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사막 _ 기형도 

 
 


 

밤 세시, 길 밖으로 모두 흘러간다 나는 금지된다
장마비 빈 빌딩에 퍼붓는다
물위를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지나가고
나는 더 이상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유리창, 푸른 옥수숫잎 흘러내린다
무정한 옥수수나무…… 나는 천천히 발음해본다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흰 개는
그해 장마통에 집을 버렸다

비닐집, 비에 잠겼던 흙탕마다
잎들은 각오한 듯 무성했지만
의심이 많은 자의 침묵은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한다
밤 도시의 환한 빌딩은 차디차다

장마비, 아버지 얼굴 떠내려오신다
유리창에 잠시 붙어 입을 벌린다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우수수 아버지 지워진다, 빗줄기와 몸을 바꾼다
아버지, 비에 묻는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번들거리는 검은 유리창, 와이셔츠 흰빛은 터진다

미친듯이 소리친다, 빌딩 속은 악몽조차 젖지 못한다
물들은 집을 버렸다! 내 눈 속에는 물들이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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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이발을 했으면 좋겠고 ,
   이젠 옷도 따뜻하게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잘 지냈느냐고 아픈곳은 없느냐고 밥은 어떻게 먹느냐고
   술은 매일 마시는 거냐고, 사는 곳은 어디냐고 .. .
   보다 더 많은 물음에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지만,
   술은 매일 마시지 않는다고 집을 나간 아빠는 대답했다.

   두 달, 만이었고 몇차례 내 쪽에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며 만나자던 내 말을 딱 잘라 거절을 했었었다.
   그런 아빠가, 먼저 만나자고 얘기를 꺼냈고
   나는 술에 취해, 지금의 생활이 편하다면 그렇게 살라고도 했고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도 했다.
   
    


   침묵을 지키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먼저 돌아서 걸으며 그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거리는 온통 스산함으로 가득했고, 눈치없이 가을을 몰고 오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러했지만 ,
   여전히 그리고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나는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사랑을
   꿈꾸고 싶다는 갈망을 품고 있다.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낯선, 각별한, 위험한 그런,
   또 다른 사랑이
하고 싶다.
   애틋한, 모든 감정들을 난 놓고 싶지않다.
   해서 난 끊임없이 아프고 아픈
   살아있는 연애소설을 읽고 또 읽을테다. 죽도록. 

 

  

 기분이 더러웠다. 배우자를 강간하는 것이 범죄냐 아니냐, 하는 논쟁을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런 논쟁 자체가 상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는데, 범죄가 분명하다는 쪽으로 토론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 토론에 따르면 상곤은 범죄를 저지른 셈이었다. 월요일 아침, 그는 성범죄로 하루를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억울한 노릇이 어디 있단 말이냐. 어째서 아내는 그를 성범죄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p.75 (알라딘발췌)

 
 
연애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연애 그 자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연애로 인해 파멸할 수밖에 없는 .. .
부족함없이, 아주 잔뜩 기대해본다.
농밀함으로 아프게 전하는 최인석연애, 하는날.

 

  

 

 


  

 

  
   은연중에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신뢰하게 된 출판사가 있다면 문학동네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이
   이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기도 하지만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하는 내게 실망작을
   안겨 줄 가능성이 아주 적은 책들을
   출간해주는 것에도 한 몫했음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번엔, 문학동네작가상이다.
   그것도
팔딱거리는 성장소설.

  

 

 

 그녀의 소설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미국 이민을 가기로 결심한 부모님에게 ‘나’(참고로 이름은 태만생이고, 용화공고 삼학년이다)는 커다란 캐리어를 사드린다. 그 가방을 선물받은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안에 자기 자신을 넣어보는 것. 그리고 말한다. “만생아, 너도 들어와봐. 여기서 너랑 나랑 둘이 살아도 되겠다.” 곧이어 아버지가 캐리어 안에 몸을 넣는다. ‘나’는 서로 이마를 맞댄 채 캐리어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부모님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휴대폰으로 그 모습을 찍는다. 그녀의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만들 줄 아는 작가라면 믿어도 좋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 (알라딘발췌)

 

내가 성장소설을 때때로 읽는 이유는 단 하나다.
수십 번 넘어졌던 그 어두운 통로를
기어서라도 나와야했던
비극적이었던 성장통을 위로받는 것. 

