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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근무하다보니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책이 싫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책에 밑줄긋는 이용자를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책을 감춰두고 혼자 읽으려는 얌체 이용자와 그로인해 책이 자리에 없다며 제게 화내는 이용자를 용서하게 해주세요 등등...

 

말하자면 뭐 끝이 없다.

 

아래 사진 속 책 제목은 <문화코드 :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인데,

문화코드를 어떻게 읽을지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하면 문화인이 될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해당 책은 개인소장도서가 아니라 공공도서관 소장 도서입니다.

 

 

 

도대체 문화, 종교, 교육 관련 책에 이렇게 밑줄을 긋는 사람들은 문화, 종교, 교육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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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0-1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유..... 책 감춰두고 혼자 읽는 사람 정말 밉습니다. 저는 몇 달 째 찾다가 포기한 책이 한 두 권이 아니랍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서가를 둘러보다가 엉뚱한 곳에 꽂혀 있는 책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꽂아두기도 합니다... 일종의 정리벽이죠 -_-;;

에디터D 2017-10-12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근무여부와 상관없이 도서관에 가면 배열맞추고 있긴해요^^;;; 집에 책장은 엉망이니 전 정리벽은 아니고 그냥 약간의 직업병이랄까요^^;;

세실 2017-10-1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그 맘 충분히 공감합니다~~
한달에 한번 주말에 자료실 지원 근무하는데 때려주고 싶은 이용자 꽤 있어요.
제일 얄미운 사람은 퇴근시간 3분전에 와서 책 대출하는 사람...마음 비우고 책 골라오라고하면 함흥차사...
전 커피숍 가도 종료 삼십분전에 나와요^^

에디터D 2017-10-12 12:58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아요. 1분전에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정각에 오시는 분들도 주말에는 꽤 많으시죠.ㅎ 다음 날 휴관일인 경우에는 특히요.ㅎ 저도 예전에 이용자일 때는 이런 적 많아서 근무 초기에는 반성의 기도를 했더랬죠^^;;

cyrus 2017-10-1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 종교, 교육 관련 책은 비싼 편이에요. 그래서 이런 책을 사서 읽지 않고, 빌려서 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자기 책인 것처럼 밑줄을 긋는 행동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에디터D 2017-10-12 13:00   좋아요 0 | URL
그럼요.ㅎ 오셔서 많이 이용하시는게 좋지요. 전 그저 밑줄긋는 것...특히 위의 사진처럼 볼펜이나 형광펜은 지우지도 못하니까 이후에 대출하시려는 이용자분들의 불만까지 들어야하니 안타까울 뿐이에요.

뽀이52 2017-11-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줄을 긋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저럴까요... ㅠ
 
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그러나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려주는 책은 없었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독서를 통해 위로를 얻었다 혹은 마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졌다는 감상을 남길 때가 있다. 하지만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려주는 책도 있었다. 저자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동조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왜냐면 그 단 권의 책이 다름 아닌 성서였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성서를 제외한 그 어떤 책도 내게 절망의 기간을 어찌 보내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섣부른 위로도 어려운 그 기간, 감히 같은 인간끼리,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 독서>가 맘에 와 닿았던 까닭은 반드시가 아니라 이렇게 한 번이라는 따뜻함 덕분이다. 절망을 바다에 비유했을 때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천천히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심연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지난 해 읽었던 배철현 교수의 <심연>이란 책을 떠올라서였다. 그 책에서는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라고 권하는데 마찬가지로 <절망 독서>의 저자도 무리하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절망했을 때는 우선 그 절망의 감정에 푹 잠겨야 하고, 지나치게 빨리 극복하려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극복을 할 수 있으니까요. 65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리뷰에 자꾸 언급하는 것이 신앙을 가지지 않은 다른 독자에게, 심지어 이 책의 저자에게도 실례인줄 알면서도 한 번 더 언급하자면 근래 들었던 강론 중에 좌절하는 것이 결코 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절망하는 것도 죄, 혹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권장하거나 응원할 만한 일은 결코 아니지만 왜 절망하는지, 왜 그 절망으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는지 절망에 빠진 그 자리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저자의 우려처럼 후폭풍이 무섭게 다가올 수도 있다. 본문에서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슬픔은 혼자 오지 않고 반드시 한 패를 데리고 온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좋을 것 같다.

