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 환상문학전집 23
크리스타 볼프 지음, 김재영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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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어디까지 미치고 잔인해져야 자신의 혈육들을 죽일 수 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할 때마다, 악녀의 대명사로 회자되는 메데이아 이야기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었다. 딱히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결코 메데이아의 결백을 의심치 않았던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기본적으로 이아손은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가 메데이아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지조 없고, 방탕하며, 부에 욕심 많은 그는 자신이 필요할 때만 그녀를 원했을 뿐이었다. 코린토스의 공주와의 결혼 제의가 들어오자 이아손은 가차없이 그녀를 버린다. 아이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가차없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이리저리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행동이 정당화될까.. 이런 고민.

메데이아는 코르키스의 공주이다. 그녀가 태어난 그 곳에 아르고 선이 도착할 때는 과도기였다. 모권에서 부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그들에게 지금 중요한 건 황금양털 따위가 아니었다. 누가 살아남고 누가 사라지느냐의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모권은 패배했다. 이 때부터 코르키스에서는 부자간의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예고된 것이다. 아비와 아들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 아비는 아들이 자신의 자리를 노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아들은 아비가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우습게도 거기에 여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인들이란 남정네들에게 복종해야 하니까. 그런 상황이 시작될 시점, 총명하고 지혜로운 메데이아는 그 곳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아손에게 자신의 미래를 내 건 것이다.

메데이아가 자신의 동생을 죽였다는 건 그녀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자신들의 죄를 그녀에게 떠 넘기기 위한 치사한 술수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그녀의 아이들을 죽였다는 거나, 가엾은 글라우케 공주를 죽였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 메데이아, 그 당당한 왕녀에게 경외심을 느꼈던 것은 그녀가 여자, 남자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이었다. 그녀에게 부권이니, 모권이니, 왕위니 하는 것들은 의미가 없었다. 그녀에게 의미있는 것은 다름아닌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양심, 그리고 그런 원칙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녀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했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그녀가 행한 바는 사람들이 가진 추악한 내면을 깨닫게 하고 말았다.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혐오스러움을 그녀에게 전가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그들의 내면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저주받아야 할 것인지를 드러내고 만 셈이다.

가엾은 메데이아. 그녀에게 가엾다는 말은 모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생을 잃고,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었으니 어찌 가엾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전정한 비극의 탄생. 다른 어떤 비극보다도 더 비극적인 이 이야기는.. 내면과 외면 모두에서 오는 고통과 좌절을 끊지 못하고 침잠해 버려 오롯이 비극만이 남아버렸다.

아크로니. 나는 이 책의 말미에 가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메데이아의 이야기는 결코 그 시대의 이야기만이 아닌 것이다. 이전시대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죄없는 희생양과 선구자에 대한 탄압. 뭉쳐지면 어리석어지는 대중들을 현혹하는 위정자들. 양심은 눈을 감고, 책임 전가만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

메데이아, 메데이아. 그녀가 최고의 악녀라는 사실이 곧 그녀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났음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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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7-06-2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새벽별님~ 맞아요~ 오늘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죠~~~ 홀딱 반한채로 말이에요^^지금도 기분이 묘해요~ 붕붕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고.. 아아~ 이런 기분 오랜만이네요~^*^

비로그인 2007-06-2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아손은 기회주의자였던가봅니다..
메데이아의 분노는 폭발적이었지요.


꼬마요정 2007-06-2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그는 비겁한 사람이었어요~~ 나쁜 x.
이 책에 따르면 메데이아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모두를 죽였다고 누명을 썼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하구요~ 너무 몰입해서 읽어서인지 애착이 남는 책입니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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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접할 때마다 느낀다. 내가 독일어를 잘 해서 원서를 읽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번역한 책의 문체가 이토록 유려할진대, 원서로 읽으면 그 감동이 사뭇 더 깊어지지 않겠는가. 허나 나는 그냥 번역된 책이라도 열심히 뒤적일거다. 배우고픈 언어가 어디 독일어 뿐이겠는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뽑아 올린 12가지 이야기들은 세계사,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서양사에서 유명한 사건들이다. 오직 하나, 천년 제국 비잔틴을 무너뜨린 내가 좋아하는 마흐메트 이야기만이 동양과 서양을 관통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인류 역사를 바꾼 순간들이란 제목은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라면 칭기즈칸 이야기도 넣었을텐데. 광기와 딱 들어맞는 인물이 아닌가. 여전히 우리사회에 깔려있는 서양 동경하기가 남아있는 제목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래서 음악 교과서에도 나오는 헨델의 메시아. 그가 생애를 통틀어 단 한 번, 신의 은총을 입어 작곡했다는 그 신성한 곡. 내가 신자가 아니라서일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다지 큰 영감을 주지 못했다. 남들이 좋다고, 불멸의 곡이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 프랑스 혁명을 달군 노래 라 마르세예즈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그 곡이 내게 광기로 다가올 수는 없다. 하지만 위의 두 곡 모두 한 세대를 통과해 아직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걸 보면, 역사는 츠바이크의 말처럼 어느 순간 별처럼 나타나 모든 에너지를 응축하여 한 인간을 통해 광기로서 그 빛을 퍼뜨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것인데, 한 사람의 천재에게만 그 짐을 지우는 건 오만이 아닐까. 한 사람의 천재가 나기 위해 수없이 스러져간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어쩌면 천재는 그들의 에너지를 모아 그들 모두를 대표하여 그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게 맞지 않을까.

