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는 곳간, 서울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동서남북 우리 땅 4
황선미 지음, 이준선 그림 / 조선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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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는 곳간 서울>은  북촌에 사는 소녀 '미래'가 숙박중인 외국인에게 그리고 서울을 잘 알지 못하는 친구에게 서울의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픽션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림책답게 삽화가 곁들어지고, 서울과 관련된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한 설명부분에서는 사진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북촌이 기능장과 같은 명인들의 장소라면 이웃한 서촌은 문인들의 지역이라고 한다. 저자서문을 읽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본문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했던 부분은 서울을 '알고 있다'라는 착각속에 살았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정말 새롭다라는 말과 더불어 내가 이정도로 내가 사는 도시에 관해 무관심은 물론 무지했다는 사실에 반성도 많이했다. 사실 서울을 소개한다는 중요한 목적을 두고 아이들이 주요 독자층이라 어른인 내게는 다소 쉽거나 지루할 수 있을거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미래 가족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텃밭을 일구는 것 외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양봉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그 장소가 일주일에 최소 2번은 방문하는 명동 한복판이라는 것도 정말 반가웠다. 그런가하면 지난 10월~11월에 열렸던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를 관람 한 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옛그림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꼈었다. 조선시대 화가들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참 아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조화가 특히 멋져보였다. 지금의 서울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체 면적의 30%가 산이라는 점 덕분에 쉽사리 자연과 벗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유서깊은 장소가 될 수 있었던 한양도성이 지금처럼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안타까웠다.

한양도성은 전체 길이가 약 18.6km나 되고 514년 동안 도성의 기능을 해 왔습니다. 세계의 도성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되었어요.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 도시 개발을 거치면서 옛 모습을 많이 잃게 되었지요. 92쪽​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북촌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갑자기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기 시작한터라 관광객이 많아져 불편한 마음만 앞섰을 뿐 정작 제대로 산책 한 번 한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후  다니던 회사는 보라매공원 주변이었는데 이때 역시 밤낮으로 초과근무와 야근에 시달리느라 정작 공원에서 어떤 행사가 진행되는지도 몰랐었다. 한마디로 <어울리는 곳간 서울>에서 등장하는 서울의 좋은 면을 듬뿍 담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곁에 있어서 소중한 줄 몰랐다고나 할까. 삼청동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경복궁역에서 거주지까지 너무 많이 걸어야 한다고 불평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서촌주변 역시 북촌에 이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상권의 변화가 생겨 불만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잡아야 할 문제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단점만 보려고 해서는 서울의 참 멋을 깨닫게 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백악산이 서울의 주인 산이고 관악산이 손님 산, 남산은 이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탁자 역할을 하는 산이라고 해요. 그래서일까요? 남산은 어쩐지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이 듭니다. 58쪽