 

절망에 빠졌을 때 라쿠고를 들으면, 처음에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녹음되어 있어서 이런 걸 들을 기분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본인은 울고 싶은 기분이니까요. 하지만 점점 위하감이 없어질 것입니다. 라쿠고의 웃음은 절망의 곁으로도 다가와주는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170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가 위로를 얻었던, 충분히 절망의 시간을 누릴(?)수 있도록 몇 권의 책들의 서평이 담겨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전의 유사해 보였던 책들처럼 추천리스트를 만들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려 그 중 몇 권을 구입하는 작업들로 위로를 구하려고 했었는데 이 책과 나의 리뷰 서두에 밝힌 것처럼 이 책은 결코 저자의 방법 혹은 독서리스트를 답습하라고 쓴 책이 아니었다. 음악을 듣다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절망의 이유가 다 다르듯 뜻하지 않은 장면, 노랫말에서 우리는 절망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천하고 싶은 책들보다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이라는 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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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2일 오후2시.

중림동 약현성당옆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최양업홀에서 박승찬 교수님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출간 기념강연회가 열렸다. 다행히 근무가 없는 주말이라 이벤트를 보자마자 신청해두긴 했는데 워낙 유명한 분이시기도 하고, 장소가 성당바로 옆이라 신자분들이 많이 참석하실 것 같아 살짝 조마조마하긴 했다.

 

 

역시나, 강연회장에 갔더니 수녀님도 많이 와계셨고, 특히 가톨릭출판사 가족회원분들도 많이 계셨다. 출판사에서 시원한 생수와 간식을 제공해준 덕분에 강연 내내 과자까먹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크게 불편할 정도도 아니었고, 오히려 간식덕분에 오후2시라는 애매한 시간 오히려 강연에 몰입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출판사에 배려에 그저 감사할 따름.

 

강연내용은 기대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았다.

우선 박교수님께서 방송중에 하셨던 말씀은 가급적 제외하시고 오로지 해당 강연을 위한 준비를 해오신듯했다. 참고사진이나 도표는 물론 출간 기념강연회인 만큼 책에 포함된 자료였지만 방송을 통해 보고 오신 분들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게 준비를 꼼꼼하게 해오신 것 같아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지난 가을 읽었었다.

리뷰참조 : http://happysohh.blog.me/220832451562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등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연 브레이크 타임에 찾다가 알게됨^^:;)

 

교수님께 사인을 받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거나 그렇지는 못했다. 리뷰를 다시 읽어봐도 잘몰랐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 대해 좀 더 알게되었다는 정도일 뿐 아! 하는 뉘앙스는 없는걸보니 내 기억이 맞는듯. 암튼 그랬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과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이야기가 교수님을 통해 전달될 때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강연내용을 정리하자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모두 다 들어주시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모니카 성녀 역시 모든 기도에 응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우리의 기도보다 몇 배로 돌려주신다고 믿고 있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크게 낙담하여 어떤 이는 분노하며 주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모니카 성녀님은 어땠을까?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도 삶이지만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삶을 우리의 신앙생활과 비교해보자면 얼마나 부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롯이 내 자신을 위해, 마치 요술램프 지니를 대하듯 주님을 대할 때가 많고, 기도의 횟수와 시간이 응답과 비례한다고 착각할 때도 많았다. 크게 보았을 때 주님께서는 모니카 성녀가 원했던 가장 중심이자 핵심이었던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주님안에 살길 바라던 기도를 들어주셨다. 물론 바로 응답해주신 것은 아니고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 중 어느것 하나 성인이 되는 단계에서 불필요했던 시간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인간적인 면모 덕분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그 긴 시간중 어느 한 부분도 주님의 계획에 어긋나있거나 모니카 성녀의 기도를 모른척 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또 한가지,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내가 바라는 것을 이뤄주시는 '수단'으로 사랑할 때가 있다. 돈이나 물질은 '수단'으로 사랑하는 것이 맞다. 이웃을 더 돕기 위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돈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수단으로서 사랑해야 한다. 수단과 목적이 바뀌지 않도록, 무엇보다 내 입장에서만 사랑하지 않도록 내가 정말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그 대상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시간에는 사전에 신청자들의 질문을 받아 진행되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질문이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내용들이라 마치 강연의 연장선처럼 다가왔다.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인생그래프를 그려보는 작업을 해본다던가,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습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정말 학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는 등의 내용들이었다.

 

많은 분들이 사인을 받으셨고, 중간 중간 포토타임도 함께 진행되었지만 사인을 기다리는 독자분들도, 사인을 하시는 교수님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아 분위기 자체가 정말 좋았다. 좋은 강연과 좋은 독자분들이 함께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출간 기념 강연회, 날씨와 상관없이 주일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알라딘과 가톨릭출판사 그리고 박승찬 교수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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