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이 있던 자리

                              수많은 책을 헌책으로 장만했지만 내가 구입한 헌책 가운데 시집은 한 권도 없다. 시집은 반드시 새 책으로 구입한다. 설령, 평소 절판되어서 살 수 없었던 시집을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한다 해도 구입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시인은 가난하다. 새 시집 하나 산다고 해서 시인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마는, 가난한 시인에게 쌀 한 톨 팔아 주겠다는 쩨쩨한 양심을 지키기로 내 자신과 약속했었다. 문제는 내가 시집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 됐고 ! 그런데 이 쩨쩨한 양심이 흔들릴 때가 있다. 시인이면서 동시에 문창과 교수의 시집 앞에서는 잠시 망설여진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는 작은 권력에 속하니 시인이면서 교수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시인은 가난해야 된다는 말'이 폭력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전업 시인인 함민복과 비교하게 되면 함민복 시인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전업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겸업을 해야 한다). 편견이겠으나 문창과 교수가 시를 쓰는 행위는 절박함보다는 취향 과시 정도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 시는 관념이 많아 아포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뜬구름 위에서 풍진 세상을 내려다보는 태도 ?! 시 속에서 꼰대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문창과 교수가 쓴 시집은 사서 읽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시인이면서, 문창과 교수이면서, 문예지 편집위원 혹은 문학상 심사위원인 경우는 시인이면서 교수인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시인이면서 교수인 경우가 작은 권력에 속한다면, 시인이면서 교수이면서 편집(심사)위원인 경우는 큰 권력에 속한다. 시너지 효과라고 할까. 문학 지망생인 경우, 후자는 거대한 권력에 속한다. 신경숙의 남편 남진우는 시인이면셔, 문창과 교수이면셔, 문예지 편집위원이셔셔셔 !  신경숙 또한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이란 점을 들면, 이들 부부가 누리는 권력은 상당한 것처럼 보인다. " 쓰리 잡 " 이 문제인 이유는 독과점이라는 데 있다. 영화 감독이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될 수는 있지만 영화 평론까지 겸하지는 않는다. 생산 영역과 비판 영역은 서로 척을 질 필요가 있기에 그렇다. 남진우가 문인이면서 문인을 비판하는 평론가까지 섭렵하는 것은 현역 정치가가 정치평론가까지 하는 작태와 똑같다.

 

내가 남진우의 시집을 사서 읽을 가능성, 그래요...... 이명박이 지난날을 반성하며 쥐과천선할 가능성보다 희박하다. 배부른 소설가가 쓴 소설을 읽을 생각은 있지만 배부른 시인이 쓴 시를 읽을 생각은 없다. 신경숙 소설은 2000년대 들면서 길을 잃었다. 그녀를 지켜주던 뮤즈가 곁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구에 빗대서 설명하자면 3할을 치던 타자가 2000년대 들면서 1할 성적을 내는 경우였다. 슬럼프란 누구나 찾아오는 법. 하지만 슬럼프가 길면 그것은 슬럼프가 아니라 실력이 된다. 신경숙의 슬럼프는 길어지면서 실력이 되었다. 신경숙 입장에서 << 엄마를 부탁해 >> 는 흥행과 명예를 모두 선사한 작품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최악의 작품이었다. “ 엄마 는 모든 병을, 모든 상실을,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1인용 쪽방에 사는 사람에게 엄마를 찾아준다고 해서 쥐구멍에 볕 들 날은 오지 않는다. 작은 요를 반으로 접으면 방 전체가 되는 쪽방에서 엄마는 군식구일 뿐이다. 그에게는 엄마보다는 보다 넓은 방이 필요하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엄마의 케어가 아니라 사회의 케어(복지 제도). 이명박 정권이 << 엄마를 부탁해 >> 열풍 속에서 국정을 운영했고, 박근혜 정부는 << 아빠를 부탁해 : 영화 “ 7번 방의 기적 은 영화판 아빠를 부탁해>> 가 인기를 얻고 있을 때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사실은 시사성이 크다. 이들 정권은 모두 케어 시스템은 사회적 비용으로 충당할 생각을 하지 않고 엄마와 아빠에게 미룬 정권이다. 엄마와 아빠는 사회적 비용이 들지 않는 상징적 인물이니 그들을 강조한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복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공짜 좋아하는 족속으로 폄하하면서

 