<어울리는 곳간 서울>을 읽는 동안 느낀 것은 이제라도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왜냐면 곧 이직하여 다니게 될 새직장이 다름아닌 남산, 주인인 백악산과 손님인 관악산을 이어주는 바로 그곳에 위치한 명당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북촌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이 찾아오고 실제 작업장을 개방하여 관광객들이 직접 볼 수도 체험도 할 수 있고, 진지하게 작업을 배울 수 있는 여건도 갖추어져 있다. 다만 책에 등장하는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진지하게,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전통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점인 것 같다. 이렇게 아쉬워만 할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전통을 배우려는 이들이 부차적인 것에 신경쓰지 않고 매진할 수 있도록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실질적인 처우개선과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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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美學 미학 - 비우며 발견하는 행복, 나와 친해지는 시간
본질찾기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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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을 통해 독자분들이 '아, 나의  평범한 일상도 참 아름답고 좋은 삶이구나'하며 되돌아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머무는 지금 그 자리를 따뜻하게 매만지고, 열심히 하루를 가꾸며 살아가는 자신을 맘껏 칭찬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젊을 때는 일을 잘하거나 자기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그래서 책을 찾아보고 흉내도 내고 아마도 지금처럼 관련 컨텐츠가 웹이나 모바일로 쉽게 볼 수 있었던 때가 아니었기에 잡지를 통해서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얻었던 것 같다. 중년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 건강도 신경쓰이고 무엇보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나란 사람보다 일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 온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 요긴한 정보와 보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사진들을 구경하러 들리던 멍하니님의 블로그 '본질찾기'. 대부분 닉네임을 저자명으로 쓰시던데 '본질찾기'라는 블로그명으로 책을 출간하신 것은 블로그의 취지나 책의 목적과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들었다. 더불어 어떤 한 사람의 삶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꾼 공간을 거울삼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늘 느끼듯 저자분의 겸손한 태도와 심플한 라이프스타일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사계 - 봄, 여름, 가을 , 겨울- 에 맞춰 총 4챕터로 이뤄졌다. 봄맞이 대청소라고 하면 하루에 날잡아서 하는 것을 보통 떠올리는 데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내게도 대청소는 그 다음날 허리가 끊어질 정도의 강도가 쎈 노동이다. 요일별로 구역을 나누거나 책에 나온 것처럼 수요일에는 욕실, 금요일에는 금속 가전제품 등을 청소하는 등의 센스를 발휘하는 것이 좋다.  5월 햇마늘 편은 '어머님'들이라면 다들 익숙해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독립했을 때 마늘을 좋아하는 딸에게 엄마가 처음 알려준 다진마늘 보관법도 바로 이거였다. 위생팩에 넣어서 구획을 나누어 필요할 때 마치 치킨블럭을 떼어 사용하듯 이용하면 정말 편리하다. 다만 다진마늘 보다 생마늘을 더 좋아하는 까닭에 위생봉투에 넣을 정도로 넉넉하게 마늘이 남아있는 경우가 없어 실제로 이렇게 활용해본 것은 엄마가 알려준 그 때뿐이라는 점이 아쉽다. 봄 편에서 또 관심이 갔던 주제는 '자수'였다. 최근에 일본 자수, 프랑스 자수 할 것 없이 예쁜 자수책이 많이 출간되는 데 저자가 자수를 놓아 벽걸이를 만든 것은 아이의 낙서를 가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나는 아이가 없어 벽에 낙서를 할 사람도 나 뿐이지만 자수로 벽걸이를 저자처럼 예쁘게 만들 수 있다면 한 번 시도해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편에서 가장 먼저 펼쳐 본 페이지는 '한여름에 빵 굽기'였다. 지인중에 케이터링을 하는 언니가 있는 데 지난 여름 여럿이 모이는 날 빵을 구워야 한다며 급히 뛰어나가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 빵을 굽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베이킹이라고는 전자렌지를 이용해 초간단 머핀만들기에만 도전해본 내게 이것은 꽤나 낭만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 제과제빵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는 저자는 책을 보고 시도하는 데 정확하게 계량한다고 해도 책의 저자에 따라 달라져서인지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 여름에 빵이 다 익었을 무렵 오븐을 열 때의 열기는 숨통이 막힐 정도라고 하는데 나는 이마저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그윽하게 빵냄새가 주방 뿐 아니라 온 집안을 채우는 듯한 풍경, 나이만 먹었지 아직 철이 덜 든게 맞는것 같다. 가을 편에서는 누구나 다 시도해본다는 '유자청'만들기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난 해 유자청 대신 레몬청을 담았는데 의외로 언니가 맛있게 먹어줘서 신이 난적이 있다. 요리는 역시 맛있다 하면서 먹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가장 완벽해진다고 생각한다. 책에도 나와있지만 유자는 베이킹 소다로 빡빡 문지르고 식초로도 껍질을 닦아줘야 하는 데 이때 소홀히 하면 떫은 맛이 난다. 내가 유자 대신 레몬을 선택했던 것은 저자의 말처럼 유자의 씨를 제거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껍질을 가늘하게 채썰어야 하는 것, 이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반면 레몽청은 슬라이스로 몇 번 해놓으면 끝이다. 아마 내년 가을에도 유자청은 만들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겨울편에 들어있는 레몬청 담그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하지 않을까 싶어 소개하면 글의 제목만 봐도 나같은 사람들이 유자가 아닌 레몬을 담그는 이유가 그대로 드러난다. '손쉽게 담그는 레몬청.'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레몬은 유자와 달리 베이킹 소다로 세척 후 뜨거운 물에 세척을 해줘야 한다고 한다. 왜냐면 레몬은 쓴맛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앞서 유자와 레몬을 비교한 내용이 그대로 반복되어 내가 제대로 알고 있긴 했구나, 언니가 맛있다고 했던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혼자 뿌듯해했다. 마치 이 리뷰의 첫 머리에 저자의 말처럼 '아, 나의 평범한 일상도 참 아름답고 좋은 삶이구나'하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블로그에서 이미 보았던 내용도 있었고, 엄마에게 배웠던 내용, 어쨌거나 집에서 나와 혼자 산지 10년이 훌쩍 넘다보니 저절로 터득하게 된 살림노하우 등도 있었다. 그래서 별로였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아는 언니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생활의 미학이라고 하면 꽤나 거창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살림, 청소와 요리 등을 '미학'이라고 칭송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군가는 아무데나 '미학'을 붙인다고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미학이라고 여기고 실제 연구하듯 실행에 옮긴다면 그렇게 부를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알고 있는 이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좋은 사람은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일방적으로 책을 읽는데도 그런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적어도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저자는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줄 마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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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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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 현재 위치가 어딘지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 186쪽



