓱쓱 그려서 주는 그림이라니. '나도 갖고 싶다, 나도 그려줘요, 나도 나도'란 말은 초면이라 차마 대놓고 하지 못하고 괜히 표정관리만 하고 앉았었다. 혹시 나를 그리는데 못나보이고 싶지 않은 술 취한 사람의 발악 같은거? 어차피 얼굴은 벌겋고 음악 소리가 크다며 소리를 지르느라 목청 돋고, 사소한 얘기에도 뒤로 넘어갈 것처럼 웃어제끼느라 표정 관리가 될 턱이 없는데도 말이다.


 두번째 맥주잔을 다 비울 즈음 그 친구는 그리던 그림을 내게 내밀었다. 그 속에 이가 하얀 아치가 있었다. 내 얼굴을 그린 그림을 받은건 처음이었다. 너무 고맙고 진심으로 기쁜데 전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 친구에게 무슨 만화책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몇개의 만화책 제목이 나왔다. 토끼 드롭스? 토끼 드롭스. 육아에 관한 만화라길래 메모해놓았다. 학생이라 만화책 살 형편은 아니란 말은 기억 기억. 그래놓고 잊어버렸는데 어찌어찌 쿵짝쿵짝 이찌이찌해서 그 만화책을 얻게 되었다. 만화책 몇권 정도는 부담 느끼지 않고 살만큼 형편이 나아진 아치? 는 아니고 어쩌다 떠맡게 된 것.


 라디오 프로에서 받은 홍삼치킨(작명센스 건강 돋네) 쿠폰과 토끼 드롭스를 들고 그 친구 학교에 갔다. 날씨가 살짝 추웠다. 우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날도 추우니 얼른 들어가서 더 좋은 그림 그리라며 그 친구와 헤어졌다. 그 친구, 꽃남이었다면 언니 가슴 살짝 콩닥였겠지만 수수한 여학생이었다. 나는 수수한 언닌데.


 그 친구가 그려준 그림은 빳빳하게 코팅해서 내 방 제일 좋은 자리에 세워놨다. 가끔씩 들여다보면 맥주 먹고 기분이 업돼서 볼이 발그레한 아치가 보인다.



 

 










 토끼 드롭스에서 제일 좋았던 컷 



 프레이야님의 '첫문장을 주세요'에 도전!(도전은 좀 그렇지?)하고 싶지만 소설 아닌 책만 읽고 있는 지금으로선 괜찮은 첫 문장을 골라내기가 어렵네요. 만치님 페이퍼 보다가 이 책이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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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그때 까지는 절대 안 죽을게!!

Arch 2012-05-18 15:2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저는 세세한 결까지 읽어내는 재주가 없었어요.

이진 2012-05-1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끼드롭스, 토끼드롭스!!!!!
만화책도 보고파요. 너무 보고파요. 영화는 진짜 진짜 재밌었는데.
저 장면도 영화에서 무지 잘나왔었는데 말이죠 ㅎㅎㅎㅎㅎㅎ

Arch 2012-05-18 21:35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서재에서 저 꼬마를 보고 참 기분 좋았어요.
저는 만화가 정말 좋지는 않았지만 저 장면은 무척 설렜어요.
저는 반대로 영화가 어떨지 궁금한데요. 소라닌 영화는 보기 싫었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 보고 싶어요.

프레이야 2012-05-1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첫 문장 이상으로 좋은걸요.
날 믿어. 그때까지는 절대 안 죽을게.
만치님 페이퍼에 이어서 아치님까지(치 돌림^^) 바니드롭 찜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Arch 2012-05-18 21:47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치님께 막 아는척 해야겠어요. 치자 돌림이라고^^
토끼드롭스, 강추는 아니고 중추? 중간 추천이요.

프레이야 2012-05-19 12: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치자돌림
바니드롭 저는 영화로 찜하려구요^^
근데 만화도 넘 사랑스럽네요.
즐거운 토욜 보내세요 아치님^^
 

 영미는 부자집에 입양된다. 

영미는 사고 싶은걸 마음대로 산다. 

영미가 부럽다.

(옥찌는 뭐 사고 싶은데?/ 그건 잘 모르겠어)



나는 김치를 좋아한다. 

근데 은아는 김치를 싫어한다. 

은아는 왜 김치를 싫어할까. 

은아는 김치가 시큼털털해서 싫어한다고 한다. 

나는 김치가 아주아주 맛있다.


나는 앞으로 음식을 남기지 않을거다. 

그리고 빌려준 물건은 항상 갖다줄거다. 

왜냐하면 물건을 빌려준 사람이 속상하기 때문이다.




춘희처럼 공주가 대고 싶다. 

왜냐하면 공주는 드레스를 입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왜 공주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엘리자베스 공주가 부럽다. 

공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편에는 엘지자베스 공주는 종이봉지공주가 대서 조금 엘리자베스 공주가 싫다



달이의 다리는 세개다. 

왜냐하면 아저씨가 톱질할 때 심심한 달이는 혼자 드리나 산으로 혼자 놀다 노루 잡는다고 놓은 감거리 같은 덫에 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달이가 불쌍하다. 

우리 강아지는 안 다쳤으면 좋겠다.


 나는 안철수 아저씨가 몇년에 태어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책에 안 써있기 때문이다. 

나는 안철수 아저씨를 만나면 이 책을 왜 썼는지 자기 이름을 왜 책에 넣는지 몇년에 태어났는지 물어볼 것이다. 
행복바이러스 안철수는 이상한 이야기만 나온다.



나도 이 책의 고양이가 되어 병원, 의상실, 중국집을 가보고 싶다. 아름다운 옷을 만들 수 있고 의사 싸인도 받을 수 있고 요리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감자를 좋아하고 할아버지 때까지 감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감자 묻기 놀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모래쑥 냄새를 상상해서 맡아도 맛있을 것 같다.




내 꿈은 패션디자이너다. 

힘이 들어 보인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패션디자이너가 되면 미술관도 가야 되고 일주일에 세번은 시장을 가야 되고 패션쇼도 해야 해서 너무 힘들어 보인다


나는 탐정일도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더두는 정말 나쁘다. 

왜냐하면 탐정에게 토룡이 친구인 것처럼 굴다가 토룡이를 찾아올때는 토룡이를 잡어먹을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두더지는 새에게 잡혀 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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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05-1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하하하, 옥찌 짱!

Arch 2012-05-17 13:40   좋아요 0 | URL
어디가요, 어디가요.
전 안철수씨 책이랑 이오덕의 그림책에서 헉 했는데

치니 2012-05-18 12:55   좋아요 0 | URL
영미네 집 이야기랑 안철수 책, 편견없는 옥찌 짱이라는 뜻이었어요. :)

Arch 2012-05-18 15:26   좋아요 0 | URL
아, 그 얘기였구나. 그러고보니 저도 그랬어요.

네꼬 2012-05-21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감자를 좋아하고 할아버지 때까지 감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푸하하하하하하. ♡.♡ 이오덕 선생께는 최고의 평일 수도! 으하하하하하하.

Arch 2012-05-22 09:57   좋아요 0 | URL
히~ 치니님도 그렇고 감히 안철수 책을 읽고, 감히 이오덕 선생님한테? 이런 느낌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