이 책 전체를 통틀어 우연이란 존재가 역사를 좌지우지 한 건, 어쩌면 그건 필연일지도 모르지만, 두 가지 이야기다. 마흐메트의 비잔틴 제국 함락과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 것. 역사가 결정지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이 두 사건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한 시대를, 한 국가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전쟁 중에 성문 하나를 잠그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 열린 성문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비잔틴은 망했을테지만, 그 천년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한 줌의 재로 화해버리다니.. 마치 한 편의 블랙 코메디를 보는 듯하다. 워털루 전투는 또 어떠한가. 역사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게 아니었을까. 나폴레옹이 더 이상 세계를 호령할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러니 극적 탈출을 감행한 그의 곁에 결단력 있는 장군이 아무도 없었다. 그의 패배가 결정지어진거다.

톨스토이의 작품에 덧붙인 에필로그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신을 섬기고 노동자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대지주에 백작이라는 귀족이다. 이런 괴리를 어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마침내 생의 마지막에 와서야 끝장을 내버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뭐, 작품을 볼 때 작가까지 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딜가나 탐욕은 화를 부른다. 황금에 대한 광기에 휩싸여 결국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한 두 사나이, 발보아와 수터. 둘 다 불한당이었으니, 역사에 이 정도라도 이름이 남아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지. 물론 침략 당한 자들의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운 역사일테고. 특히 발보아. 이 사람은 시대의 죄인이라고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와 그가 이끈 사람들이 죽인 원주민의 숫자를 떠나서 그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들이 짓밟은 문명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제발 그네들의 입장에서 개화이니 문명을 전달했다느니 하는 개소리는 집어치워주길. 황금 때문에 눈이 멀어 서로를 살상하는 게 어딜 봐서 문명인가. 이들이 발견한 땅은 그들의 땅이 아니다. 스페인의 땅이 아니다. 그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땅이다.

차라리 불굴의 의지로 대양 간 케이블을 깐 사이러스 필드야말로 영웅이지 않을까.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외치던 일을 여러 번이나 실패하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루어낸 그 집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광기라고 생각한다.

레닌의 이야기가 너무 짧게 다루어져 아쉬웠다. 역사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게 바로 레닌이었으니. 그런 방식으로 러시아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그가 탄 봉인열차야말로 새로운 한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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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17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츠바이크에 대한 찬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알라딘 내에서. 아직 한 권도 접하지 못했는데.

꼬마요정 2007-05-1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정말 정열적이면서도 격렬해서요.....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간답니다. 그래서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문체에서 반하고, 내용도 친근감 있어서 내용에도 반하고..^^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과학수사와 법의학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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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미시사, 문화사를 다룬 책들이 서점에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이런 책까지 나왔다. 작가가 소설가라니.. 그럼 이건 추리소설인가? 아니다. 처음부터 범인과 결말을 알려주는 추리소설이 어디 있을까. 서문을 봤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조선시대에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강조하며 조선을 살인자의 나라인가라고 과장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 부분이 좀 우스웠지만, 나름대로 큰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겼다.

 추리소설이든 아니든 이런 주제는 사뭇 긴장감이 흐르기 마련이다. 사건과 범인을 쫓아가며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가야 하건만... 젠장. 난 읽다가 졸았다. 졸다가 퍼뜩 깨어나 다시 읽었다. 의무감으로 다 읽어버린 책. 책의 표지를 보라. 얼마나 으스스한가. 공포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옳다구나 읽었는데... 전설의 고향이 보고 싶어지는 이 심사는 무언가.

