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라이프
허안화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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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인장이 연상될 정도로 삶과 관계, 세월을 담백하고도 정밀하게 응시한 [심플 라이프]를 감상하는 내내 괴리감이랄까, 솔직히 약간의 이질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대를 이어 양씨 가문의 하녀로 일해온 아타오(엽덕한 扮)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요양원 행을 자처, 그녀의 손에서 똥오줌 가리고 중년이 넘도록 자라나다시피 한 독신 영화 제작자 로저(유덕화 扮)는 아타오를 물심 양면으로 지극 정성 보살핀다. 혈육이라도 저렇게까지 하긴 힘들 텐데. 헌데 어라. 로저의 죽마고우들을 비롯, 외국에서 찾아온 누이까지 매한가지 마음결이다. 그들의 관계엔 흐믓한 나눔과 기댐이 있을 뿐 사람들 간 응당 맞닥뜨리게 되는 밀고 당김의 역학, 마찰, 알력, 앙금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이거 참.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서 선량하기 그지없는 특정 계층 사람들 얘기로구나 싶었다. 허나 영화가 중반을 지나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조심스러운 표정과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에, 작품 자체의 호흡과 흐름에 동조됨을 느꼈다. 아타오와 로저의 관점으로 요양원 사람들의 퍽퍽한 처지, 비루한 속내에까지 시선이 미치면서 노령화 사회의 문제들을 환기하는가 하면 점점 짙어가는 아타오의 병색을 따라 그토록 이상적인 유사 모자관계지간에도 불가항력이기 마련인 사별, 어쨌건 남남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간극을 쓸쓸히 지켜보게 된다.

 

감상 개입의 여지없이 절제된 감정선으로 정서적 평정을 유지한 작품 어조와는 별도로 올드팬 입장에선 자꾸 울컥 치밀게 된달까. 연출도 연출이지만 [심플 라이프]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무상, 30년 전 [법외정]에서 처음 만났던 엽덕한과 유덕화 두 베테랑 배우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전해오는 정한이 어찌 말로 형용할 길 없는 감흥에 젖어들게 했다. 한 시절 제대로 풍미했으나 그 혼란스럽던 1997년 홍콩 반환을 거치며 누군가는 시대의 격랑에 떠밀려 등락을 거듭하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홍콩 영화계의 빅 브라더로 서있는 중견들 - 서극, 홍금보, 황추생 등 - 의 특별 출연은 격세지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허한화 감독은 화면 밖의 향수조차 필름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 동방에서나 서방에서나 이역일 수밖에 없는 홍콩이라는 공간의 추억과 운명, 떠나간(갈) 자들과 남겨진(질) 자들의 회한까지 애틋하게 보듬었다. 엔딩 타이틀이 오르는데 눈물과 미소가 동시에 번져났다. 여운이 오래 갈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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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0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삶을 위로하는 일은
자신의 삶을 위로하는 일이 된다. 직접 고난을 겪고 위로를 배우게 되는 신의 사랑.
울고 웃고 나고 죽는 것, 그외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 때를 알고 곳을 아는 게 심플라이프가 아닐까. 담백하게살자. 코끝 찡해지는 영화다.
‥ 서쪽섬님 리뷰 읽으며 이 영화 보고 적었던 메모를 뒤적였어요.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3년전에 보았네요.

