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계 역사를 바꾼 여인들
장시우펑 지음, 김태성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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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국 고대 왕조 하나라의 멸망은 말희 때문이고, 은나라의 멸망은 달기 때문이고, 주나라의 멸망은 포사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거대한 나라들이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망할 수 있는 것일까? 오래도록 번성하던 그 나라들이 경국지색의 미녀들에 의해서 멸망했다고 말하면 좀 우습지 않을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어 온 모순과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염원, 탐관오리, 폭정 등과 같은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비롯되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러져간 나라들이 오로지 그 여인들 때문에 망했다고 말하는 건 책임회피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당시 여자들은 위정자가 될 수 없었으니까.

말희, 달기, 포사, 서시 등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뛰어난 미인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들 중 20명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미인계'란 병법을 등에 업고서 말이다. 사실, 미인계란 말은 그다지 좋게 쓰여지거나 들리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미인계의 결말은 대부분 비참하다. 그들은 요녀, 요부, 팜므파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뭇 남성들의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미인계에 빠진 남성들이 저지른 만행마저 그녀들의 죄로 몰아붙여져서 말이다.

미인계는 육도(六韜)에 처음 등장한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적을 이기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영웅호걸치고 미인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없다는 말이 지당한 진리로 들릴만큼, 미인계를 사용한 전투 중 크게 성공한 것들이 너무 많다. 특히 은을 멸망시키기 위해 여와가 보냈다는 달기나,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서시,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아 동탁을 제거하게 한 초선 등은 미인계 중에서도 으뜸이다. 남자는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여자는 남자를 다스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생길만큼 미인계를 사용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적을 좌지우지했다. 그녀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얼이 빠진 남자들은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시켰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자멸이었다.

이 책에서는 미인계를 극히 하수로 평가하고 있다. 더 이상 쓰여져서도 안 되고, 이 이상 비겁한 짓도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한 여자의 몸과 마음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일이 성공한 뒤에도 떳떳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을 본다면, 미인계는 반윤리적인 전략이다. 다만 전쟁이라는 놈이 윤리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고, 당시 여자들에게는 한을 풀 방법이 제대로 없었다는 것이 문제이고, 무엇보다도 여자의 의기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이제 미인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그 여인의 의기나 동기를, 목적을 자세히 알아주면 좋겠다. 언제나 영광된 순간과 명예로운 자리는 남성이 차지했다. 어떤 공을 세워도 여자의 자리는 병풍 뒷 편이었다. 우리는 서시를 이야기할 때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녀가 어떻게 부차를 유혹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녀가 정인을 남겨두고 나라를 위해 부차에게 갈 때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란 생각은 그다지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미녀는 요녀이니까. 그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줄 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건 오로지 탐욕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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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1-2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16167

 

 

 

    이 책 서문에 보면 그런 것이 왜 등장했는지가 나와요.

    뜬금없이 느껴지시겠지만 가끔 보면 남성들은 팜므파탈을 만들어서

모든 것을 전가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듯 해요.

 


꼬마요정 2006-01-2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벼르고 있답니다.^^ 찌찌뽕~이어요~^*^
그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남성들은 성적인 면에서만 본능에 충실하려고 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죠.. 다른 면에서는 모두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면서 말이에요.. 모순이에요..흥
 
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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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이 독살당했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 책을 덮은 내가 처음으로 느꼈던 순수한 감정은 분노와 안타까움이었다. 대부분의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역시 내가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국사' 수업을 통해 알게 모르게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고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나는 이 책에서 다뤘던 인물들, 광해군이나 소현세자, 정조 등이 죽지 않았더라면.. 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수명보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현재 우리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겠지란 서글픈 위안과.

 

'만약 ~ 했더라면' 이라는 가정은 역사 연구에 전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가는 실증적으로 검증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만을 기록해야 하고, 철저하게 자기 주관을 배제시켜야 하며, 가정은 역사 연구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시각이 전부일까? 어째서 나는 광해군이나, 소현세자, 정조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절망을 느끼는 걸까? 만약 임진왜란 이후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조선도 망하여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정말로 터무니없는 것일까?

