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있다고 그 날 저녁 내 몸이 말해주었다.
어김없이 긴 샤워를 하고 문지방을 밟고 서 몸을 닦는데
얌전했던 살결들이 갑작스레 툭툭- 갈라지며 비명소리를 냈던 것이다.
매년 그러했듯이 나는 소리내어 그이의 등을 보며 말했다.
난, 겨울이 싫어. 끔찍해.
바다 낚시를 다녀 온 그 날 저녁의 그이는,
손질하던 쭈꾸미와 갑오징어를 도마 위로 척척 올리며
나는, 네가 더 끔찍해. 하며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없어 어쩌지도 못한 채 발가벗고 서 있는데
한 마디 더 덧붙인다는 게, 농담이야. 했다.
그러고는 난 너의 그런 표정이 좋더라.
솔직하게, 아무런 거짓없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 표정말야.
상처받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표정.
소세키의 작품을 읽었다.
읽는 내내 편하고 즐거웠고 궁금했다. 과연, 듣던 명성이
거짓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
늘 소세키의 작품을 생각하고 누군가가 발췌해놓은 글귀
를 보며 흥분하지만 소세키와의 만남은 처음이다.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독특함과 정확성에 놀라고 한 치의
오차도 수용하지 않을 듯한 문체가 주는 완벽함.
과연, 소세키의 자전적 성향이 가장 짙은 이 작품속의
주인공인 겐조를 소세키로 인지해두어도 괜찮을까.
|
|
|
|
내가 나쁜 게 아니야. 설령 저 사람이 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 해도 나 자신만은 잘 알아. p.155 |
|
|
|
|
좀 짓궂게 그저 내가 읽은대로 말하자면
독단적이고, 제멋대로인 철부지 지식인의 고루한 이야기였다고 얘기하고 싶다.
몇 번이고 도쿄로 달려가 겐조의 머리를 콩,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조금은
곰살맞게 혹은 다정하게 너그러워질 수는 없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우습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면 행복하느냐고도, 두 손 마주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
|
|
|
애정에 굶주린 나머지 정말 칼부림을 할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발작 때문에 의지를 상실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칼을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진의는 과연 무엇일까? 남편을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남편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천박한 정복욕일까? 겐조는 자리에 누워서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가지 관점으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좀체 감기지 않는 눈을 슬쩍 돌려 아내의 동정을 살폈다.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도 알 수 없는 아내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흡사 죽음을 기쁘게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겐조는 다시 베개위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했다. p.148 |
|
|
|
|
겐조에게 있어서 아내는 어떠한 존재였을까.
좀처럼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읽는 내내 나는 겐조의 아내가 가여웠다.
고질적인 발작을 일으키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 단연코
일종의 병은 아니었음이 확실하다고 나는, 짐짓 섣부른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또 확신한다. 그때 그 시절의 우울함. 그래 이렇게 얘기해두어야지만이
겐조의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울어도 괜찮다고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세키의 작품을 덮고
집어든 책은 손수 구입한 구보 미스미의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라는
낯선 책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물론 출판사
마저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책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알라딘에서
발췌한 짤막한 본문의 글들이 나를
위험한 충동구매의 길로 인도했음이 사실이다.
|
|
|
|
안즈의 속에서 흘러넘친 따뜻한 액체가 천소파에 얼룩을 만들었다. 나는 안즈의 한쪽 다리를 소파 등받이 쪽에 올리고 액체가 나오는 그곳에 혀를 넣었다 뺏다를 반복했다. 턱이 바로 피곤해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내 배가 꼬르륵 하고 울었다. 아무것도 생산하는 일 없는 안즈의 이곳에서 흘러넘치는 이 액체로 나의 배를 채우고 싶었다. 홀짝홀짝 소리를 내며 빨자, 안즈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도 커졌다. 안즈의 손이 내 머리를 눌러서 숨을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p.28 |
|
|
|
|
연작 소설집이다.
전에도 연작 소설집을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솔직히 애기하자면, 연작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이 책이
첫 장이 끝났을 때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성장 소설이라고도 할 수 없고 청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저 그런 로맨스도 아닌 것이 나를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옮겨놓은 본문의 글 처럼, 소설은 야한 동영상 한 편을 보는 듯 진행된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 데뷔작이라는 부담감에 작가 조차도 쓰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기쁨의 희열에 휩싸인 채 집필을 했을거라고 난, 단언 해 본다.
또한 스토리도, 캐릭터도, 잘만 다듬어지면 분명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거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계속 읽고있다.
백 페이지 남짓 남았고
소설의 주인공들이 걱정 되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만큼 괜스레 슬퍼진다.
보듬어주지 않으면,
무너져내리고 말 위태로운 주인공들이 이 책 속에 여즉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