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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열린책들 세계문학 182
에라스무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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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느 시대에서나 풍자와 해학은 대놓고 말하지 못할 이야기조차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도록,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얼마 전 있었던 광주 비엔날레 사건이나 우신예찬, 혹은 바보예찬 역시 그러한 풍자를 가득 담고 있다. 분명 신분 제도도 없고, 언론의 자유도 보장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정말 그런가 싶은 요즘, 우리에게도 진정한 인문주의자이자 유쾌한 해학꾼인 에라스무스 같은 존재가 절실하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자신이 쓴 에라스무스 전기에서 에라스무스를 이렇게 평가한다. 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은 *최초의 의식 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 현자의 본질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과 최고를, 학문과 문학 영역에서 그리고 세상사와 정신의 영역에서 부정할 수 없는 권위를 의미한다고.

 

에라스무스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에라스무스를 사랑하는 스위스는 그가 태어난 해를 1466년으로 지정해 1966년에 탄생 500주년을 기념했다. 반면에 그가 태어난 곳인 네덜란드는 1469년을 출생연도로 결정하여 1969년에 탄생 500주년을 기렸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나 사용한 언어는 자라면서 배운 라틴어였고, 스위스 바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종교의 광기로 가득하던 시절, 고독하게 관용의 정신을 실천하던 그는 자신과 교류했던 많은 이들이 잔혹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자신이 죽어나가는 것처럼 신음한다.

 

토마스 뮌처가 잔인하게 고문 당해 죽고, 우신예찬을 쓸 수 있게 영감을 준 토마스 모어가 도끼날 아래에 죽고, 서신을 교환하던 츠빙글리는 맞아 죽고, 제자였던 베르캥은 불에 타 죽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살아남아 자연적인 죽음을 맞는다. 아마도 극단을 선택하지 않고 평화와 자유를 추구한 그의 정신과 태도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무시무시한 시대에, 저 우신예찬이라는 책을 쓴 그는 여러 차례 협박 편지를 받았고, 살해 위협에 시달렸으며 이 책은 금서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대립하여 싸우는 방식보다 상대방을 구슬리고 공감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비난을 교묘하게 피해간다. 그는 자신이 번역한 첫 번째 성서를 교회의 지배자인 교황 레오 10세에게 헌정하였고, 교황으로부터 기쁘다는 말과 칭송을 받는다. 그의 유화적인 천성 덕분에, 다른 사람이었다면 사실 몇 번이나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화형대에 올랐을 일들을 잘 헤쳐 나간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떻게 그 시대 권력자나 성직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까?

 

이 책은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절친한 지인이었던 토머스 모어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한다. 먼저 영감을 준 모어에게 감사를 표하고, 모이라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뭔가 비장한 어투로 어리석은 여신 모이라가 말한다. 일종의 예식 연설로 화자인 모이라가 자신을 예찬하는 형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이라는 나팔수가 되어 자신의 위대함과 어리석음이 가져온 평화에 대해서 열렬하게 칭찬한다. 이 자체부터가 웃음이 나는 바,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어찌나 우쭐거리면서 자신을 칭찬하는지, 모이라가 언급하는 인물들만 해도 쟁쟁하기 그지없다. 호메로스는 기본이고, 페리클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우구스티누스, 스콜라 철학자들, 키케로…….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인물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모이라는 가차 없이 그들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 진정으로 나라를 세우거나 구한 것은 세이레네 가운데 가장 달콤한 명예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여자를 어리석다고 비하하는 어리석은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을 꼬드겨 자신의 뜻대로 하는 어리석은 여자들을 이야기하고, 어린아이들, 노인들, 아부를 사랑하는 군주들, 장황한 말들을 좋아하는 궤변론자들, 스콜라 철학자들, 교회 학자들, 수사들, 장사꾼들을 이야기한다. 그들 모두 어리석은 여신 모이라를 따르고 있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

 

하지만 더 우습기도 하지만 섬뜩하기도 한 것은 교황들을 이야기할 때이다. 그는 대놓고 교황들이 그리스도의 삶을 왜곡하고, 역병같은 삶으로 그리스도를 살해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지금 교회의 적이라고 콕 집어놓고 말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웃으면 왠지 기분 나쁘고, 화를 내자니 마치 자신이 진짜 나쁘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우리야 그저 즐기면 되지만, 이 글에서 지적하는 당사자들은 아마 얼굴이 붉어지고 심기가 불편했을 터.

