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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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더 공포스러울까. 100미터가 넘는 롤러코스터와 귀신의 집, 퇴근 후 매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한 달에 한두 번 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 조스 영화에서 상어가 다가오는 장면과 창문에서 불쑥 등장하는 허연 물체. 개인차는 물론 있겠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후자에 공포를 더욱 많이 느낀다고 한다. 세 가지의 공통점은 예측할 수 없음이다. 시기를 알 수 없거나 대상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 인간의 불안은 극대화가 된다. ‘지금까지는 그저 불쾌한 사건이라고 불평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규모를 정확히 할 수 없고 원인도 규명할 수 없는 이 현상에 뭔가 위협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p26)’

 

비록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등교해서 마스크 쓴 채 7교시까지 쉬는 시간 없이 스트레이트로 수업을 받는 아이들. 해본 적이 없는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등교 수업이 시작된 후에는 마스크 쓰고 수업을 하면서 뇌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어질하고 띵한 느낌으로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쓰러지듯 잠이 든 엊그제. 새벽 2시에 겨우 일어나서 4시에 원격으로 결재 올리면서 달력을 보았다. 겨우 2일 지났을 뿐인데. 6월이 다 되도록 담임교사의 제대로 된 얼굴을 전혀 알지 못하고, 목소리와 문자로 익숙해진 학생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마스크로 차단되지 않은 기분 좋은 공기를 당연한 듯 들이마시던 일상이 값진 것이었음을 자주 깨닫는 요즘이다.

1940년 대 416일에서 이듬해 2월까지 페스트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리는 한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의 치열한 모습을 담은 소설 <페스트>.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과 놀라울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인다. ‘딱 한 가지 의미에서 성가신 일이 될 겁니다. 이런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p23)’ 감기 증상과 비슷한 코로나19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비말로 전파된다는 점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질병으로 인한 혼란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틱한 줄거리에 입체감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계속 남아서 페스트에 걸린 이들을 돌보는 의사 리외에게는 소명을 다하려는 담백함이 있지만 밋밋하다. 취재 차 도시로 들어 왔다 페스트로 도시가 폐쇄되자 도시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다 결국 남기로 한 기자 랑베르도, 도시의 풍경을 매일 수첩에 기록하던 노인 타루도, 범죄를 저지르고 도시로 들어온 코타르도, 묵묵히 자기 일에 몰두하는 그랑도. 그 외 다른 인물들도.

페스트로 고통받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스케치하듯 매일 그려낸 평범한 수기를 읽은 듯하다. 오히려 소설에서는 개개인의 캐릭터보다는 도시의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전체의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에 초점이 맞춰진다. 카뮈의 문장 하나하나에 공감하며 세태와 이를 꿰뚫어 보는 작가의 통찰력에 몇 번씩 감탄했다. 작가를 높이 평가한 점은 1947년에 출간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문장들이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는다는 점이다. 올해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 정도로 와닿지는 않았을 듯싶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고통을 나눌 수 없다는 끔찍한 무력감을 증명하듯 보여주고 있었다.(p165)’ 요즘처럼 통일된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던가. 계속되는 거리 두기로 지쳐가던 심정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병을 앓게 한다니까요.(p138)’ 지난 3월까지는 하도 집에만 있다 보니 마음이 계속 가라앉았다. 4월부터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527일부터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오랜 시간의 마스크 착용으로 종종 숨이 막혔지만 마음의 숨통은 트이는 것 같았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p194)’ 외출 시 매번 마스크를 하고, 손 씻기를 일상화하는 것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직접적인 실천 방법이다. 유일한 방법이 성실성이라는 말이 맞다. ‘질병은 얼핏 보면 포위된 자로서 느끼는 연대 의식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전통적인 군집 관계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저마다 고독에 잠기게 했다. 이로 인해 혼란이 초래되었다.(p203)’ , ‘페스트가 사실은 유배와 이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p348)’ 앞의 두 문장이 페스트의 본질과 이로 인한 영향을 날카롭게 분석한 핵심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에 적용해도 어색함이 없는 문장들을 접하니 기분이 묘했다. 우리 은하 밖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인간 본성도 공통으로 존재하는 요소들이 있어 법칙화할 수 있는 걸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끝도 알 수 없음이다. 소설의 결말은 언제든 페스트가 다른 도시를 덮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코로나19가 언제쯤 종식이 될지 지금은 아득하지만, 올해의 언젠가 다행히도 마스크를 벗게 된다 해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리라. 500년 된 씨앗에서 연꽃이 피어난 것처럼 잠복된 바이러스는 활성화될 환경이 갖추어지면 언제든 퍼져나갈 수 있다. 침스러운 거 질질 흘리던 외계생명체를 클리어하는 영화의 엔딩에서 카메라가 마지막 침방울이 스물스물 꿈틀거리는 장면을 한구석에 클로즈업해서 이게 끝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처럼. 투비컨티뉴드인 거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방심하면 언제든 반복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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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05-31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을 포함해 모든 문학이 독자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데, 이 작품은 느낌도 감상도 다 비슷비슷 한거 같더라구요. 아니면 지금 시기가 한 몫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말씀하신대로 현실과 싱크로율이 100%이다보니 전 스토리에는 집중하지 않았어요. 작가도 리외를 통해 담담하게 풀어나갔다지만 단지 그걸 말하려는게 아니었을테니까요. 보통의 재난/디스토피아 책들과 다르게 이 책은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아서 오히려 더 처참하고도 리얼했어요. 저는 오만한 인간들이 실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주는 교훈을 좋아하거든요. 물론 인간의 위대함이나 존엄을 상기시키는 작품들도 좋지만 그런 작품만 읽으면 금방또 오만해져버리는 게 인간인지라...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p194)‘ 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문장인데, 지금보니 이게 정답이네요. 다 틀렸다며 모든 걸 내려놓거나, 힘들다며 스스로를 망가뜨리거나 해서는 안되겠지요. 혹독한 겨울을 버텨내고 봄을 맞이한 나무에게 나이테가 하나 더 생기면서 튼튼해지듯이 우리도 묵묵히 또 성실히 버티고 이겨내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실 여러모로 바쁘고 힘드실 나비종님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래서 이번 모임은 6월까지 연장하자고 할까 했는데, 이렇게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네요^^ 5월도 수고 많이하셨구요, 6월은 잠깐 쉬어가실까요? 나비종님 상황이나 여건이 좀 나아지실때 알려주시면 다시 모임 진행해도 괜찮아요!

