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은 우리 회사 건물에 있는 메가박스에 가서 영화를 보는 날이다. 목요일이여야 하는 이유는 메가박스에서 발급받는 메가티즌이라는 적립카드가 있는데 목요일날 그 적립카드를 들고 가면 1,500원 할인을 해 주기 때문이다. KTF 멤버스 카드로 1,500원. SK텔레콤 멤버쉽 카드로 2,000원. 메가티즌으로 3,000원 (카드가 2개임) 을 할인 받으면 6,500원으로 둘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한달에 한번 금요일은 KTF 카드로 무료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 그때는 이것저것 할인을 받으면 4,500원으로 둘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난 목요일도 친구와 나는 영화를 봤다. 이름하야 홍반장. 원래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다소 긴 제목을 달고 있다.

치과의사 윤혜진은 병원의 부당한 처우에 욱하는 심정으로 사표를 낸다. 하지만 협상용으로 냈던 사표는 진짜 수리가 되어버리고 그녀는 일 할 병원을 찾아 다니다가 직접 병원을 차리기로 한다. 바다가 보이는 조그만 마을에 정착한 윤혜진은 홍두식이라는 일당5만원 동네 잡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윤혜진이 치과를 개업할 곳을 찾아주었으며 인테리어도 해 준다.(물론 일당 5만원을 받고 한다.) 그런데 이 남자 어딜가나 다 있다. 윤혜진이 편의점에 가면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고 물건을 주문하면 택배사 직원이 되어 물건을 배달하러 오고 짜장면을 시키면 철가방이 되어, 김밥을 시키면 김밥 배달부가 되어 윤혜진의 곁을 끝없이 맴돈다. 그렇다고 해서 홍두식이 사심이 있어 그러는 것이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그냥 홍두식은 우리가 하나씩만 가지고 있는 Job을 여러 수십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여차여차해서 외롭던 윤혜진과 다소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던 홍두식은 삐리리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영화는 둘이 연결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한 내용으로 흐른다.

내가 이 영화에 기대를 한 것은 엄정화라는 배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보고 나서 그녀가 늘 비교가 되는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가 영 붙지 않아야 할때 붙었다는 마음을 거두고 좀 너그럽게 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과거 그녀에게 '눈동자'라는 곡을 주었기 때문에 예의 주시하고는 있었지만 내가 인정할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않은 그녀였다. 물론 나올 때 마다 새로운 컨셉으로 눈요기거리는 충분히 해 주었지만 그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정현도 마찬가지의 재주를 부리고 있으므로 크게 점수받을 만한 짓은 아니었다.

그리고 싱글즈를 보면서 그녀가 물이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오바를 해도 그녀가 하면 그럭저럭 봐줄만한 무언가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는 너무 심하게 이쁜척을 한다. 이쁘지 못한 여자의 못된 심성이라 해도 할 말 없지만 나는 이쁜척 하는 것들을 너무나 싫어한다. (못생긴게 이쁜척 해도 싫고 이쁜게 이쁜척 해도 역시 싫다.) 거기다 시나리오도 다소 엉성하다. 충분하게 재밌을 수 있는 소재였는데 중간중간 잡음이 너무 많다. 분명 서른살 여자가 주인공이면 보는 연령대를 생각해서 그 정도의 수준은 맞춰 줬어야 하는데 이건 이십대 초반의 영화였다. 또 하나 윤혜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이 없었다. 그저 성질만 부릴줄 알고 이쁜척만 하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갑부집 딸임에도 불구하고 지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씩이나 되었더라 하는 것은 정말이지 진부한 소재이다.

윤혜진이 처음 치과를 개업할때 그녀의 친구가 한마디 한다. '맨날 가방 사고 신발 사느라 돈 없는줄 알았더니 제법 모았구나' 뭐 이것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윤혜진은 허영끼와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여자이다. 그런 여자가 아버지의 돈이 싫어서 혼자 고생고생 하며 자수성가 했다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다. 진짜 돈이 있어야 사치가 가능한 가방과 신발을 사대고 편의점에서 제일 비싼 와인을 싸구려라 생각하며 사서 마시는 여자가 어떻게 이미 가진 부를 거부하는 캐릭터가 된단 말인가?

우리나라 영화에서의 여자는 겨우 저 정도라는 것이 참 한심스러웠다. 물론 윤혜진이 온갖 궁상을 다 떨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알고보니 부자집 아가씨 였더라라는 부분은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홍두식이란 작자는 변변하게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오로지 그 매력 (난 뭐가 매력인지 모르겠다만) 하나로 평생 먹고살 걱정은 안해도 되는 치과의사를 잡고(극중 윤혜진이 자기랑 결혼하면 남는 장사라고 직접 표현씩이나 해 주시는) 그것도 약간 모자랐는지 그 치과 의사는 부잣집 딸이기까지 하다. 이 정도면 너무 억지가 심하다. 직업없는 남자는 의사랑 결혼하면 안되냔식으로 말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영화는 현실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실을 비추는 거울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런 잘잘한 영화에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도저히 보고 넘길수가 없다.

만화같은 캐릭터인 홍반장.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거기에 뻑하고 맛이 가 버리는, 서른 치고는 약간 모자라는 애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이 없는 치과의사. 이 모든게 섞인 짬뽕은 먹는 내내 소화불량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도 모른다. 이제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엄정화이기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버렸다. 결혼은 미친짓이다에서의 사실적인 연기도, 싱글즈에서의 독특하고 대찬 연기도 아닌 그저 밋밋한 공주병 환자 정도의 연기력만 보였다. 어쩌면 이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닌 연출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녀. 너무 심하게 귀여운척을 했다. 내가 서른 코앞인 스물 아홉이라서 아는데 저렇게 대책없이 귀여운척만 하면 남자만 좋아하지 여자들은 무척 재수없어 한다. 남자 하나 잘 물어서 남은 인생 탄탄대로를 걸으리라 각오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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