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주말 드라마가 주춤했었는데 얼마전 내 시선을 끄는 드라마가 새로 시작했다. KBS 2TV의 애정의 조건이 그 드라마이다.

등장 인물은 금파인 채시라와 은파인 한가인을 주축으로 해서 금파의 남편은 이종원. 은파의 동거남 박용우.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로는 지성이 나온다.

어제까지의 내용으로 보자면 금파는 변호사 남편에 딸 하나를 둔 주부이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심증이 확실해서 영 마음이 편칠 않다. 금파의 동생 은파는 학교다니는 핑계로 나와 살다가, 학교를 마쳤음에도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박용우와 동거를 하기 때문이다. 박용우는 과거 은파가 사귀었던 지성과 친구사이였고 지성이 군대를 들어간 동안 은파는 고무신을 거꾸로 꿰어찼다. 박용우는 영 변변찮은 날나리로 등장하고 이종원은 회사 직원과 바람을 피우기 때문에 금파와 은파의 앞날은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채리라 라는 여 배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기는 잘 하는 것 같은데 뭐랄까 너무 여우같기 때문이다. 꼭 늙은 여우같은 응큼함이 느껴져서(앙큼한건 상관없다.) 이다. 한때 여명의 눈동자를 보고 그녀의 연기력을 인정하긴 했으나 테리우스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 가수와 사귈때도 고운 시선으로 보이지 않았고 (당시 신모 가수의 팬이었던 내 친구가 채시라와 사귄다는 소리를 듣고 엄청 낙담을 하자 '저것들 얼마 안가 깨진다 내 장담한다' 고 말했었는데 진짜가 되어버렸다.) 잡지 여기저기에 마치 보여주기 위한 커플들 처럼 신나게 화보를 찍어댈때도 뭔가 뒤가 구려 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재미를 느낀 것은 은파 때문이다. 예전에 옥탑방 고양이를 보면서 어쩌면 동거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애들 장난치듯 다뤄놨을까 싶어서 늘 챙겨 보면서도 '비현실적이야' 와 '말도안돼'를 외쳤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동거를 꾀 현실감 있게 다룬것 같다. 동거를 하면서도 딱 한번 술김에 일을 치고. 돈 없다 없다 하면서도 절대 궁색해 보이지는 않았던. 아니 오히려 마늘까고 어쩌고 하며 필요 이상으로 궁상을 떠는 것이 더 어색해 보였었던 옥탑방 고양이와는 분명하게 차이를 두고 있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은파는 동거를 하느라 그렇게 되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 꿈을 접고 지금은 돈을 버느라 정신이 없다. 낮에는 어린이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나이트 클럽 웨이터로 밤낮없이 일을 한다. 그에 비해 그의 동거남인 박용우는 불행한 가정사를 들먹이며 동정이나 얻으려고 하고 곧 죽어도 폼을 외치며 사는 인간이다. 한마디로 함께 살기에는 최악의 조건을 다 갖춘 남자이다. 급기야는 사채인지 뭔지 까지 빌려써서는 은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은파는 돈을 구하느라 동동 거리면서 박용우를 잡아다 감금한 사람들에게 '제발 때리지만 말라'고 애원한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말 할 것이다. 세상에 멀쩡한 여자가 뭐가 모자라서 저러냐고. 하지만 그건 사랑이 개입되지 않았을때 말이다. 일단 사랑을 하고 나면 암만 모자라고 암만 아니여도 그래서 가끔 용서가 안되게 미울때가 있어도 어쩔수가 없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한심해 보이던 사람도 사랑 하는 눈으로 보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동거하는 커플들을 심심찮게 봐왔다. 그리고 꼭 은파의 상황 같은 케이스도 봤었다. 내가 아는 한 커플은 2년 정도 동거를 했었는데 남자가 멀쩡하지만 백수라서 여자가 1년 반 정도 그를 먹여 살렸다. (맨 처음 만났을때는 남자도 백수는 아니었었다.) 거기다 남자가 씀씀이가 해퍼서 (옷과 술) 카드값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결국 그녀는 2년이 지나고 나서 그 대책없는 남자와 헤어지게 되었다. 남자에게 용돈 주고 카드값 갚아주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고스란히 혼자 다 감당했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어딘가 좀 멍청한 여자가 아닌가 싶었다. 아니 왜 멀쩡한 남자를, 그것도 결혼을 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던지 하는 상황도 아니면서 자기가 뼈빠지게 먹여 살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녀가 그를 동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용우처럼 그 역시 불우한 가정 환경을 지녔었고 약효가 떨어질때 마다 술마시고 들어와서 울며 자신의 불행했던 지난날을 얘기했었다. 그녀는 그가 불쌍했다고 한다. 너무 안되어서 자기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고. 지금의 그녀는 그를 잊고 잘 살고 있다. 얼마전에는 결혼도 했다.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남편은 대책없던 그 남자와는 정 반대의 타입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 드라마는 금파의 이혼 (남편의 여자 문제로 인한)과 은파가 아이를 가지고 미혼모가 되는 과정을 그리게 된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이혼도 혼전 임신도 모두 여자에 너무 큰 짐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이혼하고 싶어도 참고 때로는 수술대위에 눕기도 하는 것이리라. 요즘들어 이혼 증가율이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전부 여자들이 굳이 참고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기 때문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있다.

물론 되도록이면 이혼을 하고 살지 않는게 최선책이겠지만 일방적으로 여자가 어떻게건 참던 시대는 갔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이혼녀에 대한 꼬리표는 길고도 길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혼모에 관한건 아무런 해결도 대책도 없다. 마치 아이를 없애는 것 만이 최선책이라는 듯 세상은 미혼모에게 절대 호락호락 하지 않다. 그나마 돈이라도 빵빵하게 많으면 몰라도 세상에 부자 미혼모는 그렇게 흔하질 않다. 육아와 동시에 금전적인 문제 그리고 따가운 시선마저 동시에 견뎌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 고문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 육아나 경제적인 어려움 혹은 따가운 시선 거두기 중 어느 하나도 우리 사회는 해 주고 있는게 없다. (단 한가지만 해 주어도 그녀들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얘기를 하다가 너무 무거워져 버렸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혼과 미혼모라는 소재를 통속적인 재미를 위해 눈요기거리로 다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nugool 2004-03-22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드라마 괜찮던가요? 피디가 아는 이의 남편이거든요. 드라마 제목을 고민하던데 애정의 조건이 되었군요... 담주에는 의무감으로 봐줄려구요. ^^

연우주 2004-03-23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시놉시스를 대충 봤어요. 플라시보님께서 써놓으신 내용을 보면 저도 기대를 하게 되네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자라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글을 kbs 홈에서 봤거든요. 암튼 어떻게 진행될지는 봐야 알겠지요.

플라시보 2004-03-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너굴님. 지금처럼만 드라마가 진행이 된다면 의무감이 아닌 재미로 보실 수 있을듯 합니다. (단2회 봤지만 느낌이 괜찮았어요.)
연보라빛 우주님. 제 생각에는 가족의 소중함 보다는 여자들의 삶에 조명이 맞춰질듯 합니다. 예전에 채시라가 이혼녀 역활을 한번 한 적 있었는데 (이재룡씨도 나오고 채시라는 약사였던가 그랬습니다.) 채시라씨의 말로는 그때보다 훨씬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가인도 신인 치고는 비중있고도 무거운 역활을 맡은것 같구요. 아무튼 기대되 되고 더 지켜봐야 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