나비종 2020-05-31 15:25   좋아요 1 | URL
다수의 문학이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인데 과거에 나온 작품을 현재 적용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점에 신기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시대를 거슬러도 변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있는가 하구요. 그걸 매의 눈으로 찾아낸 작가의 통찰력이 놀라웠습니다.
희망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생생한 다큐의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공감합니다. 실은 위태위태한 위상으로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무감각해지는 잔인함을 지니기도 하는 인간의 오만함에.

저만 바쁜 건 아니었겠지만, 힘들다고 푸념하는 건 다같이 어려운 시기에서 사치였겠지만, 퇴근 이후의 시간까지 할애를 해도 끊이지 않는 일에 점점 지치더라구요. 그래도 이 모임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토나올 것 같은 일들을 후딱 해치우고 빨리 책을 읽고 싶다, 어서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5월을 견디게 했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감님! 그냥 해요, 우리. 오늘 못하면 내일도 못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라 조금 더 치밀하게 틈새 시간을 확보하려구요. 제가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유일한 일을 다른 일들에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아요 ㅎㅎ 다음 달에 봬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현실 편 : 역사 / 경제 / 정치 / 사회 / 윤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1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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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말하는 대화에서 나는 과묵한 캐릭터였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는 내 삶에 있어 여집합의 영역에 속했다.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어렵기도 했다. 그저 초야에 묻혀 살아가고 싶었다. 뉴스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얽힘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가. 거대한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가 몸담고 있는 물속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몸에 물 묻히기 싫다며 먼 산만 바라본 격이 아닌가.

채사장의 글은 명쾌하다. 목적지를 정확히 바라보며 걸어가는 직진남 모드랄까. ‘글이 아니라 대화.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임을 말이다.(p5)’ 마지막 책장을 덮고 작가의 문장을 떠올리며 깨닫는다. 적어도 라는 목적지에는 그가 가뿐하게 도달하였음을. 글이라 인지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흐름에 작가와 대화를 하는 듯했다. ‘이건 뭐예요? 그렇다면 이런 이유였던 거로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의 입장이 되어 경청했다. 기본적인 시사 상식이 전무한 나에게 맞춤형 교육을 하듯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를 보며 교사를 했어도 잘 어울렸겠다 싶었다. 간결한 문체, 중간 중간 핵심을 짚어주는 요점정리, 잊을만하면 반복해서 정리해주는 친절함, 마지막 부분의 총정리에 이르기까지. 일타강사의 강의가 이런 식일까. 이리도 흥미진진하게 읽힐 줄이야.

 

현실 세계를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통찰한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비행기 아래로 펼쳐지는 시야를 조망하는 기분이 든다. 여러 종류의 나무로 이루어진 숲의 전개도를 바라본 느낌이랄까. 전체적인 맥락이 잡힌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가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라 긴밀한 인과 관계로 얽혀있음을 알게 된다. 책을 읽는 데에 엄연한 순서가 있는 이유다. 닭과 달걀의 순환 고리로 헷갈리게 하지 않고 전후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설명한다.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이란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경험을 안고 다른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비슷할지언정 싱크로율 100%의 세상은 아마도 없으리라. 그가 해석한 세상과 나의 세상은 분명 차이가 있을 테지만 그의 해석이 마음에 든다.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이 좋다.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가 은근히 웃기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유머러스한 멘트를 구사하는 이처럼 매력적이다. ‘세상이란 과목을 공부하는 기초 튼튼반 과정을 수료하고 난 기분이다. 아직도 많이 어설프지만 조금만 더 공부하면 무식의 늪을 빠져나와 나름의 해석을 하고 과묵한 캐릭터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작가는 현실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역사를 세운다. 역사는 5단계로 구분한다.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 현대이다.

근대까지의 역사는 왕, 영주, 부르주아 등 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지에 따라 변화하며, 생산 수단을 소유한 이는 경제력을 지닌다. 경제력은 곧 권력을 의미한다. 이 권력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까지의 역사는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자본주의 특성은 공급과잉이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시장 개척과 가격 인하가 대두된다. 시장 개척 과정에서 식민지 개척이 앞 다투어 이루어지는 제국주의 시대가 온다. 식민지 경쟁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까지 연결된다. 더 이상 개척할 식민지가 없으니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공급과잉은 가격 경쟁으로 이어지고 구조 조정, 대량 실업, 소비 위축의 과정이 순환 고리로 반복되다 경제대공황이 일어난다.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 후 냉전시대를 거쳐 현대의 신자유주의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은 생산 수단과 공급 과잉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의식주라고 배웠다. 당시에는 옷을 가장 중요시했던가 보다. 세 가지 중에 맨 앞에 온 것을 보면. 그러다 어느 순간 식의주로 순서가 바뀌었다. 옷은 원시인들처럼 나뭇잎으로도 해결되고 거주지는 자연 동굴이어도 되겠지만, 먹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 짐작하였다.