 

이미 죽은 왕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파헤치는 건 어쩌면 의미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라는 학문이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아있는 인간을 위한 학문이라면, 그런 가정들은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왕정체제 하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정치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정치하는 사람'들을 선출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보다 정치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들이 하지 못했던, 막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 '올바른 정치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잃지 않는 것!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독살이란 방법으로 왕들을 제거했다면, 현재에는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인을 사회에서 매장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올바른 정치인을 가려낼 줄 아는 '눈'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비극을 현재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눈'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미 일어났던 사실들을 뒤집어 봄으로써 절망이 아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 현명한 왕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이, 다르게 갈 수 있었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보다 암울한 미래로 굴려놓았지만, 그 암울한 미래 어딘가 서 있는 우리는 그 수레바퀴를 보다 행복한 미래로 돌려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왕들의 죽음이 모든 것의 원인은 아니지만.(모든 것의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처음 제기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과거 왕들의 의문사는 현재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것을 비틀어 볼 줄 아는 또 다른 시각을 얻게 해 주었으며 더 나아가 더 이상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다 넓은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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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5-10-0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이덕일 씨 책은... 살아있는 한국사랑 이 책 밖에 없어서요... 이것도 옛날에 나온 거 개정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옛날 책을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어요~ 아니면 제가 빌려드릴까요??
 
무협 살림지식총서 62
문현선 지음 / 살림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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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의 영화 '영웅'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사랑하던 연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주위에는 온통 모래들 뿐이다. 삭막하면서 애처로운 그 곳에서 파검은 끝내 비설의 검을 피하지 않는다. "왜 피하지 않았지?" "그래야 믿을테니까." 앞의 정치적인 내용들 보다도 내 마음 속 깊이 각인되던 그 장면. 파검은 왜 비설의 검을 피하지 않았을까.

 

비설과 파검이 활약하던 시대는 진시황이 막 천하통일을 이루려던 시대. 즉, 전국시대 말기다. 중국사에서 가장 혼란했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는 가능성의 시대였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능력있는 자는 중하게 등용되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많은 나라들이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서는 등 극히 어지럽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나라의 영광과 함께 일어서거나 사라지거나를 반복했다. 나라를 잃은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 줄 권력자를 찾아서 나라를 전전했으며, 그런 이들의 대부분은 시대 상황에 맞게 모사나 무사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인 예양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지백을 섬겼으나 지백은 조양자에게 살해 당했다. 그에 복수를 다짐한 예양은 자신의 외관을 망쳐 가면서까지 모든 것을 걸어 조양자를 죽이려고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두 번의 시도 중 첫번째는 예양의 의리를 높이 산 조양자가 그를 풀어주어 살아났으나, 두번째에는 조양자 역시 예양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예양은 조양자의 옷을 요구하였고, 그 옷을 베어버림으로써 예양은 지백의 원한을 갚을 수 있었다. 

 

연의 태자가 진시황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어 그를 죽이고자 했을 때, 전광은 형가를 추천했다. 태자는 그를 보기를 원하며 전광에게 이 일을 누설치 말 것을 당부했다. 전광은 그러겠다고 약속한 후, 형가를 찾아가 그에게 일을 맡긴 후 자살한다. 섭정은 자신을 알아 준 엄중자를 위해 그의 원수인 한나라 재상 협루를 죽인 후 자신을 감추기 위해 얼굴 껍질을 벗기고, 눈을 파낸 후 자결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하나 남은 누이에게 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누이인 섭영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의로운 동생이 이름을 남기지 못해서는 안된다며, 섭정의 시체 옆에서 사흘을 울다 죽는다.

 

사람들은 예양이나, 전광, 섭정 등을 협(俠)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알아 준 이에게 스스로 보답하기 위해 행동한 것이고, 바로 그 점이 협의 행동양식이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알아 준 이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으나, 일단 한 번 그런 이를 만나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보답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다면 한다.'는 행위준칙 아래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협에게 있어 자신의 행위를 믿어준다는 것은 자신 그 자체, 즉 존재를 믿어준다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광은 연의 태자가 자신을 의심하자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입으로 비밀을 지키겠다 했으니,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위해 목숨을 끊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않은가. 

