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한 장, 뭣이 그리 중헌디 :
솥뚜껑이 자라에게 묻는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면 억울해서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차별을 감당해야 할 생각을 하면 분통이 터지지 않고서야 살 수 없는 노릇.
하지만 <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가정법 > 은 다음의 가정법에 비하면 축복에 해당될 것이다. < 전생에 남자로 살았다는 것(경험한 사실)을 기억한 채 현생에서 여자로 태어났다 > 면 ? 마을 공용 우물에 똥물을 부었을 것이다. 모르고 당하는 것과 알면서 당하는 것은 차이가 크니까. 고기도 씹던 놈이 맛을 안다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하다 보면 그 상실과 분노는 상상 이상일 것이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남성이라면 두 번째 가정법에 빙의하여서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KBS << 안녕하세요 >> 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시댁 대소사를 도맡아 하면서 정작 결혼 생활 20년 동안 친정을 간 적이 고작 세 번이라며 울던 여자의 삶으로 돌아가 보라.
헐크처럼 복장이 터질 일이지 않을까 ? 물론 그 복장 1 이 그 복장은 아니지만. 전생에서는 남자로 태어나 누워서 고기 씹던 시절을 생각하면 현생에서의 삶은 몰락에 가까울 것이 분명하다. 티셔츠 한 장으로 시작된 메갈리아 인증 논란이 사그라들 줄 모른다. 소녀에게 왕자는 필요없다는 문구가 박힌 만 원짜리 티셔츠 한 장이 정의당의 논평을 이끌어내고 다시 그 논평을 철회하는 과정 2 을 보면서, 진보정당 너마저 브루투스가 되었어야 하는 현실이 판타스틱한 세계를 넘어 아스트랄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지금 한국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백마 탄 PRINCE가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PRIDE 이다. 남성이여, 여자의 시다바리가 되어 너희는 하와이로 떠나라 _ 는 주장도 아니고 그저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
는 주장과 요구를 했을 뿐인데도 이 난리법석을 떠는 것을 보면 내 불알 두 쪽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젖가슴보다 작은 것이, 혹은 젖가슴보다 가벼운 것이 이토록 수많은 권리 독점을 하게 되다니 놀라운 세상이다. < 메갈리아 티셔츠 사태 > 를 다룬 글 중 가장 탁월한 글은 역시 정희진이 쓴 글이다. 정희진은 메갈리아가 일베에 대항하여 집단적으로 반발한 최초의 사례라고 지적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754513.html
읽고 나서 불알 탁, 치며 아, 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자라가 없었다면 솥뚜껑 보고 놀랄 일도 없다. 솥뚜껑 보고 놀란 마음의 주된 원인은 시각적 착시가 아니라 자라'이다. 자라는 원인이고 솥뚜껑은 결과요, 자라는 원본이고 솥뚜껑은 사본이다. 정희진은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말을 인용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메갈리안이 모두 여성일까” “일베가 모두 남성일까?”라고 질문한다. 이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모두 남성이라는 뜻이 아니다. 가까이는 지난 10여년 동안 인터넷 세계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수천년간 여성에 대한 재현(‘지껄임’), 즉 남성의 말을 ‘복사’해서 사회에 ‘원본’을 보여준 것이다. 원본을 빼앗긴 혹은 무수한 원본이 돌아다니자 남성들은 당황, 분노하기 시작했다. 남성들에게 가장 공포는 여성의 자각이 아니다. 자신들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타인을 짓밟을 수 있는 쾌락의 언어와 맘껏 허용되었던 그 ‘권리’를 여자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좌절감이다. 철벽같았던 자기들만의 공간에 “ 이빨 세고 겁 없는 여자들 ” 이 침입한 것이다. 게다가 일부이지만 자신보다 학력이 높고 고소득인 또래 여성이, 자신을 “좆뱀”이라고 불렀을 때 심정을 생각해보라.