경제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이다. 직업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하는 이유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리라. 마르크스는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의식의 하부 구조를 받치고 있는 것이 경제라 말했다. 먹이피라미드에서 생산자인 식물이 가장 아랫부분을 차지하며 식물이 무너지면 생태계가 위협을 받는 것처럼.

경제 체제는 정부의 시장 개입 정도를 기준으로 4가지로 구분한다.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산주의이다. 시장과 정부의 밀당에 따라 세금과 복지의 정도가 달라지면서 재화의 분배가 달라진다.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로만 이루어진 체제이다. 하지만 가격 인하 경쟁이 임금 삭감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공급 과잉이 일어나 실패한다.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정부가 개입되면서 세금과 복지가 확대된다. 빈부 격차는 줄었지만 경쟁이 줄고 능률이 저하되면서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아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 신자유주의는 다시 시장의 자유가 확대된 체제이다. 세금이 줄어 기업과 국가 경쟁력은 강화되지만 자본에 의한 독점으로 복지가 줄어 빈부 격차가 심화된다.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체제는 생산 수단을 노동자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산주의로 보인다. 하지만 국유화된 생산 수단을 관리하는 소수가 권력을 획득하는 등 몇 가지 원인으로 실패하고 만다. 현재 우리는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신자유주의의 경제 체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작가의 관점은 냉철하다. ‘경제 체제는 종교가 아니고 선악의 문제도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효용과 이익의 문제인 것이다.(p177)’ 결국 성장과 분배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치란 경제 체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p195)’ 크게 두 갈래 길이 있다. 현 체제인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보수, 후기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처럼 바꿔야한다는 진보가 있다. 각각의 입장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대변한다. 때문에 자본가는 보수의 입장에, 노동자는 진보의 입장에 서는 게 합리적이다. 작가는 자본가가 진보를 지지하는 것은 정의롭다 할 수 있으나 노동자가 보수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어리석다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시장의 자유가 보장되다보니 세금과 복지가 줄어들어 빈부 격차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극우, 우파로 구분하고 진보는 극좌, 좌파로 구분한다. 보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초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후기 자본주의, 한국당, 공화당, 민주당, 국방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종편, 다국적기업, 대기업, 중소기업, , 종교, 한국교총 등이다. 진보의 영역에는 사회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의당, 진보당, 사회당, 공산당,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인터넷신문, 노동신문, 한국노총, 민주노총, 전교조, 학생 운동 등이 있다.

학창 시절에 반공 교육을 너무 철저하게 받아왔나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각인된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졌던 거다. 꽤 오랜 기간 나의 머릿속에서 공산당과 극악무도한 나쁜 인간은 동급이었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인 줄 알았던 기간이 길었다. 많은 책을 통해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를 겨우 구분할 수 있게 되었더랬다. 이 책은 두 가지를 확실하게 구분해서 설명한다. 정치 체제인 민주주의의 반대는 엘리트주의 즉, 독재주의이다.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는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의 반대말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각각 정치와 경제 체제를 선택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선택한 나라들은 한국, 일본, 미국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불리고, 사회주의와 독재엘리트주의를 선택한 나라들은 소련, 중국, 북한으로 공산주의 국가로 불린다. 자본주의와 독재엘리트주의는 우리 현대사에서 군부정권이 취했던 체제이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선택한 나라들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불린다. 우리나라는 보수 성향을 띠는데 공산주의와 적대관계였던 역사적 경험, 기득권에 의한 교육, 대중의 비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지난 15, 국회의원 선거를 하기 전에 이 부분을 읽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덕분에 선택지가 명료해져서 빠르게 투표할 수 있었다.

 

사회 분야는 개인의 판단에 관한 글이다. 개인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할 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면 집단주의,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한다면 개인주의라 한다. 이 둘이 극단화된 체제가 각각 이기주의와 전체주의이다. 앞부분에서 역사, 경제, 정치는 선택의 문제로 귀결되었지만 이기주의와 전체주의는 선악의 문제로 차원이 달라진다. 특히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 냉전시대의 공산주의 체제로 대표되는 전체주의는 나쁜 개념이다.

