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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평점 :
가끔은 내 현재 위치가 어딘지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 186쪽
브릿마리 여기있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일까? '있다'일까 아니면 '브릿마리'그녀 이름일까. 아직 마흔이 되진 않았지만 곧 마흔인 내게 가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섯손가락안에 꼽을 만한 소설을 묻는다면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반드시 넣을 것이다. <브릿마리 여기있다>는 작가의 최신 작품이다. 중간에 할.미.전 이라고 불리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출간당시 소재가 유사한 작품이 있어 크게 각인되지 못했기 때문에 <브릿마리 여기있다>가 어쩌면 프레드릭 배크만의 영향력을 결정할 만한 작품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서두에서 밝히자면 오베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방식, 여전히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잔잔한 위트에 과하지 않은 훈훈한 결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이제부터 6시에 저녁을 먹을 거야. 교양인답게."
그녀는 어느 정도 뜸을 들여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아니면 교양 있는 쥐답게." 106쪽
브릿마리 특유의 버릇으로 표현하자면 뺨을 쏙 집어넣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품 속 인물이 하는 버릇 혹은 즐겨먹는 음식이나 음료, 행동등을 따라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역자도 고백한 것처럼 '과탄산수소'를 수십통 사다가 집안 전체에 뿌리고 쓸고 닦는 등 청소가 너무 하고 싶었따. 뺨을 쏙 집어넣고 싶었고, '하.'하고 긍정이나 부정의 대답대신 소리를 내고도 싶었다. 커트러리를 일렬로 정리해보고도 싶고 교양인답게 저녁을 6시에 반드시 먹고 싶기도 했고 심지어 '쥐'에게 스니커즈를 먹여보고 싶기도 했다. 그만큼 브릿마리라는 예순세살 되신 여사님께 푹 빠져서 지냈다. 페이지를 빨리 넘기지도 않았다. 교양인답게 무리해서 읽지 않고 딱 에스프레소 한 잔, 라떼 한 잔을 마실동안만 책을 읽었다. 읽지 않는 시간에는 청소를 했다. 왜냐면 책에만 몰두해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리뷰가 거슬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전이라고 확신한다. 반대로 이 리뷰가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면 당신도 느끼지 못하는사이에 브릿마리에게 점령당한 상태일 것이다. 교양인답게 친절하게 책의 줄거리를 살짝 들려줄까 한다. 브릿마리는 앞서 밝힌 것처럼 예순을 넘긴 할머니다. 결혼 전 잠시 웨이트리스로 일한 경험은 있지만 그외에 사회경험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줄곧 일해왔다. 집안일을 해왔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해왔다. 만약 집안일은 누구나 하는거 아니냐고 과소평가한다면 브릿마리가, 그리고 이 세상의 완벽한 살림꾼들을 모욕하는 처사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자신이 가정주부였음을 밝힐 수 있을만큼 똑부러지게 살림을 해오던 어느날 남편이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모르는 척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브릿마리가 선택한 것은 이혼이었다. 사실 이혼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녀는 법적으로 남편 켄트의 정식 배우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이들을 잘 키웠고, 켄트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는 했다. 청소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브릿마리에게도 사연은 있다. 까칠해 보이는 오베라는 그 어르신에게도 사연이 있었던 것처럼 브릿마리에게도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어떤 사건은 한 사람의 인격은 물론 삶 전반을 뒤흔들고도 남을만큼의 힘을 가진다. 그 사건을 두고 원망을 하며 살 수도 있고, 극복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지만 오베와 브릿마리의 공통점을 찾고자 한다면 자발적 극복을 선택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베가 아내의 도움으로 사람처럼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브릿마리 역시 켄트의 그늘안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 그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켄트의 외도였던 셈이다. 이혼 후 혼자살다가 고약한 악취로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브릿마리는 '취업'하기로 결심한다. 예순 셋에 사회경험도 거의 없고 그나마 결혼 전 이력이 도움이 될리가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보르그 레크리에이션 센터에 '운'좋게 취업 후 브릿마리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주위를 둘러본다. 벽은 밖에서 두드려 맞고 있고, 바닥의 먼지 위에는 쥐 발자국이 찍혀 있다.
그래서 브릿마리는 살면서 위기 상황과 맞딱뜨릴 때마다 늘 하던 일을 한다.
청소를 한다. 68쪽
우체국과 정비소와 마트와 피자가게가 한 자리에서 이뤄지는 작은 마을 보르그는 어떤면에서 보자면 존재감 없이 켄트의 그늘속에 살던 브릿마리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참 적절한 장소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망해가는 작은 마을, 나이든 여성이 임시직으로 머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역시나 문을 닫는 다른 가게들처럼 그다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존재로 낙인될 수 있다. 브릿마리는 보르그에서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드러낼 수 있었던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청소'였다. 그녀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다름아닌 청소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전체 분위기는 '축구'이야기로 귀결되지만 내 시각에서 볼 때는 '청소'였다고 생각된다. 더이상 마을에 희망이 없을 거라는 고정관념을 청소했고, 제대로된 부모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가정에는 평화가 가당치 않다는 편견을 청소했고, 무엇보다 예순이 넘은 여자가 집과 남편을 버리고 나와봤자 좋게 될리 없다는 '현실'을 청소했다. 그리고 과연 오베라는 남자, 할미전을 능가할 만한 작품이 나올 것인가 하고 의심했던 흔들리던 독자들의 마음도 깨끗하게 청소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브릿마리는 리스트를 핸드백에 넣고, 무언가가 시작되길 평생 기다려온 사람들이 그러듯 손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핸드백을 세게 움켜진다.
그런 다음 조그많게 몇 걸음 걸어가서 있는 힘껏 공을 찬다.
이제는 공을 차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244쪽
공이 굴러오면 찰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더러운 것은 치워야한다. 내 앞으로 굴러온 공을 피하거나 더러워진 신변을 그냥 놔두는 것은 내 인생이 그렇게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과 같다. 공이 왔으면 차고, 더러운 신변은 치우자. 어떻게? 브릿마리 처럼,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자. 우리는 다름아닌 지금 이곳에 있다.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