 

에라스무스가 이야기하는 것인지, 어리석은 신 모이라가 이야기하는 지 아리송하게 하여 누군가가 딴죽을 걸면, 에라스무스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아니라 어리석은 신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결코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그는 기지를 발휘할 줄 아는, 진정 자유로운 세계주의자였다.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그가 어리석음에 바치는 이 유쾌한 찬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문주의자들, 종교 개혁가들, 이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 후련함과 웃음을 선사했다.

 

이 책이 나온 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런 풍자와 해학이 유효한 것을 보면 에라스무스는 진정한 천재이자 인간을 통찰한 인물이 아닌가. 이 연설은 마지막까지 입꼬리가 올라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엄청난 언어의 잡동사니를 늘어놓았으니 여태까지 한 말을 나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거니와, 내가 이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기대한다면 이는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옛말에 <같이 마시고 다 기억하는 놈을 증오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새롭게 고쳐 <다 기억하는 청중을 나는 증오한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 안녕히! 박수 치라! 행복 하라! 부으라, 마시라! 나 우신의 교리에 탁월한 여러분이여.(p.197)

 

이 얼마나 유쾌한 언사인가. 우신의 교리에 탁월한 여러분이여라니. 이제 우리는 이 연설을 읽고 나를 욕한 것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고민하는 순간, 어리석은 여신조차도 다 잊어버린 일인 것을 생각하다가 괜히 어리석음의 극치에 있는 인간이 될 테니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쥐”는 쥐일 뿐이라고. 그 말에 버럭 한다면 자신이 쥐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렇듯 유쾌함이 존재하는 데 위안을 얻는다.

 

 

 

 

 

*.(스테판 츠바이크, 정민영 옮김, 『에라스무스 평전』, 아롬미디어(2006), pp.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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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미소 - 1911년 모나리자 도난 사건
R.A. 스코티 지음, 이민아 옮김 / 시사IN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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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천재라고 부르는 인물들이 있다. 여러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 사람을 빼 놓지는 않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름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실로 놀라운 인물이다. 그를 지금 이렇게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라 조콘다, <모나리자>였다.

 

미술사에서 <모나리자> 만큼 신비롭고 말 많은 작품도 드물 것이다. 그녀가 누구인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가 왜 그녀를 그렸는지, 그녀를 어떻게 그렸는지, 그녀의 미소는 어떤 의미인지... 온갖 이야기가 오갔고, 온갖 첨단 장비들이 그녀를 검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는 묘한 미소만을 띈 채 '그 자리'에 '있'다.

 

1911년 8월, 그저 예술사에서 수준 높은 그림이었던 <모나리자>를 지상 최대의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린 사건이 발생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녀가 사라졌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어떤 사람도 그녀가 사라진 것을 알지 못했다. 자그마치 24시간 동안 말이다. 카레관에 걸려 있던 <모나리자>는 마치 스스로 걸어나간 듯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녀가 걸려있던 빈 공간을 보고 사진을 찍으러 간 것이라고 생각한 루이 베루드는 그녀가 언제 돌아올지 물었다. 그리고.. 박물관에 있던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파리 경시청장 루이 레핀은 도난 사실을 알게 되자 루브르 박물관을 폐관하고, 프랑스 국경을 봉쇄했다. <모나리자>가 걸려있던 카레관 주변에서 빈 액자 두 개가 발견되었다. 그 날 호외로 <모나리자>의 도난이 세상에 알려졌다.

 

혹자는 프랑스나 독일 중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든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든 말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 청년이 그녀를 안고 나간 것이라고 했다. 어찌 되었든 <모나리자>는 사라졌고, 도둑은 그녀를 세상에 내 놓을 수 없었다.