미디어는 기업의 광고로 유지되므로 독재 사회에서는 정부의 입장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계점을 지닌다. 화용론에 대한 설명에 눈이 번쩍 뜨인다. 화용론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시간, 공간, 주체, 대상의 상황 등 주변까지 파악하는 방법이다. 개인이 지닌 화용론은 사회생활에 유용할 수 있지만, 미디어가 화용론이란 칼자루를 쥐고 객관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면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윤리는 주어진 의무를 고려하여 도덕 법칙과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의무론과 미래의 결과를 고려하여 다수의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목적론 등 두 가지 주요 견해로 나뉜다. 윤리 분야 역시 판단에 관한 글이다. ‘모든 윤리적 판단에 앞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시점이다.(p345)’ 상황에 따라 판단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당신의 윤리관이 당신의 선택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다.(p377)’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놀란 점은 사건의 이면에 숨어있는 인간의 욕망이다. ‘그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려면, 그 사건을 통해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입는지 확인해보면 된다.(p137)’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호전적인 기질이나 영토를 차지하려는 목적만이 아니었다. 기록으로 접한 전쟁과 내가 태어난 이후에 발발한 몇몇 전쟁들이 떠올랐다. 경제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전쟁이 일어난다는 점에 소름이 돋았다. 생산수단의 독점에 대한 정당성을 종교에서 찾았던 지배자의 간교함에도. 권력의 정당성을 쟁취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갈퀴를 뻗었던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보는 눈이 트인 듯했다.

서먹한 부부 사이에서도 근근이 이어지는 대화의 주제가 자식인 것은 두 사람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처지를 알지 못해 왜 그 지점에서 울컥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가 이어지기 어렵다. ‘사람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인간적 한계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경험한 만큼의 세상만을 이해하며 사는 것이다.(p108)’,‘나에게 보이지 않고 숨겨져 있던 세계에 대한 이해. 이것이 지적 대화의 본질이다.(p8)’,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다. 바로 공통분모다.(p7)’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공감이 필요하다. 작가는 이런 점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제시한다. 공감대를 형성하며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한 발판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남는 건 나의 해석이다. 세상의 모습을 친절하게 스케치하여 보여주는 작가이지만 결국 선택은 독자의 판단으로 남겨둔다.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몫이니. 어느 쪽을 향해 나아갈 지도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착각하던 영역이 내 삶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교집합 영역으로 한 발짝 내디딘 기분이다. 앞으로 나는 어떤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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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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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현듯 달리다 잠시 멈췄다 다시 돌아가서 멈췄다 또다시 뛰쳐나와서 달리다 멈췄다 다시 달리는 주인공의 이야기. GoStop을 반복하는 이 인물은 쓰리고를 지나도 멈출 줄을 모른다. 보통 달려라라는 동사에는 경쾌함이 묻어 있건만. 두 눈 반짝이며 달리는 하니도, 날아가는 태권브이도 힘차게 달리지 않는가. 하다못해 <런닝맨>조차 뭔가를 찾기 위한 스릴과 반전으로 활기찬데 말이다. ‘어딘가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알다시피, 가기 전에 어디에 갈지 미리 생각하는 거요.(p45)’ 어디에 갈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던 주인공 래빗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어딘가에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또다시 달려갔다. 비겁한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 역시 그런 상황이었다면 주인공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감 가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달리기가 처음부터 목적 없이 암울했던 것은 아니다. 꽤 잘나가는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시기이다. 20대 중반의 래빗은 그 순간을 수시로 복기한다. 그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결혼과 동시에 그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면서부터이다. 현실의 그는 불안함과 답답함이 공존하는 공기로 둘러싸인 일상을 보낸다. 잡화점에서 주방용품을 시연하는 일을 하고, 장인 덕분에 그의 수입에 어울리지 않는 차를 소유한다. 알코올 중독으로 허구한 날 TV만 들여다보는 임신한 아내. 거실 옷장 앞에 있어 문을 절반밖에 못 열게 만드는 TV는 어린 아내의 상징물이다. 옷장을 열 때마다 TV와 부딪히는 마찰음은 그들 부부의 관계처럼 건조하고 삐걱거리며 불안하다.

 

첫 번째 달리기의 계기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 보인다. ‘부인이 어쨌기에 집을 나가신 겁니까? 담배를 한 갑 사오라고 했지요.(p151)’ 담배 사 오란다고 뛰쳐나갔겠는가. ‘뭘 가져오고 날라오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p151)’다는 그에게는 사소한 담배 한 갑이 목까지 차오르다 화르르 타오르는 발화점이었던 거다. 깎이다 깎이다 마지막에 남은 뾰족한 심지 모양의 모래 놀이에서 툭 건드리면 우르르 무너지는.

어쨌든 그는 가출을 했다.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 그러다 갑자기 빠져나가는 게 사실 얼마나 쉬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걸어나가면 되니까.(p151)’ 하지만 막상 발은 디뎠는데 목적을 잃은 그의 달리기는 헛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인 양 허무하다.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미 목적이 달성되었으므로 다음 목적지가 모호해진 거다.

 

왜 이렇게 방황했을까. 그의 안과 밖의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는다. ‘옆집의 샐리나 조니나 프레드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그냥 너 자신으로 살라는 거야.(p18)’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던 순간에 잠깐 반짝이다 매번 맞지 않는 환경에 던져진 그는 이상과 현실의 불균형을 견디지 못한 거다.

주인공이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 뒤의 어딘가에 (중략) 내가 찾아내주기를 바라는 뭔가가 있다는 겁니다.(p183)’ 뭔가를 찾기 위해 이 모든 것 뒤의 어딘가로 틈만 나면 달려갔던 듯하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방향 설정이 잘못되어있다. 목표점이 등 뒤에 있었으니까. 앞으로 달리는데 무엇을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뒤에 두고 온 무언가로부터 늘 달아나는 선택을 한 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서도 모순되는 불균형이 엿보인다. ‘세상은 어차피 거미줄이다. 줄이 떨리면서 그냥 모든 것이 전달된다.(p185)’ 퍼진 소문을 놀라워하는 이 문장에서는 불교에서의 인드라망이 연상된다. 이런 말을 했던 그는 다음의 문장을 로망으로 품고 있다. ‘그는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원소가 아닌 어떤 것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것.(p205)’ 깨끗하고 싶었던 걸까. 그 어떤 환경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는 이상을 꿈꾸었던 걸까. 앞 문장과 뒤 문장을 동시에 느꼈던 그에게 세상은 온통 불균형투성이였으리라.