풀무 2015-09-04 17:39   좋아요 0 | URL
예.. 쓸쓸한 온기랄까요. 막상 화면에 배어들기 어려운 온갖 감정, 정서들이 자연스레, 담백하게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욕망
시노하라 테츠오 감독, 무라카미 준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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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빠지고 싶은 건 따뜻하게 살아있는 너의 살 속이야,라니 세상에. 감성 멜로를 가장한 그저 그런 일본 세미 포르노그래피구나, 그만 끌까, 하다가 바닷가 자살씬에서 저 대사가 '다시' 허나 '다르게' 변주되어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치밀었다. 불구인 마사미(무라카미 준 扮)와 그를 갈망하는 루이코(이타야 유카 扮)의 고통, 절망, 상실감이 사무치게 와닿았달까. 섹스를 관념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불완전 관능의 정점, 욕망은 곧 결핍의 또다른 이름임을 이토록 직설로 절절히 보여주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세계에 심취해 이미 고인이 된 대작가의 저택을 그대로 재현해서 집을 지은 초로의 심리학자, 자길 구원해줬다며 그와 결혼한 자유분방한 여자, 그 여인을 사랑하는 건장하지만 성불구인 청년, 그리고 그를 사모하면서도 다른 유부남과의 육체적 탐닉에 빠져 있는 여고 도서관 사서... 각자 정신과 육체의 괴리로 인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희구의 대상을 향하여 끝없이 물고 무는 인물구도. 너무도 통속적인, 결코 수작이랄 수 없는 영화인데(시노하라 테츠오 감독의 시네마틱 센스는 정말이지 꽝이다), 끝까지 보고 나서 기분이 주체할 수 없을 지경으로 짓눌려 가라앉는다. 일본 본토에서 유명하다는 코이케 마리코의 원작보다도 극중 루이코가 낭독하다 추억이 깃든 단풍잎을 발견하고서 끝내 눈물을 떨구고 마는, 미시마 유키오의 유작 [풍요의 바다]를 읽고 싶어진다.

 

부드러운 담요 안에서 두 사람은 내리는 눈에 덮여갔다.
그들이 입을 열었다면 눈은 뱃속에도 쌓였을 것이다. 

- [풍요의 바다] 1편 '봄의 눈' 중에서 -


마지막 페이지를 펴 주시겠습니까.
마지막이 최고이지요. 가장 좋아요...


그곳은 화장한 날의 평범한, 그저 정원의 모습이었다.
매미의 목청 좋은 울음은 마치 묵주의 소리처럼 들렸다.
다른 소리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정원에는 공허함만이 있었다.
오토바이는 그로 하여금 기억에도 없는 곳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여름 태양이 정원에 영원한 침묵으로 남았다.

- 영화 [욕망] 엔딩에 인용된 [풍요의 바다] 4편 '천사의 몰락' 마지막 문단 -


[작가의 변]

 

영화가 원작자의 의도를 반이나마 구현해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미시마 유키오는 문자 그대로 자기극화(自己劇化)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연출하고 연기하고 스스로 막을 내린다. 그런 철저한 삶이야말로 그의 문학적 관념과 우아한 미의식, 돋보이는 천재적인 명석함을 낳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욕망]에서 나는 그와 유사한, 냉철한 정신을 가진 남자, 그런 종류의 정신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남자에 대해 묘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본 작품의 여주인공은 그런 남자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을 응시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검증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지하게.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는 대담무쌍하게. 정신이 개재하는 성과 그렇지 않은 성. 양자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입장에서 문제는 항상 정신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써보고 싶었다. 본서를 두고 일본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오마주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은 아니다. 미시마의 미의식과 관념성 등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남자가 여자를 찾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전통적인 연애극으로서 읽고 있는 젊은 독자도 많을 것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 읽든 상관없다. 소설이란 본래 그런 게 아니던가.  - 코이케 마리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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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7-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이런 영화를 찾으시는지???

풀무 2015-07-21 16:24   좋아요 0 | URL
케이블 영화채널 심야시간대에서 우연히 만난 영화입니다. 한국에선 새벽마다 자주 해줘요. ^;

권준호 2015-07-2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긴 글은 핸드폰으로 작성하신 가에요??!

풀무 2015-07-21 16:24   좋아요 0 | URL
컴으로 작성했습니다. 핸드폰은 전화, 메시지 용도로만 쓰고 있는 원시인이에요. ^

권준호 2015-07-2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컴퓨터로 적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북플 사이트에 들어가면 따로 글쓰는 페이지는 없던데요~ ㅜㅜ
알라딘 서재에서 작성하신 건가요???

풀무 2015-07-22 05:00   좋아요 0 | URL
예. 그냥 서재 블로그에서 포스팅한 거라서.. 제가 북플은 얘기만 듣고 한번도 들어가 본 일이 없는데(2G폰을 쓰고 있습니다), 북플에서도 일반 서재 포스트들이 보이나 봅니다.