 

우습게도 <모나리자>가 사라지자, 그녀가 있던 '빈 공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그녀는 여신이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조각상들을 훔치던 아폴리네르가 <모나리자>를 훔친 강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아폴리네르와 절친했던 피카소는 옛날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법정에서 그를 모른 체 했다. 아폴리네르는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13년 기적처럼 <모나리자>가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빈센초 페루자는 이탈리아 인이고, 유리공이었다. 그는 이 유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고향으로 데려다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폴레옹에게 '약탈'당해 프랑스로 강제로 오게 되었지만, 누군가 그녀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모나리자>는 나폴레옹이 갖고 오지 않았다.

 

어쨌든 빈센초 페루자는 법정에서든 어디서든 자신의 생각을 지켰다. 결코 자신의 뒤에 누가 있는지, 누가 조종했는지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페루자의 이야기를 거의 믿지 못했다. 페루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회화, 미술 서적을 탐독하기엔 가방끈이 짧았고, 애국자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면이 많았다. 하지만 경위가 어찌되었든 <모나리자>는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20년 뒤인 1932년, 칼 데커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모나리자>는 어떻게, 왜 도난당했는가'란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자신이 20년 전에 카사블랑카에서 발피에르노 후작으로부터 사건의 전부를 들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 이야기 역시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증거 자료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사 덕분에 위조사에 길이 남을 이름이 생겼다. 이브 쇼드롱. 발피에르노 후작이 말한 <모나리자>를 위조한 인물이다. 칼 데커는 발피에르노 후작이 위작들을 팔기 위해 <모나리자>를 훔쳤다고 전했다. 물론 믿기는 어렵지만.  

 

작가인 스코티는 이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를 도난당한 뒤 처음 대응했던 방식, 프랑스 경찰이 개입해서 헛수고 하는 일들, 그 와중에 떠오른 용의자는 그 유명한 아폴리네르와 피카소. 그리고 계속해서 헛다리를 짚으며 사라진 <모나리자>를 찾는 일들... 그러다가 2년 뒤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모나리자>를 되찾고, 그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까지 다룬다.

 

사라짐으로 여신이 되어버린 <모나리자>. 그녀는 이 도난 사건으로 여왕의 대접을 받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녀의 진실된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녀는 유리벽 속에 고립되어 홀로 걸려 있다. 습도, 온도, 빛.. 모든 조건이 그녀를 위해 맞춰지지만 그녀는 더 이상 사람들과 똑바로 마주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푸랑수아 1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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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3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에서는 '무엇'이 사라져 주면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을까요..
흠...

아무튼, 재미난 책이네요~

꼬마요정 2013-12-23 18:06   좋아요 0 | URL
음.. 우리나라에서라.. 생각하니 재밌네요 ㅎㅎ
도대체 뭐가 사라지면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될까요??

재미나게 읽었답니다.^^
 
만델라스 웨이 - 넬슨 만델라의 삶, 사랑, 용기에 대한 15개의 길
리처드 스텐절 지음, 박영록 옮김, 넬슨 만델라 서문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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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의 자서전을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이다. 자서전이라는 건 잘 포장된 자기 자랑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자서전을,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의 자서전을 읽는 건 그닥 좋지는 않아 보인다. 산 사람은 분명한 어떤 목적 때문에 자신이 한 일을 부풀려서 화려하게 포장하고, 죽은 사람은 숭배된다.  

이 책도 그러려니 했다, 처음에는. 그런데 신문에서 이 책에 대해 쓴 걸 읽었다. 이 책을 쓴 건 리처드 스텐절. 타임지의 편집장을 지냈고, 나름 객관적이라나 뭐라나. 어쨌든 괜찮다는 평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서전을 읽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위인전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살아있지만 그는 위인이니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인종차별이 심하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종차별정책을 끊고 여러 인종이 화합해가는 데,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데 큰 공을 세운 게 넬슨 만델라라는 사실도. 그리고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모두가 투표권을 가진 최초의 민주 선거에서 당당하게 선출된 진정한 지도자이다. 