브릿마리 여기있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일까? '있다'일까 아니면 '브릿마리'그녀 이름일까. 아직 마흔이 되진 않았지만 곧 마흔인 내게 가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섯손가락안에 꼽을 만한 소설을 묻는다면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반드시 넣을 것이다.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작가의 최신 작품이다. 중간에 할.미.전 이라고 불리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출간당시 소재가 유사한 작품이 있어 크게 각인되지 못했기 때문에 <브릿마리 여기있다>가 어쩌면 프레드릭 배크만의 영향력을 결정할 만한 작품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서두에서 밝히자면 오베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방식, 여전히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잔잔한 위트에 과하지 않은 훈훈한 결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이제부터 6시에 저녁을 먹을 거야. 교양인답게."

그녀는 어느 정도 뜸을 들여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아니면 교양 있는 쥐답게." 106쪽


브릿마리 특유의 버릇으로 표현하자면 뺨을 쏙 집어넣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품 속 인물이 하는 버릇 혹은 즐겨먹는 음식이나 음료, 행동등을 따라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역자도 고백한 것처럼 '과탄산수소'를 수십통 사다가 집안 전체에 뿌리고 쓸고 닦는 등 청소가 너무 하고 싶었따. 뺨을 쏙 집어넣고 싶었고, '하.'하고 긍정이나 부정의 대답대신 소리를 내고도 싶었다. 커트러리를 일렬로 정리해보고도 싶고 교양인답게 저녁을 6시에 반드시 먹고 싶기도 했고 심지어 '쥐'에게 스니커즈를 먹여보고 싶기도 했다. 그만큼 브릿마리라는 예순세살 되신 여사님께 푹 빠져서 지냈다. 페이지를 빨리 넘기지도 않았다. 교양인답게 무리해서 읽지 않고 딱 에스프레소 한 잔, 라떼 한 잔을 마실동안만 책을 읽었다. 읽지 않는 시간에는 청소를 했다. 왜냐면 책에만 몰두해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리뷰가 거슬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전이라고 확신한다. 반대로 이 리뷰가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면 당신도 느끼지 못하는사이에 브릿마리에게 점령당한 상태일 것이다. 교양인답게 친절하게 책의 줄거리를 살짝 들려줄까 한다. 브릿마리는 앞서 밝힌 것처럼 예순을 넘긴 할머니다. 결혼 전 잠시 웨이트리스로 일한 경험은 있지만 그외에 사회경험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줄곧 일해왔다. 집안일을 해왔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해왔다. 만약 집안일은 누구나 하는거 아니냐고 과소평가한다면 브릿마리가, 그리고 이 세상의 완벽한 살림꾼들을 모욕하는 처사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자신이 가정주부였음을 밝힐 수 있을만큼 똑부러지게 살림을 해오던 어느날 남편이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모르는 척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브릿마리가 선택한 것은 이혼이었다. 사실 이혼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녀는 법적으로 남편 켄트의 정식 배우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이들을 잘 키웠고, 켄트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는 했다. 청소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브릿마리에게도 사연은 있다. 까칠해 보이는 오베라는 그 어르신에게도 사연이 있었던 것처럼 브릿마리에게도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어떤 사건은 한 사람의 인격은 물론 삶 전반을 뒤흔들고도 남을만큼의 힘을 가진다. 그 사건을 두고 원망을 하며 살 수도 있고, 극복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지만 오베와 브릿마리의 공통점을 찾고자 한다면 자발적 극복을 선택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베가 아내의 도움으로 사람처럼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브릿마리 역시 켄트의 그늘안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 그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켄트의 외도였던 셈이다. 이혼 후 혼자살다가 고약한 악취로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브릿마리는 '취업'하기로 결심한다. 예순 셋에 사회경험도 거의 없고 그나마 결혼 전 이력이 도움이 될리가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보르그 레크리에이션 센터에 '운'좋게 취업 후 브릿마리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주위를 둘러본다. 벽은 밖에서 두드려 맞고 있고, 바닥의 먼지 위에는 쥐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래서 브릿마리는 살면서 위기 상황과 맞딱뜨릴 때마다 늘 하던 일을 한다.