 

  

  

 


   
   정말이지 이런 절망적인 기분은 불쾌하다.
   책을 아주 읽지 않은것도 아니고 출석 도장을 찍듯 매일같이
   온라인 서점의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뒤지고 또 뒤져도
   페이퍼에 남겨지는 책들은 이렇게, 두 권 뿐이라니.
   나름 추천페이퍼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둘러보는데도 읽고 싶은 책이 없다.
   읽고 싶은 책이 없으니 추천조차도 할 수 없다.
   더욱이나,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해서 출간일을 보면 모두 8월이라 안타깝다.
   아무래도 오늘부터는 (다음 페이퍼를 위해서라도) 읽고 싶은 책은
   차곡차곡 보관함에 넣어두어야겠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도 9월에는 출간을 안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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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0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ne님의 글을 읽으니, 이 가을이 왜 이렇게 쓸쓸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오늘은 저도 멜랑꼴리의 힘을 빌려 댓글 남겨봅니다 :)

June* 2011-10-05 14:35   좋아요 0 | URL
 
 오늘부터는, 완연한 가을 날씨가 연이을거래요.
 못 다 정리한 얇은 옷들을 카디건과 함께 입어내고 주말에는
 겨울 옷들로 서랍장을 채워야겠어요. ^^
 

2011-10-0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인석의 새 소설이군요. 요즘의 그는 어떤 소설을 쓰는지 궁금해집니다.
문학동네 작가상이라니, 아래 소설도 괜찮겠군요.

June* 2011-10-05 14:38   좋아요 0 | URL
 
 최인석의 전작을 하나 가지고 있기는 한데 ,
 작가님이 낯설어 여즉 읽지 못하고 있어요. 추천하기전에 작가님의
 전작들을 보았는데 사랑을 주제로 풀어 낸 책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사랑이야기를 줄곧 펴내던 작가님의 책은 분명 깊이가 있을거라고
 나름의 방식으로 믿고 있어요, 헤.
 

레삭매냐 2011-10-0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 불가 세대에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제목 한 번 멋집니다.

June* 2011-10-05 14:40   좋아요 0 | URL
 
 연애 불가 세대가 있기는 있는걸까요 , .. .
 있다한 들 믿고 싶지 않을걸요 ^^
 제목에 제 연애소설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났던걸까요 ^^
 

꽃도둑 2011-10-0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ne님도 평가단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첫 출발은 가볍게 두 권으로 시작하셨네요...ㅎㅎ
크,,,저는 [연애, 하는 날]이 읽고 싶어지는데요. 연애에 반점을 찍어둔 걸 보니
그리 순탄지만은 않은 거 같네요..

June* 2011-10-05 14:44   좋아요 0 | URL
 
 그저, 운이 따랐을뿐이라고 생각해요.
 잘해 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구요, 그래도 할 수 있는만큼의 최선은
 다 해야지요. 배추걸님도 화이팅이예요 ! ^^
 

잘잘라 2011-10-05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 신간평가단 6개 분야 모두 경쟁률 높았지만 그 중에서도 소설 분야가 제일 쎄던데요!!! 대단하십니다. 음.. 저는 소설 분야는 감히 꿈도 못꾸고, 인문 분야는 더욱 그렇고, 그나마 건축이 예술 분야로 들어가서 거기 지원했다가 쭈르륵- ^^;; 다음 기회를 준비합니다.

축하드려요. June*님은 분명 잘~ 해내실거예요. 틀림없어요. 화이팅!!!

June* 2011-10-06 11:15   좋아요 0 | URL
 
 고마와요,
 뜻 밖의 일이기는 했지만 사실 감격스럽기도 했으니까요.
 제기 이번 평가단을 마치면, 다음 평가단에서는 함께 했으면 해요.
 

아이리시스 2011-10-0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해요. <연애, 하는 날>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요. 싱거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저 문장을 보니 전혀 아닐 듯. 화이팅이에요 !

June* 2011-10-06 11:16   좋아요 0 | URL
 
 평가단 책으로 받아보았으면 하는데,
 확률이 그리 크지는 않아요. 그리고 나 약속은 지켰구요, 헤.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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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ma 2011-09-2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통 따뜻하다니.. 아.. 뭔가 찡하네요..

2011-09-29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9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0-0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장면, 정말 좋아요.
온통 따뜻해요. ^^
 

 

    

 

은주씨 결혼식은 내게 가장 비현실적인 일이었어요.
믿기 힘들고, 믿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그랬어요 .. . 

오후 11:27 하늘 

 

 

 

 
 
 
 
   미친듯이 춤을 추었고, 노래를 불렀다.
   탁자 위의 물 잔이 쏟아져 흘러내린 물이 바닥을 적시며
   맨 발바닥에 찰박거려 미끄러워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를 반복했지만
   다시금 일어나 찧은 엉덩이가, 멍이 든 무릎이 아픈 줄
   모른 채 마냥 정신없이 손과 발을 흔들었다. 