언제나 그렇듯 위대한 일을 이루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원칙이 있고, 놀랍게도 그 원칙들은 비슷하다. 그래서 위인전을 읽는 건 일종의 도덕책이나 영웅의 시련과 극복을 다룬 서사시를 읽는 것과 같다. 어쨌든 이 책은 그의 신념, 성향 등을 15가지로 나누어서 제시한다. 만델라가 걸어 온 삶, 사랑, 용기에 대한 15가지의 길. 멋진 말들과 가슴에 새겨놓고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말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말은.. 그는 영웅이지만 사람이라는 거다. 사람들은 영웅을 보면서 완벽을 기대한다. 어떤 작은 실수도 영웅의 실수는 크게 보여진다. 영웅은 결국 만능한 신으로까지 보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한순간에 저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래서 만델라는 영웅으로 남기보다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한다. 그가 이룬 것들은 모두 그가 사랑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들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룬 것이니까. 

그리고 또 가슴으로 감동했던 건 만델라가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 바로 물러났다는 점이다. 13장에 나오는 대로 만델라는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음에도 임기가 다하자 물러났다. 물러날 때를 아는 그에게 엄청난 존경심이 들었다. 권력이라는 괴물은 사람의 신념을 잡아먹는 법이라 우리나라에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데도 종신 대통령 해 먹으려고 발버둥친 놈들이 많지 않은가. 어떻게든 그 권력을 유지하고자 온갖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떻게 만델라는 정당하게 손에 넣은 권력을 정당하게 돌려주는지 너무 멋졌다. 그는 정말 진정한 지도자였다. 

내가 놀랐던 건 외국에서 평가되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위상이었다. 만델라 다음으로 존경하는 인물로 많은 외국 지도자들, 정치인들은 고 김대중 대통령을 꼽았다. 우리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나열해 본다면 당연한 평가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인종차별은 없었지만, 식민지배에 분단에 내전에 쿠데타에 민중학살에.. 이런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에서 변절하지 않고 민주화투쟁을 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언젠가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 그런 날이 금방 온다면 좋겠다. 그런 날이라면 우리나라에도 민주화가 활짝 피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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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시대 - 캐롤라인 왕비의 1460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2
페르 올로프 엔크비스트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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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세기.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유독 많은 일들이 일어난 때가 있다. 국가의 멸망과 건립, 체제의 변화, 혁명.. 같이 굵직한 사건들 말이다. 18세기는 바로 그러한 일들이 떼거지로 일어난 시기였다. (물론 삶의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가장 유명한 사건을 들라치면 -물론 서양사 입장에서- 프랑스 혁명을 꼽을 수가 있겠다. 선하지만 무능한 왕 루이 16세와 지독히도 운 없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생의 마감으로 끌고 간 그 혁명은 '화려한 불꽃' 같았지만 '비탄의 폭발' 같은 것이기도 했다. 

18세기는 정치, 경제, 문화 어디를 보나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혁명도 일어났고, 계몽주의 사상도 넘쳐났다. 산업혁명도 이 시기에 일어났다.  

그런데. 

이 시기의 덴마크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정말로. 생각해보면 서양사를 공부할 땐 언제나 중심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러시아, 독일.. 여기까지였다. 다른 곳들은 부수적으로 배울 뿐이었는데 그나마 잘 나오지도 않았다.  

스웨덴의 작가를 처음 접한 건 「밀레니엄」시리즈였다. 스티그 라르손. 완전 반했는데, 이 책에 꽂히게 된 것도 작가가 스웨덴인이라는 게 어느 정도 작용했다. 거기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의 궁정의 역사라니. 거기다가 허구헌날 왕의 정부 이야기만 보다가 왕비의 정부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깃거리인가. 

슈트루엔제와 캐롤라인의 짧지만 불꽃 같은 사랑을 엿보는 건 그닥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왕의 정부들을 대할 때의 편안함은 없었고, 들키면 어쩌나 하는 두근거림이 있었다. 수시로 정부를 갈아치우는 왕의 변덕 때문에 일어나는 짜증은 없었지만, 죽음을 상징하는 왕비의 성에 대한 신성성은 무서웠다. 말 그대로 그 시대의 여자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어쩐지 인형 같은 존재였다. 높은 신분의 여성은 정략의 인형, 낮은 신분의 여성은 남편의 하녀로서의 인형, 야심 가득한 여성은 신분 상승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인형...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게 된 게 얼마 안 된다는 생각에 좀 숙연해졌다. 