정말 시류에 영합한 책이다. 문화사가 유행하니 덩달아 급하게 나오긴 했는데, 제목이 그럴싸하니 사람들이 제법 사서 읽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이라고 내건 거창한 제목이 무색하다. 양반이 살인을 저지르면 나라 전체가 뒤흔들리는건가... 신분제 사회의 특권의식으로 사람 죽여놓고 어흠하는 건 조선시대에 제법 있을만한 사건 아닌가. 문정왕후의 오라비 윤원형만 해도 사람 많이 죽였더랬지. 정조 이후 순조부터는 권세가들이 양민들 땅 뺏고, 노비로 삼고... 그런 일 많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별을 두 개나 준 건...  하나의 주제로 그 시대를 꿰뚫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걸 이렇게 겁없이 뚝딱 건성으로 만든 티가 팍팍 나도록 내놓다니... 작가의 용기가 가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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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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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희생양.이 말만큼 그녀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말이 달리 있을까.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한 소녀가 그녀가 가진 지위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프랑스인이 아닌 오스트리아인이라는 이유로 혁명의 희생양으로 사라졌다. 역사의 비극적 드라마로 남은 이 사건에서 진실이나 운명은 확실히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혁명가들이, 혹은 역사가들이, 왕권옹호자들이 얼마나 그녀를 왜곡시켜 놓았는지, 좀 화가 날 지경이다. 도대체 그녀의 잘못은 무엇인가.

영리하지만 공부와는 담을 쌓은 놀기 좋아하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인물과 결혼한다. 소심하고 사교성과 결단력이 부족한 루이 16세는 그저 공무원이 딱인데, 어쩌다 왕이 되었는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기 위해서이지 않나 싶을 정도다. 더구나 결혼하고 8년간 '고자'이지 않았나. 덕분에 욕구불만에 시달린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갈망을 사치와 향락으로 달랠 수 밖에 없었으니, 운명이란 고약하기 그지없다. 그 8년이란 세월이 그녀의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다. 사치스럽고, 놀기 좋아하는 경박한 왕비로 말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루이 14세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더 사치스러웠을 것 같진 않다. 그 유명한 목걸이 사건만 해도 그녀가 돈을 쓴 건 아니니까. 물론 트리아농성에 들어간 돈이 무시무시하긴 하지만, 프랑스 왕실 뿐 아니라 귀족들 대부분의 재산을 거덜낸 루이 14세에 비할까. 그러나 그는 프랑스의 왕이자 남자였기에 그 사치가 눈감아졌다. 왕권을 강화한 위대한 왕으로 태양왕으로 불리지 않나. 베르사유 짓는데 든 돈이 얼마였는데...

8년 후 수술을 받은 루이 16세와의 합방으로 아이를 낳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놀랍도록 정숙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되자 안달이 난 건 다음 왕위를 노리던 왕위 계승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루이 16세의 삼촌인 오를레앙 공은 교묘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를 더럽히기 시작한다. 물론 사치를 좋아한 그녀의 탓도 있지만, 그녀가 즐긴 사치에 비해 엄청나게 부풀려진 거짓된 이미지로 군중들에게 인식되어 목걸이 사건과 같은 엄청난 사기극이 연출되고, 빵을 달라는 군중들의 요청에 고기를 먹으라고 했다는 둥 이상한 루머가 돌게 된다. 혁명이 발발했을 때 왕가의 부패나 심각하게 어려운 경제는 모두 마리 앙투아네트 때문이 되어 버렸고, 곳곳에 그녀에 대한 추악한 염문이 뿌려졌다.

정말 제대로 치사한 수법이었다. 포르노그라피로 그녀를 매도한 것은. 프랑스가 생긴 이래 모든 왕들이 정부를 거느렸고, 죽기 직전 그렇게도 좋아하던 그녀들을 버렸다. 루이 15세만 하더라도 대놓고 며느리더러 자신이 아끼는 정부인 뒤바리 부인과 인사하라고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나. 그런데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사랑을 키웠던 페르센과의 로맨스나 있지도 않은 그녀의 애인들에 관한 이야기로 그녀를 더럽히다니. 심지어 아들을 성추행 했다는 주장으로 그녀를 모욕했는데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그녀는 창녀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루이 16세는 왕으로서 단두대에 올랐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더러운 오스트리아 계집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처럼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다면, 지금의 프랑스는, 유럽은 많이 달라져 있겠지. 혹은 루이 16세가 결단력이 있었다거나. 그녀의 불행은 그녀 자신에게도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과 프랑스 사회에도 있었다. 결단력이 없어 아무것도 결정짓지 못하여 혁명을 막지도, 자신의 목숨을 구하지도 못한 루이 16세의 우유부단함과 여성의 정치 참여를 철저히 거부한 프랑스 사회에 말이다. 기회는 여러 번 주어졌으나 애꿏게도 역사는 그녀를 혁명의 도화선으로 선택했다. 그것이 그녀의 운명이자 역할이었다면 차라리 좀 더 명예롭게 사그라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녀가 자신의 위치에 대한 책임감을 지나치게 늦게 깨달았기에 그녀는 그저 혁명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시대에는 영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폴레옹의 자리를 그녀가 대신 차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건만, 역사는 그녀 대신 나폴레옹을 선택했다. 그저 베르사유의 장미로 칭해지는 그녀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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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2007-09-1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퍼갑니다..
 