권준호 2015-07-22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사해요~ 포스팅어떻게 하는건가 궁금했는데 ㅎㅎ 이제 명쾌하게 알았네요~^^

풀무 2015-07-24 00:4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다음번에 준호님 포스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코스모폴리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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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비그뉴 허버트의 '포위된 도시(The Report from the Besieged City)' 중 '들쥐를 화폐로 썼다(a rat became the unit of currency)'는 인용구로 시작하는 영화 [코스모폴리스]는 한마디로 현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의 암울한 지옥도다. 기승전결 구분 없이 유영하는 카메라는 유년 시절 추억이 어린 단골 이발소(시민 케인의 '로즈버드'와 유사 오브제)에서 이발을 하겠다며 고급 리무진을 타고 무리하게 뉴욕 도심을 가로지르는 젊은 갑부 에릭 패커(로버트 패틴슨 扮)의 심란한 하루 일정을 따라 붙는다. 수억 달러의 막대한 자금을 위엔화 가치절하에 배팅했다가 파산 직전까지 몰린 상태에서 그는 반나절 동안 리무진이라는 자본의 성(城)에 찾아드는 전산전문가, 회계사, 큐레이터, 인문학자, 주치의 등 각 분야 관계자들과 회합하는가 하면, 신혼인 아내를 탐하나 거부당하고 자신의 결혼 소식을 뉴스로 알게 됐다는 섹스파트너와 얕은 육체관계를 맺는다. 리무진 밖 꽉 막힌 시가지는 유산계급을 타도하자는 시위대로 들끓는데 대통령 행사 차량 진입, 흑인 래퍼의 장례식 행렬까지 겹치고 에릭을 호시탐탐 노리는 암살자가 잠복해 있다는 보고가 끊임없이 타전된다. 호사스런 실내 장식과 달리 폐색된 리무진 내부의 공기와 복작대는 거리 풍경이 차창을 경계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와중에 IMF 총재가 암살되면서 세계 경제는 공황에 빠진다.


영화 서두에 인용된 즈비그뉴 허버트의 싯구 이상으로 작품에 결정적인 단서조항 격의 문장이 나온다. 시위대가 점거한 뉴욕 거리 전광판에 현시되는 '자본주의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는 차용문.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던 맑스의 공산당 선언 첫 문장을 작품에 맞게 뒤집어 제시한 것이다. 원작이라는 돈 드릴러의 소설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영화에선 주인공 에릭의 캐릭터 자체가 그대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반영하고 있다. 냉철하면서도 늘 뭔가 들뜬 듯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에 창백하고 공허한 표정, 멀끔한 겉과 달리 전립선 비대칭으로 뒤틀린 육체, 즉흥적인 성격과 강박적인 행동들... 무료한 차 안과 삭막한 차창 밖으로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에릭과 접촉하는 주변 인물들과 결말부에 이르러서야 정체를 드러내며 서로 팽팽히 맞서게 되는 암살자는 물론 작품 전반적인 분위기 묘사 자체가 모두 자본주의를 향한 메타를 품고 있지만 주인공 에릭 패커 자신이야말로 자본의 결계를 맴돌며 부유하는 몽유병자요 유령이고 금융자본의 혈관을 따라 끝없이 순환하는 헤모글로빈이다.


허나 이십대 젊은 나이로 외환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월가의 투자가, 코스모폴리스의 최상위 포식자 에릭 패커가 자본의 극점을 상징한다는 안이한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보는 내내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초기 대표작 [플라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에릭 패커는 자본의 DNA가 이식된 개체다. 세드 브런들 - 더 플라이 - 가 파리 형질을 품고 변형되어 죽어가면서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연인의 총구를 갖다 댔듯 자본의 유전자와 합성, 융합된 에릭은 목적지였던 이발소 - 자신만의 로즈버드 - 에서도 구원받지 못한 채(혹은 거부당한 채) 스스로 암살자가 기다리는 지옥으로 향하며 파국을 맞는다. 그리고 그의 죽음 직전 크로넨버그의 카메라는 야멸차게 렌즈를 닫아 버리고 엔딩 자막을 올린다. 내게 있어 [코스모폴리스]는 자본주의 구조에 관한 클리셰, 의례적 비판이라는 혐의를 가뿐히 넘어선다. 크로넨버그는 결코 '자본이 나쁘다'고 섣불리 단죄하지 않는다. 선택 불가, 제어 불능으로 개체에 늘러붙어 체화된 고도자본, 그에 잠식된 지금, 여기, 우리 현황에 대고 묵묵히 해부를 집도한다. 두 시간 러닝타임이 혼돈스럽고 나른하면서 섬뜩한, 출구 없는 악몽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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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리뷰 좋습니다. 자본의 dna가 이식된 제2의 세드 브런들.........