좀 우습지만 처음 덴마크를 떠올렸을 때 난 덴마크 우유가 생각났다. 그리고 책에도 나오지만 고뇌에 찬 우리의 햄릿도. 크리스티안 7세를 통해, 슈트루엔제를 통해, 캐롤라인을 통해 본 덴마크의 왕실은 말 그대로 미친 곳이었다. 방탕한 왕과 왕의 마음을 빼앗긴 왕비의 비탄, 왕의 정부들, 권력의 부스러기를 얻으려는 수많은 아첨꾼들, 왕의 권력을 나눠받은 권세가들. 그리고 차기 권력자를 향한 그들의 시선. 그런 삭막하고 미친 곳은 아이가 자라기엔 너무나 힘든 곳이었다.  

캐롤라인은 영국의 왕 조지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했고, 자신의 의지대로 사랑할 남자를 골랐지만, 결국 시대에 순응하는 척했다. 자신의 아들과 딸을 지키고자 적들이 원하는 걸 내 준 것이다. 그것이 그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캐롤라인의 남은 생 동안 살아있었다.

오늘날처럼 사랑이 각광받는 시대는 없었다. 사랑은 그저 감정의 찌꺼기, 불필요한 어떤 것으로 치부되었고 중요한 건 신의 의지, 집안끼리의 관계, 의리, 충성, 효와 같은 가치들. 그런 면에서 캐롤라인의 사랑은 실로 놀라웠다. 그들의 사랑은 짧았지만 결실을 맺었고, 루이제의 핏줄이 다시 덴마크의 왕위를 이었으니까.  

역사의 껍데기를 둘렀어도 소설은 소설이지만, 그래도 난 이들의 사랑이 안타깝다. 잘못된 시대에 태어나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 하긴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언제나 되어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오는걸까. 그런 세상은 있기나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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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2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오는 것, 그것은 제가 진정 바라는 세상이죠. 물론 죽을 때까지 그 세상이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태어나서 사는 인생, 모두가 행복해 지는 세상에 1%라도 근접할 수 있도록 삶을 살려고 불꽃 결심을 마구 마구 합니다. ㅋ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며 여성에게 참으로 잔혹한 시대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랑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권력 다툼의 희생양으로 시집을 여러 번 가는 여성들을 보며 남자라는 동물의 한 없는 권력욕에 치를 떤 적이 있었죠. 흠..어찌보면 지금 태어난 것이 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사랑하는 여자를 뺏긴다면 그처럼 열 받는 일이 어디에 있겠어요!!

꼬마요정 2011-06-23 00:05   좋아요 0 | URL
크으~ 맞아요!! 남자든 여자든 지금 태어난 게 다행인 것 같아요~^^ 보다 행복한 세상을 살기 위해 노력합시다~^*^

노이에자이트 2011-06-2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마크도 한때는 강대국이었죠. 아이슬란드의 축제를 보니 덴마크가 아이슬란드를 지배했던 시절의 원한을 상기하며 옛날의 덴마크 왕의 가면에 돌을 던지는 놀이가 있더라고요.덴마크 사람들이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 봤어요.

꼬마요정 2011-06-24 17:3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정말 덴마크에 대해서는 아는 게 우유랑 햄릿 밖에 없어서 좀 답답했답니다. 이 책 읽고 이리저리 뒤져봐도 맘에 차는 게 없어요..ㅠㅠ
 
니벨룽의 반지
바그너 원작, 류가미 지음, 아서 랙험 그림 / 호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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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로맨틱한 기사 문학이지만 어찌보면 장대한 역사의 흐름을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바그너라는 천재가 남긴 최고의 오페라. 