 

래빗이 느낀 진실이 어쩐지 서글펐다. ‘그의 삶을 떠난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찾아 헤매도 되찾아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날아가도 거기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여기에 있었다. 도시 밑에, 이 냄새와 이 목소리들 안에, 영원히 그의 뒤에. 우리가 자연에 몸값을 내면, 자연을 위해 아이들을 만들어내면, 충만함은 끝이 난다. 그러면 자연은 우리와 관계를 끝낸다. 처음에는 우리의 안이, 다음에는 밖이 쓰레기가 된다. 꽃의 줄기들(p322)’ 꽃을 언급하는 마지막 문장에서 식물의 일생이 떠올려보았다. 열매를 맺고 나면 꽃잎은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인 목적이 종족 보존이라면 열매 안의 씨를 만들어낸 것으로 최종 목적은 달성된 것이니 불필요한 꽃잎은 가차 없이 져버려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꽃잎이 진 다음에는 몸통이 사그라든다. 이다음은 없는 것처럼. 그러다 이듬해가 되면 새로운 생명이 씨앗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냉정한 자연의 섭리와 주인공의 상황이 겹쳐져서 마음이 짠했다.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이렇듯 옳은 길이 처음에는 그른 길로 보이곤 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p53)’,‘옳으냐 그르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야. 우리. 우리가 만드는 거야. 불행을 막기 위해.(p397)’ 작가는 옳음과 그름에 대한 판단을 각자에게 맡긴다.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무너뜨린다. 왔다갔다 줏대로 없이 방황하는 주인공이 틀린 선택을 했다며 한심해했는데 이 문장을 곱씹어보니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밍밍한 고구마를 꾸역꾸역 먹고 난 기분이었다. 호박고구마는 맛있기라도 하건만. 답답한 분위기가 줄기차게 이어지는 문장들과 버무려졌다. 대체 이걸 왜 읽고 있는 거지. 지리한 문장들이 먼지처럼 모여들어 전체적인 메시지로 심장을 지그시 누르는 소설이라 후다닥 읽는다고 줄거리 파악이 되는 책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빛깔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놀라운 표현력에 감탄스러웠다. 작가가 묘사하는 풍경들이 생명력을 지닌 음습한 덩굴손이 되어 꿈틀거리는 듯했다.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긴 산토끼는 오르막에선 날쌔지만, 내리막에선 젬병이다. 그래서 토끼몰이를 할 때에는 산 위에서 아래로 쫓아간다고 한다. 어떤 의도로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래빗과 토끼의 습성이 겹쳐졌다. 앞다리와 뒷다리의 불균형으로 언덕을 제대로 내려가지 못하는 산토끼처럼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는 원하는 모습과 현실의 상황과의 불균형에서 나온 게 아닐까. 목적 없이 향했던 곳이 하필 언덕 아래라서 내내 비틀거리고 제대로 걷지 못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상황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부분적으로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어 짜증이 나면서도 꾸역꾸역 토끼의 뒤를 좇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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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04-01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까 제목부터 훼이크군요 ㅋㅋㅋ 갈곳도 안정해졌는데 달리라뇨... 어쩐지 해리가 개츠비 급의 허망함을 보여주지 않았나 합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집을 나가서 감독을 찾아갈때 은근히 기대가 되었는데 갑자기 매춘부의 동거동락으로 빠지면서 당황스러움이ㅋㅋㅋㅋㅋ 이게 왜 고전이야? 하면서요 ㅋㅋㅋ

해리를 보면서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에 갇힌 사람은 얼마못가 미쳐버린다고 하죠. 그만큼 환경의 영향이 큰데, 알콜 중독의 와이프는... 답이 안보이네요... 해리를 커버쳐줄 마음은 없지만, 집안 사정도 참 거시기하더군요. 평안한 가정이 목적지인 사람은 가정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그래서 그토록 방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나비종님의 리뷰를 보며 전혀 불쌍치 않던 주인공이 불쌍해보이는건 왜일까요 ㅋㅋ이렇게 막돼먹은 주인공에게서도 동정과 연민을 캐치하시는 달란트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러고보니 왜 별명을 토끼로 정했는지 생각못해봤는데, 내리막길에 쥐약인 토끼의 약점이 해리에게서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어요. 전체적으로 짜증 한가득이긴 했지만 역시 책보다 더 재밌는 리뷰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ㅎㅎㅎ 3월도 수고하셨습니다^^

나비종 2020-04-01 22:29   좋아요 1 | URL
제목이 간단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겉표지에 나온 원제가 ‘Rabbit, Run‘ 이거든요. 래빗과 런 사이에 쉼표가 있잖아요. 그게 묘해요. 쉼표가 없다면 토끼 지가 알아서 달린다는 의미일텐데, 쉼표 하나 때문에 번역판 제목도 명령어가 되었잖아요. 누군가가 달리게끔 한다는 거죠. 등떠밀듯이ㅋㅋ
맞아요. 갑자기 전개되는 그 사건은 또 뭐래요. 거의 개츠비각이었습니다.ㅎㅎ 그러다 집으로 되돌아갔을 때는 등장1도 하지 않았던 매춘부에게 다시 달려가고. 감독이 무슨 역할을 하나 했더니 소개팅시켜주고 옷 하나 빌려준 다음 사라지고.ㅋㅋ