청소를 한다. 68쪽

우체국과 정비소와 마트와 피자가게가 한 자리에서 이뤄지는 작은 마을 보르그는 어떤면에서 보자면 존재감 없이 켄트의 그늘속에 살던 브릿마리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참 적절한 장소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망해가는 작은 마을, 나이든 여성이 임시직으로 머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역시나 문을 닫는 다른 가게들처럼 그다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존재로 낙인될 수 있다. 브릿마리는 보르그에서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드러낼 수 있었던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청소'였다.  그녀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다름아닌 청소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전체 분위기는 '축구'이야기로 귀결되지만 내 시각에서 볼 때는 '청소'였다고 생각된다. 더이상 마을에 희망이 없을 거라는 고정관념을 청소했고, 제대로된 부모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가정에는 평화가 가당치 않다는 편견을 청소했고, 무엇보다 예순이 넘은 여자가 집과 남편을 버리고 나와봤자 좋게 될리 없다는 '현실'을 청소했다. 그리고 과연 오베라는 남자, 할미전을 능가할 만한 작품이 나올 것인가 하고 의심했던 흔들리던 독자들의 마음도 깨끗하게 청소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브릿마리는 리스트를 핸드백에 넣고, 무언가가 시작되길 평생 기다려온 사람들이 그러듯 손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핸드백을 세게 움켜진다.

그런 다음 조그많게 몇 걸음 걸어가서 있는 힘껏 공을 찬다.

이제는 공을 차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244쪽

공이 굴러오면 찰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더러운 것은 치워야한다. 내 앞으로 굴러온 공을 피하거나 더러워진 신변을 그냥 놔두는 것은 내 인생이 그렇게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과 같다. 공이 왔으면 차고, 더러운 신변은 치우자. 어떻게? 브릿마리 처럼,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자. 우리는 다름아닌 지금 이곳에 있다.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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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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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 안드레이 마킨


내게 있어 프랑스는 이제 단순히 골동품을 넣어 두는 방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감각적이고 견고한 하나의 실체가 되었고, 그 중의 한 작은 부분은 어느 날 내 가슴속에 이식되었다. 136쪽

안드레이 마킨의 자전적 소설 [프랑스 유언]을 읽기 전 내게 있어 프랑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프랑스라고는 해도 파리를 여행해본 경험이 전부라서 어쩌면 장님코끼리 만지는 수준일테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 적어보자면 우선 언어로 먼저 다가온 나라였다고 말하고 싶다. 에펠이라던가 영화라던가, 패션의 화려함보다 영어가 아닌 독특한 언어라는 느낌이 가장 먼저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이후 성인이 되어 방문한 파리는 기대만큼의 화려함도 추억거리나 볼거리가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면 이 무렵 프랑스영화에 빠져있었는데 영화에서 받은 그 충격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파리여행 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 속의 파리는 대도시가 갖는 허무와 우울을 가진 상징적인 도시다. 얼추 마음속에 산발적으로 떠오르던 키워드들이 오히려 이 책 덕분에 하나로 모아진듯했다. 낭만보다 우울, 화려함보다 공허함이 감도는 도시 파리로 두 번째 여행을 갔을 때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지켜야 한다'라는 사명감밖에 없었다. 몇 해사이에 파리에는 폰을 노리는 범죄가 급증한 상태였고, 중심가가 아닌 곳에서도 노골적으로 돈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의 패션은 눈에 띄게 완벽했고, 일본과는 다른 친절함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파리가 친절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있어 파리는 친절한 도시였다. 그리고 저녁때면 센강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소박함과 웃음소리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에 굳히기를 한 작품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로랑스 코세의 <오 봉 로망>이었다. 좋은 소설을 파는 서점이라니, 아이디어도 내용도 완벽했다. 좀 멀리 돌아왔는데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프랑스는 호불호로 나뉘자면 당연 호에 해당되는 나라였다. 안드레이 마킨에게는 프랑스가 어떤 나라였을까? 맨 위 발췌문정도로는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들의 유년을 살펴보면 외부에서 기인했든 내부적인 문제가 되었든 책에 한참 빠져드는 시기가 존재한다. 소설 속 '나' 역시 할머니로 부터 들었던 프랑스 덕분에 쉼없이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찾아읽게 된다. 러시아 아이들의 무시는 오히려 그를 더더욱 프랑스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 보다 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은 이야기를 읽기만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입장으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이 순간을 사춘기의 가장 행복했던 날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 또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화자로서의 역할을 맛본 나는 사란짜로 할머니 샤를로트를 만나러 가면서 이전과는 달리 그녀의 이야기가 이전처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머니와 포옹하는 동시에 그런 착각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원치 않아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부모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거나 심지어 끝까지 무시하고 우쭐대기까지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저자의 심경변화가 당시 열네살이라는 나이를 감안했을 때 제법 성숙했다고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내가 성숙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이 징후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내가 예전에 갖고 있던 순진한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애석해했다. 182쪽