풀무 2015-06-18 20:07   좋아요 0 | URL
악! 저 문장을 제목으로 딸 걸요! 지금 바꿔야겠습니다. :)
 
[세트] 리틀 포레스트 1~2 세트 - 전2권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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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을 남기기 전에 영화 중반에 몇 분 씩 간격을 두고서 이어지는 긴 대사를 옮겨 둔다.


"도시 사람들은 우리 고향 코모리랑 말하는 게 달라. 사투리 같은 거 말고. 자신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잖아. 그런 걸 많이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척하고 남이 만든 걸 옮기기만 하는 놈일수록 잘난 척해. 천박한 인간들이 하는 멍청한 말들을 듣는 데 질렸어. 난 말야. 남이 자길 서서히 죽이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진 않았어. 코모리를 나가서 처음으로 고향 사람들을 존경하게 됐어.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참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사셨구나 하고."


주인공 이치코(하시모토 아이)와 마찬가지로 도시 생활 거쳐 귀향한 청년 유우타(미우라 타카히로)가 같이 동네 어른 양식장 일을 거드는 도중에 무슨 방언 쏟아내듯 읊던 대사인데, 이에 대해 이치코는 속엣말로 독백한다. '유우타는 자기 인생과 마주하려고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 반면, 나는 도망쳐 왔다.' 일견 마음을 움직이는 측면도 있지만 공감해서 기록해 둔다기보다는 그 반대에 가깝다. 자연 주기에 맞춰진 삶 속에 진리가 있고 시골 사람들은 그 이치를 꿰고 있다는 일종의 농어촌 클리셰, 판타지.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하게 만든 도시 판타지가 부숴진 데에 대한 반대급부, 트라우마로 여겨질 정도로 독단이 심하다. 상보적인 관계는 차치하고도 반복성에의 함몰 위험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론 뿐인 탁상공론 만큼 오직 체득만으로 깨쳐 알 수 있다는 경험 맹신주의 역시 내겐 경계 대상이다.

 

 

 

"분지 밑바닥에 있는 코모리는 한여름이면 수중기에 잠겨 있다. 산 위의 수증기들까지 흘러 들어온다. 젖은 셔츠처럼 달라붙는 대기... 지느러미만 붙이면 헤엄칠 수 있을 것만 같다..."

 

 