 

   단 한번도 결혼을 실수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지리멸렬한 후회와 고통을 수반한 삶을
   꾸역꾸역 삼키며 살아'내고' 있다고도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머리로는 알지만 차마 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지극히 낯선 세상으로
   내던져졌음을 온 몸으로 자각해야만 했다.
   
    

 


   


   그런 나의 부작용은 곧 현실로서 그이를 괴롭혔고
   기어코, 부적을 태운 물을 내게 건네는 어머니의 손
   뿌리치지 못한 채 끝 없이    .. . 몰락되어져야만 했다.

  

 

 

    

 

 

 

  
   웃을 수 있는 책 한권을 읽었다.
   실로, 오랜만이었고 짓눌러진 마음을 펴기에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실은 나, 이런 책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열에 아홉은 추천한다는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도 참다 참다 던져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 던져버릴 틈을 주지 않는다.

 

 

 

 마음에 있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으면, 진짜 사나이가 된 거다. 대학 따위 안 가도 충분히 세상과 맞설 만하지. p.180

 

 라일왕국의 여왕, 미오의 경호를 맡게된 사이키 부자의 발 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돌진, 또 돌진한다. 예상하고 있었던 추격전이라던가 빛나는 청춘 로맨스에 방긋 웃을 준비를 하기도 전에 이야기는 득달같이 달려나간다. 애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을 것 같은 사이키 부자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장난스런 말장난을 던지며 헛헛하며 웃게 한다. 뻔한 이야기, 그래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동안, 읽었던 무거운 책들을 조금은 마음에서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 오해하시면 안 되지. 나야 어떻게든 자식의 사랑을 맺어주려는 마음뿐이지. 당신들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어.
융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 후회할걸. 사이키.
-안타깝게도 아들이 생긴 뒤로 후회 같은 건 안 하기로 했다오. 여한이 없으니까. p.192

  

 옮겨놓은 본문 내용은 진정으로 주옥같은 발췌가 아닐 수 없다. 무신경하듯 아들을 보듬는 이러한 대화들은 책 전체를 뒤져도 이 두 부분이 끝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했기에, 스리슬쩍 입꼬리가 올라가는 즐거움은 두 배가 되었음을 나는 다시금 곱씹어 읽어도 여전했다. 사이키 부자의 돌격은 앞으로도 계속 될 듯 싶다. '아르바이트 탐정' 시리즈의 제 3탄이자 시리즈의 첫 장편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럼, 필연적으로 미오와 사이키 류를 이어주면 안되나요, 작가님? 

 

  

 

 

   

 

 

   새벽녘이 되어서야,
   사이키 부자의 책을 덮고 펼쳐든 책은
   앞서 읽은 분들의 평점이 좋다는
   존 하트의 라스트 차일드다.
   짧은 입소문은 나 역시 익히 들어 알고있다.
   서점에서 제공하는 본문이나 40자평이나
   출판사 제공으로 쓰여진 리뷰까지 대충 훑어본 후
   주문을 넣었기 때문이다. 책을 받아들고
   앞 뒤, 그리고 프롤로그까지 읽고 덮었을 때
   내 첫 마디는 - ' 아침에 읽자, 무섭다 ' 였다. 

 

 

 

  

 

   ** 



   술을 급작스레 마시지 않다보니, 잠을 자기가 매번 힘들다.
   그래도 대견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는 그이의 손길은
   입을 내밀면서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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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9-27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건강하고 아프지 말고! 우리 언제 만나서 여행 가면 좋겠다, 그쵸?^-^

2011-09-29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저도 오쿠다 히데오 책 별로 끌리지 않아요. 그래도 가볍게 읽으며 웃을 수 있는 책, 청량하고 좋지요.ㅎㅎ

아, 밑의 책, 표지만 봐도.. 밤엔 못 읽겠는걸요.
 

 

 

 



   겨울이,
   오고 있다고 그 날 저녁 내 몸이 말해주었다.
   어김없이 긴 샤워를 하고 문지방을 밟고 서 몸을 닦는데
   얌전했던 살결들이 갑작스레 툭툭- 갈라지며 비명소리를 냈던 것이다.
   매년 그러했듯이 나는 소리내어 그이의 등을 보며 말했다.
   
   
난, 겨울이 싫어. 끔찍해.
 


 
   바다 낚시를 다녀 온 그 날 저녁의 그이는,
   손질하던 쭈꾸미와 갑오징어를 도마 위로 척척 올리며
   나는, 네가 더 끔찍해.   하며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없어 어쩌지도 못한 채 발가벗고 서 있는데
   한 마디 더 덧붙인다는 게,   농담이야.   했다.
   그러고는   난 너의 그런 표정이 좋더라.  


   
   
솔직하게, 아무런 거짓없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 표정말야.
   상처받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표정.   