정작 두 정부는 무보수로 엄마와 아빠를 부려먹을 속셈인 것이다.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엄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낭만적 상상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엄마와 아빠가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먹고 살 길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놓친다. 어제, 신경숙은 표절 논란에 대해 짧게 대답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잡어들 노는 곳에 대어가 헤엄칠 수는 없다는 자세였다. 그녀의 변명은 묘하게 포토라인 앞에서 무죄를 증명하겠다는 정치가의 말투를 닮았다. < 독자 >< 유권자 > 로 바꾸면 영락없다. 그녀가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무죄를 주장해도 이응준이 제시한 문장은 표절이 확실하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 그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 아무리 비싼 명품 옷을 걸쳤다 해도 볼썽사나운 꼴이 되었다. 오늘도 그녀를 찾는 전화벨이 울릴 것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쓴 작품 가운데 표절이 있던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책장을 넘길 것이다. 성공은 권위를 낳고, 권위는 권력을 만든다. 신경숙은 한국 문단에서 가장 큰손이 되었다. 하지만 아찔한 추락보다 위험한 것은 아찔한 상승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높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너무 높은 곳에 올랐다. mbc 주말 오락 프로그램 가운데 << 느낌표 ( ,, 책을 읽읍시다 >> 란 방송이 있었다. 이 방송에 책이 소개되면 200만 부가 팔리던, 인기 방송이었다. 방송만 탄다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방송사에서 권정생의 << 우리들의 하느님 >> 를 선정하려 했으나 권정생은 거절했다. 시쳇말로 인세 20억을 발로 찬 셈이다. 그는 높은 곳에 오르기보다는 낮은 곳에 있기를 원했고, 낮은 곳이 편했다. 교회 종지기였던 그는 예수 곁에서 살다가 조용히 먼 길 떠나기를 원했다. 낮은 곳에 살면 불편해도 추락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표절이 있던 자리, 꽤 흉하다.

 

 

 

 

 

 

 

덧대기

 

 

" 현재 <창작과비평>의 상임 편집위원 가운데 문학계 인사는 한기욱, 백지연, 진은영, 황정아 씨 등이며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은 차미령(주간), 강지희, 권희철, 김홍중, 남진우, 류보선, 서영채, 신수정, 신형철, 이문재, 황종연 등이다. 이들은 모두 문학계 안팎에서 상당한 발언권과 함께 적지 않은 독자를 거느린 지식인들이다.  " ( 프레시안 2015.06.18 자 기사에서 부분 발췌 )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신경숙의 표절 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주류 평론가들이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주류인 창비와 문동 편집위원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예쁘게 표현해서 " 침묵 " 이지 촌스럽게 표현하자면 " 입도 뻥끗 " 못하고 있다. 문단에서는 문예지 편집위원은 꽤 좋은 자리'다.  < 지지 > 를 하자니 들끓는 여론에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 저지 > 하자니 출판사 눈치가 보인다.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까 ?  이제 관심사는 출판사과 작가의 태도가 아니다.  신경숙은 자신을 지지하는 창비에게 빚을 진 마음이겠으나 그리 좋아할 만한 것은 못된다. 창비가 신경숙에게 보내는 " 아스트랄的 아가페 " 는 잘 팔리는 히트 상품에 대한 기획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라기보다는 상품'으로 취급한 것이다. 창비는 자사 상품을 팔기 위해 미시마 유키오'를 구닥다리 상품으로 폄하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미시마 유끼오를 욱일승천기 상품 따위로 취급했으니, 이 정도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아닐까 ? 그를 듣보잡으로 만드는 신경숙과 창비의 대응 전략이 우습다. 하늘 같은 작가를 한 수 아래 내려다보는 수가 대중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반발만 거센 경우가 됐다.  됐고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제는 문단 내 주류 문인들이 답해야 할 상황'이다. 그동안 문단은 시종일관 남의 눈에 있는 띠끌만 보고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는 태도로 일관했다. " 들보가 어디 있어염 ? " 그들은 목에 핏대 세우며 시국선언에 동참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놀고 있는 흙탕물에는 침묵을 지켜왔던 것이다.  이제 답해라.  특히 문동이 전략적으로 키우는 신형철의 입장이 " 졸라 " 궁금하다. 신형철은 << 눈 먼 자들의 국가 >> 에서 한 꼭지를 맡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이 정말 사건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산출한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이다(229쪽) ˝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렇다면 신경숙 표절 사건이야말로 "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 " 이기에 "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 " 이다. 평론가가 응답해야 할 일은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한 입장 글을 표명하는 것. 응답하라. 침묵은 금이라는 금언을 믿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  현대 사회에서 침묵은 부패의 좋은 친구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15-06-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경우, 시집은 읽지 않아도 의무적 구매는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13:42   좋아요 0 | URL
저와 비슷하시군요...ㅎㅎ

