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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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현듯 달리다 잠시 멈췄다 다시 돌아가서 멈췄다 또다시 뛰쳐나와서 달리다 멈췄다 다시 달리는 주인공의 이야기. GoStop을 반복하는 이 인물은 쓰리고를 지나도 멈출 줄을 모른다. 보통 달려라라는 동사에는 경쾌함이 묻어 있건만. 두 눈 반짝이며 달리는 하니도, 날아가는 태권브이도 힘차게 달리지 않는가. 하다못해 <런닝맨>조차 뭔가를 찾기 위한 스릴과 반전으로 활기찬데 말이다. ‘어딘가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알다시피, 가기 전에 어디에 갈지 미리 생각하는 거요.(p45)’ 어디에 갈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던 주인공 래빗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어딘가에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또다시 달려갔다. 비겁한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 역시 그런 상황이었다면 주인공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감 가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달리기가 처음부터 목적 없이 암울했던 것은 아니다. 꽤 잘나가는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시기이다. 20대 중반의 래빗은 그 순간을 수시로 복기한다. 그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결혼과 동시에 그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면서부터이다. 현실의 그는 불안함과 답답함이 공존하는 공기로 둘러싸인 일상을 보낸다. 잡화점에서 주방용품을 시연하는 일을 하고, 장인 덕분에 그의 수입에 어울리지 않는 차를 소유한다. 알코올 중독으로 허구한 날 TV만 들여다보는 임신한 아내. 거실 옷장 앞에 있어 문을 절반밖에 못 열게 만드는 TV는 어린 아내의 상징물이다. 옷장을 열 때마다 TV와 부딪히는 마찰음은 그들 부부의 관계처럼 건조하고 삐걱거리며 불안하다.

 

첫 번째 달리기의 계기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 보인다. ‘부인이 어쨌기에 집을 나가신 겁니까? 담배를 한 갑 사오라고 했지요.(p151)’ 담배 사 오란다고 뛰쳐나갔겠는가. ‘뭘 가져오고 날라오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p151)’다는 그에게는 사소한 담배 한 갑이 목까지 차오르다 화르르 타오르는 발화점이었던 거다. 깎이다 깎이다 마지막에 남은 뾰족한 심지 모양의 모래 놀이에서 툭 건드리면 우르르 무너지는.

어쨌든 그는 가출을 했다.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 그러다 갑자기 빠져나가는 게 사실 얼마나 쉬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걸어나가면 되니까.(p151)’ 하지만 막상 발은 디뎠는데 목적을 잃은 그의 달리기는 헛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인 양 허무하다.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미 목적이 달성되었으므로 다음 목적지가 모호해진 거다.

 

왜 이렇게 방황했을까. 그의 안과 밖의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는다. ‘옆집의 샐리나 조니나 프레드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그냥 너 자신으로 살라는 거야.(p18)’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던 순간에 잠깐 반짝이다 매번 맞지 않는 환경에 던져진 그는 이상과 현실의 불균형을 견디지 못한 거다.

주인공이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 뒤의 어딘가에 (중략) 내가 찾아내주기를 바라는 뭔가가 있다는 겁니다.(p183)’ 뭔가를 찾기 위해 이 모든 것 뒤의 어딘가로 틈만 나면 달려갔던 듯하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방향 설정이 잘못되어있다. 목표점이 등 뒤에 있었으니까. 앞으로 달리는데 무엇을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뒤에 두고 온 무언가로부터 늘 달아나는 선택을 한 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서도 모순되는 불균형이 엿보인다. ‘세상은 어차피 거미줄이다. 줄이 떨리면서 그냥 모든 것이 전달된다.(p185)’ 퍼진 소문을 놀라워하는 이 문장에서는 불교에서의 인드라망이 연상된다. 이런 말을 했던 그는 다음의 문장을 로망으로 품고 있다. ‘그는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원소가 아닌 어떤 것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것.(p205)’ 깨끗하고 싶었던 걸까. 그 어떤 환경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는 이상을 꿈꾸었던 걸까. 앞 문장과 뒤 문장을 동시에 느꼈던 그에게 세상은 온통 불균형투성이였으리라.

 