모든 잘못을 < 꽃뱀 > 탓으로 돌리려는 남성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 좆뱀 > 이 되다 보니 당혹스러운 것이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은 대한민국에서 메갈리아가 사나이의 말을 복사해서 사회에 원본을 보여주니 참을 수 없는 모욕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 모욕은 거세를 입증하는 보지 3 가 알고 보니 거세하는 주체인 바기나 덴타타'였다는 데 심기가 불편했던 것 4 은 아니었을까. 이빨이 세다는 것은 바기나 덴타타의 은유이니까. 지금 한국 남성들은 자라보다는 솥뚜껑 탓만 하고 있다. 내 아내가 솥뚜껑 보고 놀라서 유산을 했으니 세상의 모든 솥뚜껑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만약에 당신이 자라는 외면한 채 솥뚜껑 탓만 한다면 당신은 일베'다( 물론 이 범위에는 나도 포함된다). 일베는 어디에도 없지만 아무 데나 있다. 자기 안의 일베를 들여다볼 때이다. 이제 남성들이여, 자신이 싼 똥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자. 쌍년이 던진 똥이 더럽다고 고개를 외면하면서 분노하지 말고 그 똥이 내가 싼 똥의 미러링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자. 메갈리아는 반대로 말하는 메아리'다. 당신이 " 여자 따위가 감히 " 라고 말하면 메아리는 " 남자 따위가 감히 " 라고 말한다. 이 소리가 듣기 싫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자기애는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알고 있다. 화장실에서는 자기가 싼 똥은 인상을 찡그리지 않고 들여다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애의 시작이다. 솥뚜껑이 자라에게 말한다. " 할 일 없으면 자라 ! "
후일담 ㅣ 옛날에 창경궁으로 단체 출사를 간 적이 있다. 오래 전 기억이라 그때가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때마침 초등학교 저학년 사생 대회가 고궁에서 열렸다. 아이들은 한껏 솜씨를 뽐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예쁜 여자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말로는 어린이 모델로 종종 표지 잡지에 오르곤 했다고 한다. 나도 동참했다. 그때 우리 일행 사이에서 왕언니라고 불리우는 그녀가 한 아이에게 몰려든 우리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아이라고 해도 타인에게 사진을 찍히지 않을 권리를 생각한 왕언니의 사려 깊은 배려라고 생각한 나는 지레짐작으로 우리 일행을 강제 해산시킨 이유를 물었다.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왕언니는 어린이 표지 모델을 하는 예쁜 아이가 아니라 그 옆에 있던 못난 아이를 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모든 어른이 예쁜 또래아이에 감탄하여 그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는다면, 그 옆에 있던 못난 아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부끄러웠다. 왕언니는 내가 처음 만난 페미니스트였다. 정희진을 볼 때마다 그때 그 왕언니 생각이 난다. 예쁘다는 칭찬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
1) 복장은 배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한복판을 의미한다. 다음 신체 장기 중 신체에 없는 장기는 ? ① 심장 ② 간장 ③ 대장 ④ 복장
2) 많은 남성들이 자신을 " 핍박받는 여성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남성 " 이라고 주장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옹호하는 대상은 여성 권리에 수동적인 여성이다.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여성 권리를 적극적(능동적)으로 요구할 때 핍박받는 여성을 이해하고 연대한다고 주장하는 남성은 불쾌감을 드러낸다. 바로 그런 태도가 반영된 것이 정의당 게시판 논란이다. 글 전문이다. http://www.justice21.org/68692 그는 이 글에서 남성이 여성 때문에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3) 이 표현을 여과없이 쓰는 이유는 보지라는 단어가 남성이 여성을 혐오할 때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 글에서는 필터를 거르지 않았다.
4) 프로이트는 여성 성기를 페니스가 잘린 상태, 즉 거세 당한 증후로 인식했지만 바기나 덴타타(이빨 달린 질)은 여성 성기가 거세되는 장소가 아니라 남성 성기를 거세하는 장소라는 사실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