음, 저는 알콜 중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시선이 가더라구요. 결과값이 나오기까지의 시간들 안에는 많은 서사가 압축되어 있었겠죠?
평안한 가정이란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역시 가화만사성^^;

주인공 걔 불쌍한 거 맞아요.ㅎㅎ아내도 불쌍하고, 매춘부도 불쌍하고, 감독도 불쌍하고, 아들도 불쌍하고, 딸도 불쌍하고, 부모들도 불쌍하고, 목사님도 불쌍하고, 온통 불쌍투성이네요. 등장인물 중 불쌍하지 않은 이들은 엑스트라밖에 없군요. 처음에 뛰쳐나갔을 때 가다가 기름 넣은 주유소 주인 정도랄까요.
저 역시 물감님의 리뷰와 댓글 덕분에 그나마ㅎㅎ 역시 같이 까야 제 맛이라니까요.ㅋㅋㅋ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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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역사는 젬병이었다. 문장의 끄트머리만 살짝 변주해도 어김없이 대놓고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 그 말이 그 말 같고 당최 뭔 차이가 있는지 알쏭달쏭했다. 안면인식장애라도 있는 인간처럼 도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성적이 안 좋아서 싫어하게 되었는지, 싫어해서 성적이 나오지 않았는지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결론은 좋아하지 않던 분야라는 거다. 이미 지나간 일을 알아서 뭐 하누? 절도 아니고 절터를 찾는 게 무슨 의미람? 대충 이런 마음이었다.

한데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달라지듯 취향도 변하나. 역사라는 분야에 차츰 시선이 간다. 과거의 서사에서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경험이 조금씩 쌓이는 만큼 흥미도 쌓여갔다. TV에 들어갈 준비가 된 드라매니아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밍숭맹숭함을 지나 담백한 맛을 음미해가는 중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역사가 주는 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경복궁, 순천 선암사, 달성 도동서원, 거창합천, 부여논산보령 등 다섯 군데의 문화유산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작가는 미학과 미술사와 동양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문학의 비전공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나 관심 분야에 대하여 적은 글에는 독특한 매력이 존재한다.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달까. ‘쌩떽쥐뻬리, 씨즌2, 씨드니등 된발음으로 표기된 외래어가 신경쓰였지만, 단어의 표현방식이나 문맥의 유려함은 차치하고라도 신이 나서 활기차게 걸어가는 이를 보듯 책장을 넘길 때마다 땀방울이 훅훅 끼얹어졌다. 학창 시절 교과서로 접했던 용어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산지직송의 해산물을 맛보는 기분이 들었다. 박새로이의 마지막 술맛처럼 달았다. 책상 위에서의 상상이나 교과서 안에서 납작하게 눌린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발로 뛰고 뱉어낸 문장들이 팔딱거렸다. 접사로 사진을 촬영하듯 숨을 죽이며 책장을 넘겼다.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단 하나의 문장으로도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했다. 경복궁 근정전에 얽힌 일화 중 임금의 부지런함을 말하는 정도전의 문장에 반해버렸다. ‘아침엔 정무를 보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p30)’ 깔끔하고 명료한 행동지침이다. 정도전은 이 문장 하나로 시험용 인물에서 존경할만한 인물로 격상되었다. 보는 순간, !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임금도 아닌 것이 임금이 되고자 하는 역모를 꾀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시간이 정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게 흐트러져있던 생각들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경복궁에 대한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나머지 네 군데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록된 옛 지도를 대조해가면서 위치를 찾아보고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고 생소한 건축용어를 일일이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아까 찾아봤던 건데 뭐였지? 금세 잊어버리고 또 찾고 찾아보다 보니 몇몇 용어들이 머릿속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옥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도 된 양 배워가는 기쁨을 느꼈다. 서까래와 대들보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던 무지몽매한 눈이 탁 트였다.

공부하고 사진을 다시 보니 온통 그것만 보였다. 예컨대 한옥 지붕의 양식은 우진각지붕, 맞배지붕, 팔작지붕 등 크게 세 가지 양식이 있는데, 근정전의 지붕은 팔작지붕이라고 한다. 맞배지붕은 옆에서 보면 ㅅ자 모양, 흔히 집을 그릴 때 그리는 지붕의 형태이다. 우진각지붕은 ㅅ자의 옆구리에도 지붕 뼈다귀가 있는 형태이고, 팔작지붕은 맞배지붕과 우진각지붕의 콜라보다. 지붕의 왕은 팔작지붕이다. 괴도 루팡 모자의 납작 버전 모양이다. 지식백과와 이미지를 몇 번이나 왕복한 끝에 이 세 가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경복궁 전경 사진에서 몽땅 똑같아 보이던 지붕들이 다르게 보였다. 구분할 수 있게 된 거다. 3개의 문을 지나, ! 저기가 근정전이로군! 멀리서도 군중 속에서 내 아이를 금세 찾을 수 있는 지붕의 엄마가 된 거다. 이후로 한동안은 다른 장소 다른 건축에서도 온통 지붕만 보였다.