cyrus 2015-06-1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낌표 선정도서가 될 뻔한 권정생 선생의 책은 <몽실언니>가 아니라 <우리들의 하느님>입니다. 선생은 아이들이 직접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는 모습을 원했기 때문에 방송으로 자신의 책이 알리는 것을 꺼려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13:46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이었군요. 이런 지적 앞으로 1241234개 더 해주십시오.
전 요즘 호기심이 과연 창비 소속 비평가와 문동 소속 비평가의 입장 표명입니다.
이런 사태라면 푱론가가 한마디해야 하는 것 당연한 의무( sns상으로라도 창구 역할은 많으니까요... )
과연 할까요 ? 스타 평론가는 많습니다. 일단 문동 활동 신형철은 이 사태에 대해 언급할까요. 민중 문학 운운하면서 민주적 태도를 지지하는 창비 진은영은 할까요 ? 궁금합니다.

cyrus 2015-06-18 21:07   좋아요 0 | URL
<몽실언니>가 권정생 선생의 대표작으로 많이 알려져서 간혹 착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며칠 동안 신경숙과 창비 저격수가 된 곰발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독자의 반응을 무시하는 신경숙과 창비의 태도에 어이가 없습니다. 지금 언론에서 익명의 문학평론가들이 신경숙 표절이 맞다, 아니다라고 설왕설래하는 것도 우스워요. 딱 봐도 표절인데 괜히 자신들도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면 이미지가 손해될까봐 피하는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21:15   좋아요 0 | URL
병신이죠. 왜 익명입니까 ? 그게 웃긴 거 아닙니까. 익명이란 조직이 무서워서 이름을 숨긴다는 건데
그만큼 문단이 병들었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실명 비판도 못하는 문단은 그냥 좆대가리죠. 이게 무슨 문단입니까. 익명으로 말하는 그 놈도 참.. 병신인 거죠...

수다맨 2015-06-18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이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세월호 추모집)에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이 정말 사건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산출한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이다(229쪽)˝

자, 이제 저들도 응답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정부와 정치인 비판은 (박통이나 전통 때라면 모를까) 꼭 문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얼마큼 할 수 있는 시대이니, 이제는 동종 업계의 `진실`을 말했으면 좋겠군요. 문학 밖의 경제/정치/언론 권력은 잘도 비판하면서 내부의 문제에 입 닫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이제는 문인들이 낸 이런저런 추모집까지도 역겨워지려고 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14:50   좋아요 1 | URL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죠. 이들은 꼴에 배웠다고 거창하게 시국선언, 이런 거 합니다. 가끔 기자회견도 하시고....... 지면도 할당 받으시고, 그런데 웬걸...... 문단 비리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말이죠. 쌍용자동차 파업, 홍대 두리반 사태 등에 대해서는 핏대를 세우던 진은영은 무슨 말을 할까요 ? 관전 포인트가 바뀌었습니다. 침묵은 또 하나의 공범이지요. 저는 신형철이 꽤 궁금합니다. 신경숙에 대해 늘 우호적인, 아니.... 출판사에 돈을 벌어다주는 작가의 평론에 대해서 무진장 후한 점수를 주던, 그것을 문학에 대한 짝사랑이라고 포장하던, 그 이상한 낭만이 지금 사태를 어떤 시선으로 볼지 궁금합니다.

돌궐 2015-06-18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 님 제가 시인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전업시인 중에 좋은 시인 서너 명만 알려주세요. 찾아보고 구입하려고요. 시집을 꼭 짚어주셔도 됩니다.. 지금 서점 앞이라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19:05   좋아요 1 | URL
전업시인 귀합니다. 일단 함민복 추천하겠습니다. 그리고 김신용의 환상통이란 시집도 추천합니다. 함민복 시인은 아마 강화도인가 거기서 관광객 상대로 인삼 팔던데 아마 망했을 거이고, 김신용 시인은 수의를 팔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그 분도 망했을 거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ㅏㄹ 라는 싣 시집도 좋습니ㅏ. 아, 이거 오타가 만아서 죄송하합니다

돌궐 2015-06-18 19:27   좋아요 0 | URL
오타가 아니라 의도된 라임으로 느껴지네요.ㅎㅎ
감사합니다. 곰곰님 추천이니깐 무조건 사서 날짜와 서명을 한 다음 `알라딘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추천`이라고 꾹꾹 눌러 쓸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8 19:37   좋아요 0 | URL
제가 노트북을 새로 샀는데 아.. 이거 자판이 길들여지지 않아서 오타가 납니다..ㅎㅎㅎㅎㅎ....
개인적 취향인데 전 세 시인이 좋더라고요....