 

이제 파검이 칼을 놓은 이유를 알았다. 비설은 연인으로써, 동지로써 파검을 믿었으나 마지막에 가서 파검은 비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동지를 믿을 수 없다면 더 이상 동지가 아니다. 그는 적이다. 적을 사랑할 수 없었던 비설은 파검에게 검을 겨누었고, 믿음을 잃은 파검은 곧 존재 자체를 의심받은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죽음으로써 믿음을 보여주고자,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협으로써 행동하는 일은 변화를 꾀했다. 이전에는 자신을 알아 준 이가 있음으로써 자신이 협으로써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화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천하가 통일이 되어 더 이상 나라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은 스스로가 협임을 온세상에 알려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의로운 일을 하여 자신이 협임을 알렸고, 그들이 모여 강호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강호인들의 무용담은 떠받들어져 전승되어왔고, 마침내 살아있는 전설을 만들어 내었다.

 

무협. 무사들의 도리, 그들의 행위준칙. 이제 어느 정도 강호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제 겨우 시작을 이야기 할 뿐이다. 더 많은 의미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와 책을 읽어야 하겠지. 기대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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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철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8
이영호 지음 / 책세상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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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나열이 아니다. 역사가 역사로서 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사관'이 필요하다. 즉,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어떤 사건을 골라내어 그 사건으로 인한 현재가 긍정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역사의 의무라는 이야기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알기 위해 역사학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근래 일본의 움직임은 마치 100년 전과 같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유신지사들은 급속하게 극우지사들이 되어갔다.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제국주의로 돌아선  그들은 급기야 대동아공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해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엄청난 희생자를 동반한 그 전쟁으로 인해 아직까지 상처를 달래지 못하고 피 흘리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100년만에 그들은 부활했다. 우리가 과거 일본의 움직임을 몰랐다면, 지금 그들에게 우왕좌왕하는 태도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과거 조선의 위정자들이 그랬듯이.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안다. 현재를 위해 우리는 다시 그 과거를 들추어 낸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왜 그렇게 반발하는가. 과거의 왜곡은 현재의 왜곡을 필연적으로 부른다. 우리는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위해 과거의 왜곡을 반대한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지만, 또한 현재 없는 과거 역시 없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는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하며 그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역사학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어떤 식으로' 이어주는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며, 그 '어떤 식으로'를 우리는 '사관'이라고 부른다.

 '사관'은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는 힘이다. 사관에 따라 하나의 사건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식민사관과 그에 대비되는 민족사관이 아주 좋은 예가 된다. 그렇기에 올바른 사관을 정립하는 일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선행되는 중요한 작업이다. 이 책은 사관, 다시 말해 역사의식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먼저 역사를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개념들과 그 범주, 그리고 몇 가지 중요한 주제들을 설명하고 본격적으로 과거를 훑는다. 주로 포스트모너니스트들의 역사인식 - 역사의 진실은 불가지론적이며 허구에 가깝다 - 과 헤겔이나 야스퍼스 등 신학과 관련된 철학자들의 역사인식, 식민사관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페이지는 작지만, 인간의 역사를 모조리 포함시키고 있어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철학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만할 정도로 철학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결국 글쓴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글쓴이가 공부할 때까지 판치고 있던 식민사관을 뿌리뽑아 진정한 민족의 역사를 찾자는 대전제 아래 마르크스의 역사인식을 대부분 수용하여 힘 있는 자들을 대변하던 역사에서 민중을 위한 역사로 바꾸자고 주장. 그러기 위해 선행되는 작업이 바로 이 책이라는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과학적 역사인식을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옹호하는 것도, 유물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의 역사인식을 전격 수용한 것도 이해가 갈 만하다. 팽배해있던 식민사관에 맞서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여전히 힘 있는 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고, 식민사관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데다가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의식 있는 시민이라면 안다. 식민사관의 허구성과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잔재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그리하여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올바른 역사인식의 정립을 위해 다 같이 투쟁하고 있음을. 그리고 반드시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 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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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정부
엘리노어 허먼 지음, 박아람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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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님의 리뷰를 읽고 어떻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었을까... 주머니 사정으로 잠시 보관함에 넣었다가 얼마전에 샀다. 오자마자 읽어 결국 며칠만에 다 읽었다. 400여 페이지가 되는 책이지만, 술술 쉽게 읽힌다. 아마 갖가지 음모와 로맨스, 침실의 뒷 이야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은 쉽게 읽을 만하며, 읽고 난 뒤 열받는 건 여자라면 다 똑같을 것이다.