각설하고,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リトル・フォレスト 夏・秋)]은 제목 그대로 계절별로 제작된 두 중편을 하나로 묶은 영화다. 일본 도호쿠 지방의 고향 마을 코모리에서 거의 모든 생활 수단을 자급자족하는 주인공 이치코의 일상이 뚜렷한 서사 구조 없이 다채로운 자연 식단 위주로 펼쳐지는데, 전문적인 요리 프로 이상으로 식재료의 재배와 수확 혹은 채집 과정부터 상세한 레시피와 이른바 '먹방' 장면들까지 일일이 제시된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과 소박한 계절 음식들 틈새로 이치코의 감정과 사연들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작금의 일본 영화계 주류를 이룬다고 판단되는 친환경 슬로우 라이프 지향 힐링 무비들을 접하다 보면 조건 반사적으로 행여 시골에 대한 환상이 개입돼있지나 않은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의 경우 글 머리에서 언급한 가치관 측면의 판타지 요소가 걸릴 뿐 아니라 경제적 제반 조건들은 생략된 채 마냥 평온하고 예쁘게 진행되는 이치코의 농촌 생활엔 치열하게 겨우겨우 이어지는 삶의 어떤 진면목, 악취가 휘발돼 있다. 허나 어떤 인식이나 판단 이전에 망연자실, 러닝타임 내내 넋놓고 화면을 들여다 보게 된달까. 안팎으로 귀농 판타지 혐의가 짙긴 한데,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엔 그 판타지가 너무도 소소하니 정갈하다. 비록 가공의 세계일지 몰라도, 오로지 농삿일과 먹거리 준비만으로 하루 온종일을 보내는 생활이 골치 아픈 도시 일과 이상으로 꺼려지는 내 호오에 부합하진 않아도, 근본적인 치유까진 못돼도, 무균질의 대상 앞에 머리가 비워지면서 나 스스로를 담담히 돌아보게 하는 휴양 효과가 분명 있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라는 작가의 만화가 원작이라고 한다. 하우스 제작 후 본격적으로 효율적인 농법을 적용하면 코미리 정착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영영 다시는 못 떠날 것 같아 그냥 척박한 노변에서 고구마를 키운다는 이치코의 과거 짧은 도시 생활 중 숨겨진 사연이 뭔지, 5년 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집을 떠났다는 친모의 편지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지 궁금해진다. 후속작이라는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 편이 케이블 목록에 올라오면 역시나 챙겨 보게 될 듯싶다. 대놓고 귀농 판타지라 부르는 게 과연 합당한지 아닌지 여부도 그 후에야 더 또렷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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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가와 히로시 감독, 니시지마 히데토시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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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찬찬히 보는 사람 감정을 침전시키다 끝내 마음 밑바닥까지 가닿고 마는 순도 높은 멜로를 얼마만에 보는 지 모르겠다. 아마도 고교 시절 만났던 폴란드 영화 [조용한 태양의 해] 이후 개인적으로 처음이 아닌가 싶다. [좋아해]는 열일곱 고교 시절 서로 좋아한단 말 한마디 못 건네고 가슴 속으로만 풋사랑을 앓다 헤어진 후 17년이 지나 우연히 재회한 두 남녀를 묵묵히 지켜보는 영화다. 과거 그리고 지금의 자신과 상대방을 진솔하게 돌이켜 바라보며 세월의 간극을 메워가다 마침내 '좋아해' 한마디 조심스레 전할 수 있게 되기까지를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늦봄이나 초여름 쯤 됐을까. 야구를 그만 두고 기타에 빠진 소년 요스케가 강둑 풀밭에서 서툴게 연주하는 같은 소절의 반복적인 멜로디를 멀찌감치 떨어져 듣다가 그대로 흥얼거리던 소녀 유는 그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서지만 그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늘 말끝을 흐린다. 몇 날 며칠 그렇게 서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씩 다가서나 싶던 순간 반 년 전 사랑하던 연인을 잃은 유의 언니를 덮친 예기치 못한 사고로 두 사람은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어느 가을. 음반회사 영업사원이 된 서른넷 요스케 앞에 우연히 서게 된 서른넷 유가 그 지난 날 멜로디를 소환한다. 두 사람은 과거 미완의 곡 뿐 아니라 못 다한 채 가슴에 묻어둔 말 역시 마저 맺어져야 함을 깨닫게 된다.


미묘한 떨림 외에 큰 진폭 없이 진행되는 서사, 별 대사 없이 오직 감정에 충실한 느린 극의 흐름에 호불호가 크게 갈릴 작품이다. 두 여린 주인공의 미세한 동작과 표정은 물론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까지 그 어느 것 하나에서도 섣불리 눈길을 떼지 않는 카메라는 잠시잠깐 번지는 미소부터 흔들리는 눈빛, 부지불식간 새어나는 숨소리와 눈가에 살짝 맺히는 물기, 그들 심경이 반영됐을 하늘 빛과 대기의 질감까지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영화의 시선과 그에서 전해지는 감정선이 대단한 깊이나 무게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저 소박하고 단출하나 진중하게 두 남녀를 응시하고 그들 호흡에 귀기울이면서 가슴에 맺힌 말이 터져나오는 순간을 주시할 뿐이다. 끝까지 보고 나면 원제목 [好きだ,] 뒤에 찍혀 있던 쉼표가 의미심장하게 와닿으며 엔딩 자막 뒤에 제시되던 두 사람의 겨울 언덕행을 축복하고 싶어 진다. 조용히 스며들어 마음을 훔치는 수작이다.

P.S. 참, 국내에 많은 팬들을 지닌 카세 료도 중요한 단역으로 출연한다. 34세 요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에게 우연히 범행 현장을 들키고 나중에 요스케를 칼로 찌르는 부랑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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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4-12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쪽섬 님은 일본 영화의 절대 강자이십니다... ㅎㅎㅎㅎ

풀무 2015-04-13 08:29   좋아요 0 | URL
저야 가끔 맘닿는 영화 보고 기록해두는 정도이고.. 진짜 요즘 일본영화 트렌드 강자들은 네이버에 즐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