 

 

   

 

 

  

 
   소세키의 작품을 읽었다.
   읽는 내내 편하고 즐거웠고 궁금했다. 과연, 듣던 명성이
   거짓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
   늘 소세키의 작품을 생각하고 누군가가 발췌해놓은 글귀
   를 보며 흥분하지만 소세키와의 만남은 처음이다.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독특함과 정확성에 놀라고 한 치의
   오차도 수용하지 않을 듯한 문체가 주는 완벽함.
   과연, 소세키의 자전적 성향이 가장 짙은 이 작품속의
   주인공인 겐조를 소세키로 인지해두어도 괜찮을까.
    

 

   

 

 

내가 나쁜 게 아니야. 설령 저 사람이 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 해도 나 자신만은 잘 알아. p.155

 


   좀 짓궂게 그저 내가 읽은대로 말하자면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인 철부지 지식인의 고루한 이야기였다고 얘기하고 싶다.
   몇 번이고 도쿄로 달려가 겐조의 머리를 콩,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조금은
   곰살맞게 혹은 다정하게 너그러워질 수는 없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우습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면 행복하느냐고도, 두 손 마주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애정에 굶주린 나머지 정말 칼부림을 할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발작 때문에 의지를 상실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칼을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진의는 과연 무엇일까? 남편을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남편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천박한 정복욕일까? 겐조는 자리에 누워서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가지 관점으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좀체 감기지 않는 눈을 슬쩍 돌려 아내의 동정을 살폈다.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도 알 수 없는 아내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흡사 죽음을 기쁘게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겐조는 다시 베개위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했다. p.148

 

 

   겐조에게 있어서 아내는 어떠한 존재였을까.
   좀처럼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읽는 내내 나는 겐조의 아내가 가여웠다.
   고질적인 발작을 일으키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 단연코
   일종의 병은 아니었음이 확실하다고 나는, 짐짓 섣부른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또 확신한다. 그때 그 시절의 우울함. 그래 이렇게 얘기해두어야지만이
   겐조의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울어도 괜찮다고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세키의 작품을 덮고
   집어든 책은 손수 구입한 구보 미스미의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라는
   낯선 책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물론 출판사
   마저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책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알라딘에서
   발췌한 짤막한 본문의 글들이 나를
   위험한 충동구매의 길로 인도했음이 사실이다.

 

 

 

 

안즈의 속에서 흘러넘친 따뜻한 액체가 천소파에 얼룩을 만들었다. 나는 안즈의 한쪽 다리를 소파 등받이 쪽에 올리고 액체가 나오는 그곳에 혀를 넣었다 뺏다를 반복했다. 턱이 바로 피곤해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내 배가 꼬르륵 하고 울었다. 아무것도 생산하는 일 없는 안즈의 이곳에서 흘러넘치는 이 액체로 나의 배를 채우고 싶었다. 홀짝홀짝 소리를 내며 빨자, 안즈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도 커졌다. 안즈의 손이 내 머리를 눌러서 숨을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p.28

  



   연작 소설집이다.
   전에도 연작 소설집을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솔직히 애기하자면, 연작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이 책이
   첫 장이 끝났을 때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성장 소설이라고도 할 수 없고 청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저 그런 로맨스도 아닌 것이 나를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옮겨놓은 본문의 글 처럼, 소설은 야한 동영상 한 편을 보는 듯 진행된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 데뷔작이라는 부담감에 작가 조차도 쓰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기쁨의 희열에 휩싸인 채 집필을 했을거라고 난, 단언 해 본다.
   또한 스토리도, 캐릭터도, 잘만 다듬어지면 분명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거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계속 읽고있다. 

 


    

 

 


   백 페이지 남짓 남았고
   소설의 주인공들이 걱정 되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만큼 괜스레 슬퍼진다.
   보듬어주지 않으면,
   무너져내리고 말 위태로운 주인공들이 이 책 속에 여즉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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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9-2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한심한, 하늘> 무슨 내용인가 싶었는데(리뷰를 좋게 읽어서) 에로틱. 그래도 저거 좋다.. 좋아요. 소세키도 좋고. 오늘 다시 더운데, 여기는. 어쩌라고 이럴까 하루종일 생각했어요. 그래도 여름이, 겨울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나는 진짜 겨울되면 우울에 사라져버리고 싶어요. 섬으로. 혹시, 아는 섬 있어요?

June* 2011-09-26 09:26   좋아요 0 | URL
 
 
 섬은, 몰라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요, 난. 그래도 늘상 '섬' 하면 꼭 한 번은
 다녀오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외도' 예요.
 아름다운 섬이라고 하더라구요. 난 꼭 한 번은 가 볼 생각이예요.
 섬은, 낭만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