유럽의 왕실은 특이하다. 종교의 영향이 가장 컷던 탓에 그들은 일부일처제를 철저하게 지키려 한다. 물론 능력이 넘치는 왕은 '정부'라는 노리개를 두어 정략결혼에 희생된 양 왕비는 무시하고 정부에게로 달려간다. 그 정부들은 언제 왕이 변덕을 부릴 지 몰라 늘 전전긍긍하며 왕의 환심을 사기 바쁘다. 게다가 모든 비난은 정부의 몫이었다. 왕이 정치를 잘 못해도 모두 정부가 홀려서 그랬다느니, 정부의 사치가 심하다느니 대신과 백성들은 신의 아들인 왕을 비난하기보다는 정부를 욕했다. 그렇게 실컷 욕 듣다가 왕이 버리거나, 왕이 먼저 죽으면 그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대게는 왕이 버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버림받은 이들은 수녀원에 들어가 그들이 지은 죄(간통)를 참회하며 살거나, 연금을 받으며 재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왕이 먼저 죽으면 왕비의 복수를 온 몸으로 받아야 했다. 카스티야의 알폰소 11세가 흑사병으로 죽자, 마리아 왕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인 레오나르 드 구스만을 긴급 체포, 사형에 처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4세가 죽었을 때, 그의 정부였던 제인 쇼어는 런던 거리를 걸으며 돌세례를 받아야 했다.

왕비의 삶은 늘 무미건조하며, 불행했다. 다만 지아비인 왕이 중병에 걸리거나 죽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정부에게 왕의 모든 사랑을 빼앗긴 왕비는 늘 궁전 한 구석에서 슬퍼하다, 왕이 죽을 때에야 왕을 오롯이 차지한다.

 '죽음의 전령은 오랫동안 버려진 채 살아온 왕비들에게는 제법 우호적인 존재였다. 커다란 접시에 차갑게 식은 남편을 담아 대령하고 신혼 시절 이후 처음으로 그를 독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위의 표현은 커다란 궁궐, 낯선 이국으로 팔려온 타국의 공주들이 얼마나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왕비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동양의 경우는 여자들에게 오히려 나았던 걸까. 왕의 여인들은 모두 후궁이 되어 적정한 대우를 받았으며, 중전의 경우는 엄격히 국모로서 대우받았다. 간혹 후궁들이 간계를 꾸며 그 자리를 꿰어찰 수도 있었으나, 극히 드물었다.

종교를 신봉하면서 뒤로는 정부를 두어 여자들을 농락한 왕들... 죽음의 순간에는 자신이 지옥에 들어설까 두려워 하여 정부의 존재를 부인한 이들... 가장 치사하고 역겨운 인간은 바로 그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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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10-18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진짜 재밌긴 하죠? ^^


꼬마요정 2004-10-18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참 재밌긴 하더라구요~~^^
판다님두 읽으셨어요?

panda78 2004-10-20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스따리님이 선물해 주셔서 읽었어요. 시간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ㅡ^

꼬마요정 2004-10-2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랬군요...
정말 두께에 비해 엄청 빨리 읽었어요~ 반복적인 이야기도 많았지만, 정말 남들의 사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을 줄이야...그쵸?

마냐 2004-10-28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남의 사생활....이런데 늘 눈길 가구...스캔들 기사 한번 힐끗하게 되는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암튼, 재밌긴 했다...는데 다소 안도합니다...음...책값 아까웠다보단 낫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