로망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
이명옥 지음 / 시공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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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교회에 종속되어 천국으로 가기 위한 삶을 살던 중세인들에게 이런 사랑이 허락되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금기에 대한 반동은 극단으로 치닫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드러내놓고 불륜을 칭송하고, 그 사랑을 영웅시하는 분위기... 물론 그건 모두 상류계층에게나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작가는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로 이야기를 잘 구성했다. 처음 우리는 맞이하는 이들은 파울로와 프란체스카. 시오노 나나미나 단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단테와 같은 시대 사람들이며, 정략결혼의 희생자이자 세속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다 비참하게 죽은 로맨티스트들이다. 우리에게 그들의 애절한 사랑을 알려준 건 단테 알리기에리. 이야기는 신곡에서 시작한다. 지옥에서 같이 붙어있는 영혼들을 본 단테는 그들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감동에 겨워 실신하고 만다. 형수와 시동생이었으나 서로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던 그들은 결국 파울로의 형이자 프란체스카의 남편인 지안치오토에 의해 처형된다.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사랑에 불을 붙인 건 갈레오토의 책 중 귀네비어와 란슬롯의 키스 장면이었다. 그리하여 다음 이야기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신에 대한 사랑으로 대체하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한 아름다운 귀네비어와 용맹한 란슬롯의 사랑이 이어진다.

기사도 정신, 귀부인 숭배, 성배 전설 등이 융합된 흥미진진한 이야기,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그들은 멋진 연인이다. 아더 왕은 빛이 나는 사람이다. 그러함에도 귀네비어가 란슬롯을 선택한 이유는 귀네비어가 모계 사회를 이끌던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더 왕 전설은 종교와 가부장제의 확립을 나타내는 이야기인 것이다. 모계 사회의 수장 귀네비어가 선택한 다음 왕은 란슬롯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부계상속으로 바뀌어버린 사회 속에서 불륜으로 치부되었다. 물론 이 책에서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다 빼고 둘의 사랑만을 부각시켜 놓았지만, 사실 그들의 사랑을 사랑만으로 보기엔 함축된 의미가 지닌 농도는 너무 짙다. 그래도 서로를 그리다 그리다 신에게 참회하고자 각각 수녀와 수도사가 되었으나 그리움에 몸부림치다 결국 죽어버린 사랑에 가슴이 아프다.

다음 이야기는 여전히 아더 왕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아더 왕의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이었던, 란슬롯과 비교하여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용사이자 음유시인이었던 트리스탄.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라 불리는 이 이야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아더 왕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때문이었으니. 사랑의 묘약 때문에 삼촌의 아내가 될 여자를 사랑하게 된 트리스탄과 원수이자 시조카인 트리스탄을 사랑하게 된 이졸데. 그들의 운명은 실로 아이러니였다. 둘이 사랑하게 되면 절대 안 되는 거였으니까.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던 사촌오빠를 죽이고 자신의 나라를 모욕한 트리스탄을, 사촌동생으로서 한 나라의 공주로서 용서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팔려가다시피 마크 왕과 결혼해야 하는 데, 그 치욕적인 결혼을 성사시키러 온 사람이 트리스탄인데... 어떻게 둘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사랑의 묘약이 등장했나 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래서 사랑은 위대한가 보다. 깊은 증오를 환희로 바꾸어 놓았으니. 그러나 둘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 불멸의 사랑을 한 그들은 결국 죽음으로써 같이 있게 되었다.

자, 이제 마지막이다. 마지막은 단테와 베아트리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 않은가. 평생을 베아트리체 단 한 명만을 사랑하였고, 그 사랑으로 그녀를 신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은 단테의 순애보. 평생에 걸쳐 두 번 만난 여인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첫사랑도 이런 첫사랑이 없다. 사랑... 그것이 무엇이기에 한 사람의 생애를 뒤흔들어 놓았을까. 이야기는 신곡에서 시작하여 신곡으로 끝이 난다.

중세시대 교회에서는 사랑을 위험한 감정으로 보고 금기시했다. 개인적인 감정인 사랑을 허용했다간 공동체적 사랑을 강조하고 내세를 준비하도록 이끄는, 획일적인 가치 체계를 장악하고 있던 교회세력이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대에서는 사랑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 개인의 삶을 살고자 한 노력이자, 사랑을 신의 뜻이 아닌 개인의 마음을 스스로 선택한 자주적인 그들의 노력 덕분이다. 

이 책에 나오는 갖가지 그림들을 감상하는 일 또한 즐거움이었다. 사랑 이야기도 네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화가들과 관련된 사랑 이야기도 나오고, 그 시대의 문화도 간접 체험할 수 있어 기뻤다. 볼 거리, 읽을 거리가 다양한 책이라고나 할까.

아직도 치열하게 살다 간 이들의 사랑이 내 감수성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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