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밥솥 취사를 누르고(그동안 밥솥의 예약 기능을 사용했는데 얘는 지 꼴리는 시간에 밥을 해버린다) 아침에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밥통에 밥이 없다. 냉장고에 있던 쌀을 넣지 않았던거다. 미숫가루와 바나나로 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배가 비어선지 잠을 못자선지 어제 안주빨을 세우느라 위가 못쉬어선지 몸에 힘이 없고 어질어질 했다.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더니 이는 분명 아침을 먹지 못한채 출근을 하게 한 자기탓이라고 판단한 a는 빵을 사오겠다고 했다. a는 문을 열지 않은 동네 빵집 대신 큰 빵집으로 가서 또띠야 샌드위치와 슈크림빵, 치즈 스틱을 사왔다.
하나같이 맛이 없었다. 또띠야는 눅눅했고 안에 든 치킨은 퍽퍽했다. 오로지 살짝 새콤한 양념 맛으로 근근히 먹다 말아버렸다. 내가 음식을 남기다니, 내가 음식을 남기다니. 치즈 스틱은 속에 치즈 하나 든 것 말고는 성의도 맛도 없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평범한 슈크림빵을 베어물었는데 메주 냄새가 났다. 어제 먹은 청국장 맛을 아직도 기억하는건가. 조금 씹는다. 시큼시큼하다. 기미a에게 맛을 보라고 권했다. 당장 뱉는다. 나도 따라 뱉었다. 쉰맛도 구분 못하는 아치인 것이다.
나는 거대 프랜차이즈의 음식 유통 문제와 맛없는 빵에 대해 한껏 짜증을 낸 후 몸을 일으켰다. a가 의심과 희망이 담긴 눈으로 나를 말리며 등을 떠밀었다. 우리는 씩씩대면서 큰 빵집으로 갔다. 가면서 어떻게 항의를 할지 모의 연습을 했다. 아프다고 드러누울까, 공간이 나올까, 눕다가 어디라도 찧으면 아플거 아냐, 그래 그건 좀 그렇다, 생크림 케잌 3호를 달라고 할까, 고작 슈크림빵 하나에? 본사에 이 지점 음식 문제를 올린다고 사뭇 강경한 소비자 흉내를 내볼까, 아 그건 좀 귀찮다. a는 자신이 맥주회사에서 일할 때 벌어졌던 클레임 사건에 대해 의기양양 얘기하고 나는 그게 또 좋다고 막 웃었다.
빵집에 도착했다. 그냥 갈까. 괜히 왔다. 둘 다 혈액형과 상관없이 소심한 유형의 사람이고 아침부터 이런 일로 아침부터 일하는 분들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냥 갈까, 처음에 뭐라도 할 것처럼 굴더니 이꼴 날줄 알았다. 빵집 앞에서 미적거리고 있자 a가 쑥 들어간다. 내가 계산대에 슬그머니 상한 슈크림 빵을 올려놨더니 a는 방언 터진 사람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세상에, 빵이 상했더라구요. 여자친구한테 점수 좀 따려고 했는데 빵이 상했더라구요.(이 말 방금 전에 했잖아) 딱 먹으려고 하는데 냄새가 나서 뭔가 했는데 상했더라구요. (또또 말한다.)
큰 빵집 직원들은 그럴 일이 없는데란 의심 대신 빵을 살짝 베어문 우리한테 해가 가진 않았는지 염려해주고 미안해하신다. 할 말이 없었다. 고의도 아니고 실수한건데 어쩌겠나. 아직까지도 또띠야 샌드위치가 넘흐 맛 없고 이런걸 비싼 가격에 파는 것도 당췌 이해가 안 가지만 그게 이분들 탓은 아니잖은가. 미안하다고 하고 계시는 분들께 '당당하게' 환불을 요구하고 나오는데 단판빵 두개를 주신다. 정말 미안하다며 방금 구운 빵이라고 먹어보란다. 한입 베어물었더니 달콤한 맛이 난다.
집에 가서 단팥빵 먹어야겠다 했는데 a가 벌써 깨끗이 먹어치웠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