 

우리 건축의 가장 큰 장점을 자연스러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자연과의 어울림을 염두에 두고 산조차 건축의 일부로 활용한 우리 선조의 대범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접과 종지는 각기 제대로 쓰였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위대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자금성과 우리의 경복궁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움은 건축 밖에서도 드러났다. 뺀질뺀질하고 네모반듯하게 다듬어졌다고 완벽한 바닥재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근정전 앞마당은 박석이라는 돌로 깔려있는데 빛을 난반사하여 눈부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 자연 박석이 어떤 모습으로 아름다운지 배우고 나니 아파트 단지의 바닥을 밟을 때마다 박석의 자연미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구들과 굴뚝의 과학에도 감탄했다. 자연의 섭리를 적절하게 이용한 선조들의 지혜에 고개가 수그러졌다.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저자의 마음이 우리 건축의 이미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 건축 자재로 가장 이상적이라는 금강송의 보호림 조성에 관한 협약 이야기에 뭉클했다. 150년 후까지 내다보며 2155년에 개봉하기를 바라는 타임캡슐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후세를 생각하는 애틋함이 느껴졌다.

자연의 특성을 고려하고 염원을 담은 이름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에 실린 경복궁 전도에서 잘 구분하기 어려운 한자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가며 찾았다. , 여기가 그거 옆이니까 이거 맞는구나. 하나하나 짚어가며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세종문화회관에서의 뮤지컬 공연을 보기 위해 두어 번 서울로 올라간 기억이 있다. 그때는 기대하던 공연을 본다는 설렘에 광화문 광장을 무심코 지나쳤다. , 참 넓구나. 이게 끝이었다. 그 광활한 공간이 절로 만들어져 처음부터 거기에 존재했다고 무심코 생각했던 걸까. 광화문 광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숨겨진 노력을 상상조차 해보지않았다. 현판의 글씨체 하나에도, 재건 기간의 가림막조차 설치 미술로 고민한 흔적들을 보며 벅찬 감동에 잠시 멍했다. 광화문의 역사는 또 어떠한가. 지었다 불에 타고 또 지었다 부서지고 다시 옮겨졌다 결국엔 우뚝 선 왕궁의 대문. 피고 지고 또 피는 우리의 꽃을 닮아있다.

경복궁의 역사에서 빠져나오니 내가 알던 경복궁이 아닌 것처럼 생경했다. 고난과 역경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품은 고대의 왕궁이 새로운 공기를 품은 채 마음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라.(p120, 쌩택쥐뻬리)’ 작가의 답사기는 성공적이었다. 당신의 걸음을 좆다 보니 실제로도 그 장소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간다면 광장조차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바닥에서 지붕의 곡선까지 건축물 하나하나, 곳곳에 새겨진 작은 무늬까지 보듬으면서 눈에 담아올 것 같다. 그리움 같기도 하고, 애틋함 같기도 한 향수가 마음 가득 흐드러졌다.

 

문화유산이 있는 장소에 다녀와 자유롭게 쓴 기행문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역사책을 읽고 난 기분이 들었다. 역사는 문헌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듣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문화유산으로부터 시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답사란 결국 건축을 보면서 한 시대를 읽어내는 일이다.(p366)’ 시절을 호령하던 왕들과 이 땅을 살아가던 민초들은 공중으로 흩어졌지만, 까마득한 그들과 함께한 흔적들이 우리 곁에 남아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채 묵묵히 머물고 있었다. 왕궁이나 사찰과 같은 건축에서부터 절터, , 성곽, 유물, , 정자, 누각, 관아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숨결은 곳곳에 소리 없이 깃들어 있었다. 가만히 건드리면 손끝에 향기를 전해주는 허브처럼 어떤 역사서보다도 생생하게 우리의 역사를 전할 준비를 하며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 <반의반>에서는 주인공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립다고 음성 갖고 싶어하는 거 이해 가요?

-사진을 간직하든 음성을 보관하든 차이 없다고 보는데요.

사진으로든 음성으로든 그리움을 간직하는 방법에 차이가 없는 것처럼 역사를 품는 대상도 마찬가지이리라.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어떤 형태로든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p104)’하니 그 오랜 시간을 건너온 이야기라면 맑은 향기가 날 것도 같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느낌이다.

 

 

p102, 사진 설명 : 명성황후가 기거하던 장안당의 안채 ~ 곤녕합의~

p103, 1번째 단락 마지막 줄 : 옥호루 옥곤루

(조선일보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 17.10.27.일자, 명성황후 시해 장소로 알려진 옥호루(玉壺樓)는 옥곤루(玉壼樓)의 잘못이다)

p221, 그림 : 오르내리는 거북이 ~ 다람쥐

p446, 1번째 설명 : 낙양읍성 낙안읍성

(낙안읍의 성은 낙안읍성. 낙양은 상주의 옛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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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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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상대라 여겼던 사람이나 매력적인 이들을 발견했을 때 종종 생각했다. ‘당신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게 참 다행이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행복한 공기처럼 스며들 때면 마음은 풍선인 양 두둥실 부풀어 올랐다. 그들과 나는 같은 세상을 살았던 걸까. 의외의 책에서 답을 찾았다.