무언가에 열의를 다하면 다할수록 그것이 또렷해지지 않고 흐릿해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칠듯한 열정은 이내 곧 식어버리기 마련이고 프랑스에 대한 주인공의 마음도 그런 단계를 밟게된다. 심지어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되어 할머니 샤를로트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참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 샤를로트에게 프랑스와 관련된 일화를 들으면서 '나'는 묘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듯한 기쁨을 맞이하게 되고 어느순간 그것을 할머니로 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결국 '나'라는 존재가 프랑스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혹은 그 둘 모두를 거부하고 싶어지는 저자 심리를 자전소설이 갖는 장점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우리에게 전달되면서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과 그로인한 처절한 아픔과 상처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작품이 왜 비평가들에게까지 극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되었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결말에 이를수록 이 책이 던져주는 감동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저 이제 프랑스를 떠올리면 한동안은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진을 챙겨 넣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샤를로트를 생각하자 그녀의 존재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듯한 그 거리 속에서 내밀하지만 자연스럽고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제 내게 부족한 것은 그 사실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뿐이었다. 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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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열두 달은 어떤가요
규영 글.그림 / 사물을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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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의 열두 달을 생각할 시간.

새로운 열두 달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294쪽



책의 맨 뒷페이지에 적힌 문장으로 리뷰를 시작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책을 이미 다 읽었으니 이제 리뷰를 쓰면서 나의 열두 달을 녹여내면서 읽었던 내용들을 조금씩 꺼내볼 생각이다. 근래들어 그림과 짤막한 코멘트가 함께 실린 책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혹시나 해서 바로 답하자면 반갑고 또 반갑다. 많은 말들, 엄청나게 공감하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풀이해놓은 듯한 문장들도 멋지지만 때로는 뭉클해지는 그림과 그 보다 더 마음을 흔드는 한 문장이 결코 호흡이 긴 다른 방식과 비교해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책<당신의 열두 달은 어떤가요>도 그렇게 만났다. 둥글둥글 선과 마치 김이 모락모락 나는듯한 느낌의 색감을 더한 따뜻한 그림이 눈에 들어오고, 한 줄의 코멘트는 아니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그들의 열두 달 이야기가 참 일상적이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어머, 이건 내 이야기야,'했던 책 속 문장들을 먼저 꺼내본다.



언젠간 하루에 한 번도 네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오겠지.

어서 그날이 오면 좋겠다. 25쪽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내게 투자된 교육비 정도는 회수하는 어른이고 싶다. 131쪽


왜 소개팅은 내 맘이 네 맘 같지 않고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냐. 159쪽



위의 공감했던 문장들만 봐도 나의 열두 달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치만 내 마음을 가장 훈훈하게 해준 열두 달은 아기의 열두 달이었다.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개와 아이가 함께 세상을 만나는 과정을 담았는 데 꼬리를 흔들며 자신과 같은 사이즈의 아기를 발견한 개의 표정이 정말 귀여웠다. 함께 식사를 하며 음식물을 흘리는 그림도 귀여웠고, 무엇보다 아기가 병원에서 몇 날을 보낸 뒤 돌아왔을 때 이제는 아이가 개보다 더 커진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이어지는 개의 열두 달을 보면 뭉클했던 마음에 직격탄을 쏘듯 눈물이 핑그르르 맺혔다. 아, 우리 뭉치는 잘 지내고 있겠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두 번째 문장, 새로운 열두 달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해본다. 책속에 만났던 일들이 내게 벌어질 수도 있고, 내가 왜 이런 문장에 공감했었을까 오히려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열두 달을 여러 해 마주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내용들도 분명 있었다. 2016년 12월도 이제 거의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이거 사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절반이나 남았네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열두 달은 어쩌면 사람때문에 울고 울었던, 그러면서도 단 한 분 덕분에 위로를 받았던 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열두 달은 어땠나요? 저자가 내게 물었듯 나도 이 리뷰를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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