래빗이 느낀 진실이 어쩐지 서글펐다. ‘그의 삶을 떠난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찾아 헤매도 되찾아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날아가도 거기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여기에 있었다. 도시 밑에, 이 냄새와 이 목소리들 안에, 영원히 그의 뒤에. 우리가 자연에 몸값을 내면, 자연을 위해 아이들을 만들어내면, 충만함은 끝이 난다. 그러면 자연은 우리와 관계를 끝낸다. 처음에는 우리의 안이, 다음에는 밖이 쓰레기가 된다. 꽃의 줄기들(p322)’ 꽃을 언급하는 마지막 문장에서 식물의 일생이 떠올려보았다. 열매를 맺고 나면 꽃잎은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인 목적이 종족 보존이라면 열매 안의 씨를 만들어낸 것으로 최종 목적은 달성된 것이니 불필요한 꽃잎은 가차 없이 져버려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꽃잎이 진 다음에는 몸통이 사그라든다. 이다음은 없는 것처럼. 그러다 이듬해가 되면 새로운 생명이 씨앗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냉정한 자연의 섭리와 주인공의 상황이 겹쳐져서 마음이 짠했다.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이렇듯 옳은 길이 처음에는 그른 길로 보이곤 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p53)’,‘옳으냐 그르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야. 우리. 우리가 만드는 거야. 불행을 막기 위해.(p397)’ 작가는 옳음과 그름에 대한 판단을 각자에게 맡긴다.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무너뜨린다. 왔다갔다 줏대로 없이 방황하는 주인공이 틀린 선택을 했다며 한심해했는데 이 문장을 곱씹어보니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밍밍한 고구마를 꾸역꾸역 먹고 난 기분이었다. 호박고구마는 맛있기라도 하건만. 답답한 분위기가 줄기차게 이어지는 문장들과 버무려졌다. 대체 이걸 왜 읽고 있는 거지. 지리한 문장들이 먼지처럼 모여들어 전체적인 메시지로 심장을 지그시 누르는 소설이라 후다닥 읽는다고 줄거리 파악이 되는 책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빛깔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놀라운 표현력에 감탄스러웠다. 작가가 묘사하는 풍경들이 생명력을 지닌 음습한 덩굴손이 되어 꿈틀거리는 듯했다.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긴 산토끼는 오르막에선 날쌔지만, 내리막에선 젬병이다. 그래서 토끼몰이를 할 때에는 산 위에서 아래로 쫓아간다고 한다. 어떤 의도로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래빗과 토끼의 습성이 겹쳐졌다. 앞다리와 뒷다리의 불균형으로 언덕을 제대로 내려가지 못하는 산토끼처럼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는 원하는 모습과 현실의 상황과의 불균형에서 나온 게 아닐까. 목적 없이 향했던 곳이 하필 언덕 아래라서 내내 비틀거리고 제대로 걷지 못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상황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부분적으로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어 짜증이 나면서도 꾸역꾸역 토끼의 뒤를 좇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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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04-01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까 제목부터 훼이크군요 ㅋㅋㅋ 갈곳도 안정해졌는데 달리라뇨... 어쩐지 해리가 개츠비 급의 허망함을 보여주지 않았나 합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집을 나가서 감독을 찾아갈때 은근히 기대가 되었는데 갑자기 매춘부의 동거동락으로 빠지면서 당황스러움이ㅋㅋㅋㅋㅋ 이게 왜 고전이야? 하면서요 ㅋㅋㅋ

해리를 보면서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에 갇힌 사람은 얼마못가 미쳐버린다고 하죠. 그만큼 환경의 영향이 큰데, 알콜 중독의 와이프는... 답이 안보이네요... 해리를 커버쳐줄 마음은 없지만, 집안 사정도 참 거시기하더군요. 평안한 가정이 목적지인 사람은 가정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그래서 그토록 방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나비종님의 리뷰를 보며 전혀 불쌍치 않던 주인공이 불쌍해보이는건 왜일까요 ㅋㅋ이렇게 막돼먹은 주인공에게서도 동정과 연민을 캐치하시는 달란트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러고보니 왜 별명을 토끼로 정했는지 생각못해봤는데, 내리막길에 쥐약인 토끼의 약점이 해리에게서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어요. 전체적으로 짜증 한가득이긴 했지만 역시 책보다 더 재밌는 리뷰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ㅎㅎㅎ 3월도 수고하셨습니다^^

나비종 2020-04-01 22:29   좋아요 1 | URL
제목이 간단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겉표지에 나온 원제가 ‘Rabbit, Run‘ 이거든요. 래빗과 런 사이에 쉼표가 있잖아요. 그게 묘해요. 쉼표가 없다면 토끼 지가 알아서 달린다는 의미일텐데, 쉼표 하나 때문에 번역판 제목도 명령어가 되었잖아요. 누군가가 달리게끔 한다는 거죠. 등떠밀듯이ㅋㅋ
맞아요. 갑자기 전개되는 그 사건은 또 뭐래요. 거의 개츠비각이었습니다.ㅎㅎ 그러다 집으로 되돌아갔을 때는 등장1도 하지 않았던 매춘부에게 다시 달려가고. 감독이 무슨 역할을 하나 했더니 소개팅시켜주고 옷 하나 빌려준 다음 사라지고.ㅋㅋ

음, 저는 알콜 중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시선이 가더라구요. 결과값이 나오기까지의 시간들 안에는 많은 서사가 압축되어 있었겠죠?
평안한 가정이란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역시 가화만사성^^;

주인공 걔 불쌍한 거 맞아요.ㅎㅎ아내도 불쌍하고, 매춘부도 불쌍하고, 감독도 불쌍하고, 아들도 불쌍하고, 딸도 불쌍하고, 부모들도 불쌍하고, 목사님도 불쌍하고, 온통 불쌍투성이네요. 등장인물 중 불쌍하지 않은 이들은 엑스트라밖에 없군요. 처음에 뛰쳐나갔을 때 가다가 기름 넣은 주유소 주인 정도랄까요.
저 역시 물감님의 리뷰와 댓글 덕분에 그나마ㅎㅎ 역시 같이 까야 제 맛이라니까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