 

포르투갈 작가의 문체는 생소했다. 재미는 둘째치고 481개의 텍스트를 지나오는 동안 몇 번씩 뒷걸음질을 치며 되돌아갔다. 당최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안 되는 문장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양손으로 덩어리를 쭉 늘렸는데 탄력이 없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랄까. 긴 문장을 꾸역꾸역 따라가다 주어가 뭐였더라 놓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영어의 관계대명사를 배울 때가 생각났다. 어디까지가 주어인가를 끊어내는 게 문장 해석의 열쇠였지. 중간에 훅 들어온 그노무 문장 덩어리가 핵심 내용을 파악하려는 나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군데군데 찍혀 있는 쉼표는 오히려 문맥을 파악하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불안의 책.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불안 불안했다. 중간에 집어 던져버리지 않을까 심히 불안했으니 제목은 참 적절하다 싶었다. 뭐 어쨌든 읽기는 다 읽었다.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이니. 하하하. 가려진 커텐 틈 사이로 인간 내면의 심오한 성찰이 숨어있는 책이던가. 늪에서 건져 올린 양 음습하고 칙칙한 포스를 뿜어내는 문장들이 불안한 냄새를 풍기며 펼쳐졌다. 무기력, 공허, 불안, 무능, 절망, 권태. 온통 마이너적인 색채의 문장들을 접하며 점점 밑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방황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 속에서 어느 순간 텅 비는 허허로움을 보았다. 음지에 자리한 인간의 감성을 생각했다. 영혼에도 깊이가 있다면 햇빛이 닿지 않는 심연에서 건져 올리는 인간의 본성이 이와 닮았을까.

 

609페이지를 건너 작가의 연보까지 읽고 잠시 멍해졌다. 묘한 꿈을 꾸고 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꿈을 꾸는 것이다.(p294)’ 페소아에 끌려 꿈을 꾸다 온 걸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만 일어나는가, 아니면 모두에게 일어나는가.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면 전혀 새로울 게 없고, 오직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면 다른 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텐데.(p26)’ 나의 무의식에도 그가 느낀 감성이 담겨있는 걸까. 그렇다면 익숙해야 할 텐데 생경한 느낌도 있다. 작가만이 느낀 감성이라면 이해하기 불가능할 텐데 또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익숙한 맛, 생소한 맛이 섞여 있는 반반 치킨 같다. 익숙함과 생소함의 적절한 배합이 독자를 이끄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내면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마주한 감성을 표현하느냐, 표현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일까. 내용의 절반이나 제대로 이해했나 싶다. . 몰이해투성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압도하는 묵직함과 인상 깊은 정서는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의 책을 읽은 후로 나와 타인과 시와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도 바라보게 되었다는 건 분명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페소아는 그 중 으뜸인가. 47년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수십 명의 다른 이름을 통해 복수의 존재를 추구했다는 사람이다. ‘나의 크기는 내가 보는 것들의 크기이지 내 키의 크기가 아니라네.(p64)’ 오늘 하루 동안 내가 본 것들을 떠올려본다. 작가가 본 것은 얼마나 컸을까. 보는 것이 많아 글을 통해 그렇게 다양한 인격을 구현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 <킬미힐미>에서 배우 지성이 연기했던 다중인격이 과연 특이한 사례일까. 온종일 같은 감정으로 사는 사람은 없으리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쁘고, 슬프고, 설레는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256색상환 같은 감정들은 무수한 조합으로 나의 일상을 채운다. 페르소나 속에 나를 숨기기도 한다. 제어 가능한 탄력성으로 언제든 디폴트값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도 다중적인 인격들을 조금씩은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독특했다. ‘타인이란 우리에게는 그저 풍경일 뿐인데, 대체로 너무 익숙한 거리처럼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풍경이다.(p397)’ 스스로가 가구처럼 느껴졌던 때가 떠올랐다. 그저 방 한구석에 물끄러미 놓여있어 새삼 찾기 전까지는 시선이 가지 않는 대상. 정서적인 교류 없이 공간을 차지하는 사물처럼 말이다. 그저 풍경,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풍경은 이런 느낌 비슷할까.

존재는 무엇으로 정의할까. 한 사람에 대하여 무엇을 알아야 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일상적인 접촉과 대화를 통해 나를 알고는 있지만 사실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p51)’이란 문장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아는 사람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감각이 강아지풀의 솜털처럼 민감해졌다. 흑백 사진 같은 정서가 느리게 흐르는 그의 글을 따라가며 의 본질을 감각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시인은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 서서 온 감각을 동원하여 빛깔, 소리, 냄새, 감촉, 맛을 구현한다. 순간의 느낌을 선명하게 남기고 싶은 마음이 찰칵! 셔터를 누른다. 나름대로 정의해본다. 시란, 글로 찍는 스냅 사진이라고.

 

세상은 여러 가지 사물을 품는다. ‘세 가지 요소가 서로 교차하여 한 사물을 이루는데 이는 물질의 양,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 사물이 놓인 환경이다.(p81)’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변수가 되는 요소는 해석하는 방식일 터이다. ‘모든 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이로운 것이 되거나 방해물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길이 되거나 문제가 될 수도 있다.(p124)’,‘삶이란 본질적으로 정신 상태이기에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길 때 가치 있는 것이고, 가치 평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p126)’ 엘리베이터 안이 설렘의 공간이 될 수도, 공포의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사물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다면 온통 다른 의미로 채워진 세상을 같은 세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비눗방울로 그려졌다. 한 통 안에 있는 비눗물이지만 후~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순간, 그들은 각기 다른 공간을 유영하며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p333, 2번째 단락 2째 줄 : 내 조국은 포르투갈어다. ~ 포르투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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