라인의 처녀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을 지키고 있다. 니벨룽 족의 왕 알베리히는 사랑하는 라인의 처녀들에게 멸시 받고 화가 나서 황금을 뺏은 뒤 그 유명한 '반지'를 만든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3부작에도 등장하는 절대반지. 이 반지는 이후 평화롭게 보이던 세계에 균열을 가져오고, 결국 불타는 발할 성과 지크프리트의 죽음, 니벨룽 족의 멸망으로 이끈다. 

원래 게르만 신화에서는 브륀힐데가 군터와 결합하고,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가 죽은 후 훈국의 에첼 왕과 결혼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브륀힐데와 구트루네(크림힐트)는 모두 지크프리트의 여자가 되고, 마지막은 브륀힐데가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면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켈트 신화 중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연상되는 그 빌어먹을 사랑의 물약 때문에 지크프리트는 발퀴레 중 하나인 신성한 여신 브륀힐데를 까맞게 잊어버리고 구트루네의 사랑을 갈구하는 머저리가 되어버린다. 별처럼 반짝이던 사랑의 말들과 태산처럼 무겁던 맹세의 언약은 모두 사라지고, 한 때 자신의 전부였던 여인을 마법으로 사랑하게 된 여인의 오빠에게 넘겨주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는 머저리. 그래도 그는 어쩌면 신들과 거인들, 난쟁이들에 비하면 순수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겠다. 

진정 자신의 의지로 맹세를 깨부수는 건 신들이고, 그 거짓말에 휘둘리며 복수를 꿈꾸면서 비열하게 행동하는 건 거인들과 난쟁이들이니까. 발할 성을 지어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꼬드겨서 거인들에게 힘든 일만 잔뜩 시켜놓고서는 막상 대가를 요구할 때가 되자 농담이니 마니 하는 식으로 도망치려던 보탄. 그가 계약의 수호자라는 게 우습기만 하다. 풍요와 젊음의 여신인 프라이아가 없으면 영원을 살지 못하는 신들은, 프라이아를 요구한 거인들에게 또 다른 거짓으로 뺏어 온 반지를 주고, 그 반지는 결국 지크프리트의 손에 들어간다. 지크프리트는.. 다만 하겐의 비열한 술수 때문에 순수하게 빛나던 사랑을 얼룩지게 했고, 또 다른 여인에게 상처를 줬지만 끝내는 모든 것을 기억해내고 죽음으로 속죄하였으니 가장 영웅다웠다고나 할까. 

저주의 반지.. 그 반지는 있어야 할 곳 - 라인의 처녀들- 에 있지 않고 떠돌아 다니며 반지를 거친 이들과 탐낸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저주의 결과는 참담했다. 반지를 가진 파프너와 파졸트는 우애 지극한 형제였지만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파프너는 동생인 파졸트를 죽여버린다. 파프너는 지크리프리트 손에 죽고, 지크프리트는 브륀힐데의 신의를 저버리고 구트루네의 집안에 골육상쟁을 불러오고는 죽어버린다. 반지는 다시 라인의 처녀들에게로 돌아가지만..  

욕심이란 무섭게도 나 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얽어매서 더러운 구렁텅이로 함께 가게 한다. 얽혀버린 운명의 실타래는 결국 끊어야만 해결되는 걸까. 모두가 죽어버리면.. 사람들은 누구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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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07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반지는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네요. 욕심 욕망은 특히나 자신의 것은 무서울 때가 있죠.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특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꼬마요정 2011-06-07 23:08   좋아요 0 | URL
인간의 욕심은 타인의 작은 행복마저도 탐낸답니다. 뭔가 욕심이란 이렇다라고 쓰고 싶은데 제 뒤에 있는 동생들이 계속 비빔국수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비빔국수가 땡기네요..ㅡ.ㅜ (조용히 하란 말이닷!!!) 진지하게 댓글다는데 말이죠..^^;;

루쉰P 2011-06-08 23:13   좋아요 0 | URL
ㅋㅋ 비빔국수의 욕망, 어제 잘 드셨는지 궁금하네요. 푸훗!!

꼬마요정 2011-06-09 00:44   좋아요 0 | URL
결국 비